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동안 충청도를 유람하며
축복을 누렸다.
20년 가까이 지녀왔던 그릇된 인식과 관념을
깨끗이 버리게 된
반성과 발견의 시간이기도 했음은 물론이다.

서로가 비슷한 위도에 자리해 동서로 길게 이어진 충청도는 그 지세만큼이나 삶의 풍경이 다양하고 조화롭다. 곳곳에 너른 평야가 있고 찰진 뻘밭이 바닥에서 일렁이며 온갖 생명을 키워내는 금빛 서해를 배후에 둔 충남과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맞닿지 않은 유일한 곳이지만 크고 작은 산과 들 사이로 맑은 강이 흘러 예부터 청풍명월이라 일컬은 충북은 서로 대립하는 일 없이 조화롭고 온아하여 시시로 눈물을 훔치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충청도의 땅과 다르지 않았다. 우연히 만나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눈 수많은 이들은 모두 급하거나 앞서 말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고, 말씨와 행동은 차분했으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친절과 따스한 인정으로 이방인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지난 1년 사계절에 걸쳐 충북 단양에서부터 충남 태안에 이르기까지 자연뿐 아니라 가급적 모든 면 소재지와 오래된 유적지, 사찰, 성당 등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시간이 거듭될수록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독립유공자와 3.1만세운동을 기리는 숱한 비석들이다. 임진왜란 때 충청도 지역의 의병 활동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금산군 금성면의 칠백의총을 비롯해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충무공과 매헌 윤봉길 의사, 순국열사 유관순이 모두 이 고장 사람들이다. 700년 백제 문화의 요람지였던 충청남도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촬영을 마칠 즈음 충청도 사람이 아닐지라도 대부분 알고 있는 “냅둬유”와 “괜찮아유”란 말에 이 지역의 정신과 본질이 녹아 있다고 나는 믿게 되었다. 즉, “냅둬유”란 말에는 대대로 살고 있는 삶의 터전과 자연환경을 어떤 세력이 짓밟거나 빼앗으려 한다면 이를 결단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저항의 정신이 완곡하게 담겼다고 믿는다. 또한 지금 당장엔 곤란하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분명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과 희망의 뜻이 “괜찮아유”란 말에 깃들어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 것이야말로 충청도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인지도 모른다. 충남과 충북을 실핏줄처럼 잇는 국도변과 여러 해변에서 만났던 어질고 정겨운 사람들. 오래되어 낡았으나 품위가 느껴지는 소박한 삶의 공간과 아직 때 묻지 않은 산천. 그 모든 따스한 것이 한데 모여 풍성하고 아름다운 삶의 풍경으로 모락모락 피어나던 충청도에서의 1년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임재천은 사라지고 변해가는 한국 풍경을 기록한다는 사명을 품고 2000년부터 현재까지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와 사람들 그리고 자연환경 등을 촬영하고 있다. 2014년부터 후원자들과 함께 이 땅의 오늘을 기록하는 ‘50+1’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간 제주도, 강원도, 부산광역시, 전라도, 서울특별시, 충청도 촬영을 완수했고 경기도와 인천광역시, 경상도를 아우르는 두 차례의 프로젝트를 목전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