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HEAR THE NEW SOUNDS OF NASHVILLE
내슈빌의 새로운 소리, 들을 준비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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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호

미국 컨트리음악의 수도 내슈빌에서는 이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해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홍키통크 바의 그늘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자신만의 음악을 펼치고 있다. 이 음악의 도시에서 여성 래퍼들이 전혀 다른 노래를 부른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그랜드 올 오프리 음악 공연장 입구.
뷰캐넌 아츠 디스트릭트 지구에 있는 힙합 분위기의 슬림 앤 허스키스 피자 레스토랑과 래퍼 다이샤 맥브라이드.
세컨드 애비뉴 거리에 있는 네온 간판.
클리어 워터스 스튜디오에서 미아 레오나가 녹음을 하고 있다.

이른 저녁, 전형적인 컨트리음악이 내슈빌의 공기 중에 떠다닌다.
가까운 곳에 홍키통크 바의 입구가 보인다.

낡은 가게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미국 서부 스타일로 맞춰 입은 네 명의 밴드 뮤지션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인조 보석으로 장식한 무대의상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고, 보통 두 사람이 함께 빙글빙글 돌거나 앞으로 나아가며 스텝을 밟는 투스텝 댄스용 컨트리음악이 연주되고 있다. 아직 라인댄스가 시작되기에는 이른 시간. 나는 우선 내슈빌의 대표적인 로어 브로드웨이 거리, 일명 홍키통크 하이웨이를 걷기로 한다. 카우보이와 컨트리음악을 상징하는 스테트슨 모자를 쓴 사람들이 술잔을 들어올리고, 거대한 기타 모양의 네온사인이 번쩍거린다. 테네시주의 수도인 내슈빌의 이 북적이는 거리는 언뜻 보면 슬픈 이별 노래만 반복해서 나오는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음악의 또 다른 흐름, 특히 랩 장르에서 활약하는 여성 아티스트들을 만나볼 예정이다. 그들은 내슈빌 음악에 다양한 색을 더하고 있다.
내슈빌은 1800년대부터 미국 음악산업의 중심지였다. 이름난 작곡가와 저작권 관리 회사, 녹음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었다. ‘뮤직 시티’라는 별명도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 시작은 흑인 합창단 피스크 주빌리 싱어스Fisk Jubilee Singers였다. 이 합창단이 1873년 세계 순회공연 중 영국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노래를 들은 여왕이 “분명 음악의 도시에서 온 분들이네요”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그 한마디가 내슈빌의 정체성을 정의한 셈이다.
이후 내슈빌을 세계적으로 알린 건 단연 컨트리 음악이다. 1925년 시작된 라이브 쇼 그랜드 올 오프리Grand Ole Opry에서 밴조, 바이올린, 스틸 기타가 중심이 된 컨트리음악이 사랑받으면서 내슈빌은 컨트리음악의 본고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지금도 매년 약 1700만 명이 그 소리를 찾아 이곳에 온다.
다음 날은 이 도시를 두드리고 있는 다른 북을 찾기 위해 미국 랩 신의 떠오르는 스타, 다이샤 맥브라이드Daisha McBride를 만났다. 스물여덟 살의 그녀는 내슈빌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싶다며 북부 버캐넌 예술 지구에 있는 단골 가게 ‘슬림 앤 허스키즈’ 피자집을 만남의 장소로 정했다. 야구모자를 쓰고 비즈 팔찌를 찬 다이샤가 편안하게 웃으며 가게로 들어선다.
얇게 구운 ‘갓 파이브 온 잇Got 5 on it’ 마르게리타 피자를 나눠 먹으며 그녀는 이 공간의 음악적 DNA를 이야기한다. 갓 파이브 온 잇은 1990년대에 활동한 미국의 힙합 듀오 루니즈의 히트곡이다. “이곳은 힙합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틀어주는 음악도 그렇고, 피자 이름도 모두 랩에서 나왔죠.” 다이샤가 말한다. “여긴 흑인음악을 증폭시키는 곳이에요.” 마침 벽에 걸린 화면에서 슬림 앤 허스키즈가 후원한 그녀의 공연 영상이 나오고 있다.
다이샤의 음악적 언어는 테네시의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스모키마운틴산맥 근처, 푸르른 애팔래치아 산기슭의 녹스빌에서 태어났고, 열 살 무렵부터 주변 자연과 삶에서 영감을 받아 노랫말을 썼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그곳은 전설적인 가수 돌리 파튼이 자란 지역이기도 하다.

