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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처럼 여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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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7월호

BANFF – CANADA
MELBOURNE – AUSTRALIA
LUBÉRON – FRANCE
HOLLYWOOD – U.S.A.
BERLIN - GERMANY

캐나다 밴프 애비뉴와 밴프타운의 상징인 캐스케이드산.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 경계에서 즐겁게 방랑하는 이들이 있다. 캐나다 밴프에서 만난 셰프는 여행에서 받은 영감을 접시 위에 펼쳐 보인다. 그와의 대화는 밴프의 정서와 맛으로 변주하며 그곳의 일상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타투이스트와 그래픽디자이너의 무용하지만 아름답고, 유용하고도 아름다운 맬버른 생활 여행기. 프랑스 거주 30년 차 불문학자의 소소하고도 특별한 산책은 뤼베롱을 낯설지 않게 해주었다.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인물은 그곳을 좀 더 영화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며, 베를린의 지휘자는 내내 음악의 선율과 함께 베를린 곳곳을 여행하며 베를리너들의 진짜 얼굴과 자유스러운 도시 분위기 속으로 여행자를 매혹한다.


LIKE A LOCAL #1 
BANFF - CANADA

셰프의 테이블
캐나다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에서 활약 중인 이민성(영어 이름, 로이 리Roy Lee) 셰프가 안내하는 밴프의 테이스트.
글. 김민주
사진. 니코 아촌도

캐스케이드산 아래 자리한 호수에서 바비큐를 즐기는 이민성 셰프와 친구들.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Fairmont Banff Springs Hotel의 360° 돔에서 식사를 하던 중 우연히 셰프님을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밴프에 살게 된 계기와 셰프로서의 여정이 궁금합니다.
요리를 전공하면서 다양한 음식과 문화에 관심이 생겼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경험한 후 캐나다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요리사로 일을 막 시작했을 무렵, 우연히 한 유명 잡지에서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을 처음 접했습니다. ‘어떤 요리사들이 이 호텔에서 근무하고, 무슨 음식을 만들까?’라는 궁금증과 ‘나도 언젠가는 저런 웅장한 호텔에서 일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동경심을 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저는 그 호텔의 메인 레스토랑인 버밀리언 룸Vermillion Room의 수셰프Sous Chef가 되었습니다. 현재 버밀리언 룸에서 조식과 브런치, 런치 그리고 캐나디안 로키를 전망하며 식사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인 360° 돔의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요리는 ‘일기장’과 같습니다.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음식과 문화뿐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설렘 그리고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라는 기대감까지. 이 모든 것을 제 음식을 음미하는 손님들과 공유하는 여정이 저만의 요리 철학입니다.

현재 거주 중인 알버타 지역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식재료로 즐겨 만드는 요리는 무엇인가요?
알버타 주는 캐나다의 농업과 축산업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캐나다의 농업과 축산업 시스템을 배우려고 알버타 주를 방문합니다. 특히 캐나다산 소고기의 대다수는 알버타 주에서 생산되고 여러 나라로 수출 중입니다. 저는 알버타 주의 소고기로 건식 숙성한 비프 스테이크Dry Aged Beef Steak를 즐겨 만듭니다. 한국에서는 갓 도축한 고기가 맛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고기는 도축 후 사후경직이라는 반응으로 인해 단단하고 질겨집니다. 그래서 저는 보통 2~3℃의 온도로 2~3주 건식 숙성(드라이 에이징) 합니다. 건식 숙성하는 동안 생성되는 다양한 효소로 인해 고기의 식감이 부드러워지고 고소한 치즈 향이 나면서 육향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건식 숙성한 스테이크와 함께, 알버타 주의 대표적 농작물인 감자와 버터로 요리한 매시트포테이토Mashed Potato를 사이드로 곁들여 손님들께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육회와 비슷한 비프 타르타르Beef Tartare는 메인 디시를 먹기 전 애피타이저로 맛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업진살Beef Flank을 주로 사용하는데, 지방이 적고 육질이 탄력적이라 생으로 먹기 적합한 부위입니다. 먼저 고기를 잘게 저민 다음 곱게 다진 샬롯, 머스터드, 케이퍼와 올리브 오일을 함께 섞어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훈제한 달걀노른자를 타르타르 위에 올리면 완성됩니다. 소스는 갈릭 아이올리 그리고 사이드로는 감자칩이 어울리죠.

바비큐 재료인 알버타 주의 소고기와 밴프 파머스 마켓에서 구입한 채소 등.


