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FROM SPRING
나물리에, 곤드레에 빠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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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호

‘곤드레 만드레’. 술에 잔뜩 취한 상태를 일컫는 이 말은, 바람에 흔들리는 곤드레의 모습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영월과 정선에는 술이 아닌 곤드레의 맛과 향에 취한 이들이 있다. 그들이 식탁 위에 펼쳐 놓는 봄의 정취를 좇아본다.

(왼쪽부터) 두메브런치의 곤드레 오일 파스타. 별애별빵1984의 곤드레 쌀 카스텔라. 옹이밥상의 곤드레 한상 정식. 곤드레 꽃봉오리.

영월부터 정선까지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을 거슬러 산길을 통과한다. 차창 너머로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다가도, 그늘진 골짜기에 들어서면 여전히 겨울인 양 폭포가 얼어붙어 있다.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이 계절에 봄은 식탁 위로 먼저 마중을 나온다.
제철을 앞둔 봄나물이 하나둘 고개를 내미는 시기. 영월과 정선 지역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곤드레다. ‘고려엉겅퀴’의 강원도 방언인 곤드레는 해발 700m 이상 고지대에서 자생한다. 능선이 물결처럼 이어지는 영월과 정선의 특산물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흔히 곤드레를 독특한 향이 없어 호불호는 없지만 특징도 없는 식재료라 여기곤 한다. 그러나 이 봄나물은 강원 산골 마을의 계절을 요리하는 이들의 손길을 통해 은은한 향을 더하는 허브로, 몸을 보하는 약초로, 밥상 위에서 당당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그렇게 봄이 오기 전 봄의 맛을 탐닉하기 위한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남은 가장 강렬한 잔상은 여행 중에 마주친 고요히 흐르는 동강이나 하늘과 맞닿은 산세가 아닌, 입안에 은은히 머문 곤드레의 향미와 그것을 음식에 담아내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MENU 1. 토속적 재료의 요즘 맛


마르게리타 피자와 오일 파스타 모두 곤드레가 재료로 사용되었다.

이른 아침, 영월 청령포엔 아직 걷히지 않은 물안개가 자욱하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주요 배경이자 촬영지인 단종의 유배지로 향하기 위해 사람들이 나룻배를 기다리고 있다. 한적하던 시골 마을에 부쩍 활기가 감돈다. 인근에 자리한 두메브런치도 마찬가지. 아이를 안은 동네 주민부터 캐리어를 끈 여행자까지 하나둘씩 오픈 시간에 맞춰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이곳을 운영하는 엄유리 대표의 마음은 가게의 위치만큼이나 청령포와 긴밀하게 닿아 있다. 그가 나고 자란 마을이 바로 단종이 유배되었을 때 충신들이 거주했다는 방절리이기 때문. 유해진이 분한 고을 촌장 엄흥도와는 같은 종씨이기도 하다. 촬영지로 등장한 장소들이 어릴 적 뛰놀던 비밀 장소였다는 그녀는 성인이 되어 마을을 떠나 전국을 돌며 요리를 배웠지만, 마음 한편엔 늘 고향 영월을 품고 지냈다고 한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산책하기 좋은 골목과 조용히 흘러가는 산골의 시간, 무엇보다 이곳의 산과 계곡이 길러낸 식재료가 그리웠음을 고백한다.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엄유리 대표가 영월의 식재료를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리법도, 재료도 저에게 익숙한 것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양식 기법에 한식 재료를 가미하게 됐죠.”
올리브와 애호박, 방울토마토와 곤드레. 재료만 보고는 어떤 요리가 탄생할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외지인들에게 곤드레는 촌스러운 재료라는 선입견이 있고, 현지인들에겐 너무나 일상적인 재료라 새로운 시도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했죠. 어떻게 새로운 맛을 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엄유리 대표가 곤드레 페스토를 한 스푼 뜨며 말을 잇는다. “그러던 차에 영월군의 도움으로 강레오 셰프에게 컨설팅을 받게 되었고, 그 덕에 곤드레의 부드러운 질감과 은은한 향을 살린 페스토가 탄생하게 된 거예요.”
가게 문을 연 지 3년이 된 지금, 곤드레를 넣은 오일 파스타와 마르게리타 피자는 현지인과 외지인이 입을 모아 찾는 시그너처 메뉴가 되었다. 완성된 음식은 나물이라곤 전혀 엿볼 수 없는 익숙한 모습이다. 오직 코를 스치는 곤드레의 향만이 재료로 사용되었음을 알려주는 듯싶다. 푸실리 면과 토마토가 어우러진 파스타 속에서는 애호박과 곤드레가 몸을 숨기고 있고, 마르게리타 피자는 토마토와 치즈의 익숙한 향으로 시작해 곤드레 페스토가 닿는 지점에서 봄의 향기가 입안 가득 터진다. 이 맛이 진해질 때면 영월에 진정한 봄이 당도했음을 알게 된다.

