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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ROADS & BUGGIES
아미시의 시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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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호

테네시주의 시골에서 음식은 현대 사회와 동떨어져 살아가는, 깊은 전통을 간직한 아미시 공동체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드문 창이 된다. 미국 남부에서도 유난히 독특한 이 지역에서 그들의 삶을 맛볼 수 있는 여정에 함께해보자.

(왼쪽부터) 이 지역에서는 헛간, 사일로, 귀리밭이 흔히 보인다. 에트리지의 플로우보이 농산물 경매장에 놓인 복숭아 바구니.

패니 요더Fannie Yoder가 테네시의 아미시 컨트리Amish Country에 있는 자신의 델리카트슨(고급 식료품점) 매장 통로를 함께 걸으며 “아미시 사람들은 단것을 무척 좋아해요”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윤기가 흐르는 퍼지 덩어리들이 선반이 휘어질 듯 빼곡히 놓여 있고, 두툼한 아이싱이 봉우리처럼 소용돌이치는 시나몬롤들이 탑처럼 쌓여 있다. 설탕 입힌 도넛과 잼이 흘러나오는 튀긴 파이들도 벽 끝까지 길게 늘어섰다.
“좋은 재료를 써서 집에서 직접 만든 것이어야 해요.”
73세인 패니가 얼굴을 감싸는 새하얀 보닛 아래에서 말하는데 그 표정이 꽤 단호하다.
“한번은 시판 믹스로 케이크를 구워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여섯 아이 모두 제가 만든 게 아니라는 걸 금세 알아채더라고요.”
조약돌처럼 둥근 금속 안경테 너머로 눈가에 잔잔히 주름이 접힌 그녀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는 내슈빌에서 남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테네시주의 남중부 로렌스 카운티Lawrence County를 찾아 에트리지Ethridge의 아미시 공동체와 그 주변 지역을 방문했다. 약 2200명이 살고 있는 이곳은 미국 남부 최대 규모의 아미시 정착지다. 이 지역의 가족들은 대부분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아미시 계열로 꼽히는 슈바르첸트루버Swartzentruber 아미시에 속한다. 1944년, 이 구불구불 완만하게 펼쳐진 농경지에 정착한 이래로 그들은 전기와 실내 배관, 자동차, 현대적 기술 없이 살아왔다. 화덕에서 음식을 만들고 마차로 이동한다.
이 구교 재세례파 기독교도의 정착촌은 여전히 세상과 놀라울 만큼 분리되어 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관광객을 태운 마차가 나뭇잎이 우거진 시골길을 따라 덜커덕거리며 달리다 아미시 작업장 앞에 멈춰 선다. 흙내음이 배어 있는 이 나무 별채는 할아버지의 공구 창고를 떠올리게 한다. 공방 한가운데에는 판매용 물건이 산처럼 쌓인 벤치가 보이고, 지도에는 각 농가로 이어지는 길이 표시돼 있다. 그곳에서는 신선한 농작물과 집에서 갓 구운 빵과 과자, 손으로 만든 가죽 제품과 목공품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근처에서는 아미시 농부의 경매가 열려 이 고립된 공동체에 호기심을 품은 방문객들을 끌어모은다.
2005년, 패니와 남편 노아가 서머타운Summertown의 작은 아미시 거주 구역에 문을 연 ‘요더스 홈스테드 마켓Yoder’s Homestead Market’ 역시 방문객들이 아미시 문화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요더 부부는 아미시 신자이지만 에트리지에서 불과 16km 떨어진 이웃들보다 더 진보적인 편이다. 덕분에 그들은 트랙터로 농사를 짓고, 업무용 전화를 사용하며, 직접 지은 카페, 델리, 가게를 전기로 운영한다.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공기 중에 가득 퍼지는 사이, 패니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청록색 스목드레스에 걸친 풀 먹인 면 앞치마를 매만진다. 델리 카운터 바로 뒤 작은 주방에서는 사워도 빵이 따뜻한 세 개의 오븐 안에서 느긋하게 부풀어 오르며 점심시간때 몰려올 손님들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카운터에서 식히는 중인 격자무늬 크러스트를 얹은 딸기, 대황, 블루베리 파이는 곧 빨간색과 흰색 체크무늬 식탁보 위에 놓일 예정이다.

