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와 산을 배경으로 유서 깊은 동네를 거니는 아침부터 너른 곡선을 그리는 황금빛 모래사장에서 보내는 오후, 자갈 깔린 뒷골목을 누비며 현지인들과 타파스 바 투어를 즐기는 밤까지. 스페인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꿈같은 여행의 순간이 펼쳐진다.
ART & DESIGN
포블레노우의 창작자들을 만나다
바르셀로나 동부 해안가의 포블레노우. 한때 버려졌던 창고에 갤러리와 스튜디오가 들어서면서 이 동네가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다.
WORDS. EDDI FIEGEL
바르셀로나의 나무 우거진 포블레노우Poblenou 지역. 아르헨티나 출신 도예가이자 재즈 뮤지션인 파블로 풀리도Pablo Pulido에게 이곳으로 이주한 이유를 묻자, 그는 비좁은 작업실의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가리킨다. “무엇보다 빛이 마음에 들었어요. 바다가 가깝다는 점도 좋았고요.” 환한 지중해의 햇살이 작업실의 커다란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새하얀 벽에 반사된 빛은 선반을 가득 채운 연보라색과 노란색 그릇, 컵을 환하게 밝힌다.
베이지색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고 있지만, 42세의 파블로는 은막의 스타처럼 말쑥한 모습이다. 그는 우루과이 출신 도예가이자
산업디자이너인 파트너 다이아나 누녜스 슈나이더Daiana Nuñez Schneider와 함께 2년 전 케마Kema를 열었다. 최근 몇 년 사이 포블레노우에 새롭게 들어선 갤러리와 스튜디오, 독립 부티크와 커피숍 가운데 하나다. 이러한 창작 공간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포블레노우에는 ‘카탈루냐의 해크니’라는 별칭이 붙었다.
남쪽으로는 바다, 북쪽으로는 바르셀로나의 주요 간선도로인 아빙구다 디아고날Avinguda Diagonal과 맞닿은 이 지역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카탈루냐 섬유산업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이르자 포블레노우의 수많은 창고와 공장이 버려졌다. 널찍하고 빛이 잘 드는 작업 공간과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에 매료된 예술가들이 곧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활기 넘치는 라스람블라스Las Ramblas에서 지하철로 북동쪽으로 불과 15분 거리지만 마치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파블로와 다이아나에게는 진정한 공동체를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이 지역의 매력이었다. “이웃 중 많은 분이 저희 작품을 구입하거나 작업실을 찾아 직접 작품을 만들었어요. 옆에는 철공소가 있고 자전거를 수리하는 사람도 있어요. 모두 자신이 이 동네에 속해 있다는 유대감을 느끼죠.”(파블로) 다양한 임차인과 주민이 뒤섞여 살아가는 포블레노우에는 독특한 분위기가 흐른다. 현지인들은 1990년대 대규모 관광이 시작된 이래 바르셀로나의 다른 몇몇 지역에서는 사라졌다고 말하는 분위기 말이다.
동네의 바와 세련된 레스토랑에서는 2만3000원 정도에 세 가지 코스로 구성된 오늘의 메뉴를 선보인다. 노천카페에서는 학생들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포블레노우 중심부의 거리를 따라서는 박공지붕을 얹은 공장과 창고 건물, 화려하게 장식된 아르누보 양식 공동주택의 출입구, 철골과 유리로 지은 각진 고층 건물이 한데 어우러진다. 이제 이 건물들에는 예술·디자인 대학과 국제적인 기업들이 자리한다. 그 사이사이에는 현지 예술가의 작품을 판매하는 작은 갤러리 겸 상점 과우!Guau! 같은 독립 상점과 포블레노우의 산업 시대가 남긴 19세기 붉은 벽돌 굴뚝이 흩어져 있다.
