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에서 섬을 옮겨 다니는 여행부터 아오모리에서의 농가 체험까지,
일본 곳곳의 매혹적인 지역 문화와 고대의 역사, 장대한 자연 속에서
특별한 경험이 이어진다. 깊이 파고들수록 더욱 큰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섬
전혀 다른 세계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현의 야에야마 제도는 독특한 야생동물이 서식하며 느긋한 해양 문화가 펼쳐지는 곳으로 일본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글. 조지아 스티븐스
이제 막이 오른다. 묵직한 캔버스 천이 아코디언처럼 접혔다 펴지며 삐걱거리는 나무 돛대에 팽팽히 감겨 올라간다. 돛은 솜뭉치 같은 구름을 바다 쪽으로 몰아내는 바람을 한껏 들이마신다. 등 뒤의 가파른 정글에서는 참새만 한 검은 나비들이 날아오르고 매미의 윙윙거림이 해변을 쓸어가는 파도 소리와 뒤섞인다. 공기는 꽃향기로 가득하고 물처럼 끈적하게 덥고 무겁다. 닻을 올리고 노를 꺼내자 전통 배인 사바니의 뱃머리가 파도 속으로 힘차게 돌진한다.
이시가키섬을 떠나는 뱃사람이라면 항로를 반드시 확신해야 한다. 북서쪽으로 향하면 다음으로 발을 디딜 육지는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중국, 동쪽으로 틀면 훨씬 더 멀리 떨어진 멕시코 해안에 닿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오키나와현 남쪽 끝, 이곳에서는 일본의 가장 외딴섬이 파도 속으로 흩어지는 지점이다.
본토보다 대만과 필리핀에 더 가깝고 따뜻한 해류의 영향을 받는 아열대 기후인 야에야마 제도는 일본에서도 독보적인 곳이다. 이시가키섬은 이 군도의 일부이다. 이곳 사람들은 느긋한 삶의 방식을 뜻하는 ‘논비리nonbiri’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오랜 세월 다듬어진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서쪽으로는 다케토미섬Taketomi Island의 산호로 지은 집이 있고, 그 너머에는 가장 야생적인 전초기지 이리오모테섬Iriomote Island이 위치한다. 이 섬은 너무나 외딴곳이라 섬 고유종이 진화를 거듭해 왔다.
며칠 동안 나는 페리를 타고 섬에서 섬으로 옮겨 다닐 계획이다. 교토에서 시작해 숲이 우거진 오키나와섬의 산길을 따라 남하해 온 여정의 연장선이다. 이곳에서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에게 페리는 주요 교통수단이지만 오키나와 문화를 제대로 경험하려면 반드시 사바니를 타봐야 한다.
“여기서 사바니는 아주 중요한 존재예요.” 배의 선미에서 요시다 도모히로Yoshida Tomohiro가 말한다. 파란 모자를 쓰고 진지한 표정을 한 그는 바닷물이 튀어 젖은 베이지색 티셔츠 차림이다. 그는 10대 시절 오키나와에 정착한, 이름난 사바니 제작 장인이다. 당시 그는 이곳이 자신에게 ‘맞는’ 장소라는 분명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가미사마Kami-sama, 즉 신의 뜻이라 설명한다. 그는 지금까지 29척의 사바니를 만들었으며, 한 척을 완성하는 데 약 두 달이 걸린다고 일러준다. 30번째 배를 완성하면 ‘그랜드 마스터’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오른쪽으로는 사바니의 아우트리거(파도에 배가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는 보조 장치)가 옥빛 바다를 가르며 나아간다. 물이 너무나 투명해 바닷속 모래 위에 흩어진 조개 파편까지 셀 수 있을 정도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는 바다거북이 숨을 쉬러 수면 위로 올라오며 작은 물보라를 일으킨다. 요시다는 일본 삼나무를 손으로 깎아 만든 사바니가 과거에는 섬 사이를 오가는 이동 수단이자 어업을 위해 사용됐다고 설명한다. “페리를 타면 이시가키에서 이리오모테까지 50분이면 가요. 하지만 사바니로 가면 10시간이 걸리죠.”
