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슨강은 뉴욕주 북부를 가로지르며 흐른다. 그 주변에는 과수원과 농장이 펼쳐져 있고,
이곳에서 수확한 재료로 셰프와 다양한 생산자들이 독창적인 지역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농장에서 운영하는 증류소
브라운 반 팜스
나는 오렌지카운티 디스틸러리Orange County Distillery의 100년 된 헛간 앞에 차를 세운다. 뉴욕시에서 차로 약 한 시간 거리다. 셰프 앤서니 마리오 아세베도Anthony Mario Acevedo는 야외 그릴 앞에서 삼겹살을 굽느라 분주하다. 군침 도는 냄새가 퍼지지만 식사에 앞서 이 증류소의 공동 소유주인 존 글레보키John Glebocki는 먼저 브라운 반 팜스Brown Barn Farms 주변에 있는 농장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우리는 농장용 버기에 올라탄 지 2분도 채 되지 않아 막 갈아엎은 밭으로 나아간다. 흙은 거의 숯처럼 검은색을 띠고 있다.
여의도의 36배, 약 105.2km2에 달하는 땅은 ‘블랙 더트 지역Black Dirt Region’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토양 중 일부를 품고 있는 보호 구역이다. 이 지역은 뉴욕주 오렌지카운티 남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동쪽으로 허드슨강에서 시작해 인접한 뉴저지 일부까지 이어진다. 나는 존이 방금 삽으로 뒤집어 놓은 흙을 한 움큼 집어 든다. 손가락 사이로 비단처럼 고운 촉감이 느껴진다.
“제가 점프하면 곧바로 느껴질 거예요. 우리는 지금 대수층(지하수를 저장하는 다공성 암석이나 퇴적층) 위에 서 있거든요.” 존이 말하며 땅을 쿵 하고 밟자 발밑의 흙이 물결치듯 흔들린다. 이곳의 토양은 이탄peat(오랜 시간 식물이 쌓여 완전히 썩지 않고 물을 머금은 흙)이 풍부해 스펀지처럼 대수층의 수분을 흡수한다. 여기에 황과 다양한 미네랄 함량까지 높아 이곳에서 자라는 농산물의 풍미는 한층 더 깊다.
양파는 블랙더트 지역을 대표하는 농산물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양파의 약 10%가 이곳 출신이다. 존은 증류주 사업을 위해 곡물 재배로 전환하기 전까지 24년 동안 알리움Allium(양파나 마늘 같은 파속 식물을 통칭)을 재배해왔다. 현재는 밀과 호밀, 보리
또는 옥수수를 재배해 오렌지카운티 디스틸러리의 버번, 보드카, 위스키, 진을 만든다. 우리가 다시 돌아온 오래된 헛간은 바와 행사 공간으로 새롭게 활용되고 있다. 존은 100% 호밀 위스키로 만든 맨해튼 칵테일을 쟁반 한가득 준비한다. 각 잔에는 큼직한 얼음 한 덩어리가 들어 있고, 체리가 한 알씩 장식되어 붉은 포인트가 돋보인다. 헛간의 커다란 문 바로 안쪽,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테이블 위에 앤서니 셰프가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차려낸다. 테이블은 분홍색과 노란색 카네이션 그리고 하얀 안개꽃으로 꾸며져 있다. 요리로는 크리미한 과카몰레를 얹은 훈제 오리와 체더치즈 케사디야, 바삭하면서도 육즙이 풍부한 삼겹살 구이가 보인다. 여기에 짭짤하면서도 새콤한 오이피클과 어린잎채소, 메이플시럽을 넣어 은은하게 달콤한 간장 드레싱이 함께한다. 또한 앤서니와 그의 팀이 만든 탱글탱글한 부라타 치즈도 있는데, 호박씨와 인근 순스 과수원Soons Orchard의 사과로 양조한 사이더를 졸여 농축한 소스를 곁들인다. 두 종류의 육류는 모두 자체 훈연실과 매장을 운영하는 현지의 소규모 생산자인 퀘이커 크리크 스토어Quaker Creek Store에서 공급받는다. 이는 지역 식재료 사용을 선호하는 앤서니의 철학을 보여준다.