케마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는 벽화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아시스 페르칼레스Asis Percales의 작업실이 있다. 그는 수상 경력에 빛나는 장편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 제작에 참여한 애니메이터 제라르 코르네야Gerard Cornella, 일명 게코Geco와 함께 8층 작업실을 사용한다. 예약하면 일반인도 방문할 수 있는 이들의 작업실은 깔끔하게 정돈된 공간 곳곳에 식물이 놓여 있다. 집이자 사무실인 이곳의 커다란 창문 너머로는 지붕들 사이로 바다가 언뜻 모습을 드러낸다. 두 사람은 북적이는 도심과 비교해 비교적 평온한 포블레노우의 분위기 역시 이 지역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라고 말한다.
“현대적인 바르셀로나와 산업도시 바르셀로나, 그리고 진짜 삶이 이어지는 동네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죠.” 단정하게 다듬은 수염에 산뜻한 흰색 티셔츠를 입은 게코가 말한다. 아시스는 포블레노우의 창작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또 한 명의 인물로 베네수엘라 출신 갤러리스트이자 전직 영화 프로듀서인 클라우디아 코스타 오로페사Claudia Costa Oropeza를 꼽는다. 인쇄소였던 건물을 개조한 라 플라타포르마La Plataforma 갤러리에서 회의 사이에 잠시 짬을 낸 그녀를 만났다.
밝고 흰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었다. 밤색 머리를 발레리나처럼 단정하게 틀어 올린 클라우디아가 회상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바르셀로나에서 앞으로 성장할 지역이 바로 여기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보였어요. 바다가 가깝고, 창작·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기 좋은 산업시설이 많았기 때문이죠. 당시에는 그중 상당수가 비어 있었고요.”
그때가 2010년 무렵이었다. 이곳으로 이주한 클라우디아는 성장 중인 포블레노우의 창작 공동체를 결집하고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를 계기로 2012년 문화협회 포블레노우 어번 디스트릭트Poblenou Urban District를 공동 설립했다. 협회는 작업실을 대중에게 개방하는 낮과 밤 행사 등을 통해 지역의 창작 공동체를 알리고 있다. 현지의 예술 공간과 갤러리, 박물관, 개방형 작업실,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지도도 제작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이 지도에 소개된 예술가 중 한 명인 페리코 파스토르Perico Pastor의 작업실이다. 그는 성공한 카탈루냐 출신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뉴욕타임스〉와 카탈루냐의 권위 있는 일간지 〈라 방과르디아La Vanguardia〉에서도 활동했다. 커다란 창고를 개조한 건물에 도착하자 작업자들이 나무 팰릿을 화물용 승강기에 싣고 있다. 위층의 여러 공간에는 이제 디자이너와 음악가, 예술가들이 자리 잡았다. 페리코의 이웃은 초현실주의 화가 마티아스 크란Matías Krahn으로, 그의 작업실 역시 지도에 표시돼 있다.
스스로를 ‘일상을 그리는 화가’라고 소개하는 페리코는 25년 동안 이 지역에 살며 작업해왔다. 마티스의 영향을 받은 수채화를 주로 그리며, 작품에는 해변과 바닷가 산책로가 자주 등장한다. 70대 초반의 나이에도 페리코는 민첩한 걸음으로 작업실 곳곳을 안내한다. 벽면에는 책장이 늘어서 있고, 높은 작업대 위 잼 병에는 서예용 붓이 꽂혀 있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커다란 창문에는 풍경이 매달려 있다. 보헤미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공간은 페리코의 집이자 작업실이다. 그는 이웃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포블레노우의 진솔한 분위기에서 여전히 활력을 얻는다고 말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전통 방식으로 운영하는 인쇄소와 의류 매장이 남아 있었어요. 노동자들의 삶이 짙게 밴 동네였고, 사람들은 언제나 무척 친절했죠. 놀라운 점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해변까지 불과 세 블록이면 닿고요.” 그가 이어서 덧붙인다. “이곳에는 예술가가 많지만 예술가들만의 공동체처럼 느껴지지는 않아요. 성별과 연령대도 다양하고 아이와 고양이, 개, 외국인 거주자, 나 같은 늙은이까지 모두 뒤섞여 살죠. 그렇다고 소란스럽지도 않아요. 정말 멋진 곳입니다.”