컴벌랜드강을 따라 내슈빌의 도심이 펼쳐진다.
(왼쪽부터) 힙합이 주제인 피자 가게 슬림 앤 허스키즈의 브랜드 배지. 내슈빌의 대표적인 음악 명소 조니 캐시 박물관.

“내슈빌은 천천히 변하고 있어요.“있어요.
이 도시에선 여전히 컨트리음악이 중심이지만,
요즘엔 곳곳에서 다른 장르의 음악이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다이샤가 말한다. “저는 테네시 동부에서 자라면서 포크, 컨트리, 록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반면에 서쪽 멤피스에서는 블루스, 재즈, 트랩이 중심이죠. 트랩은 묵직한 베이스가 특징인 남부 스타일 힙합이에요.”
성인이 된 다이샤는 내슈빌로 이사했다. 이곳은 기독교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은 미국 남부 ‘바이블 벨트’의 중심부로 ‘바이블 벨트의 버클’이라 불린다. 기독교 음악 산업이 번창하고, 다양한 음악적 영향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테네시의 매력은 바로 그 다양성이에요. 서로 다른 장르들이 섞이며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죠.”
다음으로 보헤미안 분위기가 물씬 나는 내슈빌 동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뮤직 시티 빈티지Music City Vintage’에서 빈티지 쇼핑을 한다. 마치 거대한 보물 창고 같은 이 가게는 캐나다 출신 래퍼 드레이크도 즐겨 찾는 곳으로, 내부 곳곳에 개성 넘치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진열대에는 구하기 힘든 도시 스타일의 스트리트 웨어가 가득 걸려 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1990년대 스타일 티셔츠, 특히 카레이싱 선수 스타일의 로고와 패치가 눈길을 끄는 나스카 빈티지 재킷이 인기가 많다. 다이샤에 따르면 전통적인 내슈빌 음악업계의 문지기들이 주는 기회를 기다리다 지친 음악인들이 비전통적인 음악운동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초대받지 못한다면, 내 자리는 내가 직접 만들어야죠.” 다이샤가 야구선수들이 입는 촉감이 부드럽고 광택이 나는 상의를 쭉 훑어보며 말한다. 다이샤는 전설적인 가수이자 배우인 퀸 라티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고, 그녀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8만 명이 넘는다. ‘버즈’라는 싱글 앨범은 다운로드 100만 회를 돌파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어떤 음반사와도 계약하지 않았다. “제가 직접 내슈빌의 공연장에 찾아가서 공연을 제안하고 사람들에게 SNS로 알려요.”
우리는 한정판 운동화가 진열된 벽 앞에 멈춰 선다. 그중에는 수십만 원에 팔리는 희귀한 운동화도 있다.
“요즘엔 다양한 음악을 포용하며 아주 성공적으로 운용되는 공간들이 있어요.” 다이샤는 내슈빌에 있는 엑시트 인Exit/In, 아크메 피드 앤 시드Acme Feed & Seed, 더 베이스먼트The Basement, 더 베이스먼트 이스트The Basement East 같은 공연장을 예로 든다. “그리고 홍키통크 바는 보통 여러 층으로 되어 있어요. 1층에서는 라이브 밴드가 컨트리 곡을 리메이크해서 연주하고, 위층에서는 디제이가 힙합과 팝 음악을 틀곤 해요.”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바로 근처에 있는 독립 바이닐 레코드숍 그라이미즈 뉴 앤 프릴로브드 뮤직이라는 곳이다. 한때 교회였던 건물이 지금은 바이닐 애호가들의 성지가 되었다. 1999년부터 꾸준히 신예 음악가들을 지원해온 그라이미즈에서 공동체적인 온기가 느껴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다이샤가 “모든 사람들이 그라이미즈를 아끼고 존중해요”라고 애정을 담아 말한다. 그러고는 곧장 얼터너티브 음악 코너로 가서 매기 로즈와 알라나 로얄레처럼 창작곡을 만드는 현지 음악가의 앨범을 꺼내 든다. 그라이미즈는 고군분투하는 음악가들을 독려할 목적으로 종종 상점 외벽에 걸기 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인의 초상화를 발주한다. 나무로 된 통로에는 블루스 음악의 개척자 로버트 존슨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유럽의 포크 음악 그룹 등 다양하고 많은 레코드판들이 놓여 있다.
그라이미즈 입구 위로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대형 무지개가 펄럭이고, 가게 뒤편엔 작은 야외 공연장이 있다. 로우파이 감성의 무료 공연이 열릴 때마다 음악 애호가들이 모여든다. “제게는 세 개의 정체성이 있어요. 여성이고, 흑인이고, 퀴어죠. 그래서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공간, 환영받는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몰라요.”