“다문화 도시인 뉴욕의 수요 덕분에 여기서 거의 모든 농산물을 재배해요. 이곳에서 자란 채소는 식감이 탄탄하면서도 부드러워요.” 앤서니는 채소를 익혔을 때 씹는 맛이 알덴테(너무 무르지 않고 적당히 씹히는 식감) 상태로 완벽하게 요리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풍미를 끌어올리는 이탄 토양 덕분에 양파는 단맛이 강하고 특히 캐러멜라이징(당을 가열해 갈색으로 변하며 단맛과 풍미가 깊어지는 조리 과정)에 적합하다. 메인 요리에는 콜리플라워 퓌레가 깔려 있고, 중간 정도로 익힌 뉴욕 스트립 스테이크 위에 발사믹식초의 산미를 더한 양파잼이 올려져 있다. 두툼하고 큼직하게 썰린 양파잼은 감칠맛과 캐러멜라이징에서 오는 끈적한 단맛이 대비를 이루며 양파를 단순한 부재료 이상인 요리의 주인공으로 격상시킨다.
orangecountydistillery.com
초콜릿 장인
워릭 초콜릿 컴퍼니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양한 모양의 초콜릿 트러플로 가득 찬 유리 진열대 뒤에 빅터 겔먼Victor Gelman이 서 있다. 통통한 하트 모양부터 둥근 구 형태, 소용돌이 모양, 네모난 형태까지,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가나슈가 채워져 있다. 가게 한쪽 벽에는 마치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괴짜 초콜릿 장인 윌리 웡카와 경쟁이라도 하듯 다양한 맛의 초콜릿 바가 줄지어 있다. 땅콩버터, 체리 피칸, 칠리 등 종류도 다채롭다.
“트러플이 서른 가지, 바는 오십 가지나 돼요. 억눌려 있던 창의성이 몇 년 치나 한꺼번에 나온 셈이죠.” 창립자이자 쇼콜라티에인 빅터가 말하며 과거 브루클린에서 초콜릿 도매업자로 일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당시 그는 홀푸즈 마켓, 윌리엄스 소노마 같은 대형 브랜드에 납품했다. “이렇게 아담한 마을에서 가게를 열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유 때문이에요.”
빅터의 가게는 워릭 마을의 레일로드 애비뉴Railroad Avenue를 따라 늘어선 수많은 독립 상점 중 하나이다. 이 거리는 지역 주민이 운영하는 상점과 레스토랑으로 활기를 띠며 작은 광장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뉴저지 경계 근처 허드슨 밸리 남부에 자리한 마을은 이곳의 식재료와 함께 빅터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나는 전통적인 벨기에 초콜릿 레시피에 워릭 밸리 지역의 카베르네 프랑을 더한 하트 모양 초콜릿 트러플을 한 입 베어 문다. 또 다른 향긋한 초콜릿 바에는 두 마을 떨어진 곳에 있는 그린우드 레이크 로스터스 크래프트 커피의 페루 단일 산지 유기농 커피 원두가 들어간다. 얼그레이 트러플은 지역 양봉장에서 얻은 꿀을 넣어 단맛을 낸다. 곰 모양의 워릭 베어스Warwick Bears는 팬데믹 기간 빅터가 워릭 카운티 공원, 스털링 포레스트 주립공원, 해리먼 주립공원을 산책하며 거의 매일 검은곰을 목격했던 경험에서 탄생했다. 또한 블랙 더트 지역에서 영감받아 만든 바삭하고 짭짤하면서도 달콤한 양파 초콜릿 바도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을 대표하는 것은 아마 ‘워릭 애플파이 트러플’일 것이다. “여긴 사과가 중심인 지역이에요. 지역 경제와 공동체의 많은 부분이 사과를 중심으로 돌아가죠. 그래서 사과 트러플을 만들고 싶었어요.”(빅터) 연한 붉은빛을 띠는 이 초콜릿 트러플은 실제 사과처럼 윤기가 흐른다. 한입 베어 물면 워릭에서 재배한 사과로 만든 사이더를 하루 동안 졸여 완성한 캐러멜이 흘러나오고, 그 아래에는 사과 가나슈와 달콤한 크래커 형태의 파이 크러스트가 층을 이루고 있다. 이 트러플은 진하면서도 기분 좋게 달콤하고 약간의 바삭한 식감이 느껴진다. 허드슨 밸리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특산물에 창의적인 변주를 더한 디저트라고 할 수 있다.
