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움과 유연한 일정과 장대한 풍경. 길을 따라 달리면 차가 방향을 틀 때마다 새로운 모험이 약속된다. 여기에 시대를 대표하는 클래식 카가 주는 안락함이 더해지면 여행의 품격은 한껏 높아진다.
빈티지 자동차를 타고 영화 같은 도로를 따라 달리는 클래식 카 투어는 느림의 미학을 극대화한 럭셔리 여행의 정점이다.
탁 트인 도로를 달리는 즐거움. 차창 밖으로 가고자 했던 곳들이 흘러가고, 모든 일정은 온전히 내 손에 달려 있다. 마음가는 대로 어디에서든 멈출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이 여정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만약 이 여행에 빈티지 컨버터블 카를 고른다면, 다소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머리카락 사이로 스치는 바람’을 온몸으로 만끽하게 될 것이다.
영국의 트래블백 여행사와 트래블 투모로 같은 여행 트렌드 보고서는 올해도 ‘슬로 트래블’에 주목하고 있다. 슬로 트래블은 빠르게 여러 곳을 훑는 게 아니라, 하나의 경험을 깊이 있게 즐기는 여행 방식이다. 로드트립이야말로 이러한 철학을 가장 잘 구현하는 여행 방식이며, 클래식 카는 그 경험을 한층 더 각별하게 만들어준다.
부킹닷컴의 트렌드 보고서 ‘트래블 리인벤티드’에 따르면 고전적인 자동차나 오래된 이동 수단을 타고 느긋하게 떠나는 ‘빈티지 보야징’ 여행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획일적인 여행에서 벗어나 복고적 감성과 진정성 있는 경험을 찾는 것이다. 빈티지 푸조 자동차를 타고 프랑스의 시골길을 달리거나 구식 재규어 차를 타고 푸른 산과 깊은 호수, 고성이 어우러진 스코틀랜드 북부의 하일랜드를 누빈다. 또는 클래식 카를 타고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을 찾아가는 ‘세트 제팅’ 여행을 떠나 강렬한 향수와 감성을 마주할 수도 있다.
이탈리아 나폴리만에서 ‘라 돌체 비타(달콤한 인생)’를 온전히 느껴보거나 모로코의 아틀라스산맥을 가로지르고,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해안 도로를 따라 달리며 다음 모험을 꿈꾼다.
샹파뉴 지방을 슥 훑어보다
시닉 드라이브
파리 동쪽의 석회질 지대 언덕에서는 로마 시대부터 포도가 자랐다. 이 지역을 제대로 느끼려면 샴페인 길로 알려진 루트 투리스티크 뒤 샹파뉴Route Touristique du Champagne를 따라 느긋하게 운전하며 탐험하는 것이 좋다. 시골길을 촘촘히 잇는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동화 같은 마을과 명성이 자자한 와이너리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여정은 우아한 랭스Reims에서 시작한다. 박물관과 비스트로, 웅장한 고딕 양식 성당이 여행의 문을 열어준다. 세계 최고로 알려진 샴페인 명가, 즉 메종 드 샹파뉴 상당수가 랭스에 있는 고급 호텔 겸 레스토랑 레 크레에르Les Crayères 인근에 모여 있다. 뤼이나르, 테탕제, 피페르-헤이디젝 같은 샴페인 하우스를 예약해두고 샴페인 시음을 하거나 투어를 할 수 있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몽타뉴 드 랭스Montagne de Reims와 코트 데 블랑Côte des Blancs 와인 산지가 펼쳐진다. 샤르도네와 피노누아 품종의 포도밭이 줄지어 펼쳐진 언덕 사이로 르 메닐 쉬르 오제, 아비즈, 오제 같은 최상급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으로 알려진 그랑 크뤼 마을들이 등장한다.
