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WHERE THE HEART IS
루마니아의 식탁에 담긴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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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

트란실바니아산맥 곳곳에 자리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문을 활짝 열어 여행자를 맞이하며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레시피로 정성스러운 요리를 선보인다. 신선한 농산물과 정원에서 직접 기른 허브, 손수 만든 치즈와 와인으로 풍요롭게 차려낸 식탁이 기다린다.

(왼쪽부터) 라비니아 슈스터가 비오 모슈나 농가형 숙소의 정원으로 향한다. 비오 모슈나에 가면 체리를 곁들인 팬케이크와 수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

“자, 더 드세요. 조금밖에 못 드셨잖아요.”
마릴레나가 말하며 내 접시에 루마니아식 양배추 롤인 사르말레sarmale를 몇 개 더 푸짐하게 담아준다.

나는 이미 사르말레를 세 개나 먹은 상태였다. 그 전에는 닭고기 수프 두 그릇을 비웠고, 코스 사이사이에는 그녀가 건네준 달콤하면서 새콤한 커스터드 타르트 리치우lichiu를 또 몇 개나 집어 먹었다. 그새를 못 참고 마릴레나의 남편 알렉산드루가 직접 만든 자두 브랜디 퍼링커pălincă를 넉 잔째 따라준다. 그는 “저는 술을 잘 안 마셔요”라는 농담과 함께 자신의 잔을 단숨에 비운다. 잔을 부딪친 뒤 나는 다시 포크를 들어 사르말레를 집었다. 이제는 ‘부니커bunică(루마니아어로 할머니를 의미한다)’라고 부르게 된 마릴레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 오후, 루마니아 중부 아폴드Apold 마을에 있는 마릴레나의 정원은 분주하다. 꿀을 채취하는 벌들과 돌아다니는 염소들 사이로 포도, 체리, 자두가 열리고, 허브와 채소들이 가지런히 자라난다. 알렉산드루를 따라 정원을 지나 지하실로 내려가니 50L 용량의 통에서 발효 중인 양배추가 보인다. 그 옆에는 절인 채소와 유리병에 담긴 잼, 직접 담근 퍼링커 술통, 그리고 두 개의 와인통이 놓여 있다. 모두 정원에서 난 재료로 만든 것들이다. 마릴레나는 직접 재배하거나 기른 동물에서 얻은 재료로만 요리한다. 그녀의 할머니도 이런 방식으로 생활하며 103세까지 장수했기에 이러한 방식이 가장 옳다고 믿는다.
나는 오래전부터 루마니아에 와보고 싶었다. 특히 이 지역의 독특한 요리가 늘 궁금했다. 루마니아 미식의 심장은 단연 이 나라 중심부에 있는 트란실바니아Transylvania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부모와 조부모에게서 요리를 배워요.” 미국 요식업계의 권위 있는 상인 제임스 비어드상 요리책 부문 수상자이자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큰 도움을 준 이리나 게오르게스쿠Irina Georgescu가 말한다. “그래서 모든 레시피는 지극히 개인적이죠. 예를 들어 제가 음식을 만들 때 조리법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엄마는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야. 할머니는 이렇게 안 하셨어’라고 할 거예요. 엄마와 할머니가 틀릴 리 없잖아요?”
다음 목적지는 차를 타고 남쪽으로 두 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도시 브라쇼브Braşov다. 이동하는 동안 길 위에서 마주마주한 풍경은 목가적인 그림책의 한 페이지 같다. 산비탈에서는 양 떼들이 풀을 뜯고, 그러는 사이 양치기 개들은 길가에 앉아 한숨을 돌린다. 창밖으로 생우유와 치즈, 잼 등을 파는 노점들이 지나쳐 간다.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마을이 나타나는데, 잘 보존된 작센족 집과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화된 석조 교회가 인상적이다.