(왼쪽부터) 아미시 사람들은 자동차 없이 말과 마차로 이동하며 살아간다. 구교 재세례파 기독교도인 아미시 공동체의 찬송가.

제빵 외에도 패니는 여러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절임, 발효, 통조림 같이 식재료를 오래 보존하는 기술에도 능숙하다. 이런 기술 덕분에 아미시들은 슈퍼마켓이나 가공식품, 냉장고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정원에서 오이를 키워 얇게 썰어요. 그런 다음 식초, 설탕, 소금, 딜, 마늘을 넣어 만든 절임물을 붓고 뚜껑을 닫아 2주 정도 숙성시키죠. 그러면 맛이 구석구석 스며들어요. 한 번에 30병쯤 만드는 건 어렵지도 않아요.”
그녀의 말투에는 평생 새벽녘부터 해 질 때까지 일을 놓지 않고 살아온 사람 특유의 근면함이 배어 있다. 나는 패니의 추천으로 체스 파이를 한입 베어 문다. 이 달콤한 파이의 이름은 ‘치즈cheese’ 혹은 ‘상자chest’에서 변형된 것 같은데, 후자는 냉장이 필요 없던 시절 파이를 보관하던 장소를 가리킨다. 체스 파이는 굳힌 커스터드와 스펀지 케이크의 중간쯤 되는 질감으로, 버터 향을 풍기는 부드러운 크러스트에 포근히 감싸여 있다. 설탕, 달걀, 밀가루, 버터, 바닐라, 약간의 버터밀크 등 몇 가지 재료만으로 만들었지만 크리미하고 풍부한 맛을 낸다. 게다가 이가 살짝 저릴 만큼 달콤하다. 그리고 패니의 설명이 이어진다.
“초기 개척자들이 당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재료들이죠. 체스 파이는 확실히 남부 음식이에요. 하지만 아미시 레시피 대부분은 훨씬 더 오래전, 유럽, 그중에서도 주로 독일에서 유래했어요.”
1700년대 아미시 가문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독일, 스위스, 프랑스를 떠나 북아메리카에 정착했다. 그들 문화는 미국 땅에서 발전했지만, 음식의 뿌리는 지금도 확실히 유럽적이다. 요더스 홈스테드 마켓의 모든 통로를 따라 걷다 보면 그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음식에 풍미가 살아 있는 걸 좋아해요. 독일 사람들처럼 사탕, 파이, 케이크를 많이 만들죠.”
떠나기 전, 그녀는 오븐에서 갓 구워낸 따끈하고 달콤하게 끈적이는 시나몬롤 한 봉지를 건넨다. 마치 다정한 할머니가 건네는 작별 인사처럼.

(왼쪽부터) 서머타운에서 제공하는 바비큐. 에트리지의 아미시 창고와 잡화점.

이 정착촌은
여전히 세상과
분리되어 있지만,
그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에트리지의 빈티지 트럭.