(왼쪽부터) 도우 반죽의 모양을 잡는 두메브런치 엄유리 대표. 오븐에서 나온 곤드레 마르게리타 피자는 곤드레 향이 물씬 풍긴다.

"곤드레는 ‘계절의 알람’
아닐까요? 시장에
곤드레가 깔리고 밥상
위에 곤드레 나물이
오르기 시작하면
어느덧 봄이 왔음을
알 수 있으니까요.
제게는 곤드레 냄새가
곧 봄의 향기예요."

도보 여행 길 3
영월에서 나고 자란 엄유리 대표가 추천하는 영월 지역의 걷기 좋은 코스.

산꼬라데이길
강원도 사투리로 ‘산골짜기’를 뜻하는 ‘산꼬라데이’. 옛 광부들의 삶의 흔적과 산골 마을 풍경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길이다. 해발 700m에 위치한 ‘구름이 모이는 마을’ 모운동과 과거 석탄을 나르던 운탄고도의 흔적 등 총 8개 코스, 27.5km 길 곳곳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뉴트로드
영월읍의 고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도보 여행 코스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읍내 구석구석을 연결한다. 총 3개의 길이 있으며, 자연이 물씬 느껴지는 물무리골 생태습지에서 시작해 단종의 능인 장릉을 거쳐 읍내 맛집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2km 길이의 1번 길을 추천한다.

단종 유배길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었던 역사를 따라 걷는 길이다. 총 3개 구간, 43km로 이루어져 있으며, 육지 속의 섬이라고 불리는 유배지 청령포와 소나무 숲이 울창한 왕릉 장릉을 포함해 영월의 깊은 산세와 역사를 차분히 돌아보기 좋다.

 


MENU 2. 장인이 구워내는 따뜻한 빵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곤드레 버터떡. 사계절 내내 곤드레 향을 빵에 담을 수 있도록 고안한 곤드레 동결건조 방식. 오븐에서 빵을 꺼내는 이호상 제빵사.

