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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Heritage
살아 움직이는 서울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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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호

서울의 유산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타인의 삶과 부딪히며 공존해왔다. 궁궐, 의례, 판소리 그리고 그 사이를 스쳐가는 사람들까지. 후지필름이 주관하는 ‘한국유네스코유산 기록프로젝트 - 천 개의 카메라’를 통해 완성된 이 페이지는 사진가 17인의 생동하는 유산에 대한 기록이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 대목수이자 사진으로 우리의 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려온 정명식의 시선에서 포착한 비원의 모습. ©정명식


형태로 남은 시간
서울은 모든 범주의 유산이 공존하는 거대한 박물관 같은 도시이다. 한국유네스코유산 기록프로젝트를 통해 서울의 유형 유산과 그 공간을 채우는 무형 유산의 공존을 기록했다.

©안웅철

한양도성, 시간과 시간 사이를 걷다 by 안웅철
한양도성은 조선 초인 14세기부터 건설된 수도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약 19km의 성곽이다. 작가는 14세기와 16세기가 만나고 다시 그 위에 18세기가 더해지는 모습, 그리고 다시 20세기에 이르러 보수로 더해진 성벽을 다른 소재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으로 해석한다.


 

©백영채, 황순국

창덕궁, 스치고, 겹쳐지는 by 백영채
자연 지형을 이용해 건물을 세운 창덕궁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이 때문에 조선의 왕들이 가장 사랑하고 오래 머물렀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창덕궁을 현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by 황순국
왕릉은 죽은 왕이 머무는 마지막 궁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500년에 걸쳐 능선과 능선이 만나 좋은 기운이 모이는 가장 좋은 땅, 풍수지리로 손꼽히는 자리를 선정했다. 나는 왕릉 가까이에 살면서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주말마다 왕릉을 찾았고 선릉제향, 혜릉제향, 목릉제향, 칠궁제 등 제향을 함께했다.


 

©최재승

풍경 채집: 문화유산의 정수(精髓)를 채집하다 by 최재승
600년 전의 정신과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온 고결한 유산, 그 사이를 흐르는 빛과 공기를 엮어내는 과정이다. 대상이 가진 본연의 형태를 정직하게 응시하며 채집한 이 조형적 언어들이, 우리 유산이 지닌 실재적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소중한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



살아 움직이는 의례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원형을 지켜온,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왕실 의례 유산이다. 여기에 한 명의 가객이 세상의 희로애락을 풀어내는 판소리, 해학과 풍자가 어우러진 탈춤, 그리고 화합의 등불로 이어져 온 연등회까지. 우리의 삶과 호흡하며 공존해온 순간들을 담아냈다.

©유지인

조계사 by 유지인
이 작업은 ‘조계사 내의 시간은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관찰에서 출발했다.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속도와 밀도로 시간을 경험한다. 간절하게 기도하는 이들의 시간은 응축되어 깊어지고,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진우영, ©김동광

대제 宗廟, 나라의 끝과 시작이 깃들다 by 진우영
한 나라의 국시인 의례와 음악이 현재에도 울리는 곳에서 행위자로서 제관의 표정과 뒷모습을 응시한다. 그 시선으로 고귀한 우리 얼의 아름다움을 남겨본다.

판소리는 전염이다 by 김동광
판소리는 특정 시대의 서사에 고정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바뀌고, 시대는 달라지지만, 그 안에서 작동하는 감정의 구조는 계속해서 현재로 이동한다. 판소리는 과거를 재현하는 형식이 아니라, 지금의 감정을 호출하고 공유하게 만드는 살아 있는 언어다.

 

©이수

조선왕조의궤와 처용무 by 이수
〈조선왕조의궤〉는 조선 왕실의 주요 행사를 준비부터 시행, 사후 처리까지 기록한 문서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왕조의궤〉에는 연향 장면과 함께 잡귀를 쫓는 궁중 무용 처용무도 담겨 있다. 처용무의 생명력을 가능하게 한 의궤의 기록이 있고, 의궤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전승의 노력이 있으니, 오랜 세월의 연결을 넘어 공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간의 틈을 잇다
궁궐, 사찰 등 전통 목조 건축의 설계부터 시공, 감리까지 전 과정을 지휘하는 목수의 우두머리 대목장, 그는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무형의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 전통 기법 위에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며 우리 건축 문화의 뼈대를 지켜가는 장인정신의 상징이다. 서울 도심 속 사찰들 또한 시간을 잇는 공간이다.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영적인 휴식처에서 경험하는 몰입의 순간마다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교차하며 지금에 이른다.

©김경희

봉은사, 고요 속에 피어난 마음 by 김경희
794년 연회국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 ‘공양’이 제물을 올리는 형식을 넘어 자신의 가장 귀한 시간을 내어 마음을 봉헌하는 일임을 말하고 싶었다. 봉은사의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을 정직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고요는 비어 있음이 아니라, 피어남의 다른 이름이다.

