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면 상승으로 세계 곳곳의 섬들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행’은 이 위기를 가속화할 수도, 섬을 지키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떻게 여행해야 할까?
기후변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드라이클리닝 청구서가 탄생한 순간이 있다.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투발루의 외교부 장관 사이먼 코페Simon Kofe가 수십 년에 걸쳐 자신의 조국을 잠식해 온 바닷물에 무릎까지 잠긴 채 경고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는 현재 가라앉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2021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코페 장관이 물에 젖은 채 전한 강렬한 연설 이후 4년이 흘렀다. 그사이 이른바 ‘사라지는 섬들’의 위기는 눈에 띄게 심각해졌다. 인도양의 몰디브와 세이셸부터 태평양의 키리바시와 솔로몬 제도처럼 투발루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섬나라들까지 수많은 여행지가 위험에 직면해 있다. 벵골만에서 미국 플로리다키스에 이르는 환초와 섬들도 예외는 아니다. 코페 장관의 말처럼 이 위협에서 자유로운 곳은 어디에도 없다. 금세기 말이면 전 세계 모든 해안 지역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가 될 터이기 때문이다.
사실 섬이 ‘가라앉는다’라는 표현은 엄밀히 말해 정확하지 않다. 육지가 사라지는 주된 원인은 해수면 상승에 따른 침수다. 투발루 같은 섬나라의 평균 해발고도는 성인 농구 선수의 키보다 낮다.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땅도 뉴욕시 면적의 약 3%에 불과할 만큼 좁다. 따라서 해수면이 조금만 상승해도 피해는 훨씬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면서 이 같은 현상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바닷물의 열팽창과 빙상 및 빙하의 융해로 지난 100년 동안 해수면 상승 속도는 네 배로 빨라졌다. 금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하기 이전 대비 1.5℃ 이내로 제한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이미 피할 수 없게 된 피해는 앞으로 수 세기 동안 섬나라들을 위협할 것이다.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의 기후 적응학 교수 로버트 니컬스Robert Nicholls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실적으로 기온 상승 폭을 2℃ 수준에서 안정화할 수 있다고 해도 빙하가 녹고 바다가 팽창하는 과정에는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해수면은 앞으로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 동안 계속 상승할 겁니다. 인류가 과거에 초래한 변화만으로도 이 섬들은 이미 근본적인 위협에 처해 있습니다.”
2023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해수면 변화 연구팀이 발표한 평가에 따르면, 투발루 주변의 해수면은 30년 동안 약 15cm 상승했다. 2050년이면 국토와 기반 시설의 상당 부분이 만조 때의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놓이게 될 전망이다. 미크로네시아의 팔라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우리나라에는 약 500개 섬이 있고 그중 상당수가 환초입니다.” 팔라우의 유엔 대사이자 군소도서국연합AOSIS 의장인 일라나 세이드Ilana Seid가 말한다. “그 섬들은 50년 안에 완전히 물에 잠기게 될 겁니다.”
이러한 침수는 결코 서서히, 일정한 속도로 진행되지 않는다. 2025년 10월 자메이카를 강타한 허리케인 같은 초강력 폭풍은 단 한 번으로도 해안선의 상당 부분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퇴적물 유실과 지반 침하, 바닷물의 내륙 침투는 토지를 더욱 황폐하게 만든다. 식량 생산을 위협하고 주민들의 이주를 가속화하기도 한다. 결국 섬은 지형적으로 완전히 사라지기 훨씬 전부터 경제적·문화적으로 소멸할 수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도시
섬과 섬나라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한 현실은 이제 전 세계가 마주한 문제다. 하지만 각 섬이 직면한 어려움은 저마다 다르다.
팔라우의 경우 넓은 해역에 흩어져 위치한 섬들 가운데 비교적 규모가 큰 화산섬도 있다. 이러한 섬들은 주민들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미크로네시아의 중앙 태평양에 자리한 마셜 제도는 지질학적 특성과 지형 때문에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다섯 개의 주요 섬과 29개의 산호 환초로 이루어진 이 나라는 광활한 바다에 비해 육지 면적이 극히 작다. 게다가 섬들이 약 50만km2에 달하는 외딴 태평양 해역에 흩어져 있다. 많은 섬 주민에게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기 어렵다. 그러나 인도양의 대표적인 허니문 여행지 몰디브처럼 경제적 기반이 비교적 탄탄한 나라는 혁신적인 피해 완화 및 적응 대책을 추진할 여력이 있다. 수도 말레Malé 인근에 조성된 인공섬 훌루말레Hulhumalé가 대표적인 사례다.
훌루말레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몰디브 군도의 다른 지역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건설됐다. 현재 해수면보다 2m 이상 높은 지대에 조성됐으며, 육지와 바다 사이에는 해안 방어 시설을 설치해 완충지대를 마련했다. 장기적으로 약 25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한편 몰디브에서는 1995년 개봉한 디스토피아 모험 영화 <워터월드>에 등장할 법한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다. 수상 건축 전문 기업인 네덜란드의 워터스튜디오Waterstudio와 협력해 물 위에 떠 있는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수도 말레에서 배로 10분 거리에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첫 번째 주택 60채를 부유식 플랫폼 위에 건설하고 있으며, 다음 몬순이 시작되기 전에 약 756km 떨어진 몰디브까지 예인할 계획이다.
“2030년까지 총 5000가구를 조성해 1만5000여 명이 거주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워터스튜디오의 수석 건축가 쿤 올타위스Koen Olthuis가 말한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사라지는 섬들의 이야기는 흔히 비극으로 그려집니다. 육지가 사라지고 문화가 터전을 잃는 이야기죠. 하지만 저는 이것을 혁신이 이끄는 진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어서 말한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물을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물 위에서 무엇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입니다. 모래 한 알까지 모두 지킬 수는 없지만 이 섬들을 정의하는 정체성과 문화, 공동체는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위협에 직면한 모든 지역에서 수상 도시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탄소 배출량이 극히 적은 나라들이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지만 정작 이에 대응할 재정적인 여력은 부족하다.