warwickchocolate.com
사과 과수원
닥터 데이비스 농장
4대째 사과 농장을 운영하는 크리스 네빈Chris Nevin이 농장 입구의 작은 가판인 닥터 데이비스 팜 스탠드Dr. Davies Farm Stand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사이 한 무리의 학생들이 농장 곳곳을 도는 ‘헤이라이드hayride(건초를 실은 트레일러를 타고 농장을 둘러보는 체험)’를 시작한다. 뉴욕주는 1976년부터 공식 과일로 사과를 지정했으며, 주말에 과수원을 찾는 것도 인기 있는 여가 활동이다. 1980년대 크리스의 아버지는 허드슨 밸리에서 농장을 대중에게 처음으로 개방한 농부 중 한 명이었다. 트랙터가 끄는 트레일러가 과수원 안으로 사라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재잘거림도 멀어지자 가판에는 고요함이 찾아온다. 그러나 주말에는 축구장 약 36개 규모의 농장이 지역 주민과 뉴욕 시민들로 북적인다. 사람들은 여름에는 복숭아를, 가을에는 사과를 직접 따고 농산물과 잼 같은 저장 식품을 사거나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즐기고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크리스가 야외 바에서 사이더 한 잔을 가져다준다. 미국에서는 사이더가 보통 여과하지 않은 사과주스를 의미하기 때문에 알코올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농장에서는 레드 반 사이더리Red Barn Cidery라는 브랜드로 알코올이 들어간 제품도 생산하는데, 산뜻한 로제 스타일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달콤한 음료를 마시며, 그녀가 들려주는 농장의 역사에 귀 기울인다. 이곳은 1891년, 뉴욕주 최초의 여성 의사인 그녀의 증조할머니 루시 버지니아 메리웨더 데이비스 박사Dr. Lucy Virginia Meriweather Davies가 세운 곳이다. 지금도 이 농장은 가족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형제자매와 자녀들이 일을 돕고 있으며 크리스는 남편 제프Jeff와 함께 농장에 거주한다. 제프는 우리를 트레일러에 태워 과수원까지 데려다준다. 처음 도착한 나무에는 골든 딜리셔스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노르스름한 초록빛 껍질에는 살짝 복숭앗빛이 감돌고, 짙은 붉은색 롬Rome 사과도 보인다. 제프는 수확용 장대를 이용해 다른 나무 꼭대기에서 후지 사과 한 알을 딴다.
나는 방금 따낸 과즙 가득한 코틀랜드 사과를 한 입 베어 문다. 점박이가 있는 짙은 자줏빛 붉은색 사과로, 과육은 부드럽고 복숭아처럼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산미가 느껴진다. 반면 핑크 레이디 사과는 아삭한 식감에 내가 마트에서 사 먹던 것보다 훨씬 더 상큼하고 강렬한 풍미를 뽐낸다.
“사람들이 ‘나는 골든 딜리셔스를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말하곤 해요. 그런데 우리 과수원에서 수확한 걸 맛보면, 지금까지 먹어본 사과 중 최고라고 이야기하죠.”(크리스)
drdaviesfarm.com
아침 식사
알베르고 알레그리아
캣스킬산맥Catskill Mountains에 있는 리조트 마을 윈덤Windham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진 동명의 원형 트레일 코스, 윈덤 패스의 약 2.4km 거리를 걷다 보면 마치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미국 최초의 주요 미술 사조인 허드슨 리버파Hudson River School가 19세기 중반 이 지역에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나무가 늘어선 개울은 이내 숲이 우거진 산봉우리 사이의 넓은 초원으로 이어진다.
