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월은 수백 년 동안 수공예 전통으로 이름을 알려온 곳이다. 화강암과 거친 덤불이 풍경을 이루듯, 창의성 또한 콘월을 빚어온 중요한 바탕이다. 오랜 전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어가는 오늘날 콘월의 장인 다섯 명을 만나본다.
우드터너
해변으로 가는 여행자들을 뒤로한 채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는 하늘 아래 보드민무어Bodmin Moor를 향해 차를 몬다. 거친 잡초와 산사나무, 가시금작화와 낮은 바위산으로만 덮인 삭막하고 황량한 화강암 지대는 사람들이 영국 최남단 지방을 떠올릴 때 으레 연상하는 해변이나 바다와는 사뭇 동떨어진 풍경이다. 콘월에서 평생 살아온 나조차 높이 자란 덤불과 좁은 도로가 이어지는 곳에서는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곤 한다. 몇 차례 길을 잘못 든 끝에 코니시 우드스미스Cornish Woodsmith로 알려진 도미니크 피어스Dominic Pearce의 작업실로 이어진 비포장도로를 찾아냈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무릎 높이까지 대팻밥이 쌓인 목선반 작업대 뒤에 선 도미니크의 모습이 보인다. 목수와 목재 골조공 견습생이었던 그는 지금 우드터닝woodturning이라는 고대 기술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건조한 목재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수분을 머금은 자연 상태의 나무를 깎아 그릇과 숟가락, 컵, 스툴, 화분 등을 만든다. 그는 태풍에 쓰러진 나무나 제벌 작업을 마친 숲에서 재료를 직접 구한다고 한다.
“자연 목재는 손질한 목재와 다른 재료예요. 그 자체만의 생명과 에너지를 품고 있죠.” 도미니크가 설명한다. 그의 작업실은 끌, 대패, 그라인더, 녹슨 띠톱 등 우드터너가 사용하는 장비와 도구로 가득하다. 한쪽 구석에는 거대한 스피커가 반대편에는 그의 조부가 사용하던 원목 의자와 톱밥이 내려앉은 빈티지 모터바이크가 놓여 있다.
도미니크의 대표작은 우드터닝 기법으로 만든 볼이다. 실용적이면서 우아한 형태에 그가 직접 배합한 연한 파란색 안료를 입힌 것이 특징이다. 실용적인 물건들을 주로 제작하지만 근래에는 예술성이 두드러지는 작업도 시도하고 있다. 투명한 램프 갓, 구리 손잡이가 달린 볼, 통나무 기둥을 깎아 만든 큰 용기 등이다. 도미니크가 만든 모든 작품이 그렇듯 그의 공예품이 지닌 아름다움은 손으로 직접 만든 품질에서 나온다. 나무가 건조됨에 따라 작품의 모양이 뒤틀리고 변한다. “제게는 바로 이것이 야생 나무를 다루는 기쁨이에요.” 그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속으로 대팻밥이 튀어 오른다. “나무를 깎으면 나무가 살아있을 때 생긴 압력을 해소하게 돼요. 그래서 재료를 모두 같은 모양으로 깎아도 건조되면 저마다 다른 형태가 되죠. 나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제가 도와준다고 할 수 있겠네요.”
cornishwoodsmith.com
바구니 장인
외딴 해변과 난파선으로 악명 높은 바위투성이의 리저드반도Lizard Peninsula 남쪽 해안. 안젤라 퍼스Angela Firth가 이곳의 버드나무밭을 둘러보고 있다. “올해는 사슴 때문에 골치가 아팠어요. 어린 버드나무 순을 자꾸 물어뜯었거든요. 그런데 사슴이 너무 예뻐서 화를 낼 수 없더라고요.”
안젤라는 자신의 농가 아래 밭에서 30종이 넘는 버드나무를 기른다. 위젠더Wizender, 플랜더스 레드Flanders Red, 브리타니 블루Brittany Blue, 디키 메도스Dicky Meadows, 프티트 그리젯Petite Grisette 등 그 이름은 마치 〈해리 포터〉 시리즈의 등장인물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바구니 장인에게는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닌 품종을 공들여 키울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독특한 색을 위해 기르는 품종이 있는가 하면, 유연한 가지와 나무 껍질의 질감 때문에 선택하는 품종도 있다. “버드나무는 정말로 놀라운 재료예요.”