밴프는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여행지이지만, 아무래도 로컬들이 즐기는 풍경은 여행자와 좀 다를 듯합니다.
여름에 밴프를 찾는 여행자는 하루 평균 4만3000명 정도 된다고 해요. 레이크 루이스 같은 유명한 호수뿐 아니라 강 그리고 하이킹 트레일은 항상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지인은 저마다 여름을 즐기는 장소와 방법을 하나씩 가지고 있죠. 저는 주로 로컬 친구들과 함께 캐스케이드 폰즈Cascade Ponds에서 야외 바비큐를 즐깁니다. 밴프 타운의 상징적인 캐스케이드산Cascade Mountain 아래 위치한 이 호수에는 피크닉을 할 수 있는 벤치와 바비큐를 위한 화덕까지 마련되어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휴식을 누리기 좋습니다.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답게, 저 또한 다양한 국적의 로컬 친구들이 있습니다. 저마다 각국의 음식을 준비해 캐스케이드 폰즈에서 만나 바비큐를 즐기면서 수영을 하고 카누를 타며 여름을 만끽합니다.

여행자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로컬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을 추천한다면요?
“여행을 가서 현지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시장을 방문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밴프가 품은 대자연은 경이롭지만, 현지의 찐 감성이 묻어나는 곳으로는 밴프 파머스 마켓Banff Farmers Market을 추천합니다. 현지에서 재배한 신선한 과일 등이 다채롭게 가득한 지역 시장입니다. 저는 주로 지역 농장에서 재배한 유기농 채소를 구입하는 편이에요. 먹어보면 일반 마트에서 파는 것과 달리 단맛이 강하고 식감 역시 큰 차이가 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점심은 시장 내 푸드트럭에서 해결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알버타 소고기 브리스킷(양지살) 샌드위치입니다. 이외에도 로키산맥에서 채취한 독특한 광물로 만든 각종 공예품, 로키산맥의 잣나무로 만든 식기류 등이 눈길을 끕니다. 밴프 여행을 추억하는 기념품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로도 좋습니다. 한국에서 오시는 많은 분이 이 시장을 모르고 지나치시는데, 사진 전시나 지역 음악가의 연주와 노래 등 색다른 볼거리도 펼쳐지므로 밴프 여행 시 방문하면 좋습니다. 날씨에 따라 매년 개장 및 폐장 일정이 다르지만, 대개 5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매주 수요일에 열립니다.

현지 식재료에 대한 탐구는 계속된다.

단골 풍미
이민성 셰프가 즐겨 찾는 밴프의 맛

아라시
Arashi
해외여행을 할 때 종종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민인 분들에게 소개하는 일본 라멘 가게. 이민성 셰프 또한 양식이 지겨울 때면 종종 찾는 곳이다. 전 직원이 일본 출신이고, 식당도 아담해 잠시 일본에 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라멘 종류가 다양하고 맛도 훌륭해 한국인 역시 좋아할 만한 곳이라고 한다. 예약을 받지 않으니 바쁜 점심시간이나 저녁 시간을 피하면 줄을 서지 않을 수 있다. ramenarashi.com

푸드 앤 프렌즈
Food and Friends

푸드 앤 프렌즈는 밴프 지역사회를 위한 자선 행사를 일컫는다. 밴프의 거주자 또는 방문객을 위해 월요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무료로 음식을 나눠준다. 이민성 셰프도 시간이 나면 종종 동료들과 함께 재능기부를 한다고. 밴프를 여행한다면 이곳에서 음식도 먹고 현지인에게 직접 여행 팁도 얻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척스 스테이크하우스
Chuck's Steakhouse

소고기의 도시답게 다양한 부위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이민성 셰프가 친구들의 생일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 자주 가는 곳이다. 내부는 클래식한 서부 느낌으로 꾸며져 있어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영화에서 본 외국 식당이다!”라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고. 알버타의 스테이크와 과거 북아메리카 서부 스타일이 어우러지며 이국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저녁에만 영업하고, 현지인뿐 아니라 여행자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므로 예약은 필수다. chuckssteakhouse.ca


LIKE A LOCAL #2
MELBOURNE – AUSTRALIA

7월의 겨울
패딩 점퍼를 입고 종종걸음을 걷는 사람, 레깅스와 민소매에 달리기하는 사람, 도톰한 후드티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 저마다의 온도를 가진 사람들로 채워진 도시. 호주 내에서도 멜버른은 하루에 사계절이 다 있는 괴짜 도시로 손꼽힌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하루에 다 만날 수 있다니. 얼마나 풍족한 도시인가.
글. 방재영
사진. 이현우

유명한 골목 중 하나인 센터 플레이스Centre Place는 멜버른다운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여행객들과 로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재영아,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면 뭘 하고 싶어?”
몇 해 전 현우가 이렇게 물었을 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어떻게 찾은 자유인데. 스무 살이라니, 해야 할 게 너무 많잖아.” 몇 년 후 지금. 마흔의 나는 로열멜버른공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2학년 1학기가 막 끝나 두 달의 겨울 방학을 시작한 참이다.