(왼쪽부터) 마트카 호텔에 있는 스투프 레스토랑에서 내놓는 스타터 플래터. 브라쇼브 구시가지에 있는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

부체지산맥Bucegi mountains을 지나 잠시 들른 곳은 마트카Matca Hotel 호텔 안에 새로 문을 연 스투프Stup 레스토랑이다. 전망이 아름다운 테라스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지만 셰프 졸트 데아크Zsolt Deak가 장엄한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네오-루마니아식 음식도 꼭 맛봐야 한다. 나는 몇 가지 메뉴를 골라 음식에 담긴 숲의 풍미에 집중한다. 버섯으로 속을 채운 롤라드roulade에 마늘을 넣은 버섯 퓌레가 곁들여졌다. 모두 호텔 부지에서 채취한 버섯으로, 셰프는 접시 위에 ‘땅’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목표는 성공했다. 고기처럼 촉촉하면서 동시에 견과류 같은 고소한 맛을 내는 버섯은 숲의 향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저녁 무렵 브라쇼브에 도착하니 도시 곳곳의 파스텔 색조 건물들이 석양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빛난다. 브라쇼브는 흔히 드라큘라의 성으로 알려진 브란성으로 가는 관문이다. 신비로운 전설에 이끌려 공포영화 팬들과 역사광들이 이 도시로 몰려든다. 하지만 브라쇼브의 레스토랑들은 훨씬 더 실감 나는 도시의 유산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필박스Pilvax 레스토랑은 전직 수의사였던 에메셰 가보르가 운영하는 곳으로, 오리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양한 부위를 사용한다. 전채 요리로 훈제 오리 가슴살, 오리 간으로 만든 무스, 트란실바니아식 리코타 치즈인 우르더urdă를 비롯한 치즈가 포함된 샤퀴트리 보드를 내어준다. 오리 가슴살은 강한 훈연 향 덕분에 고기 본연의 풍미가 더 짙어진다. 그다음으로는 오리 뼈로 국물을 낸 수프에 세몰리나 가루로 빚은 만두를 넣어 제공하고, 센 불에 빠르게 익혀 겉이 바삭한 오리 넓적다리 구이에 레드 커런트 소스와 콜리플라워 퓌레가 곁들여 나온다. 이러한 새콤달콤한 조합은 브라쇼브 지역 요리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왼쪽부터) 아폴드 마을에 있는 알렉산드루 버치쇼르의 집. 브라쇼브의 필박스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는 오리 간으로 만든 무스가 곁들여진 사퀴트리 보드.

디저트로는 수제 페투치네 면을 얇게 뽑아 만든 바르가 벨레스vargabéles가 나온다. 에메셰는 면을 겹겹이 쌓은 뒤 치즈 커드(우유를 응고시킨 생치즈), 건포도, 달걀을 섞은 반죽을 덮어 구워낸다. 잼을 함께 곁들이는데 의외로 가볍고, 지나치게 달지 않으며, 따뜻하면서도 포근하다. “집에서는 늘 이런 음식을 해 먹죠.” 에메셰가 말한다. 비슷한 조언을 이리나도 했었다. “레스토랑 음식만 맛본다면 트란실바니아 요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요.”
그 말을 곱씹으며 하르만Hărman 마을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코리나 보즈간Corina Bozgan은 트란실바니아 전역에서 벌어지는 ‘가스트로 로컬Gastro Local’ 운동에 동참하고 있었다. 개념은 단순하다. 마을 사람들이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정원과 농장에서 얻은 재료로 전통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다. 목표는 루마니아 농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시골의 음식 문화 유산을 지켜내는 데 있다. “우리 가족이 먹는 음식을 그대로 내놓는 거예요. 어머니, 할머니, 이모에게서 배운 오래된 레시피로요.” 그녀는 자신의 공간을 ‘호프 하르만Hof Hărman’(하르만 마을의 농가라는 뜻)이라 이름 붙였다.
코리나의 친구 이오아나 게르겔Ioana Gherghel은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트란실바니아 지역 레시피를 토대로 ‘농장에서 식탁까지’ 이어지는 음식을 만든다. 모든 식재료는 그들의 정원과 하르만 마을의 생산자에게서 가져온다. 식사는 신선한 엘더플라워 주스 한 잔과 차갑게 식힌 타트체리(신양벚나무 열매) 수프로 시작된다. 수프는 체리를 통째로 넣고 퓌레나 다져서도 넣어 다양한 식감을 느낄 수 있는데, 여기에 육두구, 정향, 계피, 주니퍼베리까지 더해져 마치 여름용 뱅쇼 같다. 은은한 단맛과 선명한 산미가 입안에서 축제처럼 펼쳐진다.
이어서 작센식 미트로프 드로브drob가 나오고, 라즈베리잼을 얹은 달콤한 롤 빵 콜라트스켄kolatschen과 머랭을 얹은 상큼한 루바브rhubarb 케이크가 차례대로 나오면서 식사가 마무리된다.

