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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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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호

과거를 허물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에 오른 채
김해의 오늘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


DISCOVER
예술적 인상


(왼쪽부터 시계 방향)
시즌별 전시가 열리는 피어어피어의 셰어 테이블 위.
공간 구석에 있는 책꽂이.
피어어피어의 시그너처 메뉴들.
공장을 개조한 카페 외관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공장과 창고가 밀집해 오래전부터 산업과 물류의 거점으로 여겨지던 진례면. 여전히 공장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이 동네에서 40년 동안 기계 소리로 가득 찼던 한 건물은 이제 향긋한 커피 향과 고소한 빵 냄새로 채워진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다꽝 카페’로 불리는 피어어피어는 오래된 단무지 공장을 개조한 카페다. 세월에 빛바랜 듯한 상아색 외관과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어두운 유리문, 노출 콘크리트로 된 실내와 은은한 조명까지 비밀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유심히 본다’라는 뜻의 Peer와 ‘나타나다’라는 뜻의 Appear를 합쳐 공간의 이름을 지었다는 주인장의 말처럼, 실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감추고 있던 문화적·예술적 면모가 드러난다. 가장 안쪽에는 소설부터 자기계발서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갖춘 서재가 있고, 50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널찍한 셰어 테이블에서는 시즌마다 새로운 전시가 펼쳐진다. 방문 당시에는 초록색 천과 빨간색 천이 늘어져 연말 분위기가 한창이었지만, 때로는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이 걸리고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검은 에스프레소 위에 하얀 생크림을 얹은 아인슈페너, 레몬 무스를 가득 채운 레몬 머랭 크루아상 등 공간의 분위기를 닮은 음료와 베이커리 또한 인기다.

피어어피어 
경남 김해시 진례면 진례로 139-5

Do it. 2026년 3월, 김해 진례면 분청도자기 마을 일대가 김해분청도자기축제로 들썩인다. 분청도자기 전시와 도자기 빚기 체험, 지역 작가들의 예술시장과 공연 등이 어우러져 김해의 전통 공예를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다.

 


RECORD
각자의 종이 위에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나만의 노트를 만들어보는 오운 노트 체험.
책 읽기 좋은 분위기로 꾸며진 2층 라운지 공간.
실내에선 종이에 집중한 채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키 작은 건물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봉황동에서 구옥 한 채를 개조해 탄생한 W.I.Y.P? 종이상점. 1층 편집숍에서 노트와 펜 등 종이와 관련된 다양한 제품을 구경하고, 2층 라운지 공간에서 손글씨나 타자기로 종이에 글을 쓰며 머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가게 이름에 담긴 물음, “What is Your Page?”에 대한 나만의 답을 얻게 된다. “봉황동의 아날로그적인 면모를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간을 꾸몄어요. 사람들이 김해에서의 경험을 종이에 기록하고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종이상점의 문을 열었죠.” 감성적인 소품들 모두 구매욕을 자극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오운 노트’. 나만의 노트를 만들어보는 체험으로, 다양한 색상과 재질의 종이 중 표지와 내지를 고르고 종이를 연결하는 바인더의 소재를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거친 재생지부터 매끄러운 종이까지 질감을 느끼며 작업하다 보면 애정할 수밖에 없는 나만의 노트가 탄생한다. 종이를 통한 디지털 디톡스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종이의 시간’에 참여하면 소지한 전자기기는 카운터에 보관한 뒤 연필·펜·만년필·타자기 중 하나를 골라 오롯이 종이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W.I.Y.P? 종이상점 
경남 김해시 봉황대안길 17-3

Do it. 가을이 깊어지는 10월, 김해 봉황동과 수로왕릉 일대에서 김해국가유산야행이 펼쳐진다. 조명이 켜진 유적지 사이로 야간 해설 투어와 전통 공연,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가야 역사 문화의 향기와 정취를 느낄 수 있다.

 


LINGER
100년을 거슬러


(왼쪽부터 시계 방향)
계절의 맛을 잔뜩 담은 카페 모하의 음식.
100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는 실내.
카페 모하에는 시골집의 여유로움이 남아 있다.

