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전설적인 재즈 음반사와 조선 왕실의 음악
기관이 교차하는 서울에서 음악을 모으고, 재생하며,
연주하는 이들을 따라 소리의 궤적을 따라가 본다.
EXHIBIT
서울, 재즈의 황금기
‘블루 노트가 없다면, 재즈란 없다.’
복합문화공간 ‘페즈’에서 진행 중인 〈블루 노트 컬렉션展: The Art of BLUE NOTE〉는 임종현 대표의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뉴욕을 기반으로 한 ‘블루 노트 레코드’는 재즈의 전성기를 이끈 전설적인 음반사다. 이번 전시에서는 모던 재즈의 황금기를
보여주는 ‘1500 시리즈’ 전 앨범을 포함한 445장의 음반을 선보인다.
클래식한 음반부터 재즈의 전성기를 구가한 음반, 그리고 현대적인 분위기의 음반들이 3층 규모의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소용돌이처럼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걷다 보면, 하이파이 오디오를 갖춘 청음 공간이 나타나 수십 년 전 뉴욕 녹음실에 들어온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전시는 관람객에게 특정 동선을 강요하지 않는다. 마치 음악을 고르듯, 머물고 지나가는 지점을 선택해 각자의 리듬으로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시된 음반은 당대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마일스 데이비스, 쳇 베이커 등 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음악을 프랜시스 울프의 사진이, 리드 마일스의 타이포그래피가, 그리고 무명 시절 앤디 워홀의 작품이 감싸고 있다.
1층에는 재즈바 블루캣이 자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운영했던 재즈바에서 영감을 얻은 곳으로 선반 한쪽을 가득 채운 위스키와 반대편의 책장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분위기에 젖어들 무렵, 객석의 환호와 함께 공연이 시작된다. 피아노와 베이스, 보컬이 어우러진 선율과 믹솔로지스트의 칵테일 덕분에 공간의 열기는 무르익는다. 페즈는 과거 뉴욕의 전설적인 재즈부터 오늘날 서울의 역동적인 재즈까지 한데 아우르는 경험을 선사한다.
페즈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11길 41
Do it. 5월 7일과 21일, 문학, 음악, 영화를 매개로 한 프로그램 ‘월간 블루캣’이 진행된다. 재즈의 거장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Kind of Blue’를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ARCHIVE
파랑에 대한 모든 것
눈이 닿는 모든 것이 ‘파랑’이다. 책상 위에 놓인 수십 권의 책은 물론, 음반 재킷, 스피커와 어렵게 구했다는 빈티지 턴테이블까지. 단순히 시각적 색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바다’나 ‘하늘’처럼 푸른색을 연상시키는 이름들, ‘청춘’같이 푸르름을 담은 테마의 작품들이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그리고 이 공간에 청각적 감각을 더하는 것은 단연 재즈의 선율이다.
‘쏘블루’에서 커피를 내리고 책을 추천하며 재즈 공연을 기획하는 양민우 대표는 파란색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수집하는 컬렉터다. “오랫동안 파란색 수집품을 올리는 SNS 계정을 운영했어요. 생각보다 제 취향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느껴 이 공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죠.”
처음엔 즐겨 읽은 책이나 희귀한 소장품을 전시하기 시작했지만, 블루와 재즈는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느껴 점점 재즈와 관련된 물건으로 채우게 되었다. 공간 구석구석에 재즈와 관련된 만화책 〈블루 자이언츠〉부터 재즈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음반사 ‘블루 노트’와 관련된 책, 그리고 수많은 재즈 음반이 들어차 있다.
이제 쏘블루는 단순한 편집숍이 아니다. 양 대표가 블루를 테마로 큐레이션한 재즈를 들려주는 감상회가 열리기도 하며, 연주자들의 라이브 연주가 진행되기도 한다. 시각을 자극하는 파랑과 청각을 깨우는 재즈, 이 다채로운 ‘블루’ 속에 머무는 동안 마음은 서서히 쏘블루의 색으로 물들어간다.
쏘블루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27 1층
Do it. 오는 5월, 일본 소설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청춘 소설 〈거품〉을 테마로 연주회가 열릴 예정이다. 재즈 카페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곡들을 위주로 연주한다. 일정은 미정.
