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RTHER
PLACES WE LOVE
언제나 본아페티!
FOLLOW US :
2026년 04월호

프랑스에서 여행하며 먹고 마시기.

몽생미셸을 두 번이나 찾았다. 이보다 더한 행운이 있을까. 한 번은 눈부시게 맑은 날, 또 한 번은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짧은 여행에서 두 풍경을 모두 만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대천사 미카엘이 건넨 작은 행운일 것이다. (오른쪽) 지베르니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의 식사. 기대 이상의 요리에 놀라는 순간, 주인이 르코르동블루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의 축복, 노르망디
모네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에서 시작해 루앙, 에트르타, 르아브르 그리고 크고 작은 어촌 마을을 거쳐 신비로운 섬 몽생미셸로 향하는 노르망디 여행. 인상주의 화가들이 사랑했던 노르망디의 날씨는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맹렬하게 빛나는 태양이 떠 있다가 갑작스럽게 먹구름이 몰려온다. 한바탕 비가 쏟아지고 나면 벽과 바닥 위로 반짝이는 빛이 더욱 오묘하고 찬란해진다. 이곳에서 무지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런 순간을 두고 “이것이 진짜 노르망디다”라고 말한다. 모네 역시 루앙 대성당을 그리며 “이토록 변덕스러운 날씨라니, 정말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는 날씨군”이라는 말을 남겼다. 나 역시 청록색 우비를 걸친 채 변화무쌍한 풍경 속을 걷고 먹으며 노르망디에 스며든다.
차장 너머로 펼쳐진 드넓은 초원과 그 위를 거니는 소들을 바라보는 사이, 여지없이 한차례 비가 쏟아졌다. 그리고 하늘은 다시 맑게 갠다. 그렇게 도착한 몽생미셸은 작은 바위섬 꼭대기에 800년에 걸쳐 완성된 수도원이다. 밀물이 가장 높은 때가 되면 육지는 바닷물에 완전히 잠겨 마치 바다 위에 섬이 떠 있는 듯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지금은 다리를 통해 편히 건널 수 있지만 과거의 순례자들은 7km에 달하는 갯벌을 건너 이곳에 도착했다. 신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수행인 셈이다. 그 험난한 여정 끝에서 그들을 품어준 것이 바로 따뜻한 음식이다. 130년 전 그들을 맞이했던 라 메르 풀라르La Mère Poulard에서는 지금도 장작불 위에서 오믈렛을 굽는다. 흥겨운 리듬에 맞춰 오믈렛 반죽을 섞고 장작불에 굽는 모습을 구경하는 동안 폭신한 수플레 오믈렛이 프라이팬째로 나온다. 오믈렛은 하나만으로도 든든할 만큼 커서 그 크기에 압도되고, 부드러운 식감과 입안 가득 퍼지는 풍미에 또 한 번 놀란다. 여행 중 만난 노르망디산 우유와 치즈, 시드르 그리고 약초로 약을 제조하던 수도사들이 우연히 발견한 리큐어 베네딕틴Bénédictin까지. 이 모든 것이 자연이 오랜 시간 준비해 온 선물처럼 느껴진다.

타르트 아 로뇽Tarte à l'oignon은 바삭한 페이스트리 위에 캐러멜라이징한 양파, 생크림, 달걀, 베이컨을 올려 구워낸 뒤 샐러드와 함께 애피타이저로 즐긴다. (오른쪽) 섬세한 산도와 향을 지닌 알자스의 리슬링 와인. 병은 독일 문화의 영향으로 병목이 길고 좁은 알자스 특유의 형태를 띤다.

