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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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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6월호

생기 넘치는 템플 바 거리부터 유서 깊은 〈켈스의 서〉까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는 상징적인 명소가 가득하지만, 진짜 마법 같은 장면은 그 너머에 존재한다. 활기찬 음악 신과 새롭게 떠오르는 야간 공간, 문을 나서면 바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해안선에서 말이다.

파워스코트 타운하우스 센터에 있는 리틀 피그 레스토랑.

더블린은 쉽게 ‘정복’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물론 놓칠 수 없는 명소들은 분명 존재한다. 예를 들어 ‘검은 술’이라 불리는 기네스 맥주를 양조하고 시음하며 그 역사를 기리는 기네스 스토어하우스Guinness Storehouse, 밤마다 흥겨운 음악이 흐르는 템플 바Temple Bar 거리에는 탭룸이 줄지어 있다. 9세기에 필사된 <켈스의 서Book of Kells>를 소장한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대학인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도 빼놓을 수 없다. 한편, <율리시스>를 쓴 제임스 조이스 같은 뛰어난 작가들 덕분에 더블린은 유네스코 문학도시로 지정되기도 했다. 과거를 빛낸 작가들은 오늘 날 U2, 시네이드 오코너 같은 뮤지션들과 함께 더블린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그들의 유산은 거리의 명판과 박물관, 생가, 스튜디오 등 도시 곳곳에 살아 숨 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인 더블린에는 꼭 봐야 할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그리 많지 않다. 현지인들은 이러한 면모를 ‘순간과 순간 사이의 여백에서 진정한 매력이 드러나는 도시’라고 표현한다. 잠시 멈춰 서 주변을 둘러보면 더블린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콘이나 전설들을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는데, 그 모습은 마치 도시를 휘감아도는 리피강처럼 조용하고도 힘 있게 다가온다. 그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싶다면 크리에이티브 쿼터Creative Quarter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사우스 윌리엄 스트리트와 조지 스트리트 사이에 있는 이곳은 개성 넘치는 부티크, 카페, 레스토랑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아니면 스토니배터Stoneybatter, 더 리버티스The Liberties, 포토벨로Portobello 같은 도심 속 동네들을 탐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곳에서 더블린 사람들은 흔쾌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크랙craic(아일랜드에서 사람들이 어울려 즐기는 순간, 아일랜드식 즐거움 정도 되겠다)을 함께 즐길 것이다. 특히 유서 깊은 펍에 들어서면 더블린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대화와 유머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더블린에서는 어느 골목을 걷든 오래된 건물 사이로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셰프 장조르주 봉게리히텐Jean-Georges Vongerichten이 최근 더 레인스터 호텔The Leinster hotel 옥상에 문을 연 레스토랑도 빠르게 확산하는 도시의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여전히 전통 펍들은 건재하지만 그와 함께 감각적인 와인 바, 음악과 음향을 즐기는 오디오 파일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공간도 등장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DJ가 값비싼 턴테이블에 올린 LP 선율에 맞춰 수제 맥주나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트리니티 칼리지의 크리켓 경기장에서는 계속해서 콘서트가 열리고,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서도 저녁이면 아일랜드 출신 DJ 애니 맥Annie Mac이나 북아일랜드 일렉트로닉 듀오 바이셉Bicep 같은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선보인다.
리피강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뉘는 더블린은 노스사이드와 사우스사이드 지역 사이에 묘한 라이벌 의식을 지니고 있다. 아담하지만 밀도가 높은 도심은 운하를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들로 이어진다. 조지아 시대의 아름다운 광장과 벽화가 그려진 거리 사이를 걷다 보면 낡은 성벽의 일부, 교회 지하 납골당, 와인 선술집, 피셤블Fishamble 같은 고풍스러운 이름의 거리 등 고대 바이킹부터 중세 시대의 유구한 유산을 마주하게 된다. 이 도시를 제대로 느끼려면 두 발로 걷는 게 가장 좋다. 트램이나 택시, 버스는 때때로 타는 것 정도로도 충분하다. 처음에는 방향을 찾느라 약간 헤맬지 몰라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가장 흥미로운 풍경을 마주칠 수 있다. 더블린은 ‘정복’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그러니 그저 그 속에 풍덩 빠져들어 보자.

(왼쪽부터 시계 방향) 더 코블스톤에서 전통 음악을 연주한다. 더블린만에서 하우스 마을로 이어지는 풍경. 더블린 시내에 있는 포토벨로 동네의 벽화

도시의 발견
켈스의 서: 켈트 수도사들이 제작한 이 필사본 복음서는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정교한 삽화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트리니티 칼리지의 구 도서관에 원본이 전시되어 있으며, 장식장 속에서 매일 페이지가 넘겨진다. 최근에는 방문객을 위한 몰입형 체험이 추가되었는데, 홀로그램과 360 음향 영상 기술을 통해 책을 생동감 있게 경험할 수 있다. visittrinity.ie

무대 뒤에서: 오코넬 다리 근처의 애비 극장은 120년 넘게 아일랜드 문화의 중심지였다. 무대 뒤를 볼 수 있는 투어를 통해 소품 창고와 의상실을 둘러볼 수 있다. 리프강 남쪽의 교외 지역인 링센드Ringsend에서는 U2, 반 모리슨, 시네이드 오코너 같은 전설적인 뮤지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윈드밀 레인 녹음 스튜디오 투어도 운영한다. abbeytheatre.ie, windmilllanerecording.com

