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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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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7월호

도시를 구성하는 자연과 역사,
예술과 전통의 의미를 탐구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와 오늘을 잇는 방식에 주목해본다.

GROWTH
자연에 어우러지다

(위부터 시계 방향) 열대 온실 포레 하우스 내부. 더포레의 식음료는 자연의 맛을 고스란히 전한다. 다양한 허브를 키우는 온실인 리프 하우스.

“살벌한 세상 속에서도 저는 정원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어요.” 미국의 화가이자 동화 작가 타샤 튜더는 산골 마을의 작은 농가에서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며 살아간 것으로 유명하다. 경운기가 지나가고 허수아비가 지키고 선 논밭을 통과하면 모습을 드러내는 더포레는 타샤 튜더의 정원에서 영감받은 청년 농부들이 직접 가꾸고 운영하는 카페로,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외국 어느 시골의 정원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이곳 건물들은 기존에 있던 나무를 베지 않기 위해 따로따로 흩어지게 지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음료와 빵을 판매하는 카페 공간은 나무로 지어 안락함이 느껴지고, 허브 향이 가득한 ‘리프 하우스’는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다른 온실인 ‘포레 하우스’에는 바나나나무를 비롯한 열대식물들이 자란다. 야외에는 직원들이 직접 가꾼 정원이 있다. “특정 공간에 하나의 종을 모아놓는 대신, 정원 전체에서 자연스럽게 식물들이 어우러지도록 연출했어요.” 정원을 관리하는 박상현 팀장의 말처럼 구석구석 숨어 있는 꽃과 과일나무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자두나무에서 자두를 수확해 음료를 만드는데 놓치면 안 되는 별미다.
더포레 
경기 화성시 향남읍 두렁바위길 49-13

Do it. 계절의 흐름을 알리는 것은 꽃과 과일뿐만이 아니다. 더포레는 어린이날엔 스탬프 투어, 식목일엔 허브 심기 등 시즌별 이벤트를 다양한 허브를 키우는 온실인 리프 하우스. 진행한다.


TRADITION
시간의 품격

(위부터) 푸레도기는 차 본연의 맛을 살려준다. 한미요배씨토가의 가마. 구워지기 전의 푸레도기.

‘푸르스름한 도자기’라는 의미의 푸레도기. 다른 도자기들이 보통 15일 안팎이면 완성되는 데 비해 푸레도기의 은은한 푸른빛은 아주 천천히 만들어진다. 흙을 숙성하는 데에만 꼬박 3년이 걸리고, 가마 온도를 1300℃까지 올리는 데 하루, 굽는 데 5일, 식히는 데 20일이 걸린다고. 그러나 푸레도기의 역사에 비하면 이 시간도 짧게 느껴진다. ‘한미요배씨토가’는 ‘한국의 아름다운 가마를 운영하는 배씨 집안’이라는 뜻으로, 1700년대 중반부터 무려 285년간 가업을 이어왔다. 현재는 국가 지정 푸레도기 전승 기능자인 8대 배연식 작가와 그의 두 딸인 9대 배은경, 배새롬 작가가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들르게 되는 공간은 2층 쇼룸이다. 유약이나 잿물을 사용하지 않아 흙 본연의 색과 질감이 살아 있고, 표면에 붙은 소나무 재와 소금이 만드는 푸른빛이 은은하게 번진다. 방부성과 통기성이 탁월할 뿐 아니라 2017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공예 기획전에 소개되며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쇼룸 안쪽의 작은 방에서는 예약제로 티 클래스가 열린다. “수많은 숨구멍이 차의 잡맛을 줄이고 본연의 향을 살려줘요.” 배연식 작가의 설명은 1층 작업실로 이어진다. 가마 작업을 기다리는 도자기와 손때가 묻어 있는 오래된 작업 도구, 거대한 가마를 구경하며 푸레도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짐작해보는 것도 좋겠다.
한미요배씨토가 퓨어세라
경기 화성시 서신면 담밭성지길 66-4

Do it. 이곳의 찻잔은 최민식 주연의 영화 〈취화선〉에, 주전자는 정해인 주연의 드라마 〈엄마친구아들〉에 등장했다. 작품에 나온 제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일 듯.