섬 주민들에게 항해는 오랫동안 삶의 일부였다. 수 세기 동안 오키나와는 독립된 왕국이었고,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일본에 편입됐다. 해상무역으로 번성한 류큐 왕국은 중국과 대만 그리고 아시아의 이웃 지역을 오가며 도자기와 비단, 염료, 향신료를 교역했다. 이러한 외부 영향이 뒤섞이면서 지역 문화에 색채가 더해졌고 특히 방언과 음식, 전통의상 그리고 무술 가라테의 인기에서 그 흔적이 두드러진다. 1945년 미군의 침공 이후에는 리바이스와 스팸 같은 브랜드도 혼합되었다. 스팸은 오늘날 포크 챰푸루pork champuru(통조림 햄과 오키나와식 두부 그리고 채소 등을 볶은 음식) 같은 지역 퓨전 요리의 핵심 재료가 되었다. 오키나와현은 일본 전체 면적의 1%도 되지 않지만, 현재까지도 일본 내 미군 기지의 75%가 배치된 곳이다.
맹그로브와 야생 살쾡이
이틀 뒤, 나는 이리오모테섬으로 향한다. 그 전날에는 다케토미섬에서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조용한 류큐식 방갈로 사이를 자전거
로 달리고, 별 모양 모래가 깔린 해변에서 얕은 바다로 노를 저어 나갔다. 이 독특한 별 모양 모래 알갱이는 미세한 해양 생물의 외골격이라고 한다. 전날 페리는 탈색한 금발 머리에 민소매 티셔츠, 오리온 맥주 티셔츠를 입고 셀카를 찍느라 분주한 10대들로 가득했지만, 오늘 아침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배의 분위기는 훨씬 차분하다. 일본에서 가장 야생적이라 할 수 있는 목적지로 향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리오모테섬 동쪽, 마에라강Maera River 옆에 도착했을 땐 썰물 때였다. 강물은 초콜릿 우유처럼 탁했고 맞은편 강둑에는 맹그
로브나무가 끊김 없는 초록의 벽을 이루고 있었다. 한때 사바니의 노를 만드는 데 쓰였던 거미줄 같은 뿌리가 수면 위로 솟아난 모습이다.
“걱정 마세요, 악어는 없어요.” 머리를 느슨하게 묶은 우리의 가이드 이마무라 히로아키Imamura Hiroaki가 무릎까지 물에 잠긴 채 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그를 ‘히로’라고 부른다. 그가 우리를 파란색 2인용 카약에 올라타도록 도와준다. 우리의 계획은 맹그로브로 이어진 ‘수상 고속도로’를 따라 이리오모테섬의 심장부로 노를 저으며 이 수수께끼 같은 섬을 더 깊이 알아보는 것이다. 이리오모테섬은 오키나와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지만, 인구는 해안을 따라 띄엄띄엄 흩어져 사는 약 2400명에 불과하다. 섬의 90% 정도는 손대지 않은 원시 열대우림으로 폭포와 강, 맹그로브가 미로처럼 얽혀 있다.
알고 있었나요?
2026년에 대만과 일본 오키나와현의
이시가키항을 연결하는 약 8시간 소요의
페리 노선이 개통 예정이다.
“일본 전체 맹그로브의 70% 이상이 바로 이곳에 서식해요.” 해안가에서 배를 밀어내며 히로가 말한다. 곧이어 우리의 노 젓는 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찾기 시작한다. 탄닌 성분이 풍부해 짙게 물든 물길 위로 드러난 맹그로브의 뿌리 사이를 눈처럼 하얀 쇠백로가 조심스레 거닌다. 네온사인처럼 선명한 노란 잎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소금 잎이에요. 맹그로브는 뿌리로 흡수한 소금을 잎에 모아 떨어뜨려요. 그게 생존 방식이죠.”(히로)
히로는 전원생활을 갈망해 16년 전 도쿄에서 이곳으로 이주했다. 다만 이리오모테를 ‘전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 점잖다. 이 섬은 아주 외딴곳이라 여기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종인 ‘이리오모테삵’이 존재할 정도니까 말이다. 다소 덥수룩한 얼룩 고양이를 닮았고 어딘가 짜증이 난 듯한 표정의 이리오모테삵은 1967년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학계에 보고되었다. 오늘날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로움 때문에 현지인들 사이에서 ‘메피스카랴meepisukaryaa’, 즉 ‘눈이 번뜩이는 존재’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여기 사는 개체수는 100마리 남짓이에요.” 우리가 굽은 물길을 돌아 나가는 동안 히로가 말한다. “저도 밤에만 몇 번 봤죠.”