컨트리음악 아티스트 나탈리 헴비가 매진된 공연을 가득 채운 관객 앞에서 연주한다
교회였던 건물에 바이닐 레코드 전문 가게 그라이미즈가 들어서 아주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내슈빌에서는 그라이미즈 같은 음반 가게를 열렬히 지지한다. 해마다 4월에 독립 음반 가게들을 기념하는 날에 맞춰 발매되는 한정판 바이닐 레코드를 사려는 사람들이 밤새 줄을 서기도 한다. 내슈빌에서는 이 행사가 마을 축제로 확장되어 바이닐 레코드 현장 제작, 푸드트럭, 수많은 라이브 공연 등이 펼쳐진다. 이에 보답하듯 그라이미즈는 다이샤 같은 지역 아티스트를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그녀의 최신 앨범이 매장 입구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진열되어 있다.
다이샤는 지금까지 발표한 곡 목록에 새로운 곡을 추가하고 싶어 한다. 그녀가 새로운 곡을 들려주겠다며 메트로 센터 지역에 있는 다이아몬드 사운드 스튜디오로 나를 데려간다. 여기서 다이샤는 프로듀서 사이-파이와 함께 신곡을 녹음하고 있다. 녹음 중간 중간에 다이샤가 잠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미국 아프리카계 음악 국립박물관(NMAAM)에 대해 말해준다. 그녀에 따르면 2021년에 NMAAM이 문을 열면서 내슈빌의 풍부한 흑인음악 유산을 다시 한번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저는 그 박물관이 브로드웨이 한가운데, 특히 라이먼 오디토리엄 공연장 바로 길 건너편에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라이먼 오디토리엄은 엘비스 프레슬리, 조니 캐시, 돌리 파튼,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이 공연했던 역사적인 공연장이다. “NMAAM이 그런 음악적 중심부에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예요. 흑인음악이야말로 ‘뮤직 시티’ 내슈빌의 일부라는 걸 보여주니까요.”