현우와 결혼한 지는 14년이 되었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커피 일을 함께 했었고, 그 뒤로는 10년마다 직업을 바꿔서 살다가 나이가 들면 그동안의 일들 중 제일 좋아하는 걸 모아 하며 살아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아름답고 무용한 것을 좋아하는 현우는 직업인으로서 타투이스트가 되었고, 나는 아름답고 유용한 게 좋아 그래픽디자이너가 되자며 학교에 들어갔다. 멜버른은 창작자에게 관대한 도시다. 서로의 미적 취향을 존중해주는 곳이자 타인의 취향을 첨삭할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우리 두 사람에게 이만큼 맞는 도시는 없을 거라던 예상은 다행히 들어맞았다. 물론 정착을 시작한 첫해, 그리고 바로 이어진 팬데믹과 록다운 콤보는 정신없이 우리를 흔들어놨지만 지낼수록 알게 되는 멜버른의 다정함이 우리를 이만큼이나 머물게 한 것 같다.
커피는 어딜 가나 맛있고, 거리의 사람들은 상냥하고, 무료 전시는 도시 곳곳을 채운다. 더불어 햇볕에 바싹 말라 푹신하고 너른 잔디의 공원은 발길이 닿는 곳마다 있어 어디든 풀썩 누워 쉴 수 있다. 작은 도시 중앙을 중심으로 무료 트램 존이 있어 웬만한 거리는 공짜로 트램을 타고 가니 편안하게 도시를 즐길 수 있는 건 덤이다. 5년째 멜버른에 머물고 있지만 새로운 계절의 앞에서는 매번 여행자의 마음으로 계절을 맞이하게 된다. 도시가 다시 여행객들로 붐비는 요즘, 잔뜩 흥이 오른 모습의 멜버른의 겨울이 더없이 기대된다.
일요일 아침은 9시쯤 느지막이 시작한다. 7월의 겨울. 집을 나서자마자 두툼한 코트 단추를 목까지 채워 잠가야 했다. 어제보다 바람이 더 쌀쌀해졌다. 현우와 룰레 갈레트Roule Galette에 아침을 먹으러 나선 참이었다. 줄이 금방 길게 늘어설 테니 오픈 시간에 맞춰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한국에서 일요일 브런치는 짜장면과 미니 탕수육 세트였는데 멜버른 5년 차가 된 지금은 갈레트가 되었다. 멜버른은 전통 음식이랄 게 별로 없는 대신에 프랑스, 이탈리아, 태국, 인도, 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본토 요리사들이 운영하는 맛있는 식당이 즐비하다. 나는 담백하고 바삭한 메밀전에 바질페스토와 구운 방울토마토를 올린 갈레트를 골랐고, 현우는 디저트로 함께 먹자며 수제 캐러멜과 생크림을 올린 크레페를 주문했다. 소이라테와 롱블랙을 한 잔씩 먼저 비우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널찍한 갈레트와 크레페를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배를 든든하고 따뜻하게 채웠다.
멜버른의 가을과 겨울은 아트, 디자인 행사가 한창이다. 멜버른 디자인 위크Melbourne Design Week, 라이징 멜버른Rising Melbourne, 멜버른 나우Melbourne Now 같은. 지난주까지 기말 과제를 몰아서 하느라 미뤄두었던 전시를 챙겨 볼 생각에 신이 났다. 이 도시는 언뜻 보기에 조용하고 무료할 것 같지만 부지런히 잘 기웃거리면 잠시도 쉴 틈 없이 찾아갈 전시며 행사가 빼곡하다.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가능케하는 멜버른의 자유로운 풍경.

