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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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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호

몽글몽글하고 화려한 이 디저트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은 벌써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물론 호주에서 탄생했든 뉴질랜드에서 탄생했든, 파블로바가 오랜 세월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하며 여행자의 마음에 녹아든 것만은 분명하다.

달콤한 맛과 달리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 디저트의 역사는 씁쓸하다. 후머스나 햄버거처럼 파블로바 역시 탄생의 기원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이어져왔다. 호주와 뉴질랜드 모두 풍성하게 부풀린 머랭 위에 눈처럼 하얀 크림을 올리고 과일을 소복하게 얹는 이 디저트가 자신들의 아이디어라고 주장한다.
태즈먼해를 사이에 둔 두 나라는 틈만 나면 서로를 향해 신경전을 벌인다. 한번은 뉴질랜드의 한 에너지 회사가 오클랜드공항 수하물 찾는 곳에 “진짜 파블로바가 탄생한 곳이 바로 고향이다(Home is where the pavlova was really created)”라는 광고를 설치하며 이른바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호주에서는 즉각 발끈했는데, 온라인에는 “호주 관광을 홍보해주다니 친절하기도 하지”라는 등의 비꼬는 댓글까지 등장했다.
이 오랜 신경전은 정상급 외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당시 뉴질랜드 총리였던 저신다 아던Jacinda Ardern이 멜버른에 방문했을 때 호텔 객실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파블로바 키트를 발견하고는 일행과 이것이 “유머 감각인지, 외교적 사건인지”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한편 찰스 3세는 이런 해묵은 논쟁을 미처 몰랐던 모양이다. 재작년 시드니 파라마타 파크에서 한 연설에서 그는 시드니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 문화”를 치켜세우며 “스매시드 아보든, 파블로바든, 카베르네 소비뇽이든”이라고 대담하게 언급했다.
하지만 사실 파블로바의 정확한 기원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름만큼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위대한 프리마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에게서 따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마도 1926년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큰 성공을 거둔 그녀의 투어를 기념하기 위해 이름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유명 인사의 이름을 음식에 붙이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런던 사보이 호텔에서는 호주 출신 소프라노 넬리 멜바Dame Nellie Melba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피치 멜바Peach Melba’를 만들었고, 영국의 ‘가리발디 비스킷Garibaldi biscuit’은 영국 방문 당시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이탈리아 혁명가 주세페 가리발디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메뉴에 유명인의 후광을 입히는 것이 얼마나 유행이었던지, 안나 파블로바가 전성기를 누리던 당시에는 그녀의 이름을 붙인 스펀지케이크와 여러 층으로 만든 젤리, 심지어 ‘인기 있는 미국식 아이스크림의 한 종류’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머랭으로 만든 디저트만이 ‘파블로바’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는 이미 존재하던 디저트에 새로운 이름을 붙인 것에 가까웠다. 안나 파블로바가 세계 무대에서 우아한 피루엣을 선보이기 훨씬 전부터 비슷한 형태의 디저트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 역사가 재닛 클락슨Janet Clarkson은 이렇게 말한다. “호주도 뉴질랜드도 머랭을 발명하지 않았다. 머랭은 두 나라가 생겨나기 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이다.” 머랭의 기원을 18세기 스위스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클락슨은 자신의 블로그 ‘디 올드 푸디The Old Foodie’에서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머랭 레시피를 레이디 엘리너 페티플레이스Lady Elinor Fettiplace가 남긴 1604년 레시피 모음집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한다.
호주 퀸즐랜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애너벨 위트레흐트Annabelle Utrecht는 지난 10년간 파블로바의 역사를 파헤치는 데 몰두해왔다. 계기는 온라인에서 알게 된 한 뉴질랜드인과 벌인 논쟁이었다. 두 사람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사실에 따르면 이미 18세기 독일어권 지역의 귀족 주방에서는 크림과 과일을 활용해 거대한 형태로 만든 머랭 디저트를 찾아볼 수 있었다. 즉, 오늘날 우리가 파블로바라고 부르는 음식은 실제로 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셈이다.
자연스럽게 이 화려한 디저트의 계보에 이름을 올린 레시피도 하나둘 등장했다. 휘핑크림이나 아이스크림, 과일, 시럽을 머금은 스펀지케이크를 머랭으로 만든 왕관 모양에 채워 넣은 바슈랭vacherin은 19세기 프랑스 요리사 마리앙투안 카렘Marie-Antoine Carême의 요리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베이크드 알래스카baked alaska와 독일의 거품 케이크 샤움 토르테schaum torte도 있었다. 영국의 요리 작가 미세스 비턴Mrs Beeton 역시 1861년 자신의 요리책에 설탕에 재운 딸기와 휘핑크림을 채운 머랭 가토 레시피를 수록했다.
이러한 역사를 종합하면 오늘날의 파블로바와 닮은 디저트는 안나 파블로바가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하기 훨씬 전 유럽 이민자들과 함께 두 나라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폭신하고 말랑한
식감을 원한다면,
페이스트리 셰프이자 요리책 작가 니컬라 램은 머랭 반죽을 높이 솟은 왕관 모양으로 빚을 것을 권한다. 반대로 속까지 바삭한 식감을 선호한다면 낮고 넓은 그릇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