ART
예술을 누비며

(위부터 시계 방향) C동에선 디지털 정원 속에 머무를 수 있다. 섹션의 시그너처 메뉴인 숲과 흙. 한국적인 요소로 장식된 섹션 B동.

섹션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잠시도 멈춰 있는 법이 없다. 여행자들은 A동부터 D동까지 네 개 공간을 넘나들며 취향에 맞는 장소를 찾는데, 그 여정 속 각 공간에서는 실시간으로 미디어아트 전시가 상영된다. A동에서 주문을 마치면 발걸음은 자연스레 B동으로 이어진다. 예술과 디자인이 어우러진 이곳에는 한국 가구 작가 최초로 런던 사치 갤러리에 전시한 스튜디오 신유의 작품이 놓여 있다. 동서양 건축의 공통 구조인 ‘기둥’과 ‘보’에서 영감을 받은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보면 뿌연 연기와 함께 레이저 아트가 펼쳐진다. 미디어 아티스트 HWAN의 삶의 리듬과 우주의 규칙성을 담은 작품은 30분마다 무채색 가구가 들어선 B동을 화려한 빛으로 물들인다. C동에 들어서면 싱그러운 자연의 색이 반긴다. 리빙 브랜드 수퍼포지션과 협업한 ‘THE DIGITAL GARDEN’은 실내에 디지털 정원을 구현한 공간이다. 픽셀로 이뤄진 숲속에서 흙, 숲, 물, 눈의 성질에서 영감을 받은 섹션의 시그너처 디저트를 맛보자. 특히 인기 있는 ‘숲’은 초콜릿 크림을 머랭으로 감싼 케이크로, 바삭한 식감 뒤에 부드러운 크림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이 밖에도 해가 지면 야외에 있는 D동에서 진행되는 HWAN의 〈실재의 오선지〉 전시까지 밤늦은 시간에도 섹션의 움직임은 이어진다.
섹션 
경기 화성시 남양읍 신남안길 293

Do it. A동에서는 달항아리, 부채 등 한국적인 소품부터 전시 작가들의 굿즈까지 다양한 소품을 판매한다.


HERITAGE
전통을 오늘에 맞게

(위부터 시계 방향) 독특한 서체가 눈에 띄는 박봉담 간판. 방봉담의 빵과 품, 숲. 양조장의 복도는 오늘날 정원이 되었다.

지붕이 낮은 공장들이 모여 있는 봉담읍. 골목길을 걷다 보면 하늘 위로 고개를 내민 낯선 서체의 간판이 눈에 띈다. ‘박봉담’이라고 궁서체로 적혀 있지만 ‘ㅂ’과 ‘ㄷ’은 픽셀화가 된 독특한 형태다. 오래된 것과 현대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본격적인 건물 리모델링에 앞서 가장 먼저 설치했다고 한다. 이곳은 1986년부터 2004년까지 국순당의 양조장이었던 공간으로, 20년 가까이 비어 있다가 술을 매개로 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공원PARK’에 지역명인 ‘봉담’을 더한 이름처럼, 박봉담은 실내외의 경계를 허물고 자연을 들였다. 과거 공장의 복도가 있던 자리는 천장을 트고 산딸나무 등을 심어 정원이 되었고, 그 주위로 카페, 스마트팜, 양조장, 연구실, 보틀숍 등이 자리한다. “공간을 만들 때 ‘전통을 오늘에 맞게’라는 테마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오래된 보와 기둥, 환기 배관은 그대로 두고 현대적 요소를 더했죠.” 이예원 차장은 공간 설명에 이어 박봉담에서 판매하는 음식들 또한 전통적인 농업에 기반한다고 덧붙인다. 이곳의 메뉴는 ‘빵’, ‘풀’, ‘술’로 나뉜다. 화성에서 수확한 멥쌀로 만들어 곡물의 고소함이 극대화된 막걸리, 발효종을 활용해 쫀쫀하면서 풍미가 살아있는 술빵, 직접 재배한 채소로 만든 브런치 등 모든 음식은 이 땅의 자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박봉담 
경기 화성시 봉담읍 매송고색로 452

Do it. 때때로 2층에 있는 테이스팅룸에서 국순당이 생산한 술 시음회가 진행된다. 최근에는 이 공간이 양조장이던 시절 처음 출시됐던 백세주를 맛보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글. 차성민SEONG-MIN CHA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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