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최대의 도시인 토론토는 오랜 시간 다채로운 음식 문화로 번성해왔다. 그리고 최근 개성 있는 셰프들의 새로운 등장으로 먼 이국의 식재료와 조리법이 또 하나의 푸드 신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다른 나라에서 온 이 주민들입니다. 그만큼 각기 다른 음식이 여기저기에서 모여들었으니 미식가에게는 성지나 다름없죠.” 켄싱턴 마켓Kensington Market에 자리한 작은 카페에서 미식 투어 가이드인 윌리엄 조던William Jordan이 티베트식 버터 커피를 홀짝이면서 이야기한다.
길을 나서자 로티roti 전문점에서 풍겨 나오는 향신료를 듬뿍 넣은 진한 커리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문득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으면 혼란만 야기할 뿐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차이나타운 끝자락에 위치한 이 마켓은 온갖 노점상과 빼곡한 벽화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불과 몇 블록 안에 전 세계의 음식이 집결해 있다.
과거 켄싱턴 마켓은 카리브해를 넘어온 이민자들이 양질의 고기 패티를 구하거나 어마어마하게 매운 스콜피온 페퍼scorpion pepper를 얻기 위해 찾은 곳이었다. 오늘날에는 이민자 1세대의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식당마다 그들의 레시피를 가미한 퓨전 음식이 미식가의 이목을 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여정을 시작해야 할까? 나는 토론토의 다소 복잡한 음식의 지형 속에서 길을 헤매지 않도록 미식 투어를 예약해두었다. 찹스틱스 앤 포크스Chopsticks & Forks 소속인 윌리엄이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앞장선다. 첫 번째 목적지는 샤와르마shawarma 전문점인 리프 도너Leaf Doner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식당 바로 옆에는 치즈 전문점이 자리하고 건너편에는 마늘로 속을 채운 소시지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정육점이 보인다.
마주 앉은 윌리엄이 메이플 시럽을 잔뜩 바른 케밥을 바삭한 타코 사이에 끼워 넣은 음식을 나에게 건넨다. 이론상 튀르키예, 캐나다, 멕시코가 아무렇게나 뒤섞인 이 음식이 맛있을까 싶지만 입에 넣는 순간 충격에 빠진다. 생각보다 훨씬 풍부한 맛에 나는 손가락에 묻은 끈적거리는 육즙까지 남김없이 핥아낸다.
수도권에 약 560만 명이 거주하는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토론토는 오랜 세월 미식의 도시로 인정받아왔다. 때문에 2022년 캐나다 최초로 미쉐린 가이드가 진출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토론토에서는 약 180개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토론토의 단점이자 장점이 바로 다문화죠. 서로 다른 음식들이 독특하고도 훌륭한 방식으로 조화를 이뤄나가는 모습이 놀랍답니다.” 윌리엄이 설명한다. 우리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마니아층이 탄탄한 자메이카-이탈리아 퓨전 레스토랑인 라스타 파스타Rasta Pasta 앞을 걷다가 어느 순간 캐나다 출신 래퍼인 드레이크가 뮤직 비디오를 촬영한 중국 레스토랑 뉴 호 킹New Ho King 앞을 지나친다.
그러다가 입구에 걸린 붉은색 등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일본식 카페 타코야키식스Takoyaki6ix에 들러 바삭한 치킨카츠를 폭신한 바오번bao bun으로 감싼 간식을 먹어본다. 유럽에서 일본으로 전해지며 색다른 식감을 갖게 된 치킨카츠와 중국 북부에서 기원한 바오번으로 만든 이 음식은 여러 가지 문화가 조화를 이룬 또 다른 예시다.

우리가 앉은 야외 테이블 너머로 사탕수수즙을 플라스틱 비커에 담아 판매하는 샛노란 인테리어의 카리브해식 바가 엿보인다. “토론토에는 규모가 꽤 큰 자메이카 공동체가 있어요. 래스터패리교 특유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인데 날마다 활기가 넘치더군요.” 윌리엄이 덧붙인다. 그리고 1960년대 말, 히피들이 모여들었던 일부 구역은 지금도 자유분방한 정신이 남아 있는데 향초와 타이다이 의류 등을 판매하는 상점에서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레스토랑이 얼마나 다양한지 미식 투어를 수차례 진행하는 동안 같은 곳을 두 번 이상 가본 적이 없어요.” 코이 재팬Koi Japan에서 마지막 음식을 씹어 삼키며 윌리엄이 감탄한다. 구멍가게 크기의 스시 레스토랑인 코이 재팬은 멕시코식 과카몰리를 밥으로 감싼 다음 식용 금박을 위에 살포시 얹어 내곤 한다.
그날 오후, 토론토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19km 떨어진 교외에 위치한 스카보로Scarborough에서 켄싱턴 마켓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문화 교류를 경험하게 되었다. 맬번 어반 팜Malvern Urban Farm은 자그마치 8093m² 규모의 텃밭으로 한때 길게 늘어선 송전탑 아래에 버려진 황무지였다고 한다.