©유지인

같은 장소에 놓인 우리는 과연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까.
– 유지인

©최민아

시선이 닿는 곳, 마음의 정원 by 최민아
천년의 시간을 품은 이곳은 기도와 저항과 재건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626년을 이어온 수륙재는 세계의 유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나는 그 흐름 속에 서서 셔터를 눌렀다.

©박재훈

대목장 by 박재훈
나는 국가유산청 복원정비과 직영보수단에서 근무하는 대목수다. 일을 하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단순한 생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통 건축을 다루는 대목수 선배님과 같은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겹쳐지는 시간
서울 곳곳에서 시간의 층위를 발견한다. 왕이 거닐던 궁궐을 노부부가 산책하고, 고궁엔 매년 봄마다 새로운 꽃이 피어난다. 이 프로젝트는 어쩌면 결국 이 도시를 생동하게 만드는 지금을 기록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최재승, ©노호정

나는 오랜 시간 ‘풍경 채집’이란
주제로 도시의 이면을 기록해 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간의 채집 여정 중
가장 준엄하고도 찬란한 소재로 기억될 것이다.
– 최재승


피맛골 by 노호정
피맛골과 그 주변의 창경궁, 창덕궁, 종묘 일대는 역사적 공간으로서 형태와 위치가 크게 변하지 않은 채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공간은 과거의 도시 구조를 현재까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황정희

한복과 우리, 그리고 창덕궁 by 황정희
한복을 입고 궁을 누비는 것. 이는 궁궐 풍경의 일부로 녹아들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 되어줄 터이다.


오늘과 내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끊임없이 역동하는 도시의 면면을 살펴본다. 그리고 연속성을 지닌 시간 속에서 완벽히 한순간을 포착하며 서울의 헤리티지를 재구성했다.

600년 동안 전통을 지켜
제례를 올렸던
전주이씨종약원 전례부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당신들이 존재하기에 내가 존재한다.
– 황순국

©황순국, ©김소연, ©백동현

동궐의 고목 by 김소연
신성한 장소를 늘 푸르게 하는 구 선원전 앞 측백나무, 승화루 앞 우산을 펼친 듯 둥그런 반송 무리, 몇 해 전 폭우로 큰 가지를 잃고도 여전히 멋진 후원의 밤나무, 인정전 뒤편을 지키는 든든한 기개의 회화나무까지. 이들은 각자의 시간과 이야기를 품은 채 동궐의 풍경이 되어 우리를 맞이한다.

동궐에서 종묘까지: 살아 있는 역사의 기록 by 백동현
궁궐 담장 너머 현대식 건축물과 공존하는 풍경, 그리고 그 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아름다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이 작업은 피맛골과
궁 주변 공간을 중심으로,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물리적 구조와
그 안에서 변화하는 사람들의
현재를 함께 담아낸 기록이다.
– 노호정 

©노호정

MINI INTERVIEW 김보향 후지필름 마케팅 팀장

<천 개의 카메라>는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사진을 통해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고, 내일에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공익 프로그램입니다. 2023년 ‘서울 기록 프로젝트’ 1기를 시작으로 약 8주간의 이론과 실기 교육을 진행해 왔고, 참여자들의 작업은 전시와 출판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완결성을 가집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서울 기록 프로젝트를 3개월 단위로 운영하며 기록의 범위를 점차 확장해 왔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2025년부터는 지역 기반 사진가들과 함께하는 ‘한국유네스코유산 기록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의 멘토링과 궁능 유적을 복원하는 대목수이자 사진가 정명식의 참여를 통해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를 보다 높였습니다.

‘서울의 유산’을 어떤 시선으로 기록하고자 했나요?
지역 사진가와 전문 사진가들이 함께 참여해 문화유산을 입체적으로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지역 사진가들이 오랜 시간 축적해온 관찰과 애정에 주목했죠. 이는 유네스코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로, 유산의 시간성과 삶의 맥락을 드러냅니다.

이 프로젝트가 기록한 유산은 앞으로 어떻게 이어져야 할까요?
일회성 결과에 머무르기보다, 지속적인 축적과 확장을 통해 살아 있는 기록으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 기수마다 서로 다른 시선과 해석이 더해지며 기록은 점차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이러한 결과물은 전시를 넘어 국내외 사진 페스티벌로, 향후에는 유네스코와의 협업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MORE INFO
한국유네스코유산 기록프로젝트 4기
〈서울 1 신성한 제의와 동쪽의 궁궐〉
기간: 2026년 4월 28일~5월 9일
장소: 공간풀숲


 

글. BO-YEON LIM
사진. 정명식, 안웅철, 백영채, 황순국, 최재승, 유지인, 진우영, 김동광, 이수, 김경희, 최민아, 박재훈, 노호정, 황정희, 김소연, 백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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