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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IONEER
마농 플뢰리의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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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

파리의 미쉐린 레스토랑 다틸을 이끄는
셰프 마농 플뢰리는
생산자와의 긴밀한 협업과 여성 셰프 중심의 주방 운영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다틸의 리크와 키위 요리.

마농 플뢰리Manon Fleury는 셰프로서의 태도를 펜싱에 비유한다. “보통 사람들은 미식을 경쟁 세계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다틸Datil을 열기 전, 플뢰리는 프랑스 국가대표 펜싱 선수로 활동했다. 혹독한 훈련과 아드레날린, 성공 뒤에 따라오는 깊은 만족감은 펜싱과 요리 두 영역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중에서도 팀워크다. “다틸 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서로 돕고 배려하며 존중하 는 마음이에요. 스포츠에서도 볼 수 있는 그런 가치 말이 죠. 여기에 미식업계에서 요구하는 한계를 넘어선 도전 정신이 더해져야 합니다.”
2023년 레스토랑 개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플뢰리의 가장 큰 과제는 건강한 작업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주방은 전통적으로 위계질서를 따르지만, 다틸에는 여성으로 구성된 다섯 명의 공동 셰프가 있으며, 플뢰리와 로렌 바르주Laurène Barjhoux가 주방의 총지휘자 역할을 한다. 그들이 목표한 것은 직급 중심의 전통적인 피라미드형 구조 대신 수평적인 주방 문화였다. “직원들이 기분 좋게 출근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어요. 사실 많은 레스토랑에서는 그게 어렵거든요.” 플뢰리가 덧붙여 요식업계에는 여전히 스트레스와 성공에 대한 부담이 따라오지만 실수에 대한 망신과 폭력도 만연하다고 지적한다.

마농 플뢰리는 위계질서가 덜 엄격한 주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재료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지 못한다면,
우리가 만드는 미식은
본질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플뢰리는 2021년, 레스토랑 주방에 서의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단체인 본디레Bondir.e를 공동 설립했다. 그녀가 다틸의 주방을 거의 여성으로 구성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이 업계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여성은 많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감을 잃고 이 업계에 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포기하는 경우도 많죠.”
플뢰리는 브르고뉴에서 부모님, 두 오빠와 함께 자랐고, 과수원을 운영하던 할머니와 여름을 보내며 처음으로 미식을 접했다. “나무 아래 방수포에 펼쳐 놓은 잘 익은 과일 냄새가 아직도 기억나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쯤 사과, 서양 배, 모과 비슷한 마르멜로, 자두 그리고 블랙베리가 풍성하게 열렸고, 함께 먹을 견과류도 널렸었죠.” 그녀가 덧붙인다.
페랑디 파리Ferrandi Paris 요리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녀는 종종 커리어와 개인 생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여성이 환영받는 직업은 아니지만, 집에서는 누구나 하는 일이에요.” 그녀가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뢰리는 누아르무티에Noirmoutiers에 있는 라마린느La Marine 레스토랑의 셰프 레산드르 쿠이옹Alexandre Couillon 주방 팀에 합류했고 이어서 파리에 있는 셰프 파스칼 바르보Pascal Barbot의 라스트랑스l’Astrance에서 일했다.


“여전히 야망 있는 여성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아요.
하지만 누군가는 문을
열어야 하죠.”


그 후 뉴욕으로 건너가 스톤 반즈Stone Barns에 위치한 댄 바버Dan Barber의 팜투테이블 레스토랑 블루힐Blue Hill에서 일했다. 그러나 그녀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파리로 돌아와 르메르모즈Le Mermoz에서 셰프로 일하던 스물일곱살 무렵이었다. 비평가와 음식 전문가들은 플뢰리를 차세대 스타 셰프로 지목했고, 이곳에서 그녀는 채소를 요리의 주인공으로 앞세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다.
플뢰리의 부모는 늘 시장에서 제철 식품을 고르고 유기농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도 다틸의 메뉴 곳곳에 깃들어 있다. 프랑스 전역의 독립 농장에서 공수한 신선한 재료들은 레스토랑의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농부와 어부, 축산 농장주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다틸에서 사용하는 감귤류는 오시타니Occitanie에서 4대째 농업생태학 방식을 실천하는 농부에게서 공급받는다. 플뢰리가 함께 일하는 채소 생산자 중에는 일드프랑스Île-de-France에서 빗물로 작물을 재배하는 이도 있다.

