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수도 방콕에서는
허름한 골목 식당의 국수 한 그릇부터
세련된 루프톱 레스토랑의 다채로운 코스 요리까지,
어디를 가든 만족스러운 한 끼를 기대할 수 있다.
방콕이 미식 여행지로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단연 길거리 음식의 힘이 컸다. 아침 시장인 트록 모르Trok Mor에서 파는 달콤하거나 짭짤한 속을 채운 크레프부터 차이나타운의 불길이 치솟는 웍에서 재빠르게 볶아내는 국수까지, 방콕의 캐주얼 다이닝은 오감을 자극하는 짜릿한 경험을 선사한다.
방콕 음식의 진정한 매력은 무엇보다 압도적인 다양성에 있다.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디저트, 인도 및 아랍의 향신료를 활용한 카레는 수 세기에 걸쳐 태국 음식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신선한 채소의 풋풋한 풍미부터 새콤하고 상큼한 맛, 열대 과일의 달콤함, 혀끝이 얼얼할 정도의 강렬한 매운맛까지, 방콕에서는 거의 모든 풍미의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방콕의 미식은 군침 도는 길거리 음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 사이 수준 높은 고급 레스토랑이 잇따라 문을 열며 방콕은 세계적인 파인 다이닝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태국 출신 셰프들은 전통 요리를 창의적인 테이스팅 메뉴로 재해석하고, 여기에 해외 출신 셰프들까지 방콕으로 모여들면서 이 도시의 음식 문화는 전통적인 태국의 맛을 넘어 더욱 폭넓게 확장되고 있다.
❶ 길거리 음식
국물이 진한 국수를 후루룩
거대한 종교 시설인 자이언트 스윙Giant Swing으로 유명한 사오 칭차Sao Chingcha 지역에서 점심 맛집으로 손꼽히는 타 차이 수코타이 누들스Ta Chai Sukhothai Noodles는 30년 넘게 사랑받아 온 소박한 식당이다. 대표 메뉴는 수코타이 국수. 가는 쌀국수 또는 넓적한 쌀국수에 돼지 뼈를 푹 고아낸 육수를 붓고, 그린빈과 숙주를 듬뿍 넣은 뒤 다진 돼지고기와 구운 돼지고기 슬라이스를 넉넉히 올려 완성한다. 여기에 고추절임을 곁들이면 매콤한 풍미가 더해져 맛이 한결 살아난다.
119/1 Bamrung Mueang Rd
바삭한 돼지고기의 진수
고급 주거 지역인 사톤Sathorn 인근에 자리한 꿰이잡 미스터 조Kuay Jab Mr Joe는 줄이 길게 늘어서도 회전이 빨라 비교적 금세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소박한 식당 겸 노점이다. 대표 메뉴는 촉촉한 삼겹살 위를 유리처럼 바삭한 껍질이 덮고 있는 무 크롭moo krob. 후추 향이 진한 국물과 굵고 둥글게 말린 쌀국수가 특징인 꿰이잡에 담가 먹어도 바삭한 식감이 그대로 유지된다. 달콤한 당밀 향이 감도는 진한 흑간장 소스를 곁들이면 더욱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313/7 Chan Road
달콤한 태국식 디저트
12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낭렝 시장Nang Loeng Market의 그늘진 골목에는 오래된 상점 건물이 늘어서 있다. 왓 솜마낫Wat
Sommanat 일대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이곳에 자리한 매 꽈스위츠Mae Kwa Sweets는 태국 사람들이 오랫동안 즐겨온 전통 디저트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보물 같은 가게다. 판단잎 추출물로 층층이 은은한 초록빛을 낸 젤리 식감의 떡 카놈 찬khanom chan, 녹두를 넣어 만든 태국식 커스터드 케이크 카놈 모 캥khanom mo kaeng 등이 대표 메뉴다. 인기가 많아 오후 한두 시경이면 대부분의 디저트가 매진되므로 가능한 한 이른 시간 방문하는 것이 좋다.