샴페인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이 에페르네Épernay 시에서는 ‘아베뉘 드 샹파뉴’ 대로를 따라 웅장한 샴페인 하우스가 줄지어 서 있으며, 그중에서도 모엣 에 샹동의 셀러 투어는 규모와 명성 면에서 단연 압도적이다. 역사에 관심 있다면 오빌레르로 향해보자. 이곳은 스스로를 ‘샴페인의 요람’이라 부르는 마을이다. 18세기 초, 수도사 돔 페리뇽이 이곳 수도원에서 샴페인 제조 방식을 개척했다. 또 다른 선택지는 마른강 계곡이다. 강변에서 피크닉을 즐기거나 피노 뫼니에 포도밭 사이를 산책해도 좋다.
뾰족한 첨탑이 인상적인 아이샹파뉴Aÿ-Champagne 마을을 거점으로 삼으면 이동이 한결 수월하다.
어떤 차를 타고
세계적으로 스파클링와인의 고장을 달리는 여정에는 고급 컨버터블 카가 잘 어울린다. 재규어 F-타입이나 아우디 R8 스파이더가 제격이다. 좀 더 클래식한 차로는 시트로엥 2CV나 푸조 404도 좋다. 물결치듯 이어진 포도밭 옆에 차를 세우는 순간, 가장 프랑스다운 장면이 완성된다.
여행 방법
샴페인 하우스는 보통 2월부터 11월까지 문을 연다. 겨울에도 볼거리는 충분하지만, 특히 포도밭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수확이 시작되는 가을이 아름답다.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 등이 잘 되어 있어 운전은 어렵지 않다. 랭스는 칼레에서 차로 약 3시간 거리이며 렌터카 업체도 많다. ‘마이 빈티지 투어 컴퍼니’에서 예약을 하면 르노 에스타페트나 시트로엥 2CV 같은 클래식 카를 타고 하루 코스로 코트 데블랑 일대를 돌아볼 수 있다. myvintagetourcompany.com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와인 생산지로 알려진
오빌레르 마을 인근 돔 페리뇽 전망대에 오르면
이 지역의 매력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포도밭과 고요한 마을들,
저 멀리 샤르도네 포도 품종이
재배되는 코트 데 블랑 언덕의 능선,
그 사이를 마른강이 유유히 흐른다.
나폴리만에서 맛보는 달콤한 인생
시닉 드라이브
세계적인 장관으로 꼽히는 드라이브 코스다. 전쟁을 일삼던 로마 황제들조차 나폴리만의 매력에 빠져 이곳에 호화 별장을 지었을 정도다. 소렌토 반도를 한 바퀴 도는 여정 가운데서도 남쪽의 아말피 해안은 이 지역이 왜 여전히 특별한지를 단번에 증명한다. 거의 180도로 꺾이는 헤어핀 커브를 돌 때마다 레몬나무 과수원과 청록빛 바다, 파스텔 톤 왕궁을 개조한 특급 호텔이 펼쳐진다. 마치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촬영장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폴리에서 하루를 보내며 예술과 거친 도시의 매력을 느낀 뒤,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이나 폼페이Pompeii(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매몰된 로마 유적지)를 함께 둘러본다. 이후 해안으로 향한다. 반도 도로는 관리 상태가 좋지만 폭이 좁다. 남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SS163 도로는 곳곳에 멈춰 설 만한 장소가 많다. 포시타노Positano의 골목에는 레몬 향이 가득하고, 라벨로Ravello에는 압도적인 풍광으로 유명한 로셀리니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있다. 해변으로 유명한 아트라니Atrani와 도시 위로 웨딩케이크처럼 솟아 있는 아말피 대성당도 눈길을 끈다. 소렌토는 중간 기착지다. 여기서 배를 타고 이탈리아의 고급 휴양지로 유명한 카프리섬으로 갈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는 SS145 도로를 이용해 나폴리로 가도 좋다. 저 멀리 묵직하게 자리한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어떤 차를 타고
레트로 감성이 살아 있는 피아트 500은 스타일과 실용성을 모두 갖춘 선택이다. 나폴리의 좁은 골목부터 굽이치는 해안 도로까지, 이 지역의 모든 풍광에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여행 방법
혼잡을 피하고 싶다면 5월이나 초가을이 가장 좋다. 특히 한여름에는 이탈리아다운 축제가 이어진다. 마사루브렌세에서는 7월에 레몬 축제가, 라벨로에서는 8월에 일련의 클래식 공연을 하는 라벨로 페스티벌이 열린다. 1년 내내 햇살이 넉넉하게 내리쬐는 지역이라 겨울에도 로드트립을 할 수 있지만, 10월부터 부활절까지는 일부 현지 교통편이 운행을 중단하니 참고하자. 나폴리 시내와 공항에서 렌터카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북 어 클래식’ 렌트 서비스를 이용하면 시간이나 일 단위로 클래식 카를 빌릴 수 있다.