안젤라가 작은 칼로 나무껍질을 벗겨내고 그 안의 하얀 속살을 보여주며 말한다. “저는 바구니 덕후예요. 끔찍한 플라스틱이 등장하기 전에는 온갖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버드나무를 널리 사용했어요. 바구니뿐 아니라 보관함, 쟁반, 상자, 가방, 심지어 관도 버드나무로 만들었죠. 콘월에서는 게와 바닷가재 통발을 만드는 데 사용하기도 했어요. 제가 어부는 아니지만 버드나무로 만든 통발의 효과가 아주 뛰어나다고 해요.”
그녀가 운영하는 보조로 바스켓Bojorrow Baskets 공방에는 연녹색과 연노란색부터 주황색, 짙은 빨간색과 갈색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자연색의 버드나무 가지가 색색별로 구분되어 한 단씩 묶여 정리되어 있다. 벽에는 안젤라가 손수 엮은 가방과 바구니가 갤러리의 작품처럼 걸려 있다. 그녀의 디자인은 전통 문양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콘월식 도시락통과 해초, 해변에서 찾은 조개껍데기로 만든 튤립 모양 바구니 같은 독특한 작품도 눈에 띈다. “제게 바구니 만들기는 명상과도 같아요.” 새로운 바구니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설명한다.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작업이에요. 어떤 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 10시까지 밖에서 작업하기도 해요. 그래도 이대로가 좋습니다.”
bojorrowbaskets.com

주얼리 디자이너
이른 아침, 로라 폴리Laura Polley는 팔머스Falmouth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나와 해변으로 향한다. 워낙 이른 시간이라 마주치는 사람이라고는 개를 산책시키거나 바다 수영을 즐기러 나온 이들 정도다. 하지만 로라는 바다가 아닌 자신이 걷고 있는 모래에 시선을 두고 있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모른다. 풍경을 즐기러 나온 것이 아니다. 보물을 얻기 위해 온 그녀는 모래 속의 유리 조각인 시글라스sea glass를 찾고 있다.
“빨간색이 가장 희귀해요.” 모래알 속에서 이질적인 색을 포착하는 데 단련된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녀가 말한다. “초록색, 갈색, 하얀색이 가장 많이 보이고, 가끔 파란색도 있어요. 분홍색과 빨간색을 발견하는 건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같죠.” 로라와 함께 보물찾기에 나선 지 5분 만에 손에 시글라스를 한 움큼 쥐고 있었다. 그중에는 로라를 매우 기쁘게 한 붉은색 유리 조각도 두 개 있었다. “언제든 다시 오세요.” 그녀가 말한다.
콘월의 여러 해변에서 시글라스를 발견할 수 있지만 특히 많이 발견되는 곳은 이 항구 마을이다. 팔머스에는 1689년부터 1851년까지 대영제국의 먼 지역으로 물자와 우편을 실어 나르던 팔머스 패킷 서비스Falmouth Packet Service의 본부가 있었다. 선원들이 배 밖으로 던진 빈 술병은 오랜 세월 파도와 모래에 부딪히며 작고 매끈한 유리 조각으로 재탄생했다. 파란색 유리는 주로 약병에, 분홍색 유리는 향수병에 사용됐다. 빨간색 유리는 선박 신호등에 사용됐다고 한다. 로라가 이따금 발견하는 노란색 유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제작된 우라늄 유리 식기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다. 우라늄 유리는 냉전시대에 생산이 크게 줄면서 점차 자취를 감췄다. “빅토리아 시대의 미세플라스틱인 셈이죠. 물론 훨씬 더 예쁘지만요.”
로라는 해변에서 가까운 언덕 위 작업실에서 형형색색의 유리 조각을 은으로 감싸 반지와 목걸이, 브로치 등 장신구로 만든다. 때로는 손님들이 직접 발견한 시글라스를 가져와 제작을 의뢰하기도 하는데, 특히 결혼 반지일 때가 많다. 로라는 손님에게 완성된 장신구와 함께 시글라스가 발견된 장소가 표시된 손 그림 지도를 선물한다. “사람들에게 유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주면 무척 좋아해요. 마치 콘월의 일부를 매일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죠.”
porthjewellery.com
서핑보드 메이커
제임스 오터James Otter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그가 맨발이라는 사실이었다. 차분한 목소리와 두꺼운 안경테, 캡 모자 속의 곱슬머리는 그가 최첨단 수공예가보다는 요가 강사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콘월의 서핑 커뮤니티에서 제임스는 전설로 통한다. 그는 영국에서 원목 서핑보드를 만드는 몇 안 되는 서핑보드 제작가 중 한 명이다.
