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안으로 들어가 심연을 들여다본다.

수중 촬영은 관찰이 아니라, 침입이다.
카메라를 들고 바다의 경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손님이 된다.
특히 바다사자처럼 위계가 분명한 생명체 앞에선 그 경계는 더욱 또렷해진다.
코르테스해.
수컷 바다사자가 정어리 떼를 가르며 내게 다가왔다.
느릿하고 조용했다.
그러나 그 안엔 군림하는 존재만의 단호한 침묵이 있었다.
공격하지도, 환영하지도 않았다.
그저 마치 “네가 여기에 있어도 되는가?”라고 묻는 듯했다.
나는 숨을 멈췄다.
나는 그저 한 존재로, 그의 바다 안에 서 있었다.
무언의 권위 앞에서 내가 배운 건
자연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자연의 질서는 이따금 소리 없이 선포된다. 그가 지나가면 길이 열린다.
태풍이 지난간 바다, 잠이 든 바다사자. 세상이 요동쳐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있다. 본능은 언제나 이성보다 깊은 침묵으로 답한다.
인간을 향해 망설임 없이 ‘놀이’를 허락하는 존재, 그들의 순수는 경계보다 깊다
나는 빛이 닿지 않는 어둠에서 진실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물속의 정적은 내면의 소음을 지우고, 나를 가장 나답게 되돌린다. 바다(BLUE) 안으로 들어가는 다이빙은 내 안의 심연(BLUE)을 들여다보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자연을 찍는다는 건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경청하는 자세에 이르는 것이며, 수중 촬영은 내 안의 침묵이 바깥 세계와 조우하는, 가장 조용한 언어다.

수중촬영가 김환희는 전 세계의 바다를 유영하며 다양한 해양의 아름다움을 한국인에게 알리는 FINDBLUE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