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TASTE THE FLAVORS OF NEW MEXICO
다채로움이 깃든 뉴멕시코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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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호

미국 남서부 뉴멕시코주. 고지대 사막 평원에서 히스패닉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가꾼 포도밭은 특별한 와인의 풍미를 빚어낸다.

리오그란데 밸리는 뉴멕시코에서 가장 번창한 와인 산지 중 하나다.

북쪽의 상그레데크리스토산맥Sangre de Cristo Mountains과 남쪽의 치우아우안 사막Chihuahuan Desert 사이에 자리한 뉴멕시코는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주다. 이곳은 굽이치는 모래언덕, 선사시대 암각화, 동화 같은 동굴과 잠든 화산의 땅이다. 지형만큼이나 문화도 다채롭다. 수 세기 동안 원주민, 히스패닉, 앵글로아메리칸이 공존하며 남긴 흔적이 곳곳에 서려 있는데, 여행자는 그 흔적을 가장 먼저 음식에서 체감하게 된다. 강렬한 그린 칠리 스튜와 부풀어 오른 프라이브레드frybread에 시선을 빼앗기는 사이, 간과하기 쉬운 존재가 있다. 바로 와인이다.
사람들이 캘리포니아에 첫 포도나무를 심기 전 뉴멕시코에는 이미 포도밭이 있었다. 1629년 프란치스코회 수도승 두 명이 앨버커키 남쪽 아메리카 원주민 마을에 최초의 포도밭을 조성했고 1880년에는 면적 12km², 연간 343만L의 와인 생산량을 기록하며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와인 생산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연이은 대홍수와 캘리포니아 와인의 부상으로 한 세기 가까이 주춤했다. 1970년대 들어 다시 등장한 와이너리들은 2000년대에 연간 378만L에 달하는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다. 그 후로도 와인 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했지만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지도는 낮았다. 이는 뉴멕시코 56개 와이너리 중 극소수만 해외에 수출하기 때문이었다. 와이너리의 85%는 연간 7000박스 미만을 생산하는 소규모 사업체다. 이는 곧 와인을 맛보기 위해 직접 뉴멕시코를 찾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곳의 생산자들은 방문객을 직접 맞이하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 와인잔을 사이에 두고 격식 없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업장이 아닌 누군가의 가정집에 초대받은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험준하고 거친 환경에서 일하는 만큼 생산자들 사이의 공동체 정신도 견고하다.
현재 와이너리의 대부분은 앨버커키와 택사스 경계선 사이, 미들 리오 그란데 밸리Middle Rio Grande Valley와 밈브레스 밸리Mimbres Valley에 몰려 있다. 따뜻한 낮과 서늘한 밤은 산지오베제와 몬테풀치아노 같은 이탈리아 품종의 포도 재배에 이상적이다. 뉴멕시코의 주도인 앨버커키로 가면 이 지역의 HAINES와인을 쉽게 경험해볼 수 있다. 올드 타운 플라자Old Town Plaza에는 테이스팅룸이 밀집해 있고, 도심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는 풍경 좋은 와이너리들이 자리한다.
가장 이색적인 와인 생산지는 타오스Taos 마을 북쪽의 고지대 포도밭이다. 해발 2000m에서 메를로와 리슬링 포도를 재배하는 이들의 모험심이 엿보인다. 1450년대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아온 타오스는 오늘날 산악 스포츠 애호가들과 영적 웰니스를 추구하는 수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이곳은 뉴멕시코에서 묵직하고 복합적인 와인을 즐기기에 최적의 생산지다. 앨버커키에서 출발해 타오스로 오는 길에는 선사시대의 벽돌 가옥과 원주민들이 거주했던 마을, 수백 년 동안 포도를 재배한 옛 히스패닉 거주지를 지나게 된다. 사막에서 산으로 오르는 동안 기온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높은 고도의 와이너리들이 직면하는 서리 피해, 짧은 재배 기간, 우박 같은 장애물이 저절로 떠오른다.
“뉴멕시코는 여러 문화가 공존하듯, 와인도 다채롭습니다.” 지역의 와인을 홍보하고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단체 뉴멕시코 와인New Mexico Wine의 크리스 고블렛Chris Goblet 대표가 말한다. 2024년도 조사에 의하면 뉴멕시코 인구의 49.78%가 히스패닉계로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비율의 히스패닉 인구가 거주하는 중이다. 여행자들은 히스패닉뿐 아니라 여성, 아메리카 원주민이 만든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상그레데크리스토산맥에는 라스 누에베 니냐스 와이너리Las Nueve Niñas Winery가 위치한다. 이곳의 투박한 테이스팅룸에서는 와인과 함께 천천히 구워낸 스페인식 돼지고기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한편 엘버커키에 두 곳, 산타페에 한 곳 자리한 바라 와이너리Vara Winery의 현대적인 테이스팅룸에서는 와인을 마시는 동안 플라멩코 공연이 펼쳐진다. 딕슨Dixon에 있는 비박 와이너리Vivác Winery에서는 바랑코스블랑코스Barrancos Blancos 산의 뾰족한 산봉우리를 바라보면서 그래미 어워드 수상자인 아메리카 원주민 음악가 로버트 미라발Robert Mirabal과 협업한 와인을 맛볼 수 있다. 부드러운 질감에 풍부한 과실 향이 잔에 가득하다.