내슈빌 컨트리뮤직 명예의 전당 겸 박물관에는 벽면 가득 골드 및 플래티넘 컨트리 음반을 전시해두었다

소리와 함께하는 여정
도심으로 돌아와 NMAAM 전시관을 찾았다. 방문객 경험을 담당하는 로멜로 스미스가 안내를 맡았는데, 그는 세련된 안경과 잘 다듬은 수염에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 귀고리를 착용하고서 400년에 걸친 알앤비, 힙합, 가스펠, 재즈, 블루스 음악의 역사를 설명한다. “이분이 바로 데포드 베일리입니다. 1927년에 그랜드 올 오프리에서 공연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티스트로 알려진 분이죠. 당시에는 흑인 아티스트의 공연이 금기였기 때문에 그는 인종의 장벽을 허문 상징이 되었어요.” 우리는 미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기타 연주자이자 가수인 비비 킹이 ‘루실’이라고 이름을 붙인 기타를 보고, 어떤 방에서는 가상 현실 가스펠 합창단의 일원이 되어 고음을 내보기도 한다.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를 잊으면 안 되죠!” 로멜로가 말한다. “군 복무를 마친 후 그는 곧바로 내슈빌의 옛 인쇄업 구역인 프린터스 앨리로 와서 음악적 기초를 다졌어요.” 1940년대가 되면서 내슈빌의 이 지역은 술집과 나이트클럽이 가득한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오늘날 내슈빌에는 앨리슨 러셀 같은 인재도 있어요. 그녀는 흑인 사회의 정의를 노래하는 포크송 가수로, 지금 이 도시에서 가장 뛰어난 아티스트 중 한 명이죠.” 우리의 투어는 NMAAM의 힙합 갤러리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역시 다이샤가 추천해준 아크메 피드 앤 시드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나는 바에 앉아 내슈빌 특유의 매운맛 프라이드치킨을 먹으며 음악 공연 무대의 불빛이 반짝이는 가운데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무대를 휘어잡는 인디 록 밴드의 공연을 감상한다. 이렇게 하루가 또 저문다.
다음 날 나는 앙코르 공연을 보러 클리어 워터스 스튜디오Clear Waters Studio로 간다. 이 스튜디오는 내슈빌 출신으로 스위트 포이즌Sweet Poison이나 밈 젠킨스Mim Jenkins 같은 여성 래퍼와 아티스트들의 녹음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오늘은 그중 한 명인 힙합 아티스트 미아 레오나Mia Leona를 만나 그녀가 신곡을 녹음하는 걸 지켜본다. 그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유산이 깊숙이 자리한 제퍼슨 스트리트 지역에서 자랐다는데, 잠시 쉬는 시간에 내슈빌에서 받은 음악적 영감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여기서 자랐기 때문에 컨트리음악을 안 들을 수가 없어요.” 미아가 낡고 고전적인 체스터필드 소파에 앉으며 말한다. “그 뒤로 여러 장르를 시도해봤어요. 예를 들면 컨트리 비트에 랩을 얹는 식이죠.”
그녀 뒤로는 조명 빛을 받는 음향 믹싱 장비가 있고 스피커와 전깃줄 더미가 스파게티 접시처럼 쌓여 있다. 내슈빌의 음악적 장벽을 허무는 건 미아만이 아니다. “비욘세의 <카우보이 포티에이트 카터Cowboy 48 Carter> 앨범이 사람들의 생각을 열어준 것 같아요. 그 앨범이 나왔을 때 유색인종들이 전통적인 복장을 갖춰 입고 참석하는 테마 파티가 많았죠. 챕스 가죽 다리 보호대나 카우보이 모자나 뭐 그런 것들 말이에요.” 그녀가 웃으며 그 시절을 회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공간에 있는 여성들은 여전히 개척자다. 미아는 “힙합은 아직도 남성 중심이에요”라고 말한다. “테네시 출신으로 성공한 힙합 아티스트는 영 벅이나 요 고티처럼 대부분이 남성이죠.” 물론 음악업계에 여성도 많지만 주로 아티스트 홍보나 투어 매니저처럼 대부분 무대 뒤에서 일을 한다. “하지만 점점 달라지고 있어요. 항상 컨트리음악이 더 주목받지만, 도시 곳곳에서 점점 다른 장르를 알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요. 이제는 한밤중에 록 공연을 보고 나서 힙합 아티스트의 무대를 찾는 게 흔해졌어요.”
잠시 후 미아가 다시 마이크 앞으로 돌아가고 나는 로어 브로드웨이의 경치 좋은 길을 따라 돌아간다. 맥주를 한 잔 마시며 듣다 보면 왠지 울컥해지는 컨트리음악이 흘러나오는 홍키통크 바가 줄지어 서 있다. 이번에는 데이샤의 조언대로 홍키통크를 지나쳐 계단을 올라가 숨겨진 공간으로 간다. 그곳에 내슈빌의 대안 음악 장르들이 울려 퍼진다. 뮤직 시티의 미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슈빌 사람들이 좋아하는 마틴스 바비큐 조인트는 도심을 포함해 세 군데 지점이 있다.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11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글. 조이 고토ZOEY GOTO
사진. 게티, 다이애나 킹, 알라미, 킷 우드 포토, AWL이미지스, 마틴스 바비큐 조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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