물론 어떤 음식도 완성된 형태로 갑자기 세상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크림과 과일을 올린 머랭 디저트가 언제부터 ‘파블로바’, 혹은 호주와 뉴질랜드식 표현으로 ‘파브pav’라 불리기 시작했을까?
오늘날의 파블로바와 비슷한 디저트가 이 이름으로 기록된 가장 이른 사례는 1929년 발행된 뉴질랜드의 〈데어리 익스포터 애뉴얼〉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독자가 기고한 레시피였지만 형태는 프랑스식 다쿠아즈처럼 여러 겹으로 쌓은 디저트에 더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으로 오래된 기록 역시 뉴질랜드에서 나왔다. 1933년 뉴질랜드 지역 커뮤니티 맘스 유니온에서 발행한 요리책에 실린 레시피다. 호주에서 파블로바의 기원을 주장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은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퍼스의 에스플러네이드 호텔 셰프였던 허버트 ‘버트’ 작세Herbert ‘Bert’ Sachse가 애프터눈티 메뉴에 올릴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호텔 매니저 해리 네언Harry Nairn은 완성된 디저트를 보고 “파블로바처럼 가볍다”고 말했다고 전해지며, 이 일화에서 파블로바의 전설이 시작됐다.
하지만 작세의 후손 중 한 명은 오타고대학교의 음식인류학자 헬렌 리치Helen Leach에게 연락해 작세가 날짜를 혼동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안나 파블로바가 이미 1931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세는 1973년 인터뷰에서 자신이 만든 디저트가 호주 잡지 〈오스트레일리언 우먼스 미러〉에 실린 레시피를 변형한 것이며, 그 레시피 역시 뉴질랜드 거주자가 투고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호주 신문 〈더 베벌리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은발의 증조할아버지’가 된 작세는 이렇게 회상했다. “머랭 케이크가 늘 지나치게 딱딱하고 바삭한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윗면은 바삭하면서도 자르면 마시멜로처럼 부드러운 디저트를 만들고 싶었다.” 위트레흐트와 함께 뉴질랜드 측 자료를 조사한 앤드루 폴 우드 박사Dr Andrew Paul Wood에 따르면, 이러한 점에서 서호주 출신 작세는 자국의 일반적인 파블로바 취향과 다소 달랐다. 우드는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음식 섹션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호주식 머랭은 좀 더 바삭한 편이고, 뉴질랜드식은 속이 마시멜로처럼 더 부드러운 것 같습니다.”
영국의 페이스트리 셰프이자 요리책 작가 니컬라 램Nicola Lamb은 2024년 저서 〈시프트Sift〉에서, 작세와 〈뉴질랜드 데어리 익스포터 애뉴얼〉의 독자가 모두 제안했던 것처럼 머랭 반죽에 옥수수전분을 넣으면 “마시멜로처럼 두툼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다만 최대한 폭신하고 말랑한 식감을 원한다면 램은 머랭 반죽을 높이 솟은 왕관 모양으로 빚을 것을 권한다. 두꺼운 머랭 벽 안쪽까지 열이 침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대로 속까지 고르게 바삭한 식감을 선호한다면 낮고 넓은 그릇 모양으로 만드는 편이 좋다.
어떤 식감을 택하든 머랭이 완전히 식고 나면 대개 휘핑크림을 채운다. 머랭 자체에 설탕이 충분히 들어가기 때문에 크림에는 보통 설탕을 넣지 않고 바닐라 향을 더해 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취향에 맞는 과일을 올리면 된다.
