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지애나주 남부 지역을 닷새 동안 여행하며 케이즌 카운티Cajun County 곳곳을 누빈다. 어둠에 잠긴 늪지대와 아름다운 유럽풍 건축물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검보 한 그릇부터 황소개구리 튀김까지 지역 별미를 파는 소박한 카페가 있는 세상이다.
늪지대 같은 루이지애나의 바이유bayou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향하면 마치 꿈속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공기는 묵직하게 내려앉고, 햇살은 한층 부드러워지며, 지평선은 습지와 하늘의 경계가 흐릿하게 번진 듯하다. 툭 튀어나온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진흙 깊숙이 뿌리를 내린 채 서 있고, 선사시대 생물체처럼 생긴 펠리컨이 탁한 수면 위를 낮게 스친다. 마치 다른 세상 같은 땅에서 케이즌 문화는 고집스러우면서 유쾌한 에너지로 살아남았다. 오늘날 캐나다에 해당하는 아카디아Acadia에 거주했던 프랑스계 주민들은 영국과의 영토 분쟁을 피해 18세기 루이지애나로 이주했고 이들을 케이즌이라 부른다. 이들은 물이 많은 이 지역의 환경에 적응하며 독창적인 방법으로 사냥과 낚시, 농사를 하면서 생활했고 이들의 지혜로운 생존 방식은 곧 이 지역의 정체성이 되었다.
루이지애나 동쪽 도시 레이크 찰스Lake Charles에서 출발하면 하루 안에 뉴올리언스에 닿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이 지역을 온전히 여행하는 방식은 아니다. 속도를 늦추고 현지인들의 느긋한 리듬에 맞춰 움직이자. 그리고 올 때는 배고픈 상태이면 좋겠다. 프랑스, 스페인, 아프리카,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카리브해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이곳의 가정식을 만날 수 있으니까.
루이지애나의 늪 같은 강줄기를 따라 여행하는 5일간의 여정은 이 지역의 독특한 맛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몰입형 습지 투어, 몸을 절로 흔들게 하는 케이즌 음악, 현대 부두voodoo 여왕에게 배우는 흑마술까지 강 굴곡을 돌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기다린다. 이 모든 경험은 바이유 삶의 느긋한 리듬에 맞춰 흐른다.
DAY ONE
소탈한 음식과 케이즌 음악
출발지: 레이크 찰스
루이지애나 최남단에서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자신이 태어난 마을 근처에서 계속 살아가고 일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마마 리타Mama Reta의 삶만큼 아름답게 대칭을 이루는 경우도 드물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루이지애나에서도 손꼽히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다.
“이곳은 저의 어머니 집이었어요. 저는 여기서 태어났죠.”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냉장고 문을 손으로 쓸며 뒤쪽을 가리킨다. “1962년에 산파가 바로 저기서 저를 받았어요.” 그녀가 머리에 쓴 붉은색 머릿수건과 밝은 미소가 주방을 환하게 밝힌다.
마마 리타는 2022년, 자신이 살던 집을 전면 개조해 드라이브스루 전문 식당으로 탈바꿈했다. 크리올과 케이즌 그리고 솔푸드가 골고루 포함된 메뉴가 공개되자마자 멕시코만에서 약 48km 떨어진 작은 마을인 레이크 찰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일요일 낮이면 예배를 마친 가족 단위 손님들이 그녀의 대표 메뉴인 닭튀김과 레드빈을 먹으러 찾아온다. 운이 좋다면 일곱 가지 치즈를 듬뿍 넣은 부드러운 마카로니도 맛볼 수 있다.
주방은 오전 내내 장시간 천천히 구워낸 바비큐 립의 냄새로 가득하다. 마마 리타가 카운터에 올려진 스티로폼 박스 하나를 내 쪽으로 밀어준다. 안에는 노릇하게 잘 튀겨낸 닭고기가 가득 담겨 있다. 살짝 매콤하고 짭조름한 반죽을 입힌 닭튀김을 한입 베어 물면 살코기가 뼈에서 아무 저항 없이 부드럽게 분리된다.