캘리포니아 서부 해안을 유람하다
시닉 드라이브
골든스테이트(캘리포니아)에는 평생 동안 돌아다녀도 다 보지 못할 만큼 다양한 풍경이 있다. 그중에서도 1번 주립 도로는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해안 풍광과 함께 울창한 포도밭, 생기 넘치는 해변 마을까지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대표적인 시닉 드라이브 코스다.
서핑 명소로 잘 알려진 샌디에이고에서 시작되는 이 도로는 주를 이어주는 5번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이어지다가 헌팅턴 비치 쪽으로 방향을 틀어 빠져나온다. 상징적인 부두와 바람이 느껴지는 서부 해안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가 인근의 교통 체증은 피할 수 없지만 샌타모니카와 베니스 비치를 둘러보거나, 베벌리힐스의 중세풍 저택들을 한 바퀴 돌아본 뒤에 다시 북서쪽으로 굽이치는 길을 달려 샌타바바라로 간다. 샌타바바라는 온화한 기후와 느긋한 생활 방식 덕분에 ‘캘리포니아의 리비에라’로 불린다. 1786년부터 자리한 프란치스코회 소속 샌타바바라 미션 수도원이 평온한 정원을 품고 태평양을 내려다보고 있다.
18세기의 풍부한 역사를 품고 있는 소도시 샌루이스오비스포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샌타이네즈 밸리 와이너리로 향하는 일종의 관문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1920년대에 지어진 지중해풍 허스트 캐슬 저택이 나온다. 호화로운 실내 장식과 골동품들을 볼 수 있다. 도로가 북쪽의 몬터레이를 향해 굽이치며 이어지면서 빅서 해안이 나온다. 붉은 삼나무 숲을 배경으로 한 절벽과 작은 만 등 숨이 멎을 듯한 풍광이 펼쳐진다. 여정의 마지막은 샌프란시스코다. 바다가 보이고 빅토리아풍 건축물과 아찔할 정도로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트램 등 미국에서 가장 이야기가 많은 도시다.
어떤 차를 타고
힘이 좋고 스타일리시한 포드 머스탱이나 쉐보레 카마로는 캘리포니아의 아스팔트 도로와 잘 어울린다. 캐딜락 엘도라도나 쉐보레 임팔라 같은 클래식 카는 할리우드 황금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총 988km 길이의 여정에서 정차 지점 사이의 거리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연비와 승차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여행 방법
한여름 더위를 피해 4~5월이나 9~11월에 여행을 하는 게 좋다. 날씨도 쾌적하고, 비교적 덜 붐빈다. 이 길은 표지판이 잘되어 있고 숙소와 편의시설도 다양해서 큰 무리 없이 직접 운전을 해도 좋다. 샌디에이고,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다양한 국제선 항공편이 있으며 차량도 쉽게 빌릴 수 있다. 튜로에서 차를 빌리면 좋은데, 주요 도시에서 이용할 수 있고 1960년대 포드 머스탱이나 포드 썬더버드 같은 클래식 카도 갖추고 있다. tu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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