지어진 지 100년이 넘은 오래된 집을 개조해 만든 모하. ‘저물 모暮에’ ‘여름 하夏’를 써 농사를 짓느라 치열한 봄과 한여름을 지나 풍요롭게 익어가는 시골 마을의 가을 문턱을 의미한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가 이곳에서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 붙였어요.” 황은지 대표가 공간을 소개하며 이야기한다. 1925년에 지어진 본채와 별관, 아궁이방 등 최대한 원형 그대로를 유지한 채 한국과 일본의 빈티지 숍에서 선별한 가구와 소품으로 실내를 채웠다. 리모델링은 최소화해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시간을 거슬러 온 듯하다. 한자리에 머무는 것도 좋지만 카페 앞에 자리한 정원과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좋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이 건물이 지닌 고즈넉함에 분위기를 더한다.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과 유채꽃이 만개하는 봄도 인기가 많다고. 구석구석을 누비며 시시각각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고양이 ‘구야’ 역시 이곳의 마스코트. 고양이의 이름이 된 ‘구운 야채 플레이트’는 카페 모하의 시그너처 메뉴로, 다른 메뉴들도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다. 또 다른 대표 메뉴인 ‘크림 치즈 그라탕’을 한입 먹금자 단호박과 브로콜리 등 가을의 맛을 담은 재료들이 입안을 담백하게 채운다. 카페 위층에는 액세서리와 컵 등 모하의 감성을 닮은 소품을 판매하는 편집숍이 자리해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다.

카페 모하
경남 김해시 신안계곡1길 18

Do it. 매년 봄, 차로 5분 거리인 율하천 만남교 광장 일대에서 율하 벚꽃축제가 열린다. 아름다운 벚꽃을 배경으로 마술쇼와 디제잉 파티 등 공연, 지역 상점들의 플리마켓과 농산물직거래장터 등이 펼쳐진다.

 


REMEMBER
유년 시절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유치원일 때의 동화책이 지금도 남아 있다.
가족이 즐기기 좋은 몬리라의 빵과 음료.
아늑한 분위기의 2층 실내 공간.

동화책을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햇살반’과 ‘하늘반’이라고 적힌 문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천장에는 아이들이 남긴 편지가 붙어 있는 이곳은 25년 동안 유치원이었던 건물을 개조한 카페 몬리라다. 2025년 2월 마지막 졸업식을 끝으로 유치원의 역할은 마무리됐고, 건물 외관은 그대로 둔 채 실내만 리모델링해 새로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25년 전에 졸업한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도 종종 유치원에 놀러 왔어요. 폐원 소식을 듣고는 많이 아쉬워하더라고요. 저 역시 그 친구들이 이곳을 계속 방문하고 또 다른 아이들이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에 카페를 열게 됐죠.” 그렇게 탄생한 몬리라는 여전히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진다. 1층엔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부터 연세 지긋한 어르신까지 편안하게 머물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파가 놓여 있고, 2층은 동화책을 읽거나 창밖으로 펼쳐진 자연을 바라보며 쉬어 가기 좋은 아늑한 분위기로 꾸몄다. 식음료 또한 가족 친화적이다. 아이들을 위한 작은 용량의 전용 음료가 마련되어 있으며, 파티시에가 직접 만드는 빵 또한 온 가족이 즐기기 좋도록 자두와 밤 등의 원물을 아낌없이 넣었다. 특히 진영읍의 특산물인 감을 활용한 단감 만주가 이곳의 시그너처 디저트. 단감으로 만든 달콤한 소가 가득 들어 있어 자연의 맛이 입안 가득 느껴진다.

몬리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진영산복로 88-19

Do it. 매년 11월 초, 김해진영단감축제에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진영 단감을 맛보고 구매할 수 있으며, 농특산물 직거래장터와 먹거리 부스, 주민 참여 공연이 함께 어우러진다. 

 

글. 차성민SEONG-MIN CHA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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