식당을 나와 ‘멜버른 나우’ 전시에 갔다. 지난번 선택과목 수업인 얼터너티브 포토그래피Alternative Photography에서 야외 수업으로 이 전시에 왔다가 현우와도 함께 오고 싶어 다시 시간을 냈다. 함께하는 게 많으면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가 늘어난다. 설치미술, 사진, 그림, 참여형 전시까지 다양하게 채워진 전시를 몇 시간에 걸쳐 둘러보고 나왔더니 그새 구름이 걷히고 덥다 싶을 만큼 따뜻하다. 나는 왜 이런 변덕스러운 날씨가 좋은지 모르겠다. 지루할 틈이 없다. 입고 있던 코트와 점퍼를 벗어 어깨에 툭 걸친 채로 다시 걸었다. 현우가 시티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고 다시 빌리는 틈에 나는 빈티지 옷가게로 향한다.

사실 멜버른은 숨은 빈티지의 천국이다. 나는 빈티지, 혹은 기증품으로 운영되는 옵 숍Op Shop에서 우리의 옷장과 집 가구를 모두 채웠다. 나에게 호주 도시 여행의 별미는 단연 옵 숍이다. 이곳은 마을마다 뜻밖의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말 그대로 ‘Opportunity’, 기회의 장소니까.
빈티지 옷가게에서 나오니 먼저 일을 마친 현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른한 기분에 커피 한 잔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맛있는 커피숍이 많지만 여행하는 기분으로 해가 잘 드는 메이커 커피Maker Coffee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자. 겨울 해는 귀하니까. 메이커 커피는 블렌딩 원두가 없고 모두 싱글 오리진으로만 커피를 만든다. 어쩐지 단순하고 명쾌해서 좋다. 커피 한 잔을 후루룩 마시고 금방 일어났다. 오후 4시면 카페가 문을 닫을 시간이다. 멜버른 카페들은 대개 아침 7시 반쯤 문을 열어 오후 3~4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박물관이나 갤러리, 대부분의 상점도 오후 6시면 문을 닫는다. 멜버른은 물론 호주에 오면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해가 짧아진 계절, 5시쯤 집에 들어오니 금세 어둑해졌다.

많은 상점과 식당들이 즐비한 곳 중 하나인 엘리자베스 스트리트Elizabeth Street.

에필로그
시티와 가까운 칼턴Carlton에 이사 온 지는 1년 반이 되었다. 학교와 가까운 곳을 찾다 보니 이곳이었다. 기분 나쁘게 꺼끌거리는 낡은 카펫 바닥이 깔려 있지만 테라스에서 도토리나무와 야자수가 빼곡한 정원을 볼 수 있어 아침이고 밤이고 근사하다. 히터와 에어컨이 없는 대신 넓은 거실과 심야 식당 못지않은 매력적인 주방도 있다. 주변의 월세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와중에 낡은 우리 집 월세는 덕분에 안전하다. 이것저것 다 좋기만 할 수가 있나. 아, 이제 밥을 먹어야지. 한식 없이는 하루를 못 넘기는 우리는 서둘러 주방에 들어갔다. 내가 쌀을 씻을 동안 현우는 김치찌개를 끓인다. 오래된 아파트에 쿰쿰하고 맛있는 밥 냄새가 퍼진다. 아침 9시에 시작한 일요일 하루가 이렇게 끝이 났다.


LIKE A LOCAL #3
LUBÉRON - FRANCE

어느 불문학자의 기행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알려진 뤼베롱. 이 지역을 돌아보며 인문학적 소견을 넓혀주는 여정을 탐미한다.
글과 사진. 이재형

퐁텐 드 보클뤼즈 마을에서 마주한 페트라르카의 초상.

“내게 사랑이 찾아오고 마음으로 이어진 길은 두 눈으로 활짝 열렸으니 나의 두 눈은 눈물의 통로가 되었다네.”
- 〈칸초니에레〉 2번

아비뇽 동쪽에 자리한 뤼베롱은 동서 60km, 남북 5km의 거대한 산괴(山塊)다. 이 지역은 1989년 영국 작가 피터 메일의 에세이 〈프로방스에서의 1년〉이 40개 언어로 번역되고 600만 부가 팔리며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내가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아비뇽으로 내려가 다시 차량을 렌트한 것은 이곳에 살았던 문학가들의 흔적을 톺아보기 위해서다.
나는 우선 아비뇽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물의 마을’ 퐁텐 드 보클뤼즈Fontaine de Vaucluse로 달려간다. 마을 초입에는 르네상스 시대를 연 최초의 인문주의자라 불리는 페트라르카의 박물관Musée-Bibliothèque François Pétrarque이 있다. 이 시인은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366편의 시를 지어 평생을 짝사랑한 라우라에게 바쳤는데, 그 서정 시집의 제목이 바로 〈칸초니에레〉다. 1327년 스물세 살의 페트라르카는 아비뇽의 한 성당에서 처음 라우라를 보고 한눈에 반해 그녀를 뮤즈로 신성화했다. 하지만 궁정식 사랑법에 충실했던 그는 사랑하는 여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그녀를 사랑하되 그녀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충실히 준수한다. 이러한 플라토닉한 사랑을 찬양한 〈칸초니에레〉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트리스탄과 이졸데〉처럼 사랑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페트라르카는 일흔 살 생일을 하루 앞둔 1374년 7월 19일, 이미 페스트로 세상을 떠난 라우라를 만나러 하늘로 올라갔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손에 펜을 쥐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페트라르카는 시인이었다.