이 외에도 일본 남부 도서 지역에만 서식하는 고유종은 다양하다. 오키나와섬에는 선명한 주황색 부리를 지닌, 날지 못하는 밀림의 새 오키나와뜸부기가 살고 있다. 북동쪽 아마미 제도에는 섬의 이름을 딴 아마미검은토끼가 땅굴을 파 서식한다. 살쾡이와 새 그리고 토끼까지, 세 동물은 모두 이 외딴 해안을 터전으로 삼고 있다.
쇠백로 한 마리가 깔깔거리듯 울며 날아올라 공중에서 짝을 만나더니 둘이 함께 물 위로 기울어진 고목을 향해 원을 그리며 날아간다. 썰물이 시작되자 맹그로브의 뿌리가 더 잘 드러난다. 노 아래로는 유령처럼 희미하게 물고기가 잠깐 모습을 비춘다. 비늘이 빛을 받아 반짝이며 물을 가로질러 휘어졌다가 다시 탁한 물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마에라강에는 이런 환영만 있는 게 아니다.
“저기 봐요, 사가리바나sagari-bana!” 히로가 외치며 노를 깊이 찔러 넣어 카약을 미끄러지듯 멈춰 세운다. 그는 강물 위에 떠 있는 내 손바닥만한 솜털 같은 연분홍색 꽃을 가리킨다. “여름밤에만 피고 수분이 끝나면 꽃이 한꺼번에 물 위로 떨어져요. 이른 아침에 오면 1만여 송이가 전부 수면에 떠 있는 걸 볼 수도 있죠.” 이런 야행성 꽃은 흔히 ‘유령의 꽃’이라고 불린다. 이처럼 외딴 군도에서는 일본의 꽃놀이 전통인 하나미hanami가 좀처럼 보기 힘든 색다른 방식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야에야마 제도다. 희귀하고 독특하며, 거의 누구도 경험한 적 없는 일본의 또 다른 면면을 보여준다.
여행 정보
지 어드벤처스의 ‘액티브 재팬: 교토 & 오키나와섬 호핑’은 교토와 오키나와, 이시가키, 다케토미, 이리오모테를 방문하는 10일 일정으로 국내선 항공편과 각종 액티비티, 이동 수단, 일부 식사가 포함돼 있다. 1인당 약 663만원부터. 오키나와의 페리는 이용하기 쉬운 편으로 표는 각 항구에서 구매할 수 있다. gadventures.com
해안
해변과 함께하는 삶
일본 하면 흔히 매혹적인 백사장을 떠올리진 않지만, 사실 그래야 마땅하다. 서핑의 중심지부터 열대 휴양지까지, 일본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해변을 소개한다.
글. 알리시아 밀러
1
가나가와현, 지가사키
도쿄에서 전철로 90분이면 닿는, 일본 서핑의 발상지에서 도쿄의 인파를 벗어나보자. 지가사키는 안정적인 파도로 유명하며 맑은 날에는 후지산까지 조망할 수 있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서프보드를 빌리거나 여러 서핑스쿨 중 한 곳에서 강습을 받기도 한다. 해안을 따라 에노시마섬 방향으로 산책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다. 모래사장에는 비치 바가 늘어서 있고, 곳곳에서 지역 신사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추천 숙소: 테라스가 딸린 일부 객실에서 바다 전망을 즐길 수 있는 마르솔CS 비치 호텔이 1박에 약 80만원부터. marsolhotel
2
홋카이도, 시마무이 해안
홋카이도의 주도인 삿포로에서 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샤코탄곶. 이곳의 매력은 모래사장보다는 선명한 코발트블루 바다에 있다. 절벽에 둘러싸인 이 지역은 야생 그대로의 때 묻지 않은 느낌을 주며 하이킹도 즐길 수 있다. 삿포로 시내 탐방과는 완벽하게 대비되는 즐거움이 기다린다.
