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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에 진심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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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호

전 세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벌집 모양 간식은 중세 시대 벨기에에서 탄생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브뤼셀을 대표하는 이 국민 간식은 오늘도 거리마다 고소한 버터 향을 풍긴다.

(왼쪽부터) 이 도시의 고딕 양식 건축을 잘 보여주는 시청사. 지역의 유서 깊은 메종 당두아에서 맛보는 브뤼셀 와플.

2월의 어느 이른 아침, 이맘때의 브뤼셀은 따뜻하거나 들뜬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리는 한산하고, 흐릿한 햇빛은 고딕과 바로크, 브루탈리즘과 기능주의가 뒤섞인 도시의 건축 양식을 한층 더 이질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한 대의 와플 밴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향기는 로랑스 베르나르Laurence Bernard를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향기예요. 매일이 크리스마스 같죠.”
브뤼셀 토박이인 로랑스는 여행사 시티 언스크립티드City Unscripted의 가이드로, 오늘 나와 함께 도시를 누빌 예정이다. 내가 벨기에의 수도를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최고의 와플을 맛보기 위해서다. 벨기에에서 탄생해 오늘날 전 세계 호텔의 조식 뷔페와 식당, 그리고 달콤함이 필요한 모든 곳으로 퍼져 나간 바삭한 격자무늬 간식 말이다. 초콜릿 시식 투어는 물론이고, 감자튀김 박물관까지 있을 만큼 음식에 진심인 도시지만, 정작 와플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경험은 의외로 적다.
“너무 익숙한 음식이라 굳이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거든요.” 로랑스가 당 충전을 제대로 한 듯 활기찬 발걸음으로 도시를 누비며 말한다. 우리는 키위나 캐러멜은 물론, 빵이 보이지 않을 만큼 휘핑크림을 듬뿍 올린 다채로운 토핑의 와플 가게를 지난다. “이런 가게들은 20년 전만 해도 거의 없었어요. 여행자가 많아지면서 생긴 곳들이죠.”
선택지는 넘쳐나지만 제대로 된 안내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억에 남을 와플을 찾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 지식을 갖추고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벨기에 와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흔히 떠올리는 직사각형 모양에 가볍고 맛이 은은한 것은 브뤼셀식 와플이다. 반면 크기가 더 작고 둥글며 풍미가 진하고 식감이 묵직한 리에주Liège식 와플은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즐기기 좋다.
벨기에 와플의 기원은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점상들은 밀가루 반죽을 뜨거운 금속판 사이에 넣어 구워 팔았다고 한다. 1500년대에 이르러서야 얇은 과자는 점차 두툼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플랑드르 화가들의 그림 속에서도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모양의 와플을 발견할 수 있다. 벨기에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리에주 와플을 별다른 토핑 없이 손에 들고 다니며 먹는 방식을 즐긴다. 

(왼쪽부터) 생질 지역에서 스페셜티 커피와 와플을 판매하는 파르동의 공동 대표 말라. 금박 장식의 17세기 건축물들이 늘어선 그랑플라스.

“처음에는 저도 토핑을 얹어 먹었지만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은 플레인 와플을 맛보고는 ‘세상에!’라고 외쳤죠.” 무스타파 자리우히Mustapha Zariouhi가 와플 기계 위로 슈거파우더를 뿌리고 동그란 반죽 덩어리를 채우며 말한다. “다른 가게들은 와플을 구울 때 버터를 바르기도 하지만, 제대로 만든 리에주 와플은 그 자체로 풍미가 차고 넘쳐요.” 빨간 왕관이 그려진 검은 앞치마를 두른 이 모로코 출신 유학생은 브뤼셀 구시가지의 소박한 카페 르 루아 드 라 고프르Le Roi de la Gaufre(와플 왕)에서 2년 동안 그릴을 담당해 왔다.
이곳은 원래 현지인들이 최고의 리에주 와플 가게로 꼽던 라 푸르슈La Fourche 제과점이 있던 자리다. 전 주인이 은퇴하자 조수였던 압델하미드 데라즈Abdelhamid Derraz가 비법을 이어받았다. 주방을 지키고 있는 그는 모로코에서 브뤼셀로 온 지 40년이 넘었다. 과묵한 탓에 속내를 읽기는 어렵지만 우유와 버터, 달걀, 밀가루, 효모, 그리고 벨기에 특산품인 덩어리진 펄 슈거pearl sugar만큼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유리병에 담아 진열해 두었다. 전설에 따르면 리에주 와플은 18세기 리에주의 영지를 다스린 주교가 펄 슈거 결정이 박힌 디저트를 주문하며 탄생했다고 한다. 녹는 점이 높은 펄 슈거는 지글거리는 열기 속에서 반쯤 녹아내리며 형태를 유지하는데, 바로 이 과정이 특유의 풍부한 맛과 바삭한 식감을 만들어낸다.
무스타파가 갓 구워낸 뜨거운 와플 하나를 내민다. 그러고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강조한다. 보통 리에주 와플은 다시 데워 파는 경우가 많지만, 스승 압델하미드의 철학을 잘 아는 그는 와플 하나하나의 진가를 온전히 보여주고 싶어 한다. “당연히 데워 먹어도 맛있죠. 하지만 갓 구운 와플은 완벽 그 자체예요.”
나는 전통 방식 그대로 와플을 들고 거리로 나온다. 빛을 받아 윤기를 머금은 캐러멜라이즈된 겉면은 한입 베어 물 때마다 가볍게 바스라진다. 꿀처럼 노르스름한 속은 설탕 결정이 알알이 박혀 있다. 캐러멜 향이 감돌지만 지나치게 달지 않고, 묵직하면서도 질기지 않은 식감이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 축제에서 맛보던 간식을 떠올리게 하는 절묘한 달콤함 덕분에, 한 입 한 입 맛볼 때마다 즐거움이 차오른다.