시간과 재료 배합의 정교함 때문에 ‘베이킹은 과학’이라 일컬어지지만, 이호상 제빵사가 빵을 굽는 모습은 과학자보다는 마법사에 더 가깝다. 40년 넘게 제빵사의 길을 걸어온 그는 쌀가루와 달걀, 동결 건조한 곤드레 가루를 노련하게 섞어 순식간에 반죽을 빚어낸다. 반죽이 오븐에 들어간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타이머가 울리고, 그가 말한다. “연기가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오븐이 열리고 하얀 증기가 걷히자 초록을 머금은 카스텔라가 모습을 드러낸다. 먹음직스럽게 부풀어 오른 빵은 버터의 고소함, 설탕의 달콤함, 그리고 나물의 구수한 향기가 뒤섞인다. 어느새 침이 고인 것을 알아챘는지 이호상 제빵사가 카스텔라 한 조각을 건네준다. 곤드레 쌀 카스텔라의 첫인상은 ‘따뜻함’ 그 자체였다. 오븐의 열기 때문만은 아니다. 빵맛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해 온 제빵사의 진심이 온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호상 제빵사에게 빵은 생계 수단을 넘어 일상의 즐거움이자 삶을 지속하는 원동력이다. 1984년부터 빵을 만들기 시작해 대부분 시간을 제빵실에서 보낸다는 그가 곤드레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뇌경색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몸에 좋은 빵을 만들기로 결심했고, 단백질과 칼슘, 비타민이 풍부한 곤드레를 선택했다. 사계절 내내 맛을 유지하기 위해 곤드레를 동결 건조하는 방식을 최초로 고안하며 연구를 거듭했다. 그 결과 달콤한 카스텔라부터 앙금이 가득한 만주, 쫀득한 식감의 치아바타 등의 곤드레 빵이 탄생했다.
물론 그의 빵집 매대엔 클래식한 빵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SNS에서 화제가 되는 트렌디한 메뉴가 보이면 곤드레를 접목하는 도전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인스타그램을 보니 ‘버터떡’이 인기더군요. 레시피를 찾아보고 시뮬레이션과 실험을 거쳐 저만의 ‘곤드레 버터떡’을 만들었습니다.” 이호상 제빵사가 버섯 모양의 초록색 빵을 내보이며 설명을 덧붙인다. “사람들은 곤드레를 토속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럴만도 하죠. 강원도의 상징인 감자가 1800년대가 되어서야 국내에 들어온 반면, 곤드레는 그 이전부터 동네 사람들의 주식이었으니까요.”
지역 식재료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가는 그는 영월동강 곤드레영농조합과 손잡고 곤드레는 물론 옥수수, 다래, 딸기 등 지역 농가가 재배하는 농산물을 빵에 접목하고 있다. 덕분에 별애별빵1984의 빵에는 영월의 계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품은 여름 옥수수의 구수함부터 농익은 가을 다래의 진득한 단맛, 붉게 피어오른 겨울 딸기의 선명한 향기, 그리고 모든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곤드레의 소박하고도 향긋한 풍미까지도.

별애별빵1984에는 곤드레를 재료로 한 빵들이 다양하다.

"곤드레는 맛과 건강을
모두 잡은 ‘올라운더
식재료’랄까요? 저
또한 몸과 마음이 힘든
상황에서 곤드레 빵을
만들며 치유했죠. 지금은
건강한 맛을 빵에 담아
전달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어요."

영월의 맛
영월에서 난 재료들을 품은 별애별빵1984의 빵들.

곤드레 쌀 카스텔라
곤드레와 쌀가루로 만든 카스텔라. 유화제를 넣지 않아 소화가 잘 되며, 많이 먹어도 입이 텁텁하지 않다.

석탄떡빵
영월의 검은콩과 흑미를 넣은 쫄깃한 빵으로, 아침 식사 대용으로 좋다. 쫀득한 식감과 고소한 콩의 조화가 매력적.

영월초코파이
영월에서 수확한 다래로 잼을 만들어 넣은 빵. 초콜릿 코팅과 견과류의 고소함, 싱그러운 다래잼이 조화를 이룬다.

 

(왼쪽부터) 이른 아침 영월 청령포의 모습. 영월에서 정선으로 향하는 길, 나리소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강의 모습.

 


