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때로는 빠르게, 가끔은 느리게 흐르며 삶에 희로애락을 남긴다. 음식에 깃든 시간 또한 각기 다른 의미로 작용한다. 때로는 식재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때로는 깊은 맛과 향의 층위를 쌓아 올린다. 역동적인 도시 서울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하며 발효 음식을 다루는 이들을 찾았다.
NUTTY
발효의 스펙트럼
“치즈는 우유가 불멸의 세계로 도약한 것이다.” 미국 작가 클리프턴 패디먼의 말처럼, 한남동 ‘치즈플로’는 발효를 통해 신선한 원유에 생명력을 더하며 맛의 스펙트럼을 확장해나간다. 이곳은 치즈를 직접 만드는 공방이자 제품을 판매하는 그로서리, 그리고 각 치즈의 매력을 살린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의 역할을 함께한다.
치즈플로의 모든 치즈는 국내산 원유로 만든다. “뉴질랜드에서 치즈를 배우고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좋은 원유를 구하는 것이었어요. 국산 원유와 지역의 테루아를 기반으로 다양한 맛을 구현하고 싶었죠.” 조장현 셰프의 손길 아래 파주에서 당일 착유된 우유는 30여 가지 치즈로 재탄생한다. 원유의 신선함이 살아있는 부라타 치즈부터 최소 1년 이상 숙성해 깊은 맛을 내는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까지, 이곳에서는 발효의 전 과정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흰곰팡이를 통해 서서히 변화하는 질감을 맛볼 수 있는 시그너처 ‘트리플 크림 브리’는 시간의 맛을 여실히 드러낸다.
조장현 셰프가 치즈를 만드는 것은 자신이 느꼈던 행복을 전하기 위해서다. “호주를 여행할 때 한 식당에 들어가 치즈를 먹으며 와인과 빵을 곁들였는데, 그 순간 ‘아, 이렇게 살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경험은 자연스레 치즈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치즈플로에서 그가 만든 치즈를 맛보다 보면, 그가 당시 느꼈던 감정에 어느새 공감하게 될 것이다.
치즈플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49길 19
Do it. 조장현 셰프가 선보이는 발효의 맛은 치즈에 국한되지 않는다. 치즈만큼이나 샤퀴트리도 전문적이다. 이탈리아 로마냐 지역에서 배운 살루메 기술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재료와 최대의 노력으로 건강한 샤퀴트리를 만든다.
SAVORY
타이밍의 미학
6.5℃는 김치가 가장 맛있게 익어가는 최적의 온도다. 낮은 지붕의 한옥 사이로 여행자들이 오가는 북촌, 120년 된 한옥을 개조한 공간에 ‘온 6.5’가 자리한다. 이곳은 밑반찬으로만 여겨지던 김치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식탁 위의 주인공으로 격상시켰다. 온6.5의 김치는 ‘색다른 김치의 모색’이라는 슬로건 아래 전형적인 틀을 과감히 벗어난다. 바질, 파프리카, 비트 등 이색적인 식재료에 발효를 더하는가 하면, 묵은지 김치 떡볶이, 마늘종 장김치를 곁들인 전병 파테, 펜넬 동치미를 올린 단새우 카르파초 등 국경을 넘나드는 요리를 선보인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인 ‘김치 튀김’은 백김치로 새우를 말아 튀긴 뒤 동치미 사워크림을 얹어 완성한다. 디저트 몽블랑을 닮은 외형과 달리, 입안에서는 튀김의 고소함과 김치의 산미가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페어링되는 주류 역시 발효에 집중되어 있다. 100여 종의 와인과 순창, 문경, 경주 등 전국 각지에서 수급한 10여 종의 전통주가 음식과 합을 맞춘다.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공간에서 발효된 술과 음식을 즐기다 보면, 익숙했던 발효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온6.5
서울 종로구 북촌로1길 28
Do it. 발효에 진심인 온6.5는 최근 강원도 횡성의 양조장 ‘양온소온’과 협업해 자체 전통주 ‘온배향’을 출시했다. 배와 돌배,
찹쌀, 누룩으로 빚어 은은한 단맛을 내며, 김치 요리와 최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TANGY
시간이 만든 레이어
일상 속에서 즐겁게 건강을 챙기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은 요즘, 카페인과 알코올의 빈자리를 채우는 대안으로 콤부차가 주목받고 있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서순라길에 위치한 ‘슬로운’은 차에 유익균인 스코비Scoby를 넣어 독특한 탄산감과 상큼한 맛, 소화를 돕는 효능을 더한 콤부차를 만들어 선보인다.
전자회사에서 냉장고 디자이너로 일하던 서형주 대표는 평소 식재료 보존에 관심이 깊었다. “현대 기술은 음식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음식을 가장 자연스럽고 오래 보존하는 근본적인 방식은 ‘자연 발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한 고민은 자연스레 콤부차라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스리랑카 홍차, 우롱차, 사과와 목련꽃 등 어떤 재료를 만나느냐에 따라 콤부차는 내추럴 와인처럼 우아해지기도, 맥주처럼 경쾌해지기도 한다.
매장에서 다양한 수제 콤부차를 구매해 즐길 수 있지만, 분기별로 선보이는 티코스에 참여하면 그 매력을 더욱 깊이 경험할 수 있다. 올해는 ‘Twist-Fast Food’라는 테마로 일상에서 빠르게 소비되는 음식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봄에는 치킨과 콜라, 케밥, 라씨, 떡볶이 등이 콤부차와 페어링되어 제공된다. 표면적으로는 익숙한 음식이지만, 콤부차 발효 과정에서 생긴 종균이 들어가 숨어 있는 맛을 찾는 재미 또한 이곳의 매력이다.
슬로운
서울 종로구 율곡로10길 15-5
Do it. 슬로운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콤부차를 직접 만드는 클래스를 진행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콤부차 키트를 구매하 면 집에서도 생콤부차를 만들 수 있다.
MELLOW
세월의 깊이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면 다구 사용법을 배워볼 수 있다.대익다도원에서는 50종이 넘는 보이차를 판매한다. 대익다도원의 다기.
월진월향越陳越香. ‘세월이 지날수록 향과 맛이 강해진다’는 뜻으로 보이차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중국 윈난성 지역에서 시작해 티베트에 이르는 험준한 차마고도를 따라 찻잎을 발효시켜 마시던 보이차는 적절한 환경에서 숙성될수록 빈티지 와인처럼 깊은 풍미를 더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가치 또한 높아지기에 보이차는 ‘3대가 마시는 차’라 불린다.
대익다도원은 80년 넘게 보이차를 생산해 온 중국 대익그룹이 한국에서 운영하는 전문 다원이다. 1층 스토어에서는 50여 종의 보이차를 시음하고 구매할 수 있다. 방문자의 취향을 세심하게 살펴 차를 추천해주는가 하면, 다구에 찻잎을 우리는 전통 방식부터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추출한 현대적인 보이차 음료까지 폭넓게 선보인다.
더 깊은 몰입을 원한다면 원데이 클래스를 추천한다. 기초 지식을 배우는 ‘입문 클래스’, 맛의 언어를 익히는 ‘향미 클래스’, 송나라 시대 차 문화를 재현하는 ‘격불 클래스’가 준비되어 있다. 90분간 차에 온전히 집중하다 보면 찻잔에 담긴 수십 년의 시간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대익다도원
서울 강남구 선릉로18길 4
Do it. 오는 5월, ‘세계 차의 날’을 맞아 대익다도원은 오픈데이 이벤트를 진행한다. 평소 예약제로 운영되는 다도원을 개방하며, 특별한 차들을 무료로 시음할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