브뤼셀 곳곳에 여러 매장을 두고 있는 메종 당두아.

티룸의 전통
“메종 당두아Maison Dandoy는 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앙투안 헬송Antoine Helson은 머릿속으로 세대를 헤아리다 말끝을 흐린다. “7대 위 할아버지가 설립했어요.” 때는 1829년, 벨기에라는 국가가 탄생하기 1년 전이다. 메종 당두아는 플랑드르를 상징하는 계피 향이 강한 캐러멜라이즈드 비스킷인 스페큘로스를 처음 판매한 곳 중 하나로,
제과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 이곳이 특별한 이유를 묻는다면, 여러 지점을 둔 이 베이커리에서 판매하는 브뤼셀식 와플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장엄한 바로크 양식의 광장 그랑플라스Grand-Place 인근에서 메종 당두아를 찾았다. 이름부터 인상적인 뤼 오 뵈르Rue au Beurre(버터 거리)에서 성업 중인 본점과 조금 떨어진 이곳에서 1980년대부터 와플을 팔아왔다. “할머니의 꿈이었죠.” 38세라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앙투안은 형 알렉상드르와 함께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내게 보여준다. 사진 속에는 사자 갈기처럼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할머니가 벽에 난 작은 창구에서 아이스크림과 와플을 팔고 있다.
오늘날 이 카페의 테이크아웃 카운터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고, 그 위의 2개 층은 손님들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와플은 19세기 중반부터 벨기에 티룸 문화의 중심 메뉴로 자리 잡았는데, 그중에서도 브뤼셀식 와플은 테이블에 앉아 즐기기에 제격이다. 가벼운 반죽과 고운 설탕으로 만든 이 와플은 갓 구워냈을 때 바로 먹어야 하는데, 다양한 토핑과도 훌륭하게 어우러진다. 나는 입안 전체를 감싸는 스페큘로스 스프레드와 알싸한 풍미를 더해주는 비스킷 부스러기를 토핑으로 고른다. 공기처럼 가벼운 와플 위에서 세 가지 식감이 겹쳐지며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할머니의 레시피가 어떻게 이토록 섬세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앙투안이 답한다. “그건 비밀입니다. 그저 우리는 최고급 재료만을 사용하죠.”
경영을 맡은 뒤 앙투안과 알렉상드르는 지역 내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공급업체들을 엄선해왔다. 그 결과 2024년, 높은 수준의 환경적·사회적 기준을 준수하는 기업에 부여되는 비 코프B Corp 인증을 획득했다. “형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오늘과 내일, 우리가 그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앙투안이 자문한다. “우리는 벌써 8대째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파르동의 브런치 플래터.
수도 브뤼셀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스칼리노Pascalino 와플 밴.