와인 한 잔과 동화 속으로 퐁당, 알자스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역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을 초월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애니메이션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목조 건물과 파스텔 색조의 외벽, 상점마다 걸린 고풍스럽고 조형적인 간판, 하트와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장식된 창문이 중세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시계태엽이 거꾸로 돌아가는 듯하다.
이곳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골목마다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윈스텁Winstub이다. 간단한 음식과 와인, 전통 맥주를 파는 알자스식 선술집인데, 마치 중세의 가정집에 초대받은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전통 인테리어와 알록달록한 식탁보, 아기자기한 식기 그리고 음식까지 소박하고 아늑하다.
알자스의 음식은 여느 프랑스 지역과 달리 이곳만의 전통이 있는데, 국경을 맞댄 독일과의 오랜 역사 속에서 두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훈제 돼지고기와 소시지, 감자를 곁들인 양배추 요리 슈크루트choucroute는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를 연상시키고, 화이트와인에 큼직하게 썬 돼지고기와 감자, 당근, 양파를 넣어 오랜 시간 익힌 베크오프baeckeoffe는 깊고 묵직한 풍미를 전한다. 얇은 반죽 위에 베이컨과 크림, 양파를 얹어 화덕에 구운 타르트 플랑베Tarte Flambée는 담백하면서 꾸밈없는 가정식 그 자체. 시원한 알자스식 전통 맥주나 리슬링 와인에 곁들이기 딱 좋다.
알자스 어느 도시에서나 맑고 투명한 리슬링 와인을 맛볼 수 있다. 라인강과 보주산맥의 영향을 받는 알자스 지역은 건조하고 강수량이 적은 기후를 지닌 덕분에 포도가 천천히 익으며 섬세하고 균형 잡힌 와인이 완성된다. 와인 잔을 기울이는 순간, 시간은 더욱 천천히 흐른다. 현실과 동화의 경계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툴루즈의 카피톨 광장을 마주한 레스토랑 르 비방Le Bibent. 1975년 국립문화유적으로 지정된 건축물로, 벽면과 천장을 가득 채운 화려한 조각,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예술 작품처럼 정교하게 장식된 디저트 또한 놓칠 수 없다. (오른쪽)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님의 현대미술관 카레 다르Carré d'Art 루프톱 테라스에서 맛본 상큼한 디저트. 테라스에서는 고대 로마 신전인 메종 카레를 조망할 수 있다.

장엄한 고대 남프랑스, 옥시타니
옥시타니는 스페인과 국경을 맞댄 프랑스 남부 지역으로 찬란했던 고대의 시간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곳이다. 유럽 최대 규모의 요새 도시 카르카손, 2000년의 역사를 지닌 붉은 벽돌의 장밋빛 도시 툴루즈 그리고 님에서는 콜로세움보다 더 완벽하게 보존된 원형 경기장과 고대 신전인 메종 카레Maison Carrée, 다이애나 신전Temple de Diane이 여전히 위엄을 드러낸다. 로마 시대의 공학적 정수를 보여주는 퐁 뒤 가르Pont du Gard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위제스와 님을 연결하기 위해 건설된 이 수도교는 당시의 기술력과 미학이 결합된 상징적인 구조물로 남아 있다. 옥시타니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지역의 시간은 음식에서도 이어지는데, 대표 요리인 카술레cassoulet는 중세 말기부터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진흙으로 빚은 도기에 돼지고기와 소시지, 흰 강낭콩을 오랫동안 천천히 익혀내는 이 스튜는 지역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카르카손에서는 양 뒷다리를 더해 보다 묵직한 풍미를 강조하고, 툴루즈에서는 거위나 오리 콩피 그리고 툴루즈 소시지를 넣어 한층 깊고 기름진 맛을 완성한다. 같은 전통이 지역과 식재료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진화해 왔는지 체감하는 순간이다.

 


사진가 김은주는 시공간에 남겨진 흔적에는 수수께끼 같은 비밀이 있다고 믿는다. 사진은 그 흔적을 평면에 앉혀 비밀을 함께 풀어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글. 김은주EUN-JU KIM
사진. 김은주EUN-JU KIM
RELATED
TRAVEL WITH PASSION AND PURP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