“폼보드가 나오기 전에는 모든 서핑보드를 나무로 만들었어요.” 포스토완 비치Porthtowan Beach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작업실에서 만난 제임스가 말한다. 옛 광산 계곡과 버려진 창고가 곳곳에 있는 이 지역은 콘월의 거친 북쪽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서핑 명소 중 하나다. “안타깝게도 요즘에는 보드를 일회용품으로 생각해요. 흠집이 나면 새것으로 교체하죠. 대부분의 보드는 쓰레기장으로 향해요. 저는 보드를 이렇게 쉽게 버려도 된다는 인식을 바꾸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여름휴가를 계기로 콘월과 서핑에 매료된 제임스는 2010년 오터 서프보드Otter Surfboards를 열었다. 가구 제작 기술을 익힌 덕분에 보드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본기는 이미 갖추고 있었지만, 보드 제작 전문가가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목재는 서핑보드를 만드는 훌륭한 재료입니다. 지속 가능하고 튼튼하면서 유연하고, 저희 방식대로 만든다면 놀랍도록 가볍기까지 해요.” 제임스가 수강생들이 자신만의 보드를 만드는 작업실을 구경시켜준다. 일본식 톱과 손대패, 샌딩 블록 등이 정리된 선반들 사이로 여러 작업대가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한쪽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완성된 보드 몇 개와 스탠드업 패들보드 모형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포플러나무와 미국삼나무를 깎아 가운데를 비워내고 내구성을 위해 유리로 코팅한 제임스의 보드는 매번 디자인을 개선하려는 그의 집념이 담겨 있다. 그가 진행하는 5일 과정 코스를 수강하는 많은 학생은 자신들이 만든 보드로 서핑하지 않는다. 대신, 멋진 커피 테이블로 사용하거나 예술 작품처럼 벽에 걸어둔다. 하지만 이 보드들은 파도를 타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제임스는 강조한다.
“우드 보드를 타는 것은 폼보드를 타는 것과 차원이 달라요. 더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보드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흐름이 있어요. 한 번 우드 보드로 서핑하고 나면 다른 것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예요.”
ottersurfboards.co.uk
도예가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물건을 만드는 작업이 좋아요.” 흙 한 덩이를 물레 위에 툭 던진 에밀리 탭Emily Tapp이 말한다.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원동력이죠.” 윙 소리와 함께 물레가 돌기 시작한다. 에밀리는 물에 적신 두 손을 흙 위에 올리고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형태를 잡아간다. 이내 위아래가 오므라든 원뿔 모양이 만들어진다.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을 이용해 흙 안쪽에 공간을 내자 서서히 그릇의 형태가 드러난다. 불과 3분 뒤 에밀리는 귀 모양 손잡이가 달린 완성된 머그컵을 들어 보인다. 그녀의 뒤편 선반에는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 넣을 차례를 기다리는 머그컵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가장 인기 좋은 제품이라 많이 만들어둬요. 이제는 손이 저절로 기억할 정도예요. 자면서도 만들 수 있을 걸요?”
콘월에서는 적어도 신석기시대부터 도자기가 만들어졌다. 18세기에는 세인트 오스텔St Austell 주변의 점토 채취장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백색 고령토가 생산됐다. 채취장 대부분이 폐쇄됐지만 작업자들이 남긴 피라미드 모양의 흙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콘월에서 활동하는 많은 도예가들과 마찬가지로 에밀리 역시 주변 지형에서 영감을 얻는다. 점박이와 소용돌이 무늬는 하늘과 바다, 화강암과 모래, 물 위에 반짝이는 빛을 연상시키는 콘월의 광물 색과 질감을 닮았다. 에밀리의 작품은 섬세하면서 동시에 거친 무엇인가가 있다. 콘월 내면에 흐르는 강인함처럼.
에밀리가 운영하는 EOT 세라믹은 푸른 들판과 멀리 있는 메이브Mabe 마을이 보이는 예술공동체 아르갈 팜Argal Farm에 자리한다. 지난 한 해 동안 그녀의 가장 큰 과제는 새로운 작업실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곧 있으면 콘월에 기반을 둔 세라믹 예술가 로산나 마틴Rosanna Martin이 세인트 오스텔의 옛 진흙 채취장에서 운영하는 지역문화센터인 브릭필드Brickfield에서 유약 공예와 벽돌 제작 과정을 수강할 예정이라고 그녀가 알려준다. “공예가로서 새로운 것을 실험해보는 일은 정말 중요해요. 스스로에게 새로운 놀이를 줘야 하거든요.” 에밀리가 설명한다.
다시 물레에 집중한 에밀리가 또다시 흙 한 덩이를 올린다. 실험은 잠시 기다려야 할 듯싶다. 지금은 만들어야 할 머그컵이 많으니까.
eotceramic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