“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다 이런 음식을 먹고 자랐어요. 동부콩하고 익힌 양배추, 오크라, 옥수수빵을 함께 먹었죠.” 내가 닭튀김을 보고 감탄하자 마마 리타가 말한다. 하지만 두터운 단골 고객층을 만든 비결은 단순히 남부 음식만은 아니다. “제가 알려찰스드릴게요. 비밀 재료는 바로 사랑이에요.” 그녀가 수제 고구마파이를 건네며 덧붙인다. “마마 리타의 키친Mama Reta’s Kitchen에 오면 그 맛을 느낄 수 있어요.”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나니 케이즌의 삶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이 지역 방언은 여전히 공동체 안에서 살아 숨 쉬며, 특히 바이유에서 널리 불리는 옛 노래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레이크 찰스 시내에서 LP판부터 골동품까지 다양한 옛 물건을 취급하는 파노라마 뮤직 하우스에도 그런 음악이 흐른다.
빨간 벽돌 건물의 아이비 두가스 밴드Ivy Dugas Band의 댄스홀을 찾았을 때는 토요일 케이즌 공연이 막 끝난 뒤였다. 신명 나는 아코디언과 경쾌한 바이올린, 신나는 케이즌 프랑스어 가사가 어우러져 관객들의 발을 절로 구르게 만든다. 납작한 모자를 쓰고 10키 아코디언을 멘 크리스 밀러Chris Miller가 무대 옆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케이즌 음악에는 포크와 블루스, 카리브해와 아카디아 프랑스풍 음악이 섞여 있어요.” 그가 설명한다. 가슴팍에 은색 빨래판을 매단 연주자를 가리키며 덧붙인다. “저건 흑인 음악에서 유래된 자이데코zydeco에 쓰이는 악기예요.”
짧게 아코디언을 연주하고는, 크리스가 말을 잇는다. “케이즌 음악은 미국에서도 이 작은 귀퉁이 땅에서만 탄생할 수 있었어요. 지금 들리는 이 소리가 바로 남부 루이지애나라는 용광로입니다.”
머물 곳: 레이크 찰스 역사 지구에 자리한 앤트 루비Aunt Ruby는 1911년부터 남부 특유의 따뜻한 환대로 투숙객을 맞아온 호텔이다. 고풍스럽게 꾸며진 6개 객실에는 모두 흔들의자가 놓인 베란다가 있어 여름밤 아이스티 한잔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조식 포함 1박에 약 12만5000원부터.
SOUNDTRACK
로드트립 플레이리스트
20세기 중반에 바이유 음악을 대중화한 레이크 찰스 출신 밴드인 쿠키 앤 히즈 컵케이크스Cookie and His Cupcakes의 〈마틸다Matilda〉를 플레이리스트 첫 곡으로 저장하자.
델타 블루스와 크리올 음악의 영향을 받아 1950년대 배턴루지에서 탄생한 스왐프 블루스의 전형을 슬림 하포Slim Harpo의 〈아임 어 킹 비I’m a King Be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라이트닌 슬림Lightnin’ Slim의 앨범 〈더 스왐프 블루스 볼륨 원TheSwamp Blues Volume 1〉에는 그의 매끄러운 기타 연주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라플라스LaPlace는 전설적인 트롬본 연주자 키드 오리Kid Ory가 태어난 마을이다. 〈머스크랫 램블Muskrat Ramble〉을 플레이리스트에 더해 초기 재즈의 원형을 느껴보자.
뉴올리언스로 향하는 길에는 루이 암스트롱, 젤리 롤 모튼, 팻츠 도미노의 음악이 빠질 수 없다. 좀 더 현대적인 사운드를 찾는다면 금관악기 연주에 펑크, 힙합, 록, 팝 음악을 결합한 더 솔 레블스The Soul Rebels의 곡을 추천한다. 연주자 클리프 생로랑은 최근 크리올 프랑스어로만 구성된 알엔비 앨범을 발표했다.
DAY TWO
세계의 개구리 수도
레이크 찰스에서 레인까지•80km
레이크 찰스를 뒤로하고 계속 달리다 보면 창밖으로 손으로 그린 표지판을 내건 포보이 샌드위치 가게가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옛 철도 중심지였던 레인Rayne에 가까워질수록 시골 교회와 바람에 흔들리는 드넓은 논이 이어진다. 마침내 ‘세계 개구리 수도’라고 적힌 거대한 옥외 광고판이 여행자를 환영한다.