마차 위에서
에트리지에 가까워지자 나는 확실히 아미시 컨트리의 심장부에 들어섰음을 느낀다. 길가에는 노란색 ‘말·마차주의’ 표지판이 반짝이고, 고속도로 옆으로는 아미시 마차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마련된 전용차선이 길게나 있다. 나는 오웬 루이스Owen Lewis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는 아내 조디와 함께 2024년 말, 아미시 컨트리 마차 투어Amish Country Wagon Tours를 설립했다. 이 부부는 아미시가 아니며, 아미시 사람들이 외부인을 일컫는 표현대로 ‘잉글리시English’다. 하지만 공동체와 함께 자라며 가까운 이웃으로 지냈고 지금은 아미시 컨트리를 누비는 마차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마차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자 오웬이 운전석에서몸을 돌려 말을 건다.
“이 공동체는 미시시피와 오하이오에서 비옥한 농지를 찾아온 다섯 가구에서 출발했어요.”
그가 설명하는 동안 우리는 패널 외벽으로 둘러싸인 농가 두 채를 지나친다. 이 집들에는 여러 세대가 함께 살고 있었고, 조부모는 뒤편에 있는 ‘다우디 하우스dawdy haus’라 불리는 별채에서 지내고 있었다. 앞마당 빨랫줄에는 수수한 파란 작업 셔츠와 검은 바지, 흰 앞치마가 색깔별로 가지런히 집게에 고정된 채 바람에 살랑거린다.
우리는 녹슨 붉은빛 헛간 옆에 마차를 세운다. 그곳에서는 시끌벅적한 아이들 몇 명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리고 있었는데, 따뜻한 계절의 아미시 사람들답게 모두 맨발이다.
“그들은 펜실베이니아 더치어, 그러니까 독일어 계통 언어만 써요.”
오웬이 집에서 사용하는 독일계 방언에 대해 알려준다. 그는 아미시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영어를 배우지 않고, 단일 교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정규 교육도 대개 14세에 끝난다고 설명한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오웬이 잠시 생각에 잠기듯 덧붙인다.
“아미시는 우리처럼 사회에서 성공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가족을 잘 돌보고 소박한 삶을 살고 싶어할 뿐이죠.”
다음으로 들른 아미시 집의 현관에서 나는 구운 견과류가 듬뿍 박힌 벌집 모양 캔디인 땅콩 브리틀(땅콩 캐러멜) 한 봉지를 산다. 슈퍼마켓에서 흔히 보는 야박한 얇은 땅콩 브리틀이 아니라, 카드 한 벌 두께만큼이나 두툼한 덩어리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치아 사이에 기분 좋게 달라붙어 좋아하는 노래의 마지막 음처럼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는 햇빛이 반짝이는 시골길 끝에 자리한 제이콥 진저리치Jacob Gingerich의 농장이다. 소박한 나무 창고는 작업장이자 작은 상점 역할을 한다. 제이콥은 이곳에서 정성을 들여 하나하나 손으로 제작한 장례용 나무 관을 판매한다. 그는 막 밭에서 돌아온 듯 아직도 고삐를 손에 쥐고 있고, 말이 끄는 그의 수레에는 오이, 양파, 비트가 잔뜩 실려 있다.
“오이를 너무 많이 키웠더니 귀에서 튀어나올 지경이에요.”
그가 웃으며 말한다. 제이콥은 여덟 아이의 아버지인데, 그중 두 아이는 마차 위에 올라타 아버지처럼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기울여 쓰고 있다.
“이거 하나 먹어보세요.”
그가 몇 분 전 덩굴에서 막 따온 절임용 오이를 내게 건넨다. 나는 울퉁불퉁한 껍질을 베어 물며 아삭하고 맑은 여름의 맛을 음미한다. 바삭한 빵 한 조각과 함께 느긋한 오후 시간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왼쪽부터) 서머타운의 요더스 홈스테드 마켓 현관에 서 있는 패니 요더.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여러 경험 가운데 하나인 아미시 농부들의 경매.