여행 방법 혹스턴 포블레노우 호텔은 포블레노우 중심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객실은 약 27만2000원부터. 포블레노우 어번 디스트릭트가 개최하는 다음 작업실 야간 개방 행사는 11월 28일 열릴 예정이다.
thehoxton.com/poblenou, visitbarcelona.com, poblenouurbandistrict.com
ALTERNATIVE CITIES
조금 색다른 도시 여행
유명 도시를 대신할 매력적인 여행지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관람하고, 중세 거리를 거닐며 현지인이 즐겨 찾는 타파스 명소를 발견해보자.
WORDS. ISABELLA NOBLE
마드리드 대신 살라망카 미식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도시
마드리드 특유의 건축과 미식, 밤 문화가 어우러진 매력에 끌린다면 인접한 카스티야이레온Castilla y León 지방의 살라망카Salamanca가 훌륭한 대안이 되어준다. 마드리드에서 기차로 불과 1시간 30분이면 닿는 이 유서 깊은 대학도시는 스페인에서 인구 대비 타파스 바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꼽히는 바로크 양식의 마요르 광장Plaza Mayor도 이곳에 있다. 광장 가장자리에는 바의 야외 테이블이 줄지어 놓이고 저녁이면 활기가 넘친다.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된 정면이 인상적인 800년 역사의 살라망카대학교와 서로 맞붙어 있는 두 대성당도 둘러보자. 오래된 비에하 대성당Catedral Vieja은 대부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후대에 세워진 다른 대성당에는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한다. 그다음에는 타파스3.0Tapas 3.0이나 쿠스코 보데가Cuzco Bodega를 찾아 카스티야 지방의 음식과 와인 세계에 빠져보자.
grupotapas.com, cuzcobodega.es
세비야 대신 그라나다 안달루시아의 정취를 느끼기에 가장 좋은 도시
세비야가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단기 여행지 중 하나로 떠오른 데 비해, 동생 격인 그라나다Granada는 여전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알람브라 궁전과 요새로 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아담한 도시의 매력은 그뿐만이 아니다. 세비야를 연상시키는 무어 양식의 유적과 정열적인 플라멩코, 훌륭한 타파스 문화를 갖춘 동시에 그라나다만의 생동감 넘치는 개성도 지니고 있다. 며칠간 머물며 비탈을 따라 형성된 알바이신Albaicín 지구를 거닐어보자. 현지인과 여행자들은 널찍한 테라스에 모여 테라코타 지붕 너머로 알람브라를 바라본다. 그 뒤로는 장엄한 시에라네바다산맥이 펼쳐진다. 그라나다 대성당 바로 뒤편의 산아구스틴 시장Mercado de San Agustín에는 신선한 식재료가 매대마다 풍성하게 쌓여 있다. 알푸하라스Alpujarras 산악지대의 트레벨레스Trevélez에서 생산한 하몽도 맛볼 수 있다. 인근 레알레호Realejo는 유서 깊은 유대인 지구다. 칸델라Candela와 타베르나 라 타나Taberna La Tana, 시스코 이 티에라Cisco y Tierra 같은 분주한 바와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거리까지 넘쳐 나온다.