(왼쪽부터) 부체지산맥에 있는 마트카 호텔. 페르마 카츠안 농장의 주인 조르제 카츠안.

가는 길에 먹을 요량으로 콜라트스켄 몇 개를 포장해 로트바브Rotbav 마을로 향한다. 그곳에서 6대째 페르마 카츠안Ferma Cățean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 조르제 카츠안George Cățean 을 만난다. 그의 가족은 1691년부터 양을 키워왔고 지금도 형제들과 함께 전통 방식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루 약 600마리의 양에서 젖을 짜고 산 길을 따라 양 떼를 몰며 치즈를 만든다. 이런 전통 방식 덕분에 농장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찰스 3세 국왕이 다녀가기도 했다. 조르제는 이 농장의 치즈가 특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1m²당 70여 종의 식물이 자라요. 그 맛이 우유에 담기죠.” 조르제가 숙성 기간이 다른 치즈들을 맛보게 해준다. 1년 숙성 치즈, 8개월 숙성 치즈, 그리고 오늘 아침에 갓 만든 치즈까지. 치즈의 종류 또한 신선한 치즈와 훈제 치즈, 나무껍질에 싸서 숙성하는 ‘치즈의 여왕’ 브란자 인 코아저 데 브라드brânză în coajă de brad까지 다양하다. 갓 만든 치즈에서는 풀 향과 오이 같은 신선한 맛이 나고, ‘여왕 치즈’는 카망베르 같은 질감에 은은한 솔잎 향이 느껴진다.
그에게 가업을 잇는 기분이 어떤지 묻자 조르제는 이렇게 대답한다. “농부란 단순한 직업이 아니에요.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고, 식량 안보와 경제를 지탱하며, 교사이자 공동체의 살림을 책임지는 존재죠. 예전에는 농부가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세대의 농부들을 지원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북서쪽으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모슈나Moșna에서는 또 다른 가족의 환대가 기다리고 있다. 바이오 모슈나Bio Moșna 농장에서 라비니아 슈스터와 아들 조엘이 여행자를 부엌과 숙소로 초대해 전통 작센식 요리를 선보인다. 비니아와 조엘은 사람들에게서 잊힌 허브와 금잔화, 팬지 꽃을 직접 길러 다채로운 옛 풍미를 재현한다. 라비니아는 수제 샤퀴트리와 치즈를 담은 접시를 내놓는다. 아침에 짠 우유로 만들었다는 버터도 있었는데 야생화 향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이어서 라비니아는 150년 된 작센 요리책에서 발견한 조리법에서 영감받은 미트로프를 선보인다. 돼지고기와 소고기에 크림치즈와 양파를 섞고 해바라기씨, 튀긴 세이지, 스펙speck(염장 돼지고기)을 얹은 요리다. 샹테렐chanterelle 버섯 파스타와 구운 채소 그레이비소스가 곁들여진다. 이런 푸짐한 요리를 라비니아는 매주 만들고 있다. 육즙 가득한 고기는 그레이비소스가 필요 없을 정도로 촉촉했고, 해바라기씨와 튀긴 세이지는 바삭한 식감과 허브 향, 흙 내음을 더했다. 무엇보다 돋보인 건 디저트다. 체리와 금잔화 꽃을 올린 양귀비씨 팬케이크 에 생우유로 만든 산뜻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함께 나온다.