(왼쪽부터) 뉴멕시코 전역에서 다양한 품종의 포도가 재배된다. 엘버커키의 올드 타운 플라자에서는 여러 와인 테이스트룸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뉴멕시코의 와인 생산자들

초크체리 와인의 달인
샘 아라곤Sam Aragon, 라스 누에베 니냐스 와이너리

4세대에 걸친 히스패닉과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의 와인 생산자이자
모라Mora에 위치한 라스 누에베 니냐스 와이너리 공동 소유주.

뉴멕시코의 와인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습니다.
제 스페인 선조는 1600년대 이 땅에 도착했고 그 후로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아왔죠. 100년 전부터는 재배하던 과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가장 흔한 과일 중 하나가 초크체리chokecherry입니다. 로키산맥 전역에 자라는 이 열매는 원주민들의 채집과 음식 문화의 일부였어요. 제 할아버지는 1950년대부터 본인이 마실 용도로 초크체리 와인을 만드셨어요.

초크체리 와인은 ‘카우보이의 술’로 불립니다.
제가 자란 지역은 옛 서부의 풍습이 짙게 남아 있는 카우보이들의 땅이에요. 레드 리버Red River에 가면 여전히 양옆으로 반회전문이 달린 바가 남아 있어요. 방금 방목장에서 나온 듯한 노인들이 그곳에 모이죠. 모두 수십 년 동안 저희 가족과 알고 지낸 분들이에요. 그중 제가 ‘카우보이 로이Cowboy Roy’라고 부르는 레이Ray라는 분은 항상 “너가 초크체리 와인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아무도 하지 않기 때문이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분의 말이 맞아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는 여전히 와인을 만들고 있어요. 그러면서 다른 사람도 이 작업에 동참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쌉싸름한 맛의 초크체리는 높은 해발고도에서 자라는 붉은색 열매예요.
초크체리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높고, 드라이한 편이며, 몹시 부드럽게 넘어가죠. 제가 와인 제조를 직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했을 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와인 만드는 방식을 살펴봤어요. 그들의 와인은 도수가 22%로 높고 당도도 높은 편이었죠. 그 정도 도수는 편하게 마실 수준이 아니에요. 제가 아버지와 함께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와인은 마실 때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 산미를 조정하고 도수를 낮추면서 지금은 15% 정도의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뉴멕시코 북부는 사람들이 살거나 농사를 짓기 좋은 곳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거친 자연과 끊임없이 싸워야 해요. 하지만 땅과 역사가 있기 때문에 해발고도 약 2200m에 달하는 곳에 작물을 키우기로 했죠. 많은 포도 농부들이 “거기서는 라즈베리 외에는 기르기 어려울 거예요”라고 말렸지만, 저는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구에 포도가 5000종이 넘게 있으니 계속 시도해보려고요. 저는 와인을 만들면서 이 업계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겨요. 뉴멕시코의 농사지을 수 있는 모든 땅에 지속 가능한 방식을 개발하는 것. 이게 제 동력이자 열정입니다.