조용한 마을 중심부, 길모퉁이에는 높이 1.2m의 시멘트로 만든 개구리 동상이 서 있다. 금방이라도 길 위로 폴짝 뛰어들 것만 같은 모습이다. 상점 외벽에는 알록달록한 양서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마을 곳곳에 등장하는 개구리 형상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셰프 로이스 시티 프로그 카페Chef Roy’sCity Frog Café에 들어서면 프랑스인 정착민과 케이즌 관습에서 탄생한 음식에 기반을 둔 마을 유산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점심시간에 몰려든 손님들 속에서 공동 경영자 로버트 크레듀르Robert Credeur가 잠시 짬을 내어 테이블 옆에 선다. 이 레스토랑에서는 황소개구리 다리를 세 가지 방식으로 조리한다. 바삭하게 튀기거나, 양념에 재워 굽거나, 케이즌과 크리올 요리에서 널리 쓰이는 진한 소스인 에투페etouffee와 섞어서 밥과 함께 내놓는다. “셰프 로이스는 45년 동안 꾸준히 양서류 요리를 선보여왔어요.” 로버트가 개구리 다리 튀김 한 접시를 내 앞에 놓으며 말한다.
이 요리는 단순한 영양 섭취를 넘어 새로운 경험에 가깝다. 파리에서 맛봤던 그 가느다란 개구리 다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만화처럼 과장되게 큰 개구리 다리는 통통한 닭다리를 연상시키고, 맛도 그와 비슷하지만 식감이 조금 더 쫄깃하다.
레인 마을에서 개구리 교역이 번성한 것은 19세기 말이다. 프랑스 상인 도나 푸슈Donat Pucheu가 지역 논과 크레이피시 양식장에서 황소개구리를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이 개구리들은 개체수는 적었지만 유럽식 별미로 수요가 많았던 뉴올리언스에 있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공급됐다.
이후 상업적 양식장이 도입됐고 레인의 인구도 증가했다. 1930년대에는 루이지애나 프로그 컴퍼니Louisiana Frog Company가 매년 10만 마리의 개구리를 수출할 정도였다. 1970년대에 들어 산업이 쇠퇴했지만 마을은 여전히 매년 5월이 되면 개구리 축제를 열며 유산을 기념한다. “꽤 중요한 기념일이에요. 거의 50년 동안 매년 축제가 이어져 왔죠. 라이브 음악 연주와 개구리 경주 등 온갖 이벤트가 열려요.” 프랑스 샹파뉴 지방 출신 셰프와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로버트가 말한다.
레스토랑 밖에서 20대 마을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 축제를 자신들의 케이즌 정체성의 일부로 여긴다고 설명한다. “이 지방은 지역 문화가 매우 강해서 어디서든 볼 수 있어요. 저희 부모님은 집에서 이런 음식을 요리하면서 케이즌과 자이데코 음악을 들으셨기 때문에 축제는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이죠.” 빅토리아 펠티에Victoria Peltier가 이야기한다. “축제에 가면 개구리 다리 먹기 대회도 열려요. 작년에 제 사촌이 우승했는데, 체구는 작아도 건장한 성인 남자들을 모두 이겼어요!”
레인에서는 분명 개구리가 공동체를 지탱하는 하나의 기둥이다.
머물 곳: 메종 드메모아는 레이 외곽 호숫가에 자리한 휴양지다. 부두에 서면 밤마다 울려 퍼지는 개구리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다. 최근 새롭게 단장한 네 채의 100년 된 오두막에는 주방이 갖춰져 있고, 매일 아침 푸짐한 케이즌 스타일 조식이 문 앞까지 배달된다. 1박에 약 26만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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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가 아니다
식음료 면에서 주유소는 그다지 기대할 만한 공간이 아니지만, 루이지애나는 예외다. 국도 주변 주유소의 음식 판매대에서 주문할 수 있는 가정식 요리가 워낙 유명해 이들 주유소를 지나가는 드라이빙 루트가 만들어질 정도다. 개스 스테이션 이츠 트레일Gas Station Eats Trail은 루이지애나 서부의 광활한 노 맨즈 랜드No Men’s Land를 가로지르며 21개 주유소를 잇는 총 724km 길이의 여정이다. 레이크 찰스에서 출발해서 그랩 앤 고Grab and Geux에 들러 닭껍질 튀김을 맛본 뒤 크리올 네이처 트레일Creole Nature Trail 인근의 체손스 그로서리Chesson’s Grocery에서 휘발유와 함께 소시지를 보충하자. 훈제 브리스킷으로 이름난 드리더DeRidder의 빅 티켓 비비큐Big Thicket BBQ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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