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산속 마을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지는 알바니아의 해안을 따라 떠나본다.

블로러Vlorë부터 크사밀Ksamil 마을까지, 국토의 남서쪽 해안을 따라 이어진 알바니아 리비에라Albanian Riviera는 유럽의 몰디브라 불리는 곳이다. 세련된 리조트가 들어선 북적이는 해변부터 인적이 드문 고요한 만 등 반짝이는 푸른 바다를 감싸 안은 해안의 모양새가 다채롭다. 하지만 알바니아 리비에라에서 눈길을 끄는 건 바다만이 아니다. 수백 년 된 올리브나무가 무성한 산기슭에 자리한 마을과 과거 공산주의 시절의 유물, 섬세하게 보존 중인 고대 유적이 존재한다.
블로러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인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Tirana로 향하는 항공편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알바니아 리비에라의 중앙 해안 도로인 SH8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오니아해를 실컷 만끽할 수 있다. 알바니아의 고고학적 보물을 찬찬히 둘러본 다음 해변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앞으로 제안하는 3일의 여정 외에 시간을 더 들여도 좋겠다.
첫째 날. 숲속 은신처와 고대 유적지
오전
알바니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국가의 현대화를 이끈 블로러에서 여행을 시작해본다. 1912년, 수백 년간 이어온 오스만제국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알바니아 국기를 처음으로 게양한 깃발 광장Flag’s Square에서 독립기념비Independence Monument를 마주한다. 좀 더 자세한 히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알바니아 초대 국무총리의 이름을 붙인 이스마일 체말리 대로Boulevard Ismail Qemali 끝에 위치한 국립독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Independence으로 향하자. 알바니아가 독립을 이뤄내기까지 겪은 수많은 사건과 독립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8km 정도 차로 달려 아드리아해가 이오니아해로 바뀌는 지점을 지나친다. 점심을 즐기기 좋은 첸드라 에 페슈키미트Qendra e Peshkimit 레스토랑이 이곳 라드머Radhimë 마을에 자리한다. 레스토랑 앞에 진열된 해산물 중에서 갓 잡은 신선한 물고기를 골라 작은 항구가 보이는 자리에서 음미해보자.
오후
블로러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로가라 국립공원Llogara National Park을 걷다 보면 점심으로 먹었던 음식이 금세 소화될 것이다. 호텔 소포 로가라Hotel Sofo Llogara 근처에 조성된 카이사르 길Caesar’s Pass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의 장군이자 그의 정적이었던 폼페이우스를 추적했던 길로 알려져 있는데, 소나무숲 사이로 30분가량 산책을 이어가면 블로러만Bay of Vlorë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숲을 내려오면서 언뜻 엿보이는 해변이 발길을 이끌겠지만 먼저 포르토팔레르모에 들르는 것을 추천한다. 1804년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지도자 알리 파샤Ali Pasha가 항구의 입구를 지키기 위해 지은 이 요새는 여전히 스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투어를 예약해 좁은 통로와 지하 감옥을 찬찬히 구경해보는 것도 좋다.
porto-palermo.milinevsky.com
저녁
이제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 자갈 해변과 활기찬 바와 전통 마을을 경험해볼 차례. 선셋 블러바드 칵테일 바는 현지산 라임을 넣은 모히토가 훌륭하며, 알바니아 해안 서쪽에 있는 그리스의 코르푸섬 뒤로 넘어가는 해를 감상할 수 있는 석양 명소로 유명하다.
다시 차를 몰고 산 깊숙이 들어가면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세파로푸샤 마을이 등장한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후 마을의 규모는 작아졌지만 그 정신만큼은 아직 건재하다. 이다 앤 조르지 레스토랑Ida & Xhorxhi Restaurant에서 셰프 이다 타나스키Ida Thanaski가 제철 식재료로 만든 전통식을 맛볼 수 있다. 덩굴식물로 뒤덮인 발코니에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의 남편 소르시가 알바니아의 브랜디인 라키raki를 가져다준다.
sunset.boulevard.cocktailbar

여유로운 해변 5
그라마만BAY OF GRAMA
알바니아 리비에라 북쪽 끝, 길도 없이 숨겨진 이 작은 자갈 해변은 배를 타야만 접근할 수 있다. 해변을 둘러싼 고대 채석장의 일부였던 바위벽에 옛 뱃사람들이 새긴 글씨가 남아 있다.
지페 해변GJIPE BEACH
포르토팔레르모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자리한 좁은 협곡 아래 위치한 이 해변은 해수욕에 최적화되어 있다. 물론 해변으로 향하는 길에 험난한 하이킹을 거쳐야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협곡 사이의 구부러진 길을 따라 한 시간 남짓 하이킹하면 그 끝에 이오니아해의 황홀한 물빛이 여행자를 반긴다.
필리쿠리만FILIKURI BAY
히마러Himarë 마을의 주요 해변들이 모여 있는 바다의 곶을 돌아가 절벽이 바닷물을 초승달처럼 감싼 필리쿠리만을 맞닥뜨린다. 육지에서 접근할 경우 밧줄을 잡은 채 가파르고 바위가 많은 트레일을 통과해야 한다. 트레킹 신발과 백팩을 반드시 챙기도록.
마루트지 해변MARUTZI BEACH
루초버Lucovë에서 카약을 빌려 해안을 끼고 노를 저으면 석회암 절벽 아래 자리한 이 좁은 해변에 닿을 수 있다. 편의시설은커녕 그늘 한 점 없지만, 만반의 준비를 한다면 알바니아 리비에라에서 이보다 비밀스러운 휴양지도 없을 테다.
크로러자 해변KRORËZA BEACH
사란더Sarandë에서 출발하는 대부분 보트 투어가 거쳐 가는 인기 해변이다. 맑은 코발트블루 바다가 여행자의 기대감을 충족시킨다. 작은 조약돌이 깔린 해안선을 따라 레스토랑 등 여러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내륙으로 1km 정도 걸어 들어가면 흐릿한 벽화가 남아 있는 폐허에 가까운 수도원도 자리한다.
둘째 날. 본격적인 바다 탐험