tabernalatana.com
톨레도 대신 카세레스 유네스코 세계유산 구시가지를 만나기에 가장 좋은 도시
1561년까지 스페인의 수도였던 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당일치기로 즐겨 찾는 여행지다. 반면 카세레스Cáceres까지 가려면 조금 더 수고해야 하고 방문객도 훨씬 적다. 하지만 그 수고의 대가로 시우다드 모누멘탈Ciudad Monumental을 만날 수 있다. 잊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성벽 안의 구시가지는 1986년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마드리드에서 기차를 타고 엑스트레마두라Extremadura 지방으로 세 시간을 달리면 로마 시대까지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석조 미로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오늘날 카세레스는 귀족적인 고딕·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중세 이슬람 통치 시대에 세운 높은 망루와 여러 유적도 간직하고 있다. 예술 면에서도 결코 만만치 않은 도시다. 헬가 데 알베아르 현대미술관Museo de Arte Contemporáneo Helga de Alvear은 프란시스코 고야와 안토니 타피에스,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museohelgadealvear.com
FOOD & DRINK
셰리의 고향을 기념하다
다시금 전성기를 맞고 있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주정 강화 와인 셰리. 그 진가를 경험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역시 셰리가 탄생한 고장이다. 새하얀 건물이 늘어선 안달루시아의 도시 헤레스데라프론테라에서는 현지인들이 보데가와 바에 모여 유대감을 나눈다.
WORDS. ELIZABETH BENNETT
무어 양식의 안뜰과 고딕 교회, 웅장한 바로크 건축물이 한데 뒤섞인 헤레스Jerez는 아름답고 아담한 안달루시아의 도시다. 세비야에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과 관광 개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러나 스페인의 셰리 수도로서 오랜 명성을 자랑한다. 스페인어로 ‘헤레스jerez’는 ‘셰리’를 뜻하며, 이곳에서는 3000년 넘게 주정 강화 와인을 만들어왔다.
한때 고루한 술로 여겨졌던 셰리는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각지의 바에서 칵테일과 스프리츠에 활용되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헤레스는 셰리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현지인들은 전통을 지키는 데 진심인 동시에 즐길 줄도 안다. 플라멩코 클럽과 승마 공연, 타방코tabanco라 불리는 활기 넘치는 셰리 바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올여름 영국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직항편까지 운항을 시작하면서 헤레스는 그 어느 때보다 찾아가기 쉬워졌다.
타방코와 타파스 투어
헤레스 출신의 아우로라 무뇨스Aurora Muñoz와 함께 셰리의 세계에 입문해보자. 그는 솔레라스 이 크리아데라스Soleras y
Criaderas를 운영한다. 저녁에 진행하는 투어는 여행자들을 구불구불한 역사지구의 거리로 이끌며 여러 타방코에 들른다. 참가자들이 셰리와 타파스를 맛보는 동안 아우로라는 이 주정 강화 와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16세기 프랜시스 드레이크 경이 인근 카디스Cádiz에서 셰리 3000통을 약탈해 잉글랜드로 가져간 뒤 셰리 생산이 크게 성장한 일화도 포함된다. 본래 셰리를 생산하는 보데가의 노동자들만 드나들던 술집이었던 타방코의 역사도 살펴본다. 아우로라는 전통적인 바뿐 아니라 셰리를 즐기는 방식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장소도 안내한다. 와인숍과 델리를 결합한 만테케리아 엘 에스파르테로Mantequería El Espartero가 대표적이다.
solerasycriaderas.com
라스 반데리야스Las Banderillas
투우 관련 물품으로 벽면을 가득 채운 전통 타방코로, 남녀노소 누구나 한자리에 모인다. 높은 의자에 앉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이베리코 하몽이 담긴 접시가 건네지기를 기다리고, 어린아이들은 바 위에 올라앉는다. 젊은 연인들은 가장 드라이한 셰리인 피노fino를 한 잔씩 받아 들고 거리에 서서 들이켠다. 타방코에서는 일반적으로 셰리와 함께 간단한 차가운 안주를 내지만, 사람들은 제대로 갖춘 주방과 훌륭한 타파스를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마늘 향을 입힌 감자를 곁들인 문어구이는 놓치지 말자.