새로운 클래식
마지막 행선지는 역사 지구 남쪽에 위치한 생질Saint-Gilles 지역이다. 이곳은 정겨운 동네 분위기와 개성 넘치는 레스토랑, 트렌디한 밤 문화로 사랑받는 곳이다. 파르동Pardon은 이러한 동네 분위기를 그대로 닮은 가게다. 스페셜티 커피와 와플을 선보이는 이곳은 익살스럽게 웃는 가고일gargoyle 벽화로 꾸며져 있으며 매장 뒤편에는 빈티지 가게가 자리한다. “우리는 규칙을 따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미사일을 투하하는 바나나 껍질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셰프이자 공동 대표 아드리앵 ‘로베르’ 베르트랑Adrien ‘Robert’ Bertrand이 말한다. ‘죄송합니다’라는 뜻의 가게 이름 조차 반어적인 농담이다. “우린 프랑스인이지만, 벨기에 와플을 우리 방식대로 재해석했거든요.”
지난 7년 동안 로베르와 그의 바리스타 파트너 말라Marla(이 또한 로베르처럼 별칭이며, 그녀가 가게에서만 사용하는 이름이다)는 버터를 듬뿍 넣어 속이 크림처럼 부드러운 브뤼셀 와플부터 달걀 대신 아마씨를 갈아 젤리 형태로 만들어 넣은 비건 와플, 한입 크기의 브리오슈 와플을 선보여 왔다.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사워도를 베이스로 한 와플 브레드를 맛보기 위해서다. 이 빵은 로베르가 제철 식재료로 매번 새롭게 구성하는 브런치 플레이트와 함께 제공된다.
앞에 놓인 접시에는 구운 가지를 으깨어 만드는 바바 가누시와 백후추로 단맛을 살린 적양배추, 그리고 가람 마살라와 사과 커리로 풍미를 더한 펜넬이 푸짐하게 담겨 있다. 여기에 생강 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호박 수프가 곁들여지는데, 훈제 파프리카와 말린 토마토를 넣어 구운 와플 빵으로 수프를 싹싹 닦아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다른 카페였다면 지나치게 실험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브뤼셀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는 트러플을 가미하거나 유자 소르베를 얹어낸 와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베르와 말라의 개성이 그대로 투영된 듯한 파르동의 메뉴는 장난스럽고 유쾌하다.
로베르가 말한다. “프랑스에 있을 때는 종종 파티를 열어 손님들을 대접하곤 했죠.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셈이에요.” 결국 최고의 벨기에 와플은 단순한 법칙 하나를 따른다. 바로 선물을 고르듯 누군가를 생각하며 정성껏 준비한 ‘솔푸드’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매일매일이 크리스마스인 셈이다.

 


벨기에 와플 연표


1500년대
벨기에 와플이 노점에서 판매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특유의 격자무늬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반죽에 설탕, 달걀, 향신료, 효모 등이 추가되면서 기존의 핫케이크와는 차별화된 음식으로 발전했다.

1700년대
지역별 와플의 특징을 구분하는 레시피가 최초로 기록된다. 이 무렵 와플은 벨기에 전역의 티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메뉴로 자리 잡는다.

1869년
미국의 발명가 코넬리어스 스워트아웃Cornelius Swartwout이 현대적인 와플 기계를 특허 등록한다. 덕분에 수 세기 동안 사용되던 도구가 가벼워지고 조작이 간편해졌으며, 무엇보다 와플을 만들며 화상 입을 위험이 크게 줄었다.

1964년
벨기에 이민자 모리스Maurice와 로즈 베르메르슈Rose Vermersch 부부가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벨-젬Bel-Gem 와플이라는 이름으로 브뤼셀 와플을 선보인다. 이를 계기로 브뤼셀식 와플은 벨기에를 대표하는 와플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다.

그릴에서 리에주 와플을 굽고 있는 무스타파 자리우히.

놓치지 말아야 할 전통 브뤼셀 레스토랑 3곳

인 트 스피넨코프케
도심에 위치한 이 선술집은 18세기에 여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에 문을 열었다. 베이컨과 소시지를 곁들인 스툼프stoemp(채소를 섞은 으깬 감자 요리) 같은 든든한 벨기에 전통 요리를 맛보기에 제격이며, 오후에 들러 람빅lambic 맥주 한 잔을 여유롭게 즐기기에도 좋다.
spinnekopke.be

레 브리지틴
트렌디한 마롤Marolles 지구에 자리한 이곳은 브뤼셀 최고의 브라스리 중 하나로 꼽힌다. 벽난로 옆에 앉아 셰프 디르크 미니Dirk Myny의 시그너처 메뉴인 젠 포트Zenne Pot(괴즈Gueuze 맥주에 익힌 양배추 요리), 블룸판시bloempanch(벨기에식 블랙 푸딩), 건조 소시지, 소라 요리를 주문해보자. lesbrigittines.com

노르드제 – 메르 뒤 노르
브뤼셀의 역사적인 어시장 지역인 생카트린Saint Catherine에 자리한 수산물 전문점이다. 가게 앞 인도에 마련한 바에서는 새우 크로켓과 새우 구이 같은 해산물 타파스를 선보인다. 스탠딩 테이블에 서서 가볍게 즐기거나 길거리 음식처럼 들고 다니며 먹기에도 좋다.
noordzeemerdunord.be

인 트 스피넨코프케의 소시지와 베이컨을 곁들인 벨기에식 으깬 감자 요리 스툼프.

 

글. ANGEL LOCATELLI
사진. NATALI AFS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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