추천 숙소: 객실은 소박하지만 시라라 히메노유에서는 온천과 탁 트인 해안 전망을 누릴 수 있다. 1박에 약 7만 3000원부터. sirarahime.com
3
시즈오카현, 시라하마 해변
말 그대로 ‘하얀 해변’을 뜻하는 시라하마는 산을 배경으로 한 넓은 백사장과 붉은 도리이가 세워진 바위가 점점이 어우러진 풍경이 인상적이다. 후지산과 아타미 온천, 야마나시 와인 산지가 모두 가까워 도쿄에서 휴가를 오는 가족 여행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추천 숙소: 모래사장 바로 위에 자리한 비치 리조트를 찾는다면 시모다 프린스 호텔Shimoda Prince Hotel이 제격이다. 조식과 석식을 포함해 1박에 약 23만원부터. seibuprince.com
4
이와테현, 조도가하마 해변
잔잔하고 아늑한 바다 그리고 솟아오른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조도가하마. 일본에서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극락의 해변’이라는 그 이름의 의미가 이를 증명한다. 혼슈의 북쪽 끝자락,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곳이기에 인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붐비는 도쿄와 달리 주손지와 모쓰지 같은 인상적인 사찰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추천 숙소: 해변에서 불과 600m 떨어진 더 파크 호텔 조도가하마The Park Hotel Jodogahama는 바다 전망을 자랑한다. 조식 포함 1박에 약 12만 3000원부터. jodo-ph.jp
5
와카야마현, 시라하마
오사카 남쪽에 자리한 이 활기찬 휴양지는 온천과 놀이시설, 나이트라이프까지 모두 갖춘 곳이다. 이 모든 것이 길이 약 0.8km에 불과한 구간에 밀집돼 있다. 새하얀 모래사장에는 가족 여행객을 위한 호텔이 늘어서 있으며, 수영장과 노래방 같은 부대시설도 다양하다. 여름철에는 해변을 따라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추천 숙소: 바다 전망과 가이세키 메뉴를 즐길 수 있는 시라라소 그랜드 호텔이 1박에 약 12만원부터. shiraraso.co.jp
6
이리오모테섬, 호시즈나노하마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기 힘들다. 모래 알갱이가 별 모양인, 야생적이고 외딴 오키나와의 해변. 이 독특한 모래는 미세한 해양 생물의 외골격이라고 한다. 호시즈나노하마는 일본 최남단에 위치한 이리오모테섬의 수많은 경이로운 풍광 중 하나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 섬에는 토착 야생 삵이 살고 맹그로브 숲도 울창하다.
추천 숙소: 수영장과 숙소 내 마사지 서비스를 갖춘 루아나 멜레 이리오모테가 1박에 약 10만1000원부터. luanamele-iriomote.com
여정
혼슈에서 보내는 2주
일본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에는 대표 명소가 대거 모여 있어 이른바 ‘골든 루트’로 알려진 전통적인 여행 코스가 형성돼 있다. 이 여정은 유명 관광지는 물론, 상대적으로 한적한 숨은 명소까지 함께 조명한다.
글. 알리시아 밀러
1-4일차 도쿄의 팝 문화, 사찰과 온천
여행 첫날은 도쿄 서부에서 보낸다. 신주쿠의 네온사인, 하라주쿠의 개성 넘치는 10대 문화 그리고 시모키타자와의 트렌디한 카페와 이자카야를 차례로 즐겨보자. 잠이 오지 않는다면 신주쿠 나이트라이프의 중심지 가부키초에서 노래방이나 바, 드래그 쇼로 밤을 채울 수 있다. 이후 며칠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사쿠사의 등불이 늘어선 사찰 센소지에 방문하고, 도쿄 국립박물관이 자리한 우에노 공원을 거닐어도 좋다. 또는 아자부다이 힐스에 있는 인터랙티브 디지털 갤러리인 팀랩 보더리스에 가거나 높이 약 634m의 도쿄 스카이 트리에 올라 도시 전경을 감상해보자.
하루는 당일치기로 온천 휴양지 하코네에 다녀오자. 오다큐 로망스카Odakyu Romancecar 열차로 약 80분이면 도착하며, 일본의 온천 문화뿐 아니라 후지산 전망도 즐길 수 있다. 하코네 유모토Hakone-Yumoto의 텐잔 온센을 추천한다.