크로크 파크: 스포츠 경기장을 돌아볼 수 있는 도시는 많지만, 크로크 파크만큼 특별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블린 시내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이 경기장은 하키 비슷한 헐링hurling과 게일리식 축구인 GAA 등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구기 종목이 펼쳐지는 성지다. 투어를 통해 경기장의 모든 구역을 둘러보거나, 옥상에 올라가 스카이라인을 감상하거나, 박물관에 가서 GAA가 아일랜드 사회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알아볼 수 있다. 더욱 생생한 경험을 원한다면 경기 관람권을 사서 실시간 경기를 관람해보자. crokepark.ie

마법 같은 박물관: 아일랜드에서는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을 무료로 개방한다. 킬데어 거리에 있는 아일랜드 국립박물관 고고학관에서 바이킹이 수집한 금과 습지에서 발견된 잔혹한 유해를 볼 수 있다. 인근의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에는 잭 B. 예이츠Jack B. Yeats의 〈리피강 수영〉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100년 넘게 매년 열리는 수영 대회를 그린 작품으로, 지난해에는 9월 7일에 대회가 열렸다. museum.ie, nationalgallery.ie

헨리에타 스트리트 14번지: 오래된 저택을 복원한 사회역사박물관으로, 300년이 넘는 더블린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한 시대를 재현한 방들은 조지아 시대의 웅장함부터 참혹한 빈민가의 궁핍한 삶까지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결한다. 전시 후반엔 복원된 20세기 아파트에 들어가볼 수 있는데, 선반에 채워진 물건부터 독특한 향의 카르볼릭 비누 냄새까지 재현해 놓았다.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관람이 가능하다. 14henriettastreet.ie

주파수 맞추기: 더블린의 음악계는 현재 최고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랭컴, CMAT, 필로 퀸스 같은 젊은 아티스트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 템플 바 거리에 있는 웰런스나 버튼 팩토리 같은 공연장에서는 작은 무대에 서는 차세대 스타의 공연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한편, 오코넬 거리에서 트램을 타고 서쪽으로 몇 정거장 이동하면 나오는 스미스필드의 더 코블스톤에서는 전통 음악 공연이 진행된다. whelanslive.com, buttonfactory.ie, cobblestonepub.ie

(왼쪽부터) 더블린 시내에 있는 보행자 전용 카펠 스트리트 거리. 더 윈딩 스테어의 폴렌타와 사과,

취향의 발견
파워스코트 타운하우스 센터: 한때 주차장으로 사용되었던 조지아풍 저택의 안뜰이 지금은 개인 카페와 상점들이 모인 부티크 쇼핑센터로 거듭났다. 더 페퍼 팟The Pepper Pot에서 베이컨과 배를 넣은 샌드위치를 먹어보고, 옛 드레스룸 자리에 들어선 아티클Article의 실내장식을 둘러보자.
powerscourtcentre.ie

스웨니: 트리니티 칼리지 근처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서점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에드워드 왕조 시대의 더블린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마호가니 나무 카운터와 유리 진열장을 가득 채운 약병은 이곳이 과거에 약국이었음을 보여준다. 스웨니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에도 등장한다.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이 선택했던 레몬 비누 바가 기념품으로 인기 있다.
sweny.ie

옴 디바: 드루리 스트리트는 공예, 디자인, 빈티지 상점, 특색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여 있는 작은 쇼핑 거리다. 옴 디바는 더블린 패션계에서 유명한 루스 니 론시Ruth Ní Loinsigh가 운영하는 상점으로, 빈티지 제품과 합리적인 가격대의 옷을 살 수 있다. 2층에는 재능 있는 신예 디자이너들의 옷을 모아 놓았다.
omdivaboutique.com

Caption

더블린식 풍미
코크 레인 피자: 나폴리식 피자를 만드는 코크 레인 피자는 리버티스 지역의 럭키스Lucky’s 바와 리알토 지역의 더 서큘러The Circular 바에 피자를 납품한다. 추천 메뉴는 매그넘 PI 피자로, 장작불에 구운 돼지 족발과 틸링 위스키에 불을 붙여 그을린 파인애플 토핑이 더해진다. 단 1%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 건강한 맛이다.
cokelanepizza.ie

더 윈딩 스테어: 이 비스트로는 1층에 서점이 있으며,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리피강과 해펀리 다리가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다이닝룸이 나온다. 나무 테이블, 편안한 분위기,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클래식한 식당이다. 메뉴로는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가족 농장인 우디드 피그에서 만든 살라미가 포함된 샤퀴트리 플레이트 등이 있다.
winding-stair.com

리아스: 리아스는 아일랜드어로 ‘회색’을 뜻하지만, 블랙록 지역에 위치한 이 14석짜리 레스토랑은 결코 회색처럼 평범하지 않다. 더블린 도심에서 기차나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15분 거리에 있으며, 계절에 따라 바뀌는 섬세한 테이스팅 메뉴로 미쉐린 2스타를 획득했다. 가을에는 비둘기 고기에 라즈베리잼과 트럼펫 버섯을 곁들인 특별한 요리를 내놓는다.
liathrestaurant.com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6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글. 폴로 콘힐레PÓL Ó CONGHAILE
사진. 피언 매캔FIONN MCC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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