PLAY
삶을 재생하다
‘쿼터’는 쉽게 정체를 드러내는 공간이 아니다. 낡은 철물점 간판 아래 놓인 자그마한 입구는 무심코 지나치기 쉽고, 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좁은 통로는 비밀 기지로 향하는 길 같다. 내부로 들어서도 이곳의 정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벽면 가득 쌓인 CD를 보면 영락없는 음악 감상실이지만, 한쪽에서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보면 카페 같기도 하다. 그러다 피아노 위에 흩어진 미완성 악보를 보면 누군가의 작업실에 들어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밀도 높은 공간을 살펴보고 있는데 정마루 대표가 입을 뗀다. “연주자에겐 항상 자신만의 굴이 필요해요. 쿼터는 그저 제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공간이죠.”
재즈 드러머인 그는 연주의 박자를 규정하는 ‘4분음표’를 공간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음악뿐만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데에도 기준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담고자 했다. 그는 쿼터를 ‘음악을 매개로 대화하는 공간’이라 정의한다. 그가 보여준 몇 장의 신청곡 용지에는 연주자나 곡명 대신 ‘기쁨’, ‘슬픔’ 같은 감정의 단어나 사연들이 적혀 있다. “신청받은 뒤엔 그 이면의 상황을 묻곤 해요. 예를 들어 ‘자유로운 음악’을 원하신다면 지금 자유가 필요한 상황인지 혹은 자유를 만끽하는 중인지를 대화로 풀어가는 식이죠. 그 흐름에서 가장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요.”
정마루 대표가 그간 차곡차곡 모아온 신청 용지를 으며 덧붙인다. “모든 게 정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재즈라고 부르는 음악처럼요.” 방문객과 나눈 대화는 곧 음악적 영감이 되어 영업이 끝난 뒤 그가 써 내려가는 악보 위로 스며든다.
쿼터
서울 마포구 포은로 43-1 1층
Do it. 5월 1일부터 정마루 대표가 소장 중인 음반을 판매하는 팝업 스토어가 열린다. 가정의 달을 맞아 어린아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 레고 조립 체험 및 판매도 진행할 예정.
PERFORM
소리 몰입가의 공간
남산 자락에 자리 잡은 후암시장.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저녁이면 찬거리를 사러 온 직장인들과 매대를 정리하는 상인들의 모습이 교차하며 차분히 일상을 마무리하는 풍경을 그려낸다. 그 적막한 시장 골목을 따라 깊숙이 발을 들이면 어디선가 드럼의 묵직한 박동이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이어 기타의 유려한 선율과 색소폰의 공명, 베이스의 깊은 진동이 차례로 가세한다. 모든 소리가 하나의 화음으로 묶일 즈음 재즈클럽 ‘사운드독’에 닿게 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사운드독은 재즈를 향한 김성 대표의 순수한 열정이 응축된 공간이다. 서른 살 무렵 재즈를 접한 뒤 30년 넘게 그 매력에 침잠해 온 그는 예순을 앞두고 ‘진정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이름인 ‘소리 성聲’과 태어난 해를 상징하는 개를 결합해 이름을 지었다. 그는 사운드독에 대해 “일에 미친 사람을 ‘워크독’이라고
하듯이, 소리에 몰입한다는 의미도 더했죠”라고 덧붙인다.
사운드독은 매일 밤 라이브 공연이 펼쳐진다.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의 조건은 단 하나. 연륜이나 기술적 기교가 아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이다. 이날은 최근 재즈 신에서 주목받는 젊은 기타리스트 배민혁을 필두로 테너 색소폰, 베이스, 드럼이 어우러진 ‘배민혁 콰르텟’이 무대를 채웠다. 고전적인 명곡부터 마니아들을 위한 실험적인 곡조까지, 후암시장의 밤은 재즈에 몰입하는 이들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사운드독
서울 용산구 후암로35길 24
Do it. 사운드독에서는 매일 밤 공연이 열린다. 공식 공연이 없는 날에는 기성 연주자들과 신예들이 한데 섞여 즉흥적으로 호흡을 맞추는 ‘잼 데이’가 펼쳐진다.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5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