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도시 코펜하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 배경에는 혁신적인 도시 설계 프로젝트와
아웃도어 활동을 일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자리한다.
“도대체 저게 뭐야?” 배 뒤편에서 누군가 소리친다. 잠시 뒤 우리가 탄 초록색 카약은 파도를 넘어가며 물 위에 뭉쳐진 쓰레기 더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맥주 캔과 와인 병, 테이크아웃 커피 컵, 반짝이는 비닐봉지 사이를 XL 사이즈 남자 수영복 바지가 유령처럼 떠다닌다. 가장 무서운 상상은 그 수영복의 주인이 어쩌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근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코펜하겐의 이너 하버Inner Harbour에는 온갖 부유물과 선박이 뒤섞여 있다. 편의시설을 갖춘 요트와 여객선, 박물관으로 개조한 대형 선박들이 뉘하운Nyhavn 운하에 정박해 있고, 부두에는 카페와 바, 호텔 등으로 영업하는 배들이 줄지어 물결을 따라 움직이며 서로 콩콩 부딪힌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 우리는 쓰레기를 건져 올리고 있다. 부둣가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앞에서 쓰레기가 항구를 벗어나 발트해를 영원히 떠돌지 않도록 막는 일이다.
카약에 오른 지 이제 겨우 한 시간. 하지만 그린카약greenKayak의 창립자 토비아스 웨버-안데르센Tobias Weber-Andersen과 나는 벌써 쓰레기 6kg을 수거했다. 페이퍼섬Paper Island 주변 운하와 브로엔스 스트리트 푸드Broens Street Food 시장을 지나 항만에 이른 결과다. 전경은 놀랍도록 아름답다. 운하를 따라 줄지어 선 웅장한 저택들이 물 위에 무지갯빛으로 반사되고, 왕궁과 오페라하우스 같은 고풍스러운 랜드마크가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완성한다. 도시 전체에서 번영과 풍요, 충만한 삶의 기운이 느껴진다.
코펜하겐은 UN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매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나는 그 이유를 찾아보기 위해 토비아스를 가이드 삼아 이곳을 찾았다. 그가 운영하는 그린카약은 쓰레기를 줍고 그 경험을 SNS에 공유하는 조건으로 카약을 무료로 대여해주는 대담한 관광 실험이다.
처음에는 다소 무모한 발상처럼 보였다. 덴마크의 수도를 찾는 여행자들 대부분이 인어공주 동상, 크리스티안스보르 궁전Christiansborg Palace, 자유분방한 공동체로 유명한 크리스티안스하운Christianshavn 크루즈 투어를 하고 싶어 하지, 녹슨 맥주 캔이나 떠다니는 수영복을 건져 올리기를 기대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를 차리고 8년이 지난 지금, 프로젝트는 탄력을 받고 있다. 약 10만 명의 참가자가 물에서 거의 150톤에 달하는 쓰레기를 수거했고, 그의 아이디어는 유럽의 여러 도시로 확산됐다. 물론 쓰레기를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다. 그럼에도 EU에 따르면 코펜하겐의 수질은 유럽의 다른 도시보다 깨끗하고 수영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해졌다고 평가받는다.
“덴마크는 감사하게도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요. 의료와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죠. 덕분에 환경오염 같은 사회문제에 대해 더 고민해볼 수 있는 여유도 생깁니다.” 유리처럼 맑은 물을 가르며 노를 젓던 토비아스가 말한다. “도시는 시민의 좋은 삶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죠.” 주위를 둘러보면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항구 곳곳의 수영장에서는 건장한 라이프가드가 다이빙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출근길 시민들은 패들보드를 타고 운하를 건넌다. 다른 도심에선 출퇴근 시간이 되면 자전거 도로 위로 수만 대의 자전거가 물 흐르듯 달린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곳은 ‘자전거 뱀’이라는 뜻의 쉴켄슬랑엔Cykelslangen이다. 가스베르크스하우엔 Gasværkshavnen 항구의 수면 위로 200m 길이의 주황색 고가도로가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진다. 코펜하겐은 그저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도시다.
“코펜하겐은 UN 세계행복보고서에서
매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곳이다.
카약 가이드 토비아스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시민들의 높은 환경 의식을 꼽는다.”
인공 산
다음 날, 나는 코펜하겐이 소위 ‘좋은 삶’을 위해 추진하는 또 하나의 기발한 프로젝트를 보기 위해 자전거에 올랐다. 크리스티안스하운 마을을 지나 최근 새롭게 주목받는 아마어Amager 섬에 이르기 위해 동쪽 해안으로 향했다. 한때 도시를 둘러싼 해자였던 스탓스그라벤Stadsgraven에는 고니가 유유히 떠 있고, 얕은 수면 너머로 건물과 가로수가 차츰 모습을 감춘다. 페달을 밟을수록 여러 개의 높은 굴뚝이 햇빛을 받아 점점 더 선명해진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굴뚝은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멀리서는 그 정체를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것이 거대한 공업용 전력 발전소임을 알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 85m 높이의 옥상에 오르자 비로소 그 압도적인 규모가 실감 난다. 거대한 저장고는 햇빛을 반사하고, 해상 풍력발전기는 쉼 없이 돌아간다. 저 멀리에서는 파도가 덴마크와 스웨덴을 잇는 외레순 다리Øresund Bridge에 부딪힌다.