5일차 도야마의 산악 풍경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면 나가노현의 오마치Ōmachi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 일본 알프스에서 하루를 보내기 좋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 루트(4월 15일~11월 30일 개방)에 올라보자. 이 루트는 철도와 케이블카, 로프웨이, 버스를 잇달아 이용하며 해발 약 2500m까지 오른다. 그러고 나서 논이 펼쳐진 풍경과 전통 여관 료칸이 어우러진 도야마현에서 머물자. 겨울에 방문한다면 초가지붕 가옥으로 유명한 시라카와 마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6일차 가나자와 정원 산책
도야마역에서 기차로 약 1시간이면 가나자와에 도착한다. 이곳은 게이샤 찻집과 역사적인 사무라이 지구가 잘 보존된 에도 시대의 중심지로, 일본에서 손꼽히는 정원인 겐로쿠엔을 품고 있다. 마키노오토Maki No Oto 같은 료칸에 머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ryokancollection.com
7-10일차 길거리 음식, 게이샤와 닌자
오사카를 거점으로 삼아 기차를 타고 인근 지역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고, 저녁에는 이 대도시의 유명한 길거리 음식을 찾아 나서자. 활기찬 신세카이 지구에서는 오사카식 구시카쓰(꼬치 튀김) 문화를 만날 수 있고, 구로몬 시장은 신선한 해산물로 잘 알려져 있다. 교토는 오사카에서 기차로 30분이면 닿아 하루 일정으로 여러 사찰을 둘러보기 좋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금각사, 수천 개의 붉은 도리이 문 사이로 이어지는 후시미 이나리 신사, 8세기에 창건된 장대한 기요미즈데라가 대표적이다. 또한 오사카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나라는 794년 이전에 수도였던 곳으로 인상적인 사찰이 다양하다. 또는 오사카에서 기차로 2시간쯤 걸리는 닌자의 본고장이자 성곽 도시 이가Iga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다.
11일차 고야산에서 불교적 성찰
산악 고원에 자리한 일본의 성스러운 장소 중 하나인 고야산의 사찰 다이엔인에서의 슈쿠보shukubo(템플스테이)를 통해 사색적인 분위기에 빠져들어보자. 낮에는 선명한 붉은색의 곤폰 다이토 탑과 다이몬 문을 둘러보고, 밤에는 가이드와 함께 신성한 오쿠노인 묘지Okunoin Cemetery를 방문해본다. 이곳은 거대한 숲과 석등이 어우러지는 밤에 분위기가 특히 신비롭다.
다음 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현지 사찰 중 한 곳에서 열리는 불교 기도 의식에 참여해도 좋다. 오사카에서 고야산까지 기차와 버스 그리고 푸니쿨라를 이용하는 약 90분의 여정은 풍경도 아름답다. hpdsp.jp/daienin
12-13일차 히로시마에서의 추모 그리고 섬으로의 탈출고야산에서 반나절 이동해 현대 도시 히로시마에 도착한다. 중심부에는 폭격으로 뼈대만 남은 돔이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 맞은편에 자리한다.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파괴적인 원자폭탄의 현장이다. 히로시마에 머무는 동안에는 이 지역 명물인 오코노미야키도 맛보자. 히로시마식은 면을 함께 넣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일본 최초의 현대미술관인 히로시마시 현대미술관도 추천한다.
여정의 마무리는 일본에서 가장 상징적인 풍경 중 하나로 꼽히는 미야지마. 바다 위에 극적으로 솟아오른 붉은 도리이 문으로 유명한 섬이다. 히로시마에서 기차와 페리를 이용해 약 1시간 30분이면 당일치기 방문이 가능하며,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에서 출발하는 직행 배를 이용하면 45분 만에 도착하나 비용은 더 든다. 사진을 충분히 찍었다면 초록빛으로 뒤덮인 구릉진 섬을 따라 하이킹을 하거나 미센산Mount Misen까지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 보자.
