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사막의 이 자유분방한 도시에서는 1년 내내 축제가 열린다. 뜨거운 햇살 아래 풀사이드 파티와 빈티지 마켓 그리고 화려한 드래그쇼가 일상의 일부다. 미국에서 성소수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로 꼽히는 이곳은 최근에 문을 연 드래그 퀸 모텔 덕분에 그 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곳에서 신나게 48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소개한다.
“팜스프링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찔하게 높은 15cm 하이힐을 신은 로즈메리 갈로르Rosemary Galore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제가 게이 디즈니랜드라고 부르기도 하는 곳이에요!”
첫째 날. 아침 드래그 브런치
일요일 아침, 캘리포니아의 사막 도시 팜스프링스Palm Springs에서 눈을 떴다. 거친 산재신토산맥San Jacinto Mountains 위로 해가 느리게 솟아오르고, 사구아로Saguaro 호텔 창밖으로는 야자수가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린다. 도로는 한산하지만 로비는 조금 전부터 술렁이기 시작했다. 드래그 퀸 로즈메리Rosemary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팬들은 그녀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선다.
나는 공연을 앞두고 있는 피에스 드래그 브런치PS Drag Brunch 사장인 로즈메리를 만나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입고 있는 의상은 로스앤젤레스의 한 의상실에서 3주 동안 제작한 작품으로, 반짝이는 스팽글과 붉은 망토가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영감의 원천은 팜스프링스가 ‘할리우드의 놀이터’라고 불리던 시절, 반짝이는 수영장 주변에 앉아 마티니 잔을 기울이던 리버라치Liberace와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할리우드의 황금기로 불리던 1920년대와 1960년대 사이, 영화 제작사들은 배우들을 엄격하게 관리했고 세트장에서 두 시간 거리 이상 벗어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이런 이유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진 팜스프링스는 유명 인사들이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서 벗어나 휴식을 즐기던 완벽한 피난처가 되었다. 그때부터 이 도시는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 되어왔다.
“팜스프링스에서 일어난 일은 팜스프링스에 남겨두는 거예요.” 로즈메리가 단호하게 말한다. 복싱용품으로 꾸미기를 즐겼던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키는 그녀의 화려한 챔피언 벨트가 조명을 받아 반짝인다. “게이 셀러브리티들이 안식처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죠. 록스타 록 허드슨도 그중 한 명이었어요. 그는 팜스프링스에 살았는데, 아주 짧은 반바지를 입고 정원 잔디에 물을 주면서 관광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했다는군요.”
지금의 팜스프링스는 여전히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는 55세 이상 주민 절반이 성소수자라고 하며, 드래그 문화는 도시의 일상에 녹아들었다. “일주일 내내 다양한 공연이 열려요. 처녀파티 하러 온 친구들이나 생일파티,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 단위 관객까지 모두 찾아오죠.” 로즈메리가 자랑스럽게 덧붙인다.
1970년대 리조트를 새 단장한 무지갯빛 외관 덕분에 지금은 코첼라 밸리Coachella Valley에서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포스팅된 호텔인 사구아로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손님들은 미모사 칵테일을 들고 긴 무대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치킨 타코와 아보카도 토스트를 즐긴다. 이내 피에스 드래그 브런치의 공연자들이 보석 달린 무대의상과 아찔한 하이힐을 신고 추는 탭댄스, 관객과 함께하는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공연이 끝나고 로즈메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자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한다. “여긴 그냥 도시가 아니에요. 팜스프링스는 즐거움 그 자체죠.”
첫째 날. 오후 시내에서 미술과 빈티지 찾기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드래그 퀸들을 뒤로하고 나는 부티크 상점들이 즐비한 시내 중심으로 향했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빈티지 인테리어 숍 피에스 홈보이스PS Homeboys에서 호피 무늬 쿠션을 정리하고 있는 주인 나일스 코스만Niles Kosman을 만났다.
암스테르담 출신인 나일스는 그의 파트너와 함께 이곳에 놀러 왔다가 아예 눌러앉았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삶은 1년 내내 휴양지 리조트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해요.” 그가 말하자 작은 치와와 한 마리가 종종거리며 쇼룸 사이를 지나간다. 매장은 마치 1960년대 영화 세트장 같다. 입술 모양의 소파와 펄럭이는 매혹적인 실크 원피스, 마릴린 먼로 프린트 그림 등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마릴린 먼로는 팜스프링스를 즐겨 찾았던 또 다른 아이콘. 지금도 시내 한가운데에는 그녀를 형상화한 8m 높이의 거대한 동상이 서 있다.
골목을 몇 개 더 지나자 이번엔 바비 인형 수집가 컨벤션이 한창이었다.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디자이너 트레버 웨인Trevor Wayne이 자신의 이름을 본뜬 갤러리에서 작품들을 설치하느라 분주하다. 그는 수천 장의 포스트잇으로 만든 바비 초상화를 벽에 붙이는 중이었다.
