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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고요, 서원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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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호

서원의 단정한 아름다움과 깊은 사유.

보물로 지정된 만대루가 자리한 병산서원의 여명.
어둠을 밀어내는 하늘빛이 해가 뜨는 방향을 일러준다. 고요의 절정.

서원의 아침은 경건하다
고요가 흩어지는 거룩한 시간이며 어둠을 밀어내는 빛의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시작을 알 수 없는 깊은 질서가 흐르고 공간은 마침내 눈을 뜬다. 나도 잠시 카메라에서 물러나 옷깃을 정돈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홉 곳의 서원은 한국 성리학의 전통을 보여주는 산증인이다. 박물관에 갇힌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삶을 돌아보는 ‘멈춤’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스스로를 낮추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본질에 집중하고자 했던 옛 현인들의 정신은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소수서원에서 경건히 향사를 지내는 모습.

사유의 공간
성리학은 지금의 중국 땅에서 시작해 동아시아에 퍼졌지만, 지금껏 그 터전인 서원을 보존하고 1년에 두 번 제향 의식을 행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성리학 이념을 실천하고 제향을 올리던 교육기관인 서원 중 아홉 곳이 2019년, 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남계서원, 도동서원, 도산서원, 돈암서원, 무성서원, 병산서원, 소수서원, 옥산서원, 필암서원이 그곳이다. 한국의 서원은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공존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적 사유의 공간이다.

제향(祭享)의 시간
도포를 갖춰 입고 정중히 고개 숙인 유림의 모습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예(禮)’와 ‘수양(修養)’의 무게를 느낀다. 모든 서원은 춘계와 추계, 이렇게 매년 2회의 향사를 지내며 선현을 기리고 그 가르침에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시공을 초월한 경건함이 묻어나는 순간이다.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멈춤’과 ‘성찰’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살아있는 역사의 장면이다.

 

동쪽 산마루를 막 넘어온 볕이 소수서원의 아침을 깨운다. 서원의 지붕 곡선은 산등성이의 완만한 흐름을 닮았고, 내부의 대청마루와 기둥들이 만드는 직선은 선비의 곧은 기개를 상징하는 듯하다. 이 상반된 선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서원 미학 특유의 유연하면서도 엄격한 질서가 탄생한다.

지혜의 정원
아홉 곳의 한국 서원은 서로 다른 지역과 다른 풍광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해답이다.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의 우리에게 삶을 돌아보게 하는 ‘성찰’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살아있는 ‘지혜의 정원’이다.
내가 렌즈를 통해 만난 서원은 고유한 ‘한국의 美’를 찾는 여정이었고, 옛것을 통해 삶의 지혜를 탐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한국의 서원’이라는 사진 프로젝트를 통해 서원은 세대를 이어 전해져야 할 고유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며, 그 안에 담긴 깊은 사유와 철학이 먼 훗날까지 이어지길 소망한다.


사진가 구박은 오랜 시간 인도와 아프리카를 방랑했고 〈인디아 휴먼 다큐, We go together〉 전시를 비롯해 아홉 번의 개인전과 여러 단체전에 참가했다. 2025년 인사동에서 〈한국의 서원 100선〉전을 통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아홉 곳을 처음으로 한데 모아 전시하며, 꾸준히 Korean Beauty를 찾아 탐미하고 있다.

 

글. KOOBAK
사진. KOO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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