14일차 도쿄에서 쇼핑
도쿄로 돌아오는 여정은 신칸센으로 약 4시간이 걸린다. 귀국 비행기에 오르기 전 기념품이 고민된다면 시부야에 있는 돈키호테, 핸즈, 로프트 같은 상점으로 향할 것.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대형 매장에서 젓가락부터 귀여운 문구류까지 온갖 물건을 만날 수 있다. donki.com, info.hands.net, loft.co.jp
도시 생활
흐르는 음악 속에서의 고요
‘리스닝 바’ 문화는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분주함이 극에 달한 도쿄에서는 잠시 세상과의 연결을 끊고 긴장을 풀며 내면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하나의 방식으로 여겨진다.
글. 다니엘 스테이블스
도쿄 유흥가 시부야의 분주한 거리 한복판에 분홍빛 문구가 깜빡이는 전광판 ‘Music from the BYG’가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전형적인 로큰롤 술집이다. 스무 살 언저리의 젊은이들이 나무 탁자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고, 징이 박힌 가죽 재킷과 로커빌리 스타일의 폼파두르 헤어가 눈에 띈다. 반쯤 피운 담배의 연기가 은빛 재떨이 위로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벽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밥 딜런의 흑백 초상이 걸려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손때 묻은 레코드판으로 가득 찬 선반이 빼곡하다.
하지만 금세 이 바가 무언가 다르고 놀라울 만큼 평온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낮게 오가는 몇 마디를 제외하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손님들은 그저 눈을 감은 채 벽면 전체를 차지한 고사양 스피커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 스피커에서는 롤링스톤스의 ‘Street Fighting Man’이 수정처럼 맑은 음질로 흘러나온다. 대화의 부재와 음악에 쏟아지는 집중 덕분에 스피커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요란한 록 음악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고요하고도 경건한 분위기가 감돈다. BYG는 ‘리스닝 바’다. 일본에서 시작된 이 독특한 공간에서는 음악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며 최고급 스피커를 통해 온전히 전달된다. 플레이리스트는 대개 주인이 큐레이션하지만 BYG처럼 손님이 직접 레코드판을 꺼내어 틀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이런 바는 일본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특히 도쿄 시부야에 다수 밀집해 있다. 혼돈의 한가운데서 고요한 피난처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런던과 뉴욕 등 서구 도시에도 ‘리스닝 바’라는 이름의 공간이 문을 열었지만, 일본의 리스닝 바와 공통점이라 할 만한 것은 고급 스피커와 음질에 대한 집요한 집착 정도다. 일본식 리스닝 바를 서구에서 그대로 재현하기 어려운 이유는 음악을 대하는 현지 손님들의 태도에 있다. 누구의 제지도 없이 거의 혹은 완전한 침묵 속에서 음악에 경의를 표하며 앉아 있는 문화다.
내 옆에 앉은 투어 가이드 제프 개리시Jeff Garrish는 반쯤 감긴 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평을 내놓는다. “젠 가든 같아요.” 원예에 깊은 관심이 있는 그는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으로, 도쿄 외곽에서 수년째 살고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조용한지 느껴지죠? 일본에서는 개인 공간이 정말 중요해요. 향수가 크게 유행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강한 냄새는 타인에게 침범이 되니까요.” 리스닝 바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작동한다. “이게 약속이에요. 나는 음악을 즐길 권리가 있고 당신의 경험도 방해하지 않는 거죠.”(제프)
BYG는 리스닝 바 스펙트럼 가운데서도 비교적 편안한 쪽에 속한다. 음식이 제공되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누가 제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제프가 좀 더 진지한 곳도 보여주고 싶다 하여 우리는 다시 시부야의 혼란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부야는 그 영역이 모든 형태의 엔터테인먼트로 확장돼 있다. 타워형 건물의 열린 창문 사이로 음악이 흘러나오고 각 층에는 떠들썩한 바와 라이브 공연장이 들어서 있으며, 그 이름은 요란한 네온사인으로 선언하듯 빛난다.