세계는 환경뿐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측면도 변하고 있어요.
어려운 시기죠. 하지만 이것은 공동체를 형성할 기회이기도 하죠. 저희는 지난 수천 년 동안 그래왔듯이 뉴멕시코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즐거운 마음으로 실험해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일과 삶, 둘 다 즐거워야 하니까요.

라스 누에베 니냐스 와이너리는 시골 마을 모라의 고지대에 위치한다.

나바호족의 선구자
라이언 가르시아Ryan Garcia, 산타 안나 푸에블로

그루엣 와이너리Gruet Winery에 납품하는
포도를 재배하는 11만3000m² 면적의 포도밭인 산타 안나 푸에블로의 농업 디렉터.
그는 나바호 네이션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역사적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은 권리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우리는 수 세대에 걸친 집단 학살을 겪었죠. 그래서 이 땅을 경작하는 일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작은 가족 농장에서 자란 게 아닌, 그저 평범한 보호구역 출신 아이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가졌던 이 땅을 되찾을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될 거예요. 그리고 토지를 잘 가꾼다면 땅이 우리를 돌봐줄 것임을 알고 있죠.

땅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는 것은 힘을 얻는 것과 같아요.
포도밭에서 일하는 것은 원주민들에게는 좋은 기회이죠. 이들은 땅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경작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가지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저희 목표는 이 마을에 우리 소유의 와이너리를 만들고, 직접 기른 포도로 저희만의 라벨을 붙인 와인을 생산하는 거예요.

농부들이 포도를 재배한다고 다 부자가 될 수는 없어요.
맞아요, 그저 좋아하는 일이니 하는 거죠. 가진 것이 많지 않았던 우리에게는 생존이 가장 중요했어요. 그래서 농사를 지을 때 생계를 책임져주는 토지를 잘 돌보고자 노력합니다. 포도를 기를 때는 필요한 것 이상을 취하지 않고 다시 되돌려줘요. 비가 내리거나 농사철이 다가오면 기도를 올리죠. 우리는 농작물을 신성한 존재처럼 대해요. 땅에서 난 것들은 당신이나 저처럼 살아있는 존재죠. 결국 그것들이 우리를 돌봐주기 때문에 반드시 존중해야 합니다.

수확철에 포도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든 농부.
뉴멕시코에서는 초크체리 열매로 와인을 만든다.

히스패닉 여성 지도자
릴리아나 파드베르그Liliana Padberg, 비박 와이너리

해발고도 1900m,
뉴멕시코주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비박 와이너리의 공동 경영자 릴리아나는 멕시코 아구아스칼리엔테스 출신이다.

뉴멕시코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산지입니다.
풍부한 역사와 문화가 와인에 녹아 있죠. 고지대 사막 기후와 극심한 기온차가 만드는 독특한 환경은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기 제격입니다. 뉴멕시코 와인은 매우 실험적이기도 해요. 와이너리마다 다양한 포도 품종이 있으며, 바코 누와baco noir 같이 추운 날씨에서도 잘 자라는 독특한 계량 품종도 재배합니다.

이곳의 와인 산업은 상징성이 있고 다양합니다.
뉴멕시코는 백인과 히스패닉, 그리고 원주민 문화가 공존하는 세 개의 문화가 모두 와인 산업에 녹아든 것을 알 수 있어요. 당연히 히스패닉이 소유하거나 이끌거나 와인 생산에 참여하는 와이너리도 있죠. 뉴멕시코에서 처음으로 포도를 심고 와인을 만든 이들이 스페인에서 건너온 신부들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의 히스패닉 유산을 일에 접목시키는 데 큰 지지와 도움을 받았습니다.
테이스팅룸에서 여러 라틴 문화 행사는 물론, 싱코 데 마요Cinco de Mayo(멕시코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와 죽은 자의 날Dia de los Muertos 같은 날을 축하합니다. 행사를 통해 저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유산을 지키는 데 주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느낍니다. 테이스팅룸은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환대하며 고객들도 그런 분위기를 자연스레 느끼죠. 또한 와인 산업에 여성 종사자가 더 많아진 것도 흥미로워요.

(왼쪽부터) 비박은 뉴멕시코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와이너리다. 비박 와이너리의 공동 경영자 릴리아나 파드베르그.

 

글. 안나 해인스ANNA HAINES
사진. 게티, 알라미, 뉴멕시코 트루, 릴리아나 패드버그, 미셸 패드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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