C. Caballeros, 12, 11403 Jerez de la Frontera
타방코 엘 파사헤Tabanco El Pasaje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헤레스에서 가장 오래된 타방코다. 이곳에서는 셰리와 더불어 헤레스의 또 다른 유명 문화유산인 플라멩코를 즐길 수 있다. 하루 세 차례, 오후 2시와 7시 30분, 9시 30분 무렵이면 평소 떠들썩하던 바에 정적이 내려앉는다. 이내 기타 연주와 힘찬 발 구르기, 감정이 실린 노랫소리 등 안달루시아를 대표하는 특유의 선율과 리듬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한정된 테이블 가운데 하나를 예약하면 맨 앞줄에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면 뒤쪽의 입석 관객들과 함께해도 좋다. 시야가 가려진 사람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절묘한 위치에 거울이 설치돼 있다.
tabancoelpasaje.com
레스타우란테 페드로 놀라스코Restaurante Pedro Nolasco
곤살레스 비아스González Byass 와이너리는 유명한 피노 셰리 티오 페페Tio Pepe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단지 안에는 눈에 띄는 레스토랑도 자리한다. 포도덩굴이 지붕처럼 드리운 전용 자갈길을 지나면 미니멀한 분위기의 1층 공간에 닿는다. 오래된 와인 저장고를 개조한 레스토랑은 헤레스 대성당이 내다보이는 환한 안뜰로 이어진다. 드라이 셰리와 탄산수, 엘더플라워를 섞은 상쾌한 피노 스프리츠로 식사를 시작해보자. 이어지는 요리에도 셰리를 활용한다. 셰리 식초를 곁들인 농어 요리와 티오 페페·라임·꿀에 재운 멜론 등이 대표적이다.
tiopepe.com
보데가스 트라디시온Bodegas Tradición
소규모 독립 셰리 생산자로, 시음이 포함된 유익한 투어를 운영한다. 셰리 제조 과정과 저장고를 가까이에서 살펴본 뒤에는 보데가의 가이드가 오크통 앞에 의자를 놓고 대표적인 셰리 여섯 종을 차례로 따라준다. 가장 드라이한 피노fino부터 가장 달콤한 페드로 히메네스Pedro Ximénez까지 맛볼 수 있다. 백포도가 저마다 뚜렷한 풍미를 지닌 셰리로 변해가는 과정에 관한 설명도 곁들여진다. 마지막으로 소유주의 개인 미술 컬렉션을 둘러본다. 프란시스코 고야와 디에고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의 작품도 포함돼 있다.
bodegastradicion.es
BEST BEACHES
모래와 파도, 상그리아
스페인 본토의 도시 해변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여유로운 서핑 문화와 해안가 레스토랑, 바다를 바라보는 구시가지가 저마다 색다른 풍경을 빚어낸다. 다음 여행에서 찾아가볼 만한 최고의 해변 도시 여섯 곳을 소개한다.
WORDS. ISABELLA NOBLE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타리파Tarifa의 해변에서 지브롤터해협 너머로 번지는 연한 주황빛 노을을 바라보면, 스페인 최남단의 여유로운 서핑 도시가 사랑받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카디스Cádiz의 코스타데라루스Costa de la Luz 해안에 자리한 타리파의 대표 해변은 로스란세, 즉 플라야 데 로스란세스Playa de los Lances다.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해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해안선을 따라 약 6.4km 이어진다. 자동차로 10분 정도 이동하거나 여름철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푼타팔로마 해변Punta Paloma Beach에 닿는다. 이곳에서는 우산소나무 숲이 모래언덕을 향해 부드럽게 흘러내리듯 펼쳐진다.
타리파의 해변은 수영을 즐기기에 좋지만,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카이트서핑과 윈드서핑 문화도 활기를 띤다. 아담한 구시가지의 역사는 무어인 통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여러 산책로를 걸으면 이웃한 모로코가 보이는 전망대에 이를 수 있다.