다틸의 주방팀.

해산물은 주로 페이드라루아르Pays de la Loire 지역의 어부에게서 들여오는데, 그는 통발을 설치해 게, 랍스터, 새우 등을 친환경적으로 잡는다. 이런 협력 관계가 다틸 운영의 핵심이다. “재료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지 못한다면, 저희가 만드는 미식은 본질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식자재야말로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원재료이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신뢰 관계는 요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니까요.” 플뢰리가 강조한다.
다틸은 플뢰리의 경험과 기억을 한데 모은 공간이다. 레스토랑의 이름도 그녀가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타르트의 주재료였던 자두 품종에서 따왔다. 그리고 메뉴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요리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레몬을 반으로 갈라 아티초크를 섞은 레몬 소르베를 넣은 재치 있는 디저트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마들렌이 대표적이다. 플뢰리는 손님들이 집에서 식사하듯 편안하게 손으로 집어 먹거나 스푼으로 맛보기를 희망한다.
지난겨울, 주방팀은 사르트Sarthe 지방에서 120일간 키운 암탉 영계 요리를 선보였다. 기름진 닭고기와 쌉싸름한 엔다이브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도록 고민을 거듭한 결과이다. 프랑스산 땅콩, 사과, 레몬소스를 겹겹이 올리고 윤기가 흐르도록 구워 완성했다.
플뢰리와 주방팀은 음식 준비 전 과정에서 친환경적인 접근 방식을 지키려 노력한다. “저희가 하는 일에는 의미가 있어야 해요. 그저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더 많은 기여를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비난받을 수 있는 미식업계의 엘리트 집단에 속해 있다고 생각해요.” 플뢰리가 말을 이어간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저희가 해야 하는 역할이 있어요.”
2024년 3월 다틸이 미쉐린 스타를 받은 직후 거의 여성 셰프로만 구성된 레스토랑의 주방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남성 차별이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2024년에 여성을 중심으로 한 주방팀이 그렇게 논란의 대상이 될줄 몰랐어요.” 그녀는 자신의 레스토랑에는 사실 남성 셰프도 몇 명 있다고 말한다. “이 업계는 여전히 남성이 주도하기 때문에 여성 중심의 주방을 운영하는 것은 발전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결단이었어요.” 그녀는 더 많은 여성이 미식업계에 진출하고, 미쉐린 레스토랑에 선정될 뿐 아니라, 자신의 레스토랑을 이끌고 야망을 펼치기를 바란다. “지금도 여전히 야망 있는 여성들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아요. 하지만 누군가는 문을 열어야 하죠.”

마들렌과 속을 채운 자두로 구성된 미냐르디즈.

시그너처 요리

미냐르디즈
미냐르디즈mignardises는 다틸에서 식사를 마무리하는 작은 한입 크기의 페이스트리 디저트다. 레스토랑 이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각 디저트에는 다틸 자두가 각기 다른 형태로 들어간다. 지난겨울에는 말린 자두로 만든 마들렌에 사과 콩포트를 채워 선보였다. 아몬드와 자두 씨를 활용한 ‘인퓨전’ 미냐르디즈는 다틸 오픈 이후 꾸준히 사랑받는 고정 메뉴가 됐다.

아뮤즈부슈
다틸의 아뮤즈부슈amuse-bouch에는 일본식 달걀찜에서 영감을 받은 육수와 바삭한 채소 튀김이 항상 포함된다. 튀김은 렌틸콩, 옥수수, 호박, 양배추 등 제철 채소를 가루 내어 밀가루 대신 사용해 만든다. 이 작은 애피타이저들은 프랑스 도예가 주디트 래스리가 특별히 제작한 그릇에 담겨 더욱 돋보인다.

라이스 스튜
항상 바뀌는 레스토랑 메뉴에서 라이스 스튜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기 요리다. 쌀과 다양한 곡물, 제철 채소를 함께 넣어 천천히 익혀서 만든다. “겨울에는 버섯이, 봄에는 완두콩이 들어갈 수 있어요.” 플뢰리가 말한다. 2024년 봄에는 라이스 스튜에 에손지방의 유기농 농장에서 재배한 홍당무를 넣었고 딸기와 알록달록한 식용 꽃으로 장식해 계절감을 살렸다.

글. 키라 알레산드리니KYRA ALESSANDRINI
사진. 폴린 구아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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