“근본적으로 불공평한 상황입니다.” 지역공동체와 자연에 도움이 되는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 리스폰서블 트래블Responsible Travel의 저스틴 프랜시스Justin Francis가 말한다. 일라나 세이드 대사도 이러한 현실을 지적한다.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대규모 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은 많은 군소도서국이 감당할 만한 수준을 넘어섭니다. 마셜 제도를 예로 들어보죠.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토지를 매립하려면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몇 배에 달하는
비용이 필요합니다.”
이들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책은 대개 적은 비용으로 지역의 여건에 맞춰 시행하는 방법이다. 산호초를 복원하거나 맹그로브 나무를 심어 퇴적물이 쌓이도록 돕고 파도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를 ‘자연 기반 적응Nature-based Adaptation, NBA’이라고 한다.
세계은행과 여러 지원 기관의 도움을 받은 키리바시는 이러한 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인구 약 12만 명이 거주하는 중앙 태평양의 섬나라 키리바시는 아라누카Aranuka와 북타라와North Tarawa 등 여러 섬의 해안에 약 4만 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식재 1년 후 묘목의 생존율이 약 90%에 달했다.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추진한 활동이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고무적인 수치다.
책임 있는 여행
책임 있는 여행을 추구하는 여행자에게 세계의 ‘사라지는 섬들’은 딜레마를 안겨준다. 더 늦기 전에 빼어난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적 전통을 간직한 여행지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른바 ‘라스트 찬스 투어리즘Last-chance Tourism’, 즉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경험하는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홍보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 발생시키는 탄소 배출로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강하다.
이러한 딜레마는 관광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섬나라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메이카를 예로 들어보자.
이 나라는 2025년 10월 허리케인 멜리사Melissa가 남긴 막대한 피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메이카에 상륙하기 전 허리케인의 최대 풍속은 시속 약 406km로 기록적인 수준이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이러한 초강력 폭풍의 발생은 더욱 빈번해질 전망이다. 전 세계 섬나라들이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자메이카는 관광산업이 매년 창출하는 약 5조 8000억원의 수입 없이는 국내총생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피해를 복구하기 어렵다. 허리케인 멜리사가 지나간 뒤 자메이카의 최우선 과제는 12월 중순 관광 성수기가 시작되기 전에 관광산업을 최대한 정상화하는 것이었다. 자메이카에서 관광산업은 약 17만5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이 밖에도 수십만 명이 관광산업에 간접적으로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딜레마는 카리브해부터 태평양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위기에 직면한 여러 섬나라에서도 나타난다. 브라질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참석한 일라나 세이드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하더라도 관광산업의 문을 닫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실현 가능하지 않으며 문화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팔라우에서 관광산업은 단순히 경제를 지탱하는 생명줄이 아니다. 국가의 유산과 정체성, 그리고 팔라우를 팔라우답게 만드는 생태계를 보호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후 위기에 맞서기 위해 관광산업이 필요합니다. 팔라우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수많은 세대에 걸쳐 지켜온 것들을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와 함께 누리기를 바란다는 것이죠.”
그녀는 이어 말한다. “중요한 것은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여행입니다. 우리가 방문하는 생태계가 얼마나 취약한지 이해하고, 특정 장소나 대상에 부담이 집중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팔라우에서는 관광산업이 환경의 회복력을 약화시키는 대신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팔라우는 세계 최초로 공식적인 ‘서약’ 제도를 도입한 나라다. 방문객은 입국할 때 섬의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팔라우 해역의 80% 이상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으며, 방문객의 기여금은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자연보전 사업에 사용된다. 팔라우는 관광을 제한하기보다 그 방식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 여행자를 계속 맞이하면서도 산호초를 복원하고, 지역 주민의 생계를 지원하며, 문화적 전통을 더욱 굳건히 지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이드 대사는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는 여행자들에게 생태계의 소중함을 알리고, 이곳을 온전하게 지키는 일이 그들에게도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여행자들이 다시 찾아오고 그들의 자녀도 언젠가 이곳을 방문하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저스틴 프랜시스
Justin Francis
대영제국훈장OBE 수훈자이자 리스폰서블 트래블의 공동 창립자. 그는 기후 위기에 직면한 섬나라들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여행자의 외면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후 위기에 취약한 섬들을 계속 여행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해발고도가 낮은 섬으로 비행기를 타고 간다고 해서 주요 관광지로 향하는 것보다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행에 따른 탄소 배출량은 목적지가 어디든 이동 조건이 비슷하다면 큰 차이가 없어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여행을 통해 현지 경제를 지원함으로써 해당 지역이 기후변화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하도록 돕는다는 것이죠.
여행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여행지에 더 오래 머물면서 이동에 따른 탄소 배출 부담을 상대적으로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숙소를 선택할 때는 꼼꼼히 알아보고 가능하다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곳을 고르세요. 음식도 탄소 배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육류와 유제품 소비를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 밖에 실천할 만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여행을 마친 뒤 그 지역이 방문하기 전보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겁니다. 여행 경비가 최대한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하죠. 이는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지 식당에서 식사하고, 지역 장인이 만든 공예품을 구매하고,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에 머무는 것이죠.
여행을 마친 후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섬 중에는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곳이 많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그곳의 가치를 알리는 사람이 되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직접 알아보았거나 여행 중 경험했던 자연보전 사업 또는 기후변화 대응 프로젝트를 찾아 후원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