특별한 숙소 구시가지에 자리한 호텔 라 사크리스티아는 17세기 건물을 독창적으로 복원한 곳이다. 차분한 분위기의 객실을 갖췄으며 해변까지 걸어서 5분이면 닿는다. 객실은 약 17만원부터.
grupolasacristiatarifa.com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발렌시아Valencia에는 매력적이면서도 접근하기 편리한 도심 해변이 여럿 자리한다. 해변 너머로는 싱그러운 공원과 활기 넘치는 식료품 시장, 수준 높은 갤러리, 생동감 넘치는 동네가 이어진다. 발렌시아 구시가지 동쪽에서는 잔잔한 지중해의 파도가 꿀빛을 띤 부드러운 모래사장으로 밀려든다. 수 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지는 해안은 공식적으로 카바니알Cabanyal과 말바로사Malvarrosa, 파타코나Patacona 해변으로 나뉜다. 야자수가 늘어선 산책로가 해변 전체를 따라 이어져 걷거나 달리고 자전거를 타기에도 즐겁다. 스페인의 전형적인 해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유쾌한 장소다. 활기찬 분위기 속에 짚으로 지붕을 얹은 파라솔이 줄지어 늘어선다. 말바로사 해변 맞은편의 카사 카르멜라Casa Carmela 같은 레스토랑에서 장작불로 지은 파에야를 맛보며 느긋한 점심시간을 보내자.
visitvalencia.com, casa-carmela.com
특별한 숙소 발렌시아 역사지구의 5성급 카로 호텔은 19세기 저택을 세련되게 개조한 곳이다. 투리아 정원Turia Garden 인근에 있으며, 객실은 약 37만원부터.
carohotel.com
카약을 타고 해 질 녘 풍경을 감상하거나 모래사장에서 비치발리볼 경기에 참여해보자. 카탈루냐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계절과 관계없이 지중해를 품은 해안 도시의 매력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낮고 파스텔빛 벽을 두른 주택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은은한 노란색의 바르셀로네타Barceloneta 해변은 도심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모래사장이다. 현지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 산책로를 따라 북동쪽의 보가텔Bogatell과 마르 베야Mar Bella 해변까지 이동하는 편이 좋다.
조금 더 북동쪽으로 향하면 엘 포룸El Fòrum의 소나 데 바니스zona de banys, 즉 수영 구역에 닿는다. 조성된 물놀이 공간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청록빛 바다로 곧장 들어갈 수 있다. 도심에서 기차를 타고 조금만 이동해도 여러 해변을 만날 수 있다. 바르셀로나 중심부에서 약 25분 거리인 카스텔데펠스Castelldefels에는 잔잔한 파도와 함께 약 4.8km의 탁 트인 크림빛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barcelonaturisme.com
특별한 숙소 절제된 세련미를 지닌 5성급 호텔 더 세라스에서는 수영장과 루프톱 바 너머로 마리나 포트 벨Marina Port Vell을 바라볼 수 있다. 훌륭한 카탈루냐 요리도 맛볼 수 있으며, 객실은 약 46만4000원부터.
serrashotel.com
산탄데르Santander 중심부의 로스 레히나스Los Reginas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25분가량 이동하면 스페인 북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서핑 명소 중 하나인 소모 해변Somo Beach에 닿는다. 소모의 옅은 금빛 모래사장은 만을 향해 화살촉 모양으로 돌출된 엘 푼탈El Puntal 해변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엘 푼탈은 여름에만 문을 여는 여유로운 레스토랑으로 현지인에게 잘 알려져 있다. 작은 칸타브리아Cantabria 지방의 주도인 산탄데르는 비스케이만Bay of Biscay의 하구에 자리한 덕분에 매력적인 해변이 풍부하다. 약 1.6km의 모래사장이 시원하게 뻗은 엘 사르디네로El Sardinero, 스페인에서 비키니 수영복을 처음 입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간직한 로스 비키니스 해변Playa de los Bikinis, 도심 북쪽으로 자연 그대로의 후미가 이어지는 코스타 케브라다Costa Quebrada 등이 대표적이다. 20세기 초 산탄데르는 스페인 왕실이 즐겨 찾는 해안 휴양지였다. 구시가지 동쪽의 곶에 자리한 웅장한 막달레나 궁전Palacio de la Magdalena에서 당시의 흔적을 만나보자.