농업 교사이자 자칭 ‘지구 헬퍼’로 활동하는, 흑인과 아니시나베Anishinaabe 선주민 혼혈인 아이삭 크로스비Isaac Crosby가 텃밭을 안내해준다. 아이삭은 이 비영리단체에 합류한 후 고압선 아래의 밭을 일구며 사람들에게 식민지화 이후로 사라졌던 토착 농작물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가을과 겨울에 추수하는 아이삭의 아프리카 겸 선주민식 농법은 주변의 여타 텃밭들과 다른 흐름을 고수한다. 삼나무, 향모, 화이트 세이지, 담배 등으로 행하는 의식이 상당히 기묘하고 신비롭게 다가온다.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맬번 어반 팜에서 추구하는 가치다. 농부들은 각자의 고유한 재배 방식으로 텃밭을 가꾸고 이들의 지식은 텃밭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이곳의 농부들은 트리니다드, 파키스탄, 인도, 남아메리카 등 전 세계에서 왔어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배우기 위해 날마다 교류합니다.” 아이삭이 몸을 굽히더니 하얀색 딸기를 따서 나에게 건넨다. 한 입 베어 무니 입안 가득 바닐라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바로 저기에서 이웃 농부가 흙더미를 만드느라 고군분투하길래 품앗이를 했어요. 흙더미가 있어야 무거운 점토 안에서도 작물들이 잘 자라거든요.” 아이삭이 손수 키워낸 하얀 옥수수 줄기 뒤로 보이는 작은 텃밭을 가리키며 말한다. “콩과 호박도 바로 저 흙더미에서 자랄 거예요.” 세 자매Three Sisters라 불리는 이 고대 농작법은 서로 다른 작물을 가깝게 심음으로써 해충을 교란시켜 작물이 입는 피해를 줄여준다.
몇 년 동안 땅을 일궈온 아이삭은 드디어 그 결과물을 수확하는 시기에 이르렀다. “올해 처음으로 농작물을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제가 수확한 옥수수, 양파, 그린빈, 콩으로 북아메리카 동쪽 해안 선주민의 음식인 수코타시succotash를 만들수 있어요.” 그가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마지막 만찬을 앞두고 다시 토론토 시내로 돌아가본다. 현재 도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레스토랑이 라는 미스 리클모어스Miss Likklemore’s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공동 경영자인 로니 머독Lonie Murdock을 기다린다. 과거에 웰니스 트레이너로 활동하다가 배우 윌스미스의 개인 요리사로 고용된 로니는 영화 촬영장을 벗어날 때면 티크 원목 가구와 라탄 실링팬으로 꾸며진 자신의 세련된 레스토랑을 지킨다. 마치 토론토 한복판에 동남아시아의 어느 섬이 우뚝 솟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머니가 자메이카인이거든요. 그래서 레스토랑 음식에 제 뿌리를 접목했어요.” 로니가 퓨전 카리브해 요리를 내놓으며 운을 뗀다. 온 가족이 좋아했던 할머니의 저크 치킨에 동남아식 레시피를 가미한 음식이 레스토랑에 울리는 레게 음악과 생소한 조화를 이룬다. 완벽하게 훈연한 저크 치킨 위에는 정향, 계피, 육두구 등으로 제조한 올스파이스와 스카치 보닛 고추로 조리한 매콤하고 진한 소스가 듬뿍 발라져 있다. 양념 재료는 모두 인근 켄싱턴 마켓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오후 손님으로 북적이는 레스토랑을 둘러보고 있자니 미스 리클모어스의 퓨전 카리브해 요리가 토론토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음이 느껴진다. “제 성공은 모두 다른 이민자들 덕분이에요. 중앙 아메리카 섬에서 이주해온 뒤 토론토의 리틀 자메이카Little Jamaica 같은 구역을 형성하며 작은 식당을 차리고 또 그걸 물려받은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개척자들입니다. 저는 그저 경계선을 살짝 넓힌 것뿐이에요.” 이렇게 강조하는 그녀의 어깨 뒤로 초상화 속 할머니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 마치 재창조된
자신의 저크 치킨을 맛있게 먹는 손님들을 인자하게 내려다보는 것처럼.
여행 방법: 인천공항에서 토론토공항까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에어캐나다가 직항편을 운행하며 최소 13시간 소요된다.
토론토의 퀸 웨스트에 있는 더 드레이크 호텔의 더블룸이 1박에 약 33만원부터다. thedrake.ca
더 많은 정보: destinationontario.com

다채로운 간식
피밀 베이컨
훈연 돼지고기 등심에 옥수수 가루를 입힌 피밀 베이컨peameal bacon은 일반 베이컨보다 기름기가 적고 육즙이 풍부하다. 토론토의 카루셀 베이커리Carousel Bakery에서 전설적인 샌드위치를 맛보자.
버터 타르트
작고 바삭한 페이스트리 안에 버터와 올리고당, 흑설탕, 달걀을 섞어 만든 진득한 크림이 듬뿍 들어 있다.
스시 피자
토론토에서 탄생했다고 알려진 이 음식은 구운 밥에 연어, 아보카도, 스파이시 마요네즈를 올리고 간장과 생강을 곁들여 준다.
비버테일
비버테일beaver tail은 밀가루 반죽 튀김에 계피 설탕을 뿌리고 레몬, 메이플 시럽, 초콜릿소스 같은 토핑을 올린 도넛이다.
메이플 시럽
세인트 로렌스 마켓St. Lawrence Market에 가면 수제 쿠키부터 허브티까지 메이플 시럽이 들어간 다양한 음식을 만나볼 수 있다.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9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