몇 블록을 걸어 우리는 또 다른 어두운 지하로 내려간다. 그곳은 프레스 재즈 바Pres Jazz Bar다. 은은한 램프 불빛에 비친 내부에는 가죽 스툴이 늘어선 윤이 나는 원목 바가 있고, 공간 전체를 감싸는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한쪽 벽에는 이 바의 이름이 유래한 재즈의 전설 빌리 홀리데이와 레스터 ‘프레스’ 영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뒤쪽 벽면을 가득 채운 것은 도쿄의 모든 리스닝 바를 관통하는 공통 풍경인, 수천 장의 바이닐 레코드와 CD를 보관 중인 선반이다. 어둑한 구석에 놓인 스피커에서는 존 콜트레인의 가느다란 선율이 따스하게 흘러나온다. 프레스는 ‘재즈 킷사jazz kissa’다. 이러한 공간은 전후 일본에 미국의 재즈 레코드판이 대거 유입되던 시기에 리스닝 바 붐에 불을 지폈다. 재즈 킷사는 예술에 대한 존중, 하이엔드 장비에 대한 남다른 애착 그리고 하나에 깊게 파고드는 일본 특유의 ‘진심인’ 취미 문화에 힘입어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바텐더인 사토 가나Sato Kana는 우리 둘에게 따뜻한 물수건을 건네고 일본 위스키 주문을 받은 뒤 얼음 큐브를 깎기 시작한다. 각기 다른 속도로 녹도록 특정한 형태로 다듬은 얼음은 우리가 고른 술의 풍미와 어울리도록 계산된 것이다. 이런 세심한 디테일은 일본의 일상 전반 그리고 공들여 큐레이션한 레코드 컬렉션을 자랑하는 리스닝 바 문화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나는 혹시 여기서 대화해도 되는지 낮은 목소리로 가나에게 묻는다. 그녀는 잠시 고개를 갸웃한다. “물론이죠. 다만 그러면 사람들이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하겠죠.” 이처럼 사회적 조화를 중시하는 일본 문화 덕분에 리스닝 바에서는 굳이 규칙을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질서가 유지된다.
제프가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어 한 곳은 라이언 카페Lion Café다. 1926년에 문을 연 이곳은 리스닝 바 현상이 시작된 장소로 오직 클래식 음악만을 튼다. 우리는 언제나 혼잡한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한순간에 약 3000명이 오가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건널목)를 건너 조용한 골목으로 접어들었고, 그곳에서 유럽의 교회를 닮은 모조 중세풍 석조 건물 앞에 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숨소리조차 들릴 듯한 적막과 함께 중앙 제단을 향해 교회 좌석처럼 가지런히 놓인 의자들이 성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짙게 만든다. 제단 위에는 십자가 대신 거대한 나무 패널 스피커가 자리한다.
이내 백발 남성이 다가오고 나는 레모네이드를 주문한다. 이곳에서는 술을 팔지 않는다. 여전히 도쿄에서 가장 음지로 알려진 지역 한복판에 있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너무도 고요하고 경건해 청량음료를 속삭이듯 주문하는 것마저 괜히 대담한 행위처럼 느껴진다.
거대한 스피커에서는 분위기 있는 현악 음악이 더없이 정교한 음질로 흘러나온다. 한 악장이 끝나자 웨이트리스가 마이크를 들고 앞으로 나와 말한다. “방금 들으신 곡은 독일의 신고 전주의 작곡가 파울 힌데미트Paul Hindemith의 오늘 마지막 작품이었습니다.” 남아 있던 손님들은 말없이 조용히 자리를 떠난다. 입장할 때 나를 맞아주었던 노신사 야마데라 나오야와 이야기를 나누어본다. 그는 라이언 카페의 4대 운영자로 아버지에게 이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곳을 계속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키는 일’ 그자체라고 말한다. “이런 장소를 보존하는 게 중요합니다. 특유의 분위기를 보호하는 거죠.” 그러다 그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살짝 속내를 털어놓는다. “사실 저는 클래식 음악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영업이 끝난 뒤 스피커 앞에 앉아서 비틀스의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듣죠.”
여행 정보
인사이드 재팬의 맞춤형 일본 여행 일정에 도쿄 가이드 1일 투어를 포함할 수 있다. 숙소로는 호시노 리조트가 운영하는 오모5 도쿄 고탄다를 추천한다. 1박 요금은 약 26만2000원부터. insidejapantours.com, hoshinoresorts.com
음식
소중한 사과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아오모리현에서는 현지인들이 사과에 유난한 애정을 쏟고 있다. 이는 이 지역의 과수원은 물론 바, 심지어 온천에서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글. 알리시아 밀러
잘 다듬어진 나무가 모여 있는 과수원이 눈앞에서 부채처럼 펼쳐진다. 가지마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립스틱처럼 붉은색의 윤기 나는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나무줄기 사이로는 바람에 살랑이는 풀잎이 보이고, 머리 위 하늘에는 구름이 유유히 흘러간다. 푸르고 평온한 이 풍경을 영국의 전원 지대로 착각할 법하지만, 실제로는 일본 북부다.
