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오래된 역사와 시간을 견뎌낸 건축물,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존하는 방식을 목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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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사람을 매개로

봄기운이 완연한 정원에 ‘조치원 정수장’이라는 문패가 붙은 적갈색 벽돌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이곳은 1935년부터 2013년까지 지역 주민들의 식수와 조치원역 증기기관차 운행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는 공공시설로 기능했다. 오랜 세월 깨끗한 물로 도시를 성장시키고 주민들을 길러낸 이 정수장은 더 이상 운영하지 않지만, 물이 가득 차 있던 자리를 비워내고 지금의 문화 콘텐츠로 채워 도심을 풍요롭게 한다. “개개인을 각기 다른 식물에 빗대어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이정주 대표의 말처럼 각 공간은 사람들이 어우러지며 완성된다. 방문자는 지역 예술가의 입주 작업실에서 회화를 배우거나, 거대한 하늘색 물탱크 모양의 여과기 옆에서 야외 공연을 즐기기도 한다.
야외 공간을 누비고 나면 발걸음은 자연스레 땅 아래 숨겨진 지하 공간으로 이어진다.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지하 저수지는 전시가 열리면 여전히 물때가 남아 있는 잿빛 콘크리트 벽면에 다채로운 빛깔의 작품이 걸린다. 정원 곳곳을 누빈 뒤에는 실내 저수조를 개조한 카페로 향한다. 수조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는 색다른 경험이 기다린다.
조치원 문화정원
세종 조치원읍 수원지길 75-21
Do it. 매년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인들이 어우러져 진행하는 아트페어인 ‘원픽마켓’을 연다. 올해도 5월 14일부터 18일까지
예술의 장이 펼쳐진다.
STUFF
물건의 발견

조치원 원도심 한복판, 평범한 빌딩 1층에 작은 시장이 열린다. 조치원을 이르는 순우리말인 ‘새내’에서 이름을 따온 ‘새내장’은 조치원 특산물인 복숭아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상품, 조치원 양조장에서 만든 전통주, 인근 공방에서 제작한 화과자와 자수 액세서리 등 세종시를 기반으로 한 제품을 다루는 편집숍이다. “조치원은 넓지는 않지만, 열정 넘치는 창작자들이 정말 많아요. 이 작은 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다양한 재능을 소개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제품을 큐레이션하고 있어요.” 이곳은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닌, 조치원의 지역 창작자들이나 소비자가 서로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세종시에서 재배한 쌀로 빚은 증류주 옆에는 술과 페어링하기 좋은 이 지역에서 생산한 샤퀴트리가 놓여 있는가 하면, 판매하는 물건의 공방 장인들이 제품 제작 과정을 공유하는 원데이 클래스를 열기도 한다. 새내장의 슬로건은 “우리에게도 사는 재미가 있다!”이다.
판매하고 싶은 물건을 가진 누구나 빌릴 수 있는 40cm 길이의 판매대엔 지역 주민이 만든 엽서, 인형, 키링이 놓여 있다. 매장을 가득 채운 ‘조치원에 사는 재미’를 마주하고 나면 자그마한 도시 속에 숨겨진 매력을 자연스레 느끼게 될 것이다.
새내장
세종 조치원읍 새내로 131-1
Do it. 매장 한쪽에는 테마에 따라 LP를 전시하고 있다. 5월에는 고려대학교 사진동아리와 함께 ‘내게 영감을 준 영화음악’을 주제로 전시할 예정이다.
HISTORY
역사에 덧칠한 예술

조치원 1927 아트센터의 역사는 약 1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이던 1927년, 이 건물은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제사공장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옷감을 만드는 편물공장, 종이를 생산하는 제지공장으로 용도가 바뀌며 활용되다가 2003년
폐쇄되었다. 그로부터 20여 년간 방치되던 이곳은, 문화공간이라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으며 다시 문을 열었다. 공장 부지에는 시대의 흔적을 머금은 다양한 건축물이 공존한다. 제사공장은 현재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야외에 남아 있던 작업 시설은 정원과 휴게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큰 공장은 브런치 카페로 운영 중이다. 안으로 들어섰지만 실내 수조가 있던 자리에 조성된 정원과 천장으로 쏟아지는 자연광 덕분에 실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공간의 개방감은 극적으로 확장된다. 일반적인 테이블과 의자가 아닌, 널따란 무대와 200석 규모의 객석을 갖춘 공간은 이곳이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아트센터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밴드와 DJ, 중창단 등 장르를 불문한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올라 한때 기계 소리로 가득했을 이곳을 음악으로 채운다.
조치원 1927 아트센터
세종 조치원읍 새내4길 17
Do it. 눈뿐만 아니라 입으로도 조치원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복숭아 요거트 스무디는 이 지역 특산물인 복숭아로 맛을 냈다.
MIND
내면을 빚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아직 나는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조치원역 건너편, 여관이 밀집한 좁은 골목길에 김영랑 시인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아직’, ‘나의’, ‘봄’을 따와 이름 붙인 도자기 공방 ‘스틸마스프링’이 자리한다. 그 이름엔 이 공간이 여행자에게 언제나 봄 같은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따사로운 햇살과 봄기운이 쏟아져 들어오는 실내는, 오래전 영업을 마친 구멍가게를 박지원 대표가 직접 꾸며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했다. 창가에 놓인 작업대와 선반,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장식한 도자기들도 찬연한 봄꽃처럼 형형색색 빛난다. “도예의 가장 큰 매력은 원하는 색과 질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거예요. 흙으로 제 감정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죠.” 이곳의 시그너처는 ‘불씨’라는 화병, 감정이 발산되는 순간을 다양한 패턴과 질감, 색상으로 형상화했다.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면 마음속에 내재한 감정을 물레 위에 구체화해 드러낼 수 있다. 색을 입히고 도자기를 빚어내는 과정에서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취향도함께 드러난다. 도자기가 구워지는 동안엔 공방 안쪽 전시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겨 회화나 사진 등 조치원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또 다른 ‘봄’을 마주해도 좋다.
스틸마스프링
세종 조치원읍 조치원2길 46
Do it. 박지원 작가가 세종교육청 마을교사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성인 대상의 원데이 클래스뿐 아니라 키즈 도예 클래스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