나는 오이를 베어 물며 아삭하고
맑은 여름의 맛을 음미한다.
바삭한 빵 한 조각과 함께
느긋한 오후 시간을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느긋하고 단순한 삶
아미시 컨트리를 둘러보는 방법이 꼭 마차 여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 관광청에서 최근 셀프가이드 드라이브 지도를 발간했는데, 무료로 다운로드하거나 대부분 상점에 비치되어 가져가면 된다. 이 지도는 170곳이 넘는 아미시 소유의 농장과 공방을 연결해주며, 그곳에서 아미시들이 직접 만든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다.
나는 집집마다 현관 앞에 놓인 접이식 나무 탁자에 이 지도가 펼쳐져 있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도로변에 세워진 손그림 표지판들도 판매 중인 물건을 친절히 알려줘 길을 따라가기가 놀랄 만큼 쉽다. 강아지, 잼과 젤리, 장례식 관, 아기용 그네 세트, 밀대, 오크라 절임, 토끼, 가죽 챕스 등 표지판에 적힌 목록은 마치 유쾌하게 뒤섞인 쇼핑 목록 같다.
나는 몇 시간 동안 이 경로를 따라 달리며 향긋한 염소젖 비누와 바닥에 제조자의 이름과 주소가 손글씨로 적힌 벤트우드 짜임 핸드백을 획득했다. 아미시 컨트리에서의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마지막으로 플로보이 농산물 경매장Plowboy Produce Auction에 들른다. 이곳은 4월부터 10월까지 일주일에 세 번 열리는 야외 시장이다. 콧김을 뿜는 말들이 검은색 마차에 매인 채 줄지어 선 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 자갈이 바퀴 아래서 서걱거리며 부서진다. 그 옆에는 과일과 채소가 담긴 골판지 상자를 가득 싣고 온 픽업트럭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긴 수염이 멜빵에 스칠 듯한 아미시 농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운데 경매인의 흥겨운 노랫말 같은 외침이 공중을 가득 채운다. 이 경매는 ‘잉글리시’인 수전 에이어스 켈리Susan Ayers Kelley의 구상에서 시작됐다. 그녀는 이곳의 농산물을 아주 높이 평가해 처음에는 단순히 그것을 사러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에트리지의 아미시들은 현대 기술을 거의 사용하지 않다 보니 사업을 확장하는 데 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자 2006년, 수전이 나섰다. 그녀는 농부들과 이제는 15개 주에서 이들의 수확물을 사들이기 위해 찾아오는 셰프와 도매상들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제가 처음 왔을 때 이렇게 말했죠. ‘여러분이 재배만 해주세요. 파는 건 제가 책임질게요’라고요.”
수전은 짙은 남부 억양으로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말한다. 그녀는 정말로 그 약속을 지켰다. 지금 플로보이 농산물 경매는 매 재배 시즌 약 200만 달러(약 29억원)의 농산물을 거래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의 아미시 농산물은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들의 새하얀 식탁보 위에 오른다. 주먹만 한 복숭아가 가득 담긴 바구니들을 배경으로 나는 오늘 두 번째 제이콥 진저리치를 만난다.
원래 오하이오 출신 낙농업자였던 그는 에트리지로 이주한 뒤 자신의 농장을 놀라울 만큼 생산적인 규모로 키워냈다.
“오늘만 해도 토마토와 오이 50상자를 팔았어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 뒤 이런 일은 흔하다고 덧붙인다. 생산량을 더 끌어올려야 할 때면 말 다섯 마리를 나란히 세워 밭을 갈기도 한다.
“여기서 판매되는 농산물의 약 99%는 우리가 서 있는 이곳부터 반경 15km 안에서 아미시들이 직접 재배한 것들이에요.”
수전은 자녀 17명을 자랑스레 늘어놓던 한 농부와 야기를 나누다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웃집에는 자녀가 18명이나 된다고 알려준다.
“경매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어디서 오는지 보면 정말 놀라워요. 하와이, 유럽, 뉴질랜드 등 정말 온 사방에서 찾아오죠. 관광객으로 꽉 찬 버스가 통째로 들어올 때도 있어요.”

한 아미시 농부가 말이 끄는 쟁기로 밭을 갈고 있다.

내슈빌을 찾는 방문객이 늘어나면서 이곳까지 자연스러운 파급 효과가 이어지고 있다.
“내슈빌에서 워낙 가까우니까요. 사람들이 직접 차를 몰고 아미시 컨트리를 보러 오고 싶은 거예요.”
뮤직 시티Music City로 돌아가는 길, 황금빛 귀리밭은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고층 빌딩들이 메워간다. 네온사인은 홍키통크 술집 밖에서 반짝이고, 허름한 다이브 바에서는 음악이 쏟아져 나온다. 신부 들러리들이 펍바이크를 타고 지나가며 환호성을 지르고, 손에는 술잔을 든 채 분홍색 카우걸 모자가 위아래로 흔들린다.
불과 90분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는 1900년대 초에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 둔 듯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는다. 테네시주 아미시 컨트리의 이 농촌 공동체는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꿈꾸기만 하는 일을 실제로 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의 거침없는 흐름을 잠시 멈춰 세우는 일 말이다.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3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글. 조이 고토ZOEY GOTO
사진. 셸 로이스터SHELL ROY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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