코펜힐Copenhill은 조선소와 중공업 단지 사이에 자리한 작은 낙원이다. 50년 된 낡은 소각로를 대체하기 위해 세워진 이 시설은 현대 건축의 혁신가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가 설계했다. 도심 항만 수영장인 브뤼게섬 하버배스Islands Brygge Harbour Bath를 비롯해 코펜하겐 곳곳의 랜드마크에는 그의 대담한 상상력이 남아 있다. 코펜힐에는 짜릿한 반전이 있다. 도시와 자연, 산업시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려는 철학에 따라 경사진 지붕 위에 초현대적인 스키장을 조성한 것이다. 두 개의 드래그 리프트를 갖춘 슬로프는 물론,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하이킹 코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암벽까지 마련돼 있다. 소각로와 고압 증기 설비 위에 세워진 인공 산에서 스키를 타고 자유롭게 활강할 수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믿기 어렵다. 더 놀라운 점은 내가 운하에서 건져 올린 쓰레기가 이곳에서 전기자전거와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한 재생에너지로 전환된다는 사실이다.
도시가 시민의 삶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그날 저녁, 나는 가까운 수변 지구인 홀멘Holmen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라 반치나La Banchina. 과거 페리 대합실이었던 건물을 개조해 카페와 해수욕장, 해변 바가 어우러진 독특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덴마크 사람들은 차가운 바다와 술에 강한 편이다. 때로는 바이킹의 용맹함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그 기질을 드러내기도 한다.
바비큐와 구운 정어리 냄새가 솔솔 풍기는 작은 해안가에서 사람들은 물속으로 몸을 던진다. 저녁 7시 무렵 항구는 거대한 풀파티장이 된다. 와인 냉장고는 거의 비어가고, 잔잔한 바다 위로 석양이 일렁인다. 해가 수평선 뒤로 기울면서 하늘이 노란빛에서 주황빛, 그리고 분홍빛으로 물든다. 그 풍경을 배경으로 꾸밈 없는 웃음소리가 항구를 따라서 메아리친다.
믿기 어려운 사실
트롤을 찾아다니는 일은 덴마크 사람들의 대표적인 여가 활동 중 하나다. 쓰레기와 폐목재로 트롤 조형물을 만드는 ‘리사이클링 아티스트’ 토마스 담보Thomas Dambo의 작품은 덴마크가 추구하는 지속가능성 철학의 상징이 되었다. 오래전부터 덴마크 민속 문화의 일부였던 트롤을 형상화한 여덟 점의 조각상은 코펜하겐 곳곳에 숨겨져 있다. 토마스 담보는 사람들이 트롤을 찾아 잘 알려지지 않은 동네까지 발걸음을 옮기고 그 과정에서 환경문제에도 자연스럽게 관심 갖기를 바란다. 힌트를 하나 주자면, 노르드하우넨Nordhavn에 있는 ‘캡틴 날레Captain Nalle’ 조각상은 실물 배 한 척을 끌고 있고, 크리스티아니아 중심부에 있는 ‘그린 조지Green George’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trollmap.com
자유로운 질주
다음 날 아침에도 수변은 여전히 기분 좋은 활기로 가득하다. 수영을 하려는 사람들은 운하 옆에 타월을 깔고 자리를 잡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은 부두를 따라 부지런히 지나간다. 나는 사이클링 코펜하겐Cycling Copenhagen 설립자인 크리스티안 호우가르Christian Hougaard와 함께 남쪽으로 달리는 자전거 행렬에 합류한다. 운하를 따라 자갈길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동안 켜켜이 쌓인 덴마크의 역사가 눈앞을 스쳐간다.
자전거 루트는 브뤼게섬의 재개발된 선착장을 지난다. 19세기 후반 아이슬란드가 아직 덴마크의 지배를 받던 시절, 이곳에서는 아이슬란드로 향하는 배들이 출항했다. 우리는 새롭게 정비된 조선소와 1960년대에 사용하던 거대한 씨앗 저장고를 재건축한 세련된 아파트를 지나간다. 쉬드하우넨Sydhavnen 지역을 향해 남쪽으로 달리다 보면 발전소가 자리한 공업 지구를 통과하게 된다. 두 개의 거대한 터빈 사이를 질주하고 공상과학 영화 세트장에서 옮겨온 듯한 붉은 파이프 아래를 지난다. 지형과 건물은 빠르게 모습을 바꾸지만 자전거 위에서 바라보면 도시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코펜하겐에서는 자전거가 필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행복지수를 유지해주죠.” 크리스티안이 브뤼겐 시드Bryggen Syd 수변 지구가 내려다보이는 와인바 안뢰벳Anløbet에 멈춰 서서 말한다. 주민들은 한때 이곳을 ‘물에 빠지는 집Drowning House’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옛 수질정화장이었던 하얀 건물은 경사진 지붕과 테라코타 타일로 마감되어 있어 얼핏 교회를 닮았다. “20분 동안 자전거를 타는 것은 명상과도 같습니다.” 커피를 마시던 그가 말한다. “출근이나 등교 전에 정신을 맑게 하고,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해주죠. 일상의 스트레스 속으로 들어가기 전 스스로를 리셋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것이 내가 코펜하겐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이 도시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유서 깊은 항만과 동화에서 나온 듯한 인어공주상부터 스포츠처럼 즐기는 쓰레기 줍기, 물길을 따라 자전거 타는 즐거움, 심지어 에너지 발전소 지붕 위로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즐거움까지. “덴마크 사회는 삶의 모든 영역을 점점 더 나아지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설령 무언가 잘못되더라도 결국 다시 괜찮아질 거라는 안정감이 있죠.” 왔던 길을 돌아가며 크리스티안이 말한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만듭니다.”
주변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깨끗한 항구에서 낚시를 하고, 우리는 느리게 나아가는 요트를 앞지른다. 나무 데크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영을 하려는 사람들이 옷을 벗어두고 몸을 둥글게 말아 물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다리를 건너 도심으로 돌아오자 항구에 줄지어 선 바에서는 황금색 맥주를 내놓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여름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따뜻한 날씨에 덩달아 나른해진 나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8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