“제 작품은 재미있고 익살스러워서 팜스프링스의 통통 튀는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그가 말하며 은박 헬륨 풍선으로 ‘Barbie’라는 단어를 완성한다. 풍선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반짝이는 빛이 갤러리 벽에 춤을 춘다. 트레버는 카운터에 기대어 모나리자 포즈를 취한 드래그 퀸의 그림을 다시 배열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본다.
전설적인 축제전설적인 축제
팜스프링스는 매년 9월,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여성 성소수자 행사인 클럽 스커츠 다이나 쇼어 위켄드Club Skirts Dinah Shore Weekend를 개최한다. ‘레즈비언 봄방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행사에는 케이티 페리와 레이디 가가 같은 가수들이 초대되며, 쉬지 않고 계속되는 풀파티를 즐기기 위해 1만5000여 명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첫째 날. 저녁 캘리포니아식 팜투테이블 식사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레스토랑을 실버타운에서 발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 팜스프링스에서는 언제나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난다. 제임스 비어드 상과 줄리아 차일드 상을 모두 수상한 셰프 수잔 페니거Susan Feniger와 메리 수 밀리켄Mary Sue Milliken은 은퇴한 성소수자들을 위한 고급 아파트 단지 리빙아웃Living Out 안에 새로운 레스토랑 앨리스 비Alice B를 열었다. 팜스프링스 사막 한가운데서 고급 팜투테이블을 선보이는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건 바에 앉아 있는 입주민들이다. 알록달록한 하와이안 셔츠 차림으로 이웃과 와인잔을 부딪히며 웃음꽃을 피운다. 벽면에는 미국인 화가이자 사회운동가였던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과 그녀의 인생 동반자였던 앨리스 비 토클라스Alice B Toklas의 초대형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두 사람의 사랑과 예술혼이 이 레스토랑의 이름이자 정신이다.
손님들은 20대부터 8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할 뿐 아니라 성소수자와 이성애자 모두 함께 어울린다. 셰프 수잔이 과즙 가득한 복숭아와 볶은 헤이즐넛 샐러드를 촛불 밝힌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한다. “이렇게 모두가 어우러져 한 공간을 공유하는 일이 흔치 않은데, 보는 이로 하여금 매우 힘을 얻게 됩니다.” 레즈비언인 수잔과 이성애자인 메리는 오랫동안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함께 일해왔다. 앨리스 비는 그들이 만들어낸 관계의 철학이 공간으로 확정된 결과물이다.
레스토랑은 마치 품위 있게 나이 드는 법을 보여주는 한 편의 가이드북 같다. 수잔이 미소 지으며 말한다. “이곳 입주민들 대부분이 매일 밤 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즐겨요. 직원들과 이름을 부르며 인사하고 옆 테이블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죠.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생활합니다.”
둘째 날. 늦은 아침 저평가된 생산자들
늦은 아침 나는 파커Parker 호텔의 테라스에서 매콤한 멕시칸식 아침식사 우에보스 란체로스huevos rancheros를 앞에 두고 하루를 시작한다. 이곳은 원래 캘리포니아에 생긴 첫 번째 홀리데이인이었지만, 지금은 5성급 부티크 호텔로 새롭게 태어났다. 디자이너 조나단 애들러Jonathan Adler가 특유의 재치로 공간 곳곳을 재해석해 레트로와 팝아트가 절묘하게 뒤섞인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정원 한편에는 7m 높이의 청동 바나나 조형물이 서 있어 이 도시의 유머 감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시내로 향하면 또 다른 활기가 여행자를 기다린다. 목적지는 모하비 플리 트레이딩 포스트Mojave Flea Trading Post, 다양한 로컬 브랜드와 장인들이 모이는 실내 마켓. 그곳에서 만난 크리스 화이트Chris White와 데이비드 막스David Marks는 팬데믹 기간에 햇살 가득한 이 도시로 이주했다. “이 도시에 와서 깨달았죠.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원주민 그리고 장애인 공동체가 만든 와인을 판매하는 곳이 거의 없다는 걸요.” 그래서 그들은 이런 생산자들을 위한 와인 숍 팜스프링스 보틀숍Palm Springs Bottle Shop을 열었다.
“이 와인 라벨들이 주요 판매상에서 저평가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열대를 구경하는 내게 크리스가 말한다. 모든 와인병에는 동그란 색깔 스티커를 붙여 와인 생산자의 특정 배경을 표시한다고 일러준다.
“이 와인을 만든 생산자가 누구인지, 또 손님들이 자신들의 돈이 어디로 가는지 알리는 게 목적입니다.” 카민스 투 드림스Camins 2 Dreams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 한 병을 꺼내면서 그가 말한다. “예를 들어 이 와인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여성 부부가 만들었는데 그중 한 명은 아메리카 원주민이에요.” 매장에서는 크리스털 수정이 섞인 영적 와인도 판매한다. “이 와인에서는 좋은 에너지가 나온답니다!”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11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