카뮈의 무덤.

퐁텐 드 보클뤼즈에서 라벤더가 만발한 아름다운 세낭크 수도원Abbaye Notre-Dame de Sénanque을 지나 루시옹Roussillon까지는 자동차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황갈색 절벽 위에 세워진 이 마을은 온통 붉은색이어서 낮에는 태양 아래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하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루시옹에 사는 보넬리 씨네 포도밭에서 포도 따는 일을 했어⋯ 거기는 모든 게 다 붉은색이지⋯.” 베케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다가 경찰에 쫓기자 아내 쉬잔과 함께 루시옹으로 피신해 포도를 수확하는 일을 하며 지냈다. 루시옹 마을은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쓰도록 영감을 불어넣었다.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혀 있는 베케트는 지금도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사람마다 작은 십자가를 지지. 죽을 때까지. 그리고 기억에서 사라져버려.”
- 〈고도를 기다리며〉 中


붉은 루시옹 마을의 풍경.

루시옹에서 〈이방인〉의 알베르 카뮈가 잠든 루르마랭Lourmarin까지는 25km가 채 안 되지만, 깊은 계곡의 강과 나란히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카뮈는 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섬〉을 쓴 작가이자 철학자인 장 그르니에다. 카뮈는 그를 통해 프로방스와 루르마랭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장 그르니에가 이 마을을 묘사하는 것을 듣고 매료된 카뮈는 여기서 멀지 않은 일쉬르라소르그L'Isle-sur-la-Sorgue에 살고 있던 친구 르네 샤르의 격려를 받아 루르마랭에 집을 사 정착하게 된다. 카뮈는 1958년부터 여기서 시간을 보내며 이곳 대지를 표현하는 데 자주 몰두했다. 루르마랭과 뤼베롱의 풍경은 알제리와 그곳에서 멀리 보이는 산에 자주 비교될 것이다. 그는 이 마을에 머무르는 동안 번잡하게 살고 싶지 않아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가명으로 살았는데, 그가 시간을 보냈던 올리에Ollier 식당(현재 이름은 르 물랭 드 루르마랭Le Moulin de Lourmarin이다)이나 앉아서 신문을 읽곤 했던 오르모 카페Café de l'Ormeau가 아직 남아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축구 경기장이 있는데, 이 스포츠를 무척 좋아했던 카뮈는 자신의 유니폼을 이곳 청년스포츠 클럽에 기증하였다. 1960년 1월 1일, 카뮈는 루르마랭 집에서 가족, 친구들과 함께 새해를 맞았다. 1월 2일, 그는 원래 기차를 타고 파리로 올라가려 했지만 결국은 친구들과 자동차를 타고 가기로 한다. 1월 4일, 그는 파리에서 100km 떨어진 한 마을에서 자동차로 가로수를 들이받는 바람에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카뮈는 그가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이 마을에 묻혔다. 그의 묘지에는 이름 그리고 출생과 사망 연도만 기록되어 있을 뿐 묘비명도 없다. 그렇게 카뮈는 뤼베롱의 작은 마을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그는 말했다.
“죽음은 우리 주변 곳곳에 널려 있다.”