332 Nakhon Sawan Rd
통통한 새우만두
차이나타운의 야오와랏 로드Yaowarat Road는 방콕을 찾는 여행자라면 한 번쯤 들러야 하는 길거리 음식의 성지다. 신선한 열대 과일부터 꼬치에 꿴 새까만 전갈구이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먹거리가 거리를 가득 채운다. 그중에서도 소이 야오와랏 4 교차로 근처에 있는 빨간 간판의 작은 노점을 눈여겨볼 것. 큼직한 새우를 피라미드처럼 쌓아놓은 모습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통통한 새우를 주름진 만두피로 감싼 뒤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소스를 듬뿍 발라내는데, 한 번 맛보면 다시 지나치기 어려운 별미다.
❷ 파인 다이닝
여행 같은 미식
누사라의 테이스팅 메뉴는 미식과 동시에 공간을 옮겨 다니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레스토랑을 차례로 이동하며 식사를 즐기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1층에서 딸기와 바질, 갈랑갈galangal(생강과 비슷한 향과 풍미를 지닌 동남아시아의 대표 향신료)을 넣은 음료로 입맛을 돋운 뒤, 옥상으로 올라가 아뮈즈부슈로 바삭한 토마토 껍질 위에 진하게 양념한 와규 타르타르 같은 요리를 맛본다. 그리고 이후에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쌀을 채운 오징어 요리 등 메인 코스를 즐긴다. 식사를 하는 내내 인근 사원인 왓 포Wat Pho의 황금빛 첨탑 풍경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nusarabkk.com
한 편의 공연 같은 저녁 식사
도심의 리틀 재팬Little Japan 지구 인근에 있는 가간은 스스로를 ‘미식 극장Food Theatre’이라고 소개하는 독특한 레스토랑이다. 식사와 공연, 사교를 함께 즐기는 서퍼 클럽supper club 분위기에 오마카세 요소를 결합해 다이닝을 하나의 무대로 확장한다. 약 20가지 코스는 다섯 개의 막으로 구성되며, 태국·인도·일본·멕시코의 다양한 문화에서 영감받은 요리가 이어진다. 대표 메뉴로는 카레 잎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가리비 요리가 있다. 특히 한 디저트는 접시 위에 담긴 것을 직접 핥아 먹도록 연출해 식사 자체를 하나의 퍼포먼스로 완성한다.
gaggan.com
미식 호캉스
강변에 자리한 카펠라 방콕에서는 숙박 자체가 하나의 미식 여행이 된다. 매일 제공되는 태국식 애프터눈 티를 비롯해 요리와 와인 테이스팅 마스터클래스가 마련되어 있으며, 호텔의 제과점인 킨KIN에서 훌륭한 케이크도 맛볼 수 있다. 또한 프라 나콘Phra Nakhon 레스토랑에서는 찐 게에 카레 소스를 곁들인 요리 등 태국의 풍미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메뉴를 선보인다.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 코트 바이 마우로 콜라그레코Côte by Mauro Colagreco에서는 지중해 요리에서 영감을 받은 오트 퀴진, 즉 최고급 식재료와 정교한 조리 기법을 바탕으로 한 프랑스식 고급 요리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다.
capellahotels.com
태국 속 독일
방콕에서 독일식 파인 다이닝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룸피니 공원Lumphini Park 남쪽의 나무가 우거진 저택에 자리한 쥐링은 예약이 쉽지 않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는 레스토랑이다. 테이스팅 메뉴는 독일 전통의 풍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정교하게 재해석한다. 손님의 식탁에서 직접 잘라 주는 게임 파이game pie(사슴·멧돼지·꿩 등 야생 동물 고기를 넣어
만든 파이)부터 초콜릿 과자처럼 포장한 오리 간 파르페를 얇은 웨이퍼와 함께 내는 요리까지, 모든 코스는 이 레스토랑이 미쉐린 3스타를 받은 이유를 충분히 보여준다.
restaurantsuhring.com
배에서 만나는 음식
수 세기 동안 ‘클롱khlong’이라 부른 태국의 운하는 방콕의 시장 역할을 해왔다. 상인들은 나무배 위에서 국수와 과일, 카레 등을 직접 판매하며 활기찬 장터를 이루었다. 1950~1960년대 도시 개발 과정에서 많은 운하가 메워지며 자취를 감췄지만, 탈링찬Taling Chan과 클롱 랏 마욤Khlong Lat Mayom 같은 수상시장은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상인은 지금도 운하 가장자리에서 해산물을 숯불에 구워 팔고, 따뜻한 국을 한 그릇씩 떠서 손님들에게 내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