(왼쪽부터) 호프 하르만의 공동 소유주 코리나 보즈간이 정원에서 허브를 딴다. 호프 하르만 농가형 숙소에서 내놓는 전통 과자 콜라트스켄.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차로 달리는 사이 이 땅의 거칠고 웅장한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만다. 연무가 낀 카르파티아산맥Carpathian Mountain을 따라 능선을 오르내리다 보면 완벽하게 보존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비스크리Viscri 마을과 비에르탄Biertan 마을, 시기쇼아라Sighişoara 시를 지나게 된다. 수백 년 된 파스텔 색조의 농가, 요새화된 석조 교회와 성채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작센족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다. 마을을 벗어나면 포장되어 있던 도로는 흙길로 바뀌고, 숲속에서는 갈색 곰이 지나간다. 이 땅은 누구라도 발걸음을 떼지 못할 매혹적인 풍경이다.
이 여정은 시비우Sibiu 시에 있는 플라이 레스토랑Plai restaurant에서 절정을 맞는다. 페트라 히아누Petra Hianu 셰프와 동업자 폴 모이네아Paul Moinea는 소박한 재료로 선조의 요리를 되살린다. “옛것 없이는 새로움도 없다”라고 말하는 폴은 이탈리아와 몰타에서 5성급 리조트 셰프로 경력을 쌓았고, 페트라는 오슬로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마에모Maaemo와 프라하에 있는 라 데구스타치온La Degustation 레스토랑에서 실력을 닦았다.
“트란실바니아 요리는 소박하면서도 맛이 풍부합니다”라고 폴이 말한다. 첫 번째로 바삭하게 튀긴 송어 껍질에 유럽산 러비지 허브 오일과 딜 꽃으로 만든 타르타르소스가 함께 나온다. 강렬한 꽃향기와 신맛에 화들짝 놀란다. 다음으로 부드러운 훈제 송어와 아삭한 당근 피클, 말린 토마토 껍질을 갈아 위에 올린 메밀 크래커가 나온다. “우리는 쓸 수 있는 모든 것은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라고 페트라가 덧붙인다.
이들의 철학은 ‘제로 웨이스트’를 넘어 미각을 통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 네 번째 요리에서 그 감각이 나를 휘감았다. 훈연 건초와 셀러리 뿌리, 절인 러비지 허브가 함께 나온 요리의 향기가 퍼지자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미국 미시간주 북부 농장의 건초 더미, 모닥불, 할아버지가 손질하던 그릴의 풍경이 되살아난다.
멋진 교향악 같은 식사는 일종의 의식 같은 ‘빵 나누기’로 이어진다. 레스토랑의 손님들은 빵 한 조각을 뜯어 나눈 뒤 소금에 찍어 먹는다. “루마니아에서는 집에 손님이 오면 가족과 함께 빵을 나누어 먹곤 해요.” 폴이 말한다. 오늘의 빵은 페트라가 만든 브리오슈로 버터 대신 헝가리의 망갈리차 품종 돼지 지방으로 구웠다. 이어서 송어 요리와 사흘 동안 조리한 삼겹살, ‘지방 풀’이라 불리는 돌나물이 나온다. 디저트로는 페트라가 양봉장에서 갓 꺼낸 벌집에 꽃가루와 밀크칩을 얹어 내어준다. “우유와 꿀은 모두가 좋아하잖아요. 처음 만들었을 때는 며칠 동안 매일 먹었어요.”
호텔로 돌아오는 길, 저녁식사의 여운이 오래 계속 남아있다. 그리고 문득 페트라와 폴이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가 떠올랐다. “트란실바니아는 우리의 영혼입니다. 우리의 심장이죠.” 폴의 말처럼 그들의 모든 요리에는 그들의 심장과 영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10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글. 톰 버슨TOM BURSON
사진. 미하일 오나카MIHAIL ON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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