오전
다시 찾은 이다 앤 조르시 레스토랑에서 폭신한 페툴라petulla(도넛 튀김)와 튀르키예식 커피로 아침을 즐기고 세파로 푸샤의 가파른 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는 거리의 낡은 집들은 마을의 옛 미감을 보존하기 위해 폐가의 건축 자재를 재활용한다고. 골목 끝에 다다르자 해안과 산이 만들어내는 풍광이 감탄을 자아낸다.
바다 옆 산자락을 타고 SH8 도로를 달리다 부네치 해변Buneci Beach으로 향하는 비포장길로 들어선다. 참고로 러코브Lukove 표지판 바로 앞에서 핸들을 틀면 된다. 이 해변은 물살이 약해서 다이빙에 적합하다. 해변 한가운데 있는 대여점에서 카약이나 스탠드업 패들보드를 빌려볼 것.
오후
부네치 해변을 따라 남쪽 길 끝까지 이동하니 볏짚 아래에서 도미를 구워내는 테베르나 니콜라스Taverna Nikolas의 지붕이 보인다. 풍족한 점심식사 후 바다 반대편에 있는 블루 아이Blue Eye 온천으로 가보자. 비스트리처강Bistricë River 깊은 곳에서 올라온 거품이 짙은 웅덩이를 만들어내는데 마치 옅은 청록색 물에 둘러싸인 검은 눈동자처럼 느껴진다. 이 온천은 한때 독재자 엔베르 호자Enver Hoxha와 공산당 고위 간부들만 이용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여름마다 붐비는 알바니아의 여행 명소 가운데 하나다. 주차장부터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전망대에서 온천의 심연을 내려다볼 수 있다. 블루 아이 온천에서의 수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하류로 흐르는 차가운 물에 손과 발을 담가봐도 된다.
저녁
해가 지기 전 해안으로 돌아와 부트린트 호수Butrint Lake에 이른다. 염분이 있는 호수의 얕은 물은 홍합 양식에 알맞다. 양식업자 소랄도 네보Soraldo Nebo가 보트 투어를 운영하면서 여행자들에게 수백 년간 이어져온 홍합 양식 방법을 시연해준다. 투어 후 여행자들은 소랄도가 마늘 육수에 찌거나 구운 홍합에 알바니아산 화이트와인을 한 잔 곁들여 맛볼 수 있다. 차로 30분 거리, 크사밀 마을 외곽에 위치한 켑 메를리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단, 비치 바는 투숙객이 아닌 경우 제한된 인원만 입장이 가능하니 사전에 예약을 하고 알바니아 리비에라의 부드러운 모래에 기대어 칵테일을 마셔보자.
musseltour, kepmerli.com
더 멀리 발굴하다
오리쿰
블로러만 남쪽의 오리쿰Orikum으로 향하는 길은 유적지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공산주의 시절의 벙커 잔해가 해안을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길가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자유롭게 풀어 놓은 말들이 폐허가 된 초소 옆에서 풀을 뜯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6세기부터 이 땅을 지배한 정복자들의 흔적을 찾아 과거 교역소였던 공원 안으로 들어서면 앞선 장면이 금세 잊혀진다.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들이 석호 속에서 반짝이고 비잔틴 시대의 외벽이 물 주변을 탄탄하게 에워싼다. 산길 사이에는 로마 시대의 가옥과 그리스 시대의 극장이 세워져 있다. 심지어 기원전 48년 폼페이우스를 상대로 한 내전에 참전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발자취도 만나볼 수 있다.
archeoparks-albania.com

피니치
사란데와 인접한 계곡과 평야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피니치Finiq는 고대 그리스 왕국 에피리우스Eprius의 주요 도시였다. 여타 유적지보다 여행자 수가 적지만 고대 유적 사이로 빽빽하게 피어난 알록달록한 야생화가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곳이다. 헬레니즘 양식의 극장은 음향학적으로 완벽한 위치라 평가받는 두 언덕 사이에 자리하여 염소의 방울 소리마저 증폭시켜 계곡 건너편까지 큰 울림을 준다. 더불어 유물의 잔해와 대조를 이루는 공산주의 시대의 벙커들이 여러 개의 지하 터널로 연결되어 흥미로운 지하 탐사가 가능하다.
bfiniq.gov.al
부트린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부트린트는 2500여 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고대 도시다. 오리쿰도 비슷하지만 도시를 침략한 제국들이 이전에 있던 건물에 새로운 건물을 덧입힌 탓에 부트린트 전역에 여러 문화와 양식이 혼재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비잔틴 그리고 베니스 건물들이 거대한 석회암 외변 안에 흩어져 있으며 매년 새로운 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도시가 가장 번성하던 시절에는 1만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며, 로마식 목욕탕과 상점이 집결했던 포럼 그리고 요정들에게 헌정한 건축물인 님파에움nymphaeum이 존재했다고 한다. 가장 인상적인 유적은 한때 부트린트 호수 건너편까지 이어졌던 로마 시대 송수로로 먼 산에서부터 약수를 끌어오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butrint.al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8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