사연 있는 퀴퀴롱 마을의 지붕.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아주 작은 마을 퀴퀴롱Cucuron(언덕이라는 뜻)이다. 루르마랭에서 약 8km 떨어져 있는 이곳에 온 이유는 마을의 지붕을 보기 위해서다. 성탑으로 올라가면 온 마을의 집 지붕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장 지오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장-폴 라프노 감독의 영화 〈지붕 위의 기병〉이 떠오른다. 기병대장 앙젤로 파르디는 주민들로부터 샘에 독을 푼 이방인으로 몰려 붙잡혔다가 지붕 위로 도망치는데, 이 장면이 바로 퀴퀴롱 마을의 지붕에서 촬영되었다. 1832년 프로방스에는 콜레라가 창궐했다. 젊은 귀족 여성 폴린은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프로방스의 성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앙젤로 대령은 이탈리아의 독립을 위해 결성된 비밀결사 카르보나리 당원으로 오스트리아 군인에게 쫓기고 있다. 두 사람은 열흘 동안 동행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콜레라에 걸려 수도 없이 죽어가면서 점차 집단광기에 사로잡힌다. 그들이 인간성을 잃고 짐승이 되어가는 시대는 우리가 경험한 팬데믹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앙젤로와 폴린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예의와 용기, 타인에 대한 믿음과 사랑, 절제 그리고 품위 등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을 잃지 않는다. 이 같은 덕목이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붕 위의 기병〉을 쓴 소설가 장 지오노는 퀴퀴롱에서 북쪽으로 40km 떨어진 인구 2만2000명의 도시 마노스크Manosque에서 태어나고 잠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여행자’라는 별명이 붙은 지오노는 문단을 불편하게 느껴 다른 작가들과도 거의 교류를 하지 않았고 지방 작가로 활동했지만, 그의 작품은 지역을 넘어서 그 어느 작가의 작품보다 더 보편적이다. 1953년에 출판된 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시대를 앞서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운 선구자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는 헐벗은 뤼베롱 지역의 산에 40년 동안 나무를 심는다. 이 작품의 화자는 그가 평생을 바쳐서 하는 이 일을 ‘신의 일’에 비교한다. 벌까지 키우게 된 양치기는 그가 이룬 숲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그러나 지오노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숲이 무성해지면서 마을이 생기고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 요즘 말로 하면 지속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부피에는 바농의 한 요양원에서 숨을 거둔다. 그는 진정한 뤼베롱 사람이었다.
마노스크 북쪽의 산악지대에 있는 바농과 이 마을이 등을 기대고 있는 뤼르산이 바로 〈나무를 심은 사람〉의 배경이다. 실재한 적은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 양치기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지오노의 묘지로 올라가는 길에 ‘엘제아르 부피에의 오르막길’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나는 신에게나 어울릴 법한 이런 일을 해낸, 배운 것 없는 늙은 농부에게 크나큰 존경심을 품게 된다.”
- 〈나무를 심은 사람〉 中


LIKE A LOCAL #4
HOLLYWOOD - U.S.A.

비하인드 더 신
특수 분장 및 의상 제작사, 이미경(영어 이름, 바네사 리Vanessa Lee)이 안내하는 할리우드의 분주한 나날.
에디터. 성채은

늘 여행객으로 붐비는 할리우드 거리.

영화 〈라라랜드〉의 로맨틱한 장면이 현실에서 펼쳐질 것만 같은 로스앤젤레스의 거리, 할리우드. 그곳은 열정적으로 영화를 작업하는 사람들과 여행객들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에너지로 활기가 넘친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관광 트램을 향해 손을 흔드는 영화업계 종사자들의 환대로 모두가 절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식당에서조차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여유만만한 로스앤젤레스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저물어간다.

특수분장과 특수의상 제작사라는 직업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할리우드에서 촬영한 수많은 영화에 참여하셨을 텐데 참여작이 궁금합니다.
특수분장에 쓰이는 몸집이 커 보이게 하는 특수의상인 팻슈트나 좀비, 괴물 등으로 변하는 크리처 슈트, 슈퍼히어로가 되는 히어로 슈트, 전투복 등을 주로 만들고 있어요. 라텍스 냄새가 벤 작업실의 재봉틀 앞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영화광이던 제가 우연히 영화 전문 코스튜머 인턴을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죠. 영화 〈언더월드〉를 시작으로 〈토르〉, 〈스타트렉〉, 〈배트맨〉, 〈수퍼맨〉, 〈아이언맨〉, 그리고 가장 최근의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등 지금까지 참여한 작품만 대략 120편 정도 됩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관광 트램을 타고 지나가던 때가 생각나네요. 저처럼 일했을 영화 크루들이 손을 흔들어주던 장면이 종종 떠오릅니다. 그래서 저도 관광 트램을 마주치면 더욱 크게 손을 흔들어줍니다.