MENU 3. 밥상 위에 펼쳐지는 봄의 변주


(왼쪽부터) 곤드레 나물과 곤드레 오일을 넣은 곤드레밥. 옹이밥상은 정선 지역의 특산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샐러드와 김밥, 생선구이, 들깨탕,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갓 지은 밥까지. 한 상 가득 음식이 차려지면, 숨은 ‘곤드레’ 찾기가 시작된다. 본형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는 곤드레 나물은 물론, 샐러드 위에 올려진 것부터, 김밥 속에서 초록 빛깔을 내는 것까지 다양하다. 언뜻 보면 평범한 한정식 같지만, 곤드레를 하나둘 찾아내다 보면 왜 메뉴의 이름이 ‘곤드레 한상 정식’인지 실감하게 된다. “곤드레는 참 묘해요. 향이 강하지 않아 주연이 되기는 힘든데, 어디에 들어가든 제 몫의 존재감을 드러내죠. 호불호가 없는 식재료라 어떤 요리와도 잘 어우러집니다.” 옹이밥상을 운영하는 신숙경 주인장의 말처럼 상에 차려진 음식은 눈으로 볼 때보다 맛을 볼 때 곤드레의 유무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봄나물이 지닌 생동감은 어떤 재료를 만나도 숨죽이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월에서 동강을 거슬러 정선으로 오는 동안, 물줄기는 조양강으로 몸을 바꾸더니, 이내 이곳 가게 앞을 흐르는 골지천에 이른다. 아우라지 나루터가 있는 이 마을에선 자연스레 ‘정선 아리랑’의 구절이 떠오른다. 토착 민요가 으레 그렇듯 가사 변주가 많지만, 대부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라는 도입부와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주게’라는 가사가 공통된다. 오래전 이 땅에선 고려 선비들이 고향 땅인 개성을 그리워하며 지냈지만, 옹이밥상의 주인장은 도시에서 고향땅인 정선을 그리워하다가 이곳으로 돌아왔다. 농막을 고쳐 식당을 연 뒤 자신이 그리워했던 정선의 맛을 식탁 위에 올리고 있다 .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단연 좋은 재료다. “음식 맛의 90%는 재료가 낸다고 하잖아요? 곤드레를 포함한 식재료 대부분이 정선에서 난 것들이에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와 함께 직접 농사를 지었죠. 지금은 원활한 수급 문제로 지역 농장과 계약해서 사용 중이에요.”
나머지 10%는 손맛으로 채워진다. 삶고 찌는 전통적인 방식부터, 곤드레로 버터나 오일을 만드는 실험적인 방식도 과감하게 시도한다. 우연히 탄생한 조리법도 있다. “아이들 간식으로 토스트를 만들어 주다 실수로 버터 위에 곤드레를 떨어뜨렸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때때로 위대한 발명품은 실수로 만들어진다. 바삭한 김자반 같으면서도 특유의 풍미가 살아있는 곤드레 자반이 그렇다.
이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곤드레밥은 더욱 특별하다. 나물을 넣고 밥을 짓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옥수수밥에 곤드레 나물과 곤드레 오일을 넣고 볶아내는 방식으로 풍미를 완성한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참기름보다 고소한 향기가 밀려온다. 밥을 그릇에 옮겨 담아 간장을 넣고 비비며 너무 기름지지는 않을지, 나물 향이 강하지는 않을지, 혹시 밥 양이 부족하지는 않을지를 생각하며 한술 뜬다. 그 맛은? 밥그릇을 비울 때까지 ‘맛있다!’는 말만 되뇔 뿐이었다. 순식간에 비어버린 그릇을 바라보며 ‘곤드레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봄 내음 물씬 풍기는 이 나물은 그 어떤 식재료보다 강렬하게 마음을 사로잡은 신스틸러니까.

(왼쪽부터) 얼린 곤드레를 손질하는 옹이밥상 신숙경 주인장. 곤드레를 넣은 김밥에 곤드레로 만든 자반을 올린다.

"곤드레는 ‘산골 마을의
변주’라고 생각해요.
변주가 기존 상태를
바탕으로 변화를
주는 연주 방식인
것처럼, 곤드레도
강원 지역에서 나는
봄나물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곤
하니까요."

RECIPE
곤드레 메밀전
집에서 맛보는 정선의 맛.

재료
말린 곤드레 200g, 메밀가루 1컵, 부침가루 1/2컵, 다진 마늘 1/2작은술, 국간장 1작은술, 들기름 1큰술, 식용유 2큰술

만들기
➊ 곤드레는 물에 불린 뒤 1~2cm 크기로 자른다.
➋ 준비한 곤드레에 마늘, 간장, 들기름을 넣고 무친다.
➌ 메밀가루와 부침가루에 물을 부어 섞는다.
➍ 곤드레 나물을 ③의 반죽에 넣고 골고루 섞는다.
➎ 달군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반죽을 떠 넣은 뒤 앞뒤로 노릇하게 굽는다.

 

 

글. 차성민SEONG-MIN CHA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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