일본의 농산물을 떠올리면 쌀과 콩, 고추냉이가 먼저 생각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혼슈 최북단, 아직 덜 알려진 도호쿠 지역의 광활한 아오모리현에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니 후지’라 불리는 이와키산이 수려한 풍경을 이루며 평야와 산봉우리가 어우러지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이 농업의 중심지에서는 사과가 단연 주인공이다.
그리고 내륙 중심 도시인 히로사키를 방문하는 순간, 이 지역의 사과 사랑은 더욱 또렷해진다.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반짝이는 거대한 사과 조형물이 입구에서 맞이하고, 모든 카페의 창가에는 바삭한 애플파이가 유혹하듯 진열돼 있다. 가을이 되면 온천에마다 잘 익은 사과를 가득 띄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속에서 과육이 천천히 익어가며 공기 전체를 달콤하게 만든다. 심지어 지역 도자기마저도 불에 태운 사과나무 가지의 재로 만든 유약 덕분에 독특한 검붉은 색을 띤다.
사과나무는 아오모리의 거친 서해안에서 히로사키로 느릿느릿 달려오는 고노선 철로를 따라 늘어서 있거나 도시의 사찰지구로 이어지는 길가를 따라 줄지어 서 있다.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환하게 웃는 과수원 가이드 다나카 미사토Tanaka Misato가 손목을 살짝 튕기듯 움직여 가지에서 잘 익은 붉은 사과를 따며 말한다. “이건 사이카Saika라는 품종인데, 새콤함과 달콤함의 균형이 정말 좋아요.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예요.”
영국에서는 특히나 가장 일상적인 과일로 여겨지는 사과를 굳이 일본까지, 그것도 도쿄에서 기차로 3시간이나 북쪽에 있는 이 외딴 지역까지 맛보러 갈 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흔한 사과가 아니다. 열차부터 파티스리까지 악명 높을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일본의 수많은 것들처럼 사과 재배 역시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단순히 사과를 기르는 게 아니라, 가장 완벽한 사과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나카와 함께 1만6000여 평 규모의 히로사키시 사과공원Hirosaki City Apple Park에 서 있다. 이곳은 누구나 무료로 방문해 직접 사과를 딸 수 있는 과수원이다. 세심한 숙기 조절을 통해 재배 중인 80여 종의 다양한 사과(대부분 일본 품종)가 나를 둘러싸고 있다. 건네받은 안내문을 확인해보니 9월 말인 지금은 주로 사이카 품종을 수확하고 있지만, 몇 주 뒤 절정기에 이르면 무려 24종 이상이 한꺼번에 수확 철을 맞이하게 된다.
“후지 사과는 누구나 알죠.” 햇살이 가득한 과수원 사이를 걸으며 다나카가 말한다.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노란색을 띠는 메이게쓰예요. 달콤한 맛이 좋거든요. 대부분 단맛 사과가 그렇듯 비교적 늦은 11월쯤 수확해요.” 잘 익은 붉은 사과가 맺혀 있는 나무 사이를 걸으며 그녀는 가장 맛있는 사과 고르는 법을 알려준다. 가지에 하나만 달린 사과나 줄기에 아주 가까이 붙어 자란 사과가 풍미가 좋은데, 천으로 살살 문지르면 루비처럼 반짝이는 윤이 난다고 한다.
“이건 세카이 이치Sekai Ichi예요. 크기가 큰 사과 품종 중 하나죠.” 그녀는 박처럼 커다란 열매가 묵직하게 매달린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말을 잇는다. ‘사과계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는 이 사과는 주로 선물용으로 쓰이는데, 도쿄의 고급 상점에서는 한 개에 약 3만원에서 4만원 정도에 팔리기도 한다.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3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