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PHOTO ESSAY
작은 식당, 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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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

뉴욕시 남서쪽에 위치한 뉴저지주는 소박한 미국식 다이너 문화의 본고장이다. 미국 내 어떤 주보다도 많은, 600여 개 이상의 다이너가 이곳에 모여 있다. 1913년, 긴 여행길에 오른 사람들이 저렴하고 빠른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고정식 식당차 형태의 공간이 처음 등장한 이후, 다이너는 단순한 식당을 넘어 복고풍 인테리어 속에서 푸짐하고 따뜻한 가정식을 즐길 수 있는 문화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다이너는 24시간 영업을 하고, 한 가족이 대를 이어 운영해 왔다. 조리법은 물론 칼로리 높은 비법까지 함께 물려받았다. 이 글은 다이너의 상징인 카운터 뒤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이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왜 여전히 이곳에서 일하며, 이 공간을 사랑하는지 전한다.


화이트 마나 다이너, 저지시티
“저는 바닥을 쓸고 감자튀김을 만들면서 시작했죠.”
마리오 코스타는 불 붙이지 않은 시가 끝을 씹으며 잠시 회상에 잠긴다. 그는 1972년 고작 열여섯 살 고등학생 때 처음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고향인 포르투갈에서 미국으로 온 지 5년쯤 지났을 무렵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마리오는 이 다이너의 주인이 되었다. 지금은 길 건너편에서 복싱 체육관과 바도 함께 운영 중이다. UFO처럼 둥근 외관이 특징인 화이트 마나 다이너는 1946년부터 저지시티 외곽의 1번 국도 옆을 지켜왔다. 다이너의 중앙 원형 카운터는 이곳의 상징과도 같다. 사실 이 건물은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에 ‘미래형 식당’으로 전시됐던 곳. 좁은 공간에서도 요리사가 조리대, 튀김기, 철판 사이를 오가며 효율적으로 요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다른 다이너들이 보통 오래된 기차의 객차를 개조해 주방이 좁은 편인데 그런 점에서 이곳은 다르다. 지금도 여전히 오래된 철판에서 간판 메뉴인 버거를 만들어낸다. 패티를 구운 뒤 다진 양파를 올리고 번의 윗부분과 함께 잠시 두면 빵이 양파즙을 머금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다시 철판에서 데운 뒤 스위스 치즈와 피클을 올린다. “이런 스타일을 슬라이더라고 부르는 거예요.” 마리오가 손에 든 시가를 흔들며 환하게 웃는다. “이게 바로 전설의 다이너죠.”


벤딕스 다이너, 해즈브룩 하이츠
벤딕스 다이너 안에서 존 디아카키스가 숨 쉴 틈 없이 정확하고 빠르게 움직인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능숙하다. “아직까지 손님에게 뜨거운 커피를 쏟아본 적은 없어요.” 56세의 존이 웃으며 말한다 “그렇지만 숙취 탓에 정말 아슬아슬했던 일요일 아침은 있었죠.”
존의 가족은 1980년대 중반 뉴저지 저지시티에서 북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고속도로 교차로 옆에 있는 이 다이너를 인수했다.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스테인리스 외관은 전형적인 다이너의 모습이다. 그 후로 그는 닳고 닳은 부스와 바 스툴 사이를 쉼 없이 오가며 수많은 손님을 맞았다. 정비공, 트럭 운전사, 영화 촬영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다녀갔다. 참고로, 우피 골드버그가 주연한 영화 <보이스 온 더 사이드>에 등장하기도 했다.
요즘은 그의 세 아들이 시간이 날 때마다 가게 일을 돕는다. 특히 장남 토니는 경제학자로 일하지만 손님이 몰리는 주말이면 앞치마를 두르고 철판 앞에 선다. 커피를 리필하거나 주문을 받을 때가 아니면 존은 두 손 가득 커다란 접시를 들고 빠르게 움직인다. 인기 메뉴는 셰프 스페셜 샌드위치. 두툼하게 썬 칠면조 고기와 바삭한 베이컨이 층층이 쌓인 3단 샌드위치로, 피클과 아삭한 콜슬로를 곁들여 준다.


콜로니얼 다이너, 린드허스트
은빛 크롬과 네온사인으로 장식된 콜로니얼 다이너는 낮이나 밤이나 늘 반짝인다. “아버지는 항상 제가 이 다이너를 사랑하게 만들어주셨어요.” 지미 그레마니스가 말한다. 그의 가족은 1980년대 중반부터 이 다이너를 소유하고 있다. 아버지 거스는 어린 지미를 늘 이 다이너로 데려와 일을 시켰다. “10대 때 가장 하고 싶었던 게 철판에서 요리하는 거였고, 지금도 철판 앞에 서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콜로니얼 다이너는 폭신한 팬케이크와 와플로 유명하다. 팬케이크와 와플 위에는 신선한 딸기를 듬뿍 얹고 바삭한 베이컨 조각을 왕관처럼 올린다. 이런 아침 메뉴들은 루벤 샌드위치 같은 고전 메뉴와 나란히 인기다. 루벤 샌드위치는 구운 호밀빵 사이에 파스트라미(훈제 소고기)와 새콤한 사우어크라우트(독일식 양배추 절임), 녹인 치즈를 넣어 만든다. “아이들 네 명 모두 다이너의 운영에는 관심이 있지만 요리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요.” 지미가 언젠가 앞치마를 벗게 되면 새 철판 요리사를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미스 아메리카 다이너, 저지시티
1969년, 열세 살이던 토니 마게티스는 아테네에서 SS 크리스토포로 콜롬보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했다. 이 배는 1973년까지 지중해에서 캐나다와 미국으로 이민자들을 실어 나르던 대형 여객선이다. 그는 깊게 한숨을 쉬며 말한다. “제가 처음 본 미국은 뉴욕의 스카이라인이었는데 정말 장관이었어요. 당시 쌍둥이 빌딩은 겨우 반쯤 올라간 상태였죠.”
약 50년 동안 다이너 몇 군데를 거친 토니는 그의 두 아들 조지, 존과 함께 저지시티 웨스트사이드 애비뉴에 있는 미스 아메리카 다이너를 인수했다. 1942년에 시작한 이 다이너는 원래 전차를 개조한 공간에서 영업을 했으나 노후화로 건물이 무너져 1958년에 비슷한 외관의 새 건물로 옮겨 왔다. 초창기에는 첫 주인의 이름을 따 ‘조 체리코 다이너’로 불렀지만, 독일 이민자였던 다음 주인장이 미국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미스 아메리카’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오늘날 이곳은 전직 시장부터 매일 아침 반려견을 데리고 아침을 먹으러 오는 단골까지 다양한 손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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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마크 패런 테일러MARK PARREN TAYLOR
사진. 마크 패런 테일러MARK PARREN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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