palaciomagdalena.com
특별한 숙소 가족이 운영하는 부티크 숙소 하르딘 세크레토는 산탄데르 중심부에 자리한 객실 6개 규모의 아늑한 은신처다. 햇살이 잘 드는 뒤뜰을 갖췄으며, 객실은 약 15만5000원부터.
jardinsecretosantander.com
활기 넘치는 겨울 카니발로 가장 잘 알려진 카디스Cádiz는 세비야에서 자동차로 남쪽 방향 1시간 거리에 있다. 햇살이 풍부한 반도에 자리하며 사방으로 대서양의 물결이 밀려든다. 현지의 해변 문화는 고운 모래가 깔린 옅은 회갈색 해변들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곳은 라 빅토리아 해변Playa de la Victoria이다. 역사지구에서 남쪽으로 약 3.2km 이어지다가 모래언덕을 등에 진 한층 거친 분위기의 라 코르타두라 해변Playa de la Cortadura과 만난다. 사람들은 드넓은 모래사장에 파라솔을 펼치고 서핑을 즐긴다. 물가의 치링기토chiringuito, 즉 해변 레스토랑에 앉아 피노 셰리를 마시기도 한다. 또 다른 선택지는 구시가지 서쪽 끝의 라 칼레타 해변Playa de la Caleta이다. 날씨가 서늘한 계절에도 해 질 무렵이면 활기가 감돈다. 모래사장을 벗어나면 페니키아인이 건설한 이 고대도시의 다채로운 면모가 펼쳐진다. 카디스 박물관Museo de Cádiz과 안달루시아 최고의 플라멩코 공연장 중 하나인 페냐 라 페를라Peña la Perla도 둘러볼 만하다.
perladecadiz.com
특별한 숙소 라 칼레타 해변 바로 북쪽의 파라도르 데 카디스는 대서양이 보이는 객실과 바다를 바라보는 수영장을 갖췄다. 조식 포함 1박 약 25만원부터.
paradores.es
숲이 우거진 두 곶 사이, 초승달 모양의 만 안쪽에 넓은 금빛 해변 두 곳이 자리한다. 스페인 북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안 휴양도시 중 하나인 도노스티아– 산세바스티안Donostia–San Sebastián을 상징하는 풍경이다. 산세바스티안 산책은 흔히 온다레타 해변Playa de Ondarreta과 라콘차 해변Playa de la Concha을 따라 굽이치는 해변 산책로에서 시작한다. 두 해변 모두 산타클라라섬Isla de Santa Clara을 바라보며 수영과 패들보드를 즐기기 좋다.
라콘차 북동쪽에는 걸어서 둘러보기 좋은 파르테 비에하Parte Vieja 구시가지와 핀초스 바가 빼곡하게 자리한다. 그 너머의 수리올라 해변Playa de Zurriola은 한층 여유로운 분위기이며, 초보자도 부담 없이 서핑에 도전할 수 있다. 모래사장에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대서양의 파도를 즐긴 뒤에는 산세바스티안의 유명한 미식 세계가 기다린다.
특별한 숙소 라콘차만을 바라보는 벨에포크 양식의 빌라를 개조해 문을 연 곳이 노부 호텔 산세바스티안이다. 자연스러운 세련미가 돋보이는 호텔로 고급스러운 객실 17개와 루프톱 수영장, 시그너처 레스토랑을 갖추고 있다. 조식 포함 1박 약 62만원부터.
nobuhotels.com, sansebastianturismoa.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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