윈덤 패스를 벗어나 다시 큰길로 나오면 알베르고 알레그리아Albergo Allegria 호텔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의 조식과 피크닉 바구니는 하이커들이 산에서 하루를 보내기 좋은 든든한 식사가 되어준다. 골동품, 1920년대 스타일 오븐, 하얀 레이스 식탁보로
꾸며진 분위기에 걸맞게 셰프이자 주인인 마리안나 레만Marianna Leman은 할머니의 요리에 경의를 표하는 메뉴 ‘논나의 달걀Nonna’s eggs’을 선보인다. 달걀에 아티초크, 만체고 치즈, 선드라이 토마토를 넣고 휘저어 익힌 이 요리는 아르보리오 쌀arborio rice(이탈리아 리소토에 주로 사용하는 쌀)로 만든 토스트 위에 얹어 나온다. “저는 스스로를 셰프라고 부르지 않아요. 셰프의 딸이라고 부르죠.”(마리아나) 그녀는 아홉 살 때 이탈리아 및 크로아티아계 가족과 함께 롱아일랜드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호텔 운영을 시작했다.
마리아나 레만의 어머니는 뉴욕공과대학교에서 요리 예술을 전공하고 졸업한 최초의 여성이었다. “제가 하는 모든 요리는 다 헌사 같은 거예요. 아버지는 재료를 사면 하나도 버리지 않고 전부 활용하셨거든요. 레스토랑에서 쓰지 않은 닭 날개를 모아 냉동해 두었다가 양이 충분히 쌓이면 요리한 다음 바에서 손님들과 나누어 먹곤 했어요. 음식이 낭비되지 않도록요.”
마리아나는 호텔 주방 정원에 있는 13개 텃밭에서 허브와 채소를 직접 기른다. 꽃 장식에 쓰이는 보리지borage(꽃잎이 식용 가능하며 은은한 오이 향이 나는 허브)를 비롯해 비트, 주키니, 토종 품종의 에어룸 토마토 등을 재배한다. 그 외 식재료는 가능한 한 지역에서 조달한다.
식탁에 ‘캣스킬 마운틴 더플Catskill mountain duffel’이 등장한다. 녹인 치즈와 매운 하바네로 고추를 넣은 오믈렛에 콘브레드, 콘립, 살사를 곁들인 메뉴다. 이어서 나온 버터밀크 와플은 휘핑크림을 곁들이고 사과 버터(사과를 졸여 만든 스프레드)와 말린 사과를 올려 내온다. 제철에 수확한 재료를 빠짐없이 활용해 만든 풍성한 아침 식사다!
albergousa.com
현지 풍미
애플 사이더 도넛
수확 철의 전통 간식으로 가을이 되면 허드슨 밸리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1800년대 후반 핼러윈 파티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남은 사과를 활용하기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반죽에 사과 사이더를 넣고 기름에 튀기는 전통 도넛 또는 버터밀크 도넛 방식으로 만든다.
수제 맥주
이 지역에는 약 90개의 수제 맥주 양조장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엘름스퍼드Elmsford에 있는 캡틴 로렌스 브루잉 컴퍼니가 선구적인 곳으로 꼽힌다. 대표 맥주인 프레시체스터Freshchester를 추천한다. 몰트의 고소함과 감귤류의 상큼함이 어우러진 아메리칸 페일에일(APA)로, 홉의 향과 쌉쌀한 맛이 특징이다. 북쪽인 태너스빌Tannersville에 가면 다이너 스타일의 레스토랑 브레이브 더 플레임스에서 지역 맥주와 함께 편안한 분위기의 가정식 요리를 즐길 수 있다.
captainlawrencebrewing.com, bravetheflames.com
TRAVEL WISE
가는 방법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인천-뉴욕 직항을 운항한다. 존F.케네디국제공항에서 허드슨 밸리까지는 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린다. 뉴욕주를 여행하려면 자동차가 가장 편리하다.
머물 곳
나이액에 있는 호텔 나이액Hotel Nyack은 1박에 약 29만원부터. hyatt.com
피크스킬Peekskill의 애비 인 앤 스파는 1박에 약 59만원부터. theabbeyinn.com
고센Goshen에 있는 오렌지 인 부티크 호텔은 1박에 약 50만원부터. theorangeinn.com
윈덤에 있는 알베르고 알레그리아는 1박에 약 20만원부터. albergousa.com
더 많은 정보
ilove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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