호주의 문화사학자 카멀 세드로 박사Dr Carmel Cedro는 우드와 마찬가지로 두 나라가 파블로바의 이상적인 식감뿐 아니라 어떤 토핑을 올려야 하는지를 두고도 의견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호주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호주에서는 패션프루트가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죠. 언제나 키위를 올립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이 고전적인 여름 디저트가 그 파란만장한 역사만큼이나 자유분방하게 변주되고 있다. 남반구에서는 연말 축제 시즌의 대표 디저트로도 사랑받는다. 호주의 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작가 도나 헤이Donna Hay는 바노피 파블로바부터 구운 파블로바, 거꾸로 뒤집은 버전과 냉동 버전, 축제 분위기를 살린 라즈베리 스월 파블로바 리스까지 셀 수 없이 다양한 레시피를 선보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레스토랑 경영자이자 방송인, 작가인 프루 리스Prue Leith는 아쿠아파바와 코코넛밀크를 활용한 비건 파블로바를 소개했고, 영국의 음식 작가이자 방송인 나이절라 로슨Nigella Lawson은 라즈베리를 곁들인 초콜릿 파블로바를 세상에 선물했다.
파블로바는 일반적으로 고급 미식 요리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호주 셰프 피터 길모어Peter Gilmore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베넬롱Bennelong에서 선보이는 시그너처 디저트는 이를 한층 세련된 경지로 끌어올린다. 오페라하우스의 건축에서 영감을 얻은 이 디저트는 정교하게 짜 올린 휘핑크림과 패션프루트 커드를 채운 이탤리언 머랭 위에 흰 머랭을 돛처럼 세워 완성한다.
결국 파블로바에는 모든 취향을 만족시킬 만한 버전이 하나씩 존재하는 듯하다. 다만 최근 폴란드의 한 양식업체가 고안한 캐비아와 크랜베리를 곁들인 파블로바만큼은 호주와 뉴질랜드 어느 쪽도 자신의 음식이라 주장하고 싶지 않은 유일한 ‘파브’일지 모른다.

TIMELINE

18세기
머랭을 활용한 디저트가 중부 유럽 귀족 사회에서 유행하기 시작한다.

1870년대
독일어권 이민자들이 세계 각지로 이주하면서 머랭을 기본으로 한 샤움 토르테Schaum torte가 미국 중서부 지역까지 전해진다.

1926년
안나 파블로바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순회공연을 펼친다. 3년 뒤 다시 호주를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1929년
오늘날의 파블로바와 비슷한 대형 머랭 케이크 레시피가 〈뉴질랜드 데어리 익스포터 애뉴얼〉에 처음 소개된다.

1935년
퍼스의 에스플러네이드 호텔에서 셰프 허버트 ‘버트’ 작세가 파블로바를 메뉴로 선보인다.

1953년
통가의 살로테 여왕Queen Sālote이 젊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파블로바를 대접한다.

2009년
뉴질랜드 총리 존 키John Key는 호주가 파블로바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것을 두고 “완전히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 더 많은 기사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 9월호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글. FELICITY CLOAKE
사진. HANNAH HUG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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