할리우드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영화산업의 중심지입니다. 현지인이 경험하는 할리우드는 어떻게 다를까요?
꿈, 도전, 환상을 형이상학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특히 영화배우나 관련 산업 종사자들에게는 더욱 의미가 깊이 와 닿을 수밖에 없죠. 할리우드에서 이루어졌던 촬영의 활동 범위가 날이 갈수록 넓어져 이제는 캘리포니아 전체가 영화업계 종사자로 넘쳐납니다. 매년 1~2월에 촬영이 시작되면 전국 혹은 전 세계의 배우들이 몰려와서 캘리포니아가 1인치가량 내려앉는다는 유머가 있을 정도니까요.

할리우드가 속한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어떤 성향을 띠나요?
LA 사람들을 ‘레이백Lay back’이라고 부릅니다. 느긋하고 누구와도 말을 잘 걸고, 인사를 잘 하고 항상 즐거운 사람들을 말하죠.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 중에도 배우 지망생이 많아서 말도 잘 걸고 친근한 이들이 많습니다. 영화 〈라라랜드〉가 이곳을 잘 구현했다고 생각해요.

영화산업에 흥미를 갖고 할리우드를 찾아온 여행객들이 둘러보면 좋을 만한 장소를 추천해주세요.
할리우드 거리 안의 숨은 보석인 할리우드 무비 포스터스Hollywood Movie Posters에 꼭 가보세요. 금요일, 토요일, 월요일 오후 1시 30분에서 5시까지만 오픈하니 시간과 날짜를 잘 맞춰 방문해야 합니다. 소장용 오리지널 영화 포스터와 배우들의 사인이 담긴 사진, 오리지널 대본 등을 판매하죠. 작업에 참여한 영화의 포스터를 진품으로 구하고 싶어서 저 또한 가끔 들르는 곳입니다.

당신의 스타일대로 제안하는 할리우드 여행을 해보고 싶군요.
FIDM 박물관에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요. 패션학교의 뮤지엄으로 매년 오스카 시상식에 이름을 올린 의상들을 전시하는데,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제 작품도 종종 전시되곤 해요. 단, 전시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온라인으로 먼저 확인한 후 방문 일정을 계획하는 걸 추천합니다. 이외에도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라라랜드〉의 주인공이 되어봐도 좋고, 파사데나Pasadena의 겜블 하우스The Gamble House 앞에서 〈백 투 더 퓨처〉의 박사님을 불러보기도 하면서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해보는 여행도 재미있겠네요. 캘리포니아 전체가 할리우드라고 봐도 손색없습니다. 여행하는 모든 이들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추억을 안고 돌아갔으면 해요.

로스앤젤레스를 대표하는 할리우드 사인.

♦ 다운타운에서 느껴보는 할리우드
여행과 영화를 모두 사랑한다면

그랜드 센트럴 마켓
Grand Central Market

다운타운에 있는 노천 식당이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맥 라이언이 나왔던 영화 〈시티 오브 엔젤〉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라멘
후드Ramen Hood’의 아보카도 튀김이나 ‘웩슬러 델리Wexler’s Deli’의 맥아더 샌드위치는 꼭 맛봐야 할 별미다.

LA예술지구
LA Art District

이 구역은 ‘24시간 촬영 스튜디오’라고 부를 만큼 영화나 뮤직비디오를 많이 촬영한다. 운이 좋으면 촬영 장면을 구경하게 될지도. 연예인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세계 3대 갤러리 중 하나인 ‘하우저&워스 Hauser&Wirth’에 들러보길 추천한다.

모션 픽처스 아카데미 박물관
Academy Museum Of Motion Pictures

2021년에 개장한 영화 박물관이다. 주변에 주립 박물관이 있고, 한인타운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이 있다. 재미있는 행사가 다채롭게 열리니 방문 2주 전에는 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입장권은 방문 전 홈페이지에서 구매해야 한다. 

 


LIKE A LOCAL #5
BERLIN - GERMANY

음악이 불어오는 도시
바이올린으로 시작한 음악가 김리라가 지휘자라는 새로운 야망을 안고 안착한 베를린에 대해서.
에디터. 성채은

독일 의회의 의장 건물로 이어지는 티어가르텐.

햇살 좋은 낮에는 그저 풀밭에 누워 햇빛을 만끽하기에 바쁜 베를린 사람들. 작은 그릴 키트로 구운 소시지에 맥주를 곁들이며 한낮을 보낸다. 6월 말에서 7월 초가 되면 베를린의 오케스트라들은 야외 공연을 펼친다. 숲 한가운데에 자리한 2만 석 규모의 발트뷔네Waldbühne 공연은 문화와 자연이 공존하는 베를린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해가 늦게 지는 베를린의 푸르스름한 여름 하늘 아래에서 연주를 곱씹으며 다시 숲을 걸어 내려간다.

바이올리니스트에서 지휘자로 음악의 범위를 확장하셨어요.
저는 한국에서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시작해 대학 졸업 후 지휘자에 도전하기 하기 위해 2015년 베를린에 왔습니다. 베를린의 한스아이슬러 음악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지금까지 베를리너의 삶을 즐기고 있어요.

베를린은 오케스트라의 도시로 유명하죠. 또한 많은 DJ가 몰리는 클럽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베를린은 어떤 매력을 가진 도시인가요?
모든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문화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이 베를린의 매력 중 최고라고 항상 생각합니다. 하루 동안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니와 정상급의 DJ를 모두 보러 갈 수 있죠. 클래식 음악가로서 저는 오랜 시간 동안 한정된 장르의 음악을 청음 해왔어요. 베를린의 클럽에서 매일 밤 뜨겁게 열리는 DJ 공연을 통해 테크노나 댄스 음악 장르도 클래식 음악만큼이나 질적으로 매우 뛰어난 예술 공연일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죠. 이처럼 베를린은 다양한 음악과 함께 지루할 틈이 없는 생동감 넘치는 도시입니다.

다른 유럽 국가와 구별되는 베를린의 가장 큰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유럽 대도시에 비해 다양한 색을 지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구역마다 넘치는 개성과 특색을 알아가는 것 또한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이지요.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베를린에는 도심 중앙에 자리한 광활한 공원인 티어가르텐이 있습니다. 자연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도시죠. 많은 독일인들의 여름 주말은 베를린 외곽의 수많은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고 작은 숲에서 가벼운 산책으로 마무리합니다. 개인적으로 유럽 여러 곳곳에서 열리는 연주나 마스터클래스 등을 위해 많은 도시를 다니는데, 베를린이란 도시는 유럽 어디를 가기에도 지리적 위치 또한 빼어나다고 생각해요.

베를린 사람들은 어떤 취향과 성향을 가지고 있나요?
“베를린은 독일의 도시이지만, 베를린은 베를린이지 독일이 아니다”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베를린은 다른 독일 어느 지역에 비해서 특별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요. 이 지역만이 가진 독특하면서도 치명적인 개성이 있죠. 이 개성의 뿌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유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 ‘자유’ 라는 단어에 적합한 도시라고 봐요. 결정적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이곳은 자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죠. 삶과 이념이 다른 사람들이 중간 지점을 찾아가며 도시를 새로 만들어갔고, 각 구역은 다채로운 특색과 역사를 생성해왔습니다. 지금의 베를린은 세계 곳곳의 많은 인종들, 다양한 정체성과 모든 나이대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어우러져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각자의 이상을 실현하며 살아갑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며 많은 편견이 깨지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자유롭게 살고 있어요. 자유로울 권리를 외치고 다양성과 강한 개성을 무던하게 그리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점이 베를리너의 성향이 아닐까 싶네요.



♦ 베를린식 흥취
음악에 흠뻑 취하기 좋은 장소들

벤 라힘
BEN RAHIM

중동의 색깔이 트렌디하게 스며든 하케셔 호프Hackeshcer Hofe 속에 숨겨진 작은 카페. 튀르키예의 페이스트리 디저트인 바클라바와 커피의 조합이 아주 신선하다. 특히 흔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음악 선곡이 아주 좋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 와서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benrahim.de

클룬케르크라니히
KLUNKERKRANICH

쇼핑몰 건물 옥상에 위치한 곳.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야외에서 맥주를 한잔하며 베를린의 파노라마 뷰를 감상할 수 있다. 해가 지는 순간은 정말 마법이 펼쳐지는 것만 같다. 공간이 꽤 넓어서 그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도 좋다. DJ가 음악을 트는 곳에서는 춤을 추기도 하면서. klunkerkranich.org

재즈클럽-쿤스트파브리크 슐로트
JAZZCLUB-KUNSTFABRIK SCHLOT

베를린에도 다양한 장르의 재즈 뮤지션들이 있다. 이곳은 다른 재즈바에 비해서 특히 수준 높은 연주 무대가 자주 열린다. 합리적인 가격의 음료와 다양한 장르의 재즈를 즐길 수 있는 곳. kunstfabrikschlot.de



글. NGT 편집부
사진. 니코 아촌도NICO ACHONDO, 이현우HYUN-WOO LEE, 이재형JAE-HYUNG LEE, 이미경, 셔터스톡, 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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