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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ADVENTURER
할망바다에서 캐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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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호
이유정 해녀가 물질 때 함께 주워온 해양 쓰레기를 들고 있다.

제주 ‘E-RUN TRIP(이런트립)’
두 번째 탐험가인 이호동 최연소 해녀를 만나다.
그녀가 물질을 하며 마주한
경이로운 풍광이 전하는 메시지를 따라 
지속 가능한 여정을 시작해본다.

 

(왼쪽부터) 수경을 깨끗하게 닦는 데 쓰이는 쑥. 연륜이 묻어나는 해녀 삼춘들의 손길.
제주에서 해녀학교에 다니셨다고요?

네, 제주에서 3년 차 아기 해녀로 일하고 있는 이유정입니다. 저는 이호동에서 태어나 줄곧 제주에서 살았고, 해녀가 되기 전에는 중국어를 전공했어요. 여행업의 비중이 높은 제주에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이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고민의 시간 중에 막 물질을 마치고 올라온 동네 해녀 삼춘을 마주쳤는데 물에 젖은 그 모습이 반짝반짝 빛났어요. 그렇게 ‘한수풀 해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죠. 해녀학교는 체험에 의의를 둔 입문반과 실전에 치중하는 양성반으로 나뉩니다. 호흡법과 관련한 이론 수업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물속에 들어가는 바다 수업이 진행돼요. 현직 해녀 삼춘들의 통솔하에 잠수법과 해산물 채취법을 익힙니다. 하지만 3개월간 진행되는 양성반을 졸업했다고 모두 해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해녀 삼춘들이 전원 찬성해야 하고, 어촌계에도 가입해야 합니다. 일반 회사에 인턴 기간이 있는 것처럼 60일 동안 물질을 했거나 일한 실적을 금액 등으로 증명해야만 정식 해녀증을 발급받을 수 있어요.

 

해녀로 활동할 수 있는 지역이 
동해나 남해에도 있는 것으로 알아요.

맨몸으로 잠수를 하는 나잠어업은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매우 긴데 그 기원이 제주 해녀를 제외하면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아요. 특히 조선 중기에는 도민들이 제주를 떠나지 못하도록 출륙 금지 정책을 강하게 펼쳤고, 섬은 고립되다시피 했어요. 당시 토착민들이 해산물을 채취하며 생활한다고 하여 포작인 등으로 불렸다는 기록을 통해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출륙 금지가 풀린 뒤 제주 해녀가 한반도 어장으로 출향했고 이를 계기로 해녀들의 어업 기술이 전파되었어요. 제주는 물질하기 좋은 천혜의 바다와 역설적이게도 척박한 땅을 동시에 보유해 일찌감치 해녀가 가정 경제를 주도하는 산업 역군으로 자리매김했던 거죠. 여기까지는 제주 해녀의 상징성에 대한 것이고, 제가 제주에서 해녀로 일하는 이유는 태생과 연관이 있어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어부였고, 덕분에 매일 어촌계를 오가며 해녀 삼춘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자랐습니다. 타 지역에서 물질을 하는 건 제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특별히 이호테우 해변 근처에서 
물질을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호테우 해변의 바다는 할망바다라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곳 바다가 할머니들이 물질하기 좋을 만큼 수심이 얕고 험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제주 올레길 17코스와 이호동이 닿는 길목에 이호어촌계와 해녀 탈의장이 있어요. 여기서 이호테우 해변을 바라보면 왼쪽으로는 몽돌이 깔린 해안가가, 오른쪽으로는 먹돌과 현무암으로 이뤄진 화산섬만의 독특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탈의장 옆에는 작은 쑥밭이 있는데, 해녀 삼춘들이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쑥을 떼어다가 수경을 쓱쓱 닦고 던져 두죠. 저는 그걸 주워다가 그대로 따라하곤 하는데 수경이 훨씬 깨끗해지고 좋은 향기도 나요. 무엇보다 할망바다는 물속이 유독 맑아 마치 수족관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에요.

 

(왼쪽부터) 벽화로 그려진 해녀의 일상. 이호테우 해변과 맞닿은 곳에 자리한 버베나 꽃밭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물질의 세세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물질이란 해녀가 물에 나갈 채비를 하고 해산물을 채취해 다시 뭍으로 돌아오는 일련의 과정을 이릅니다. 먼저 테왁에 몸을 맡긴 채 물질할 장소까지 헤엄쳐 이동해요. 도착해서 호흡을 고르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잠수해 채취할 해산물을 탐색하죠. 해산물을 잡아채면 테왁에 집어넣고 수면으로 나와 그제야 숨비소리를 냅니다. 보통 하루 물질은 3~4시간이 소요되는데 한 회 물질이 1분씩 걸린다고 하면 적어도 200번 이상 물속을 드나드는 거죠. 갓 채취한 해산물은 뭍으로 돌아와 2차 작업을 거쳐요. 뿔소라나 홍해삼은 바로 판매가 가능하지만 천초나 성게 같은 종류는 세심한 손질이 필요합니다. 천초는 햇볕에 말리는 정성이, 성게는 껍질을 일일이 벗기는 노동이 요구돼요. 마지막으로 고무옷을 벗고 샤워를 마친 후 해녀 삼춘들을 집까지 모셔다드리면 진정한 물질 종료!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숨이라고 들었습니다.

‘호이 호이’ 휘파람 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리겠지만 저희 해녀에게는 절박한 사자후라고 해야 할까요? 물속에서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데요. 신속하고 정확한 움직임이 불가능하다면 과감히 물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해녀의 몸은 오랜 기간 숙달되어 언제 물 위로 떠올라야 살 수 있는지 스스로 알아요. 물질은 찰나의 순간 삶과 죽음으로 나뉘니까요. 물질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종종 듣는 말이 ‘욕심부리지 마라’예요. 물숨을 먹으면 해녀의 생명은 끝이 나거든요. 잠수 시간은 사람마다, 수심마다 다르지만 수심 10m를 기준으로 2분 내외입니다. 제가 수심 5m에서 가장 오래 숨을 참았던 기록은 2분 40초예요.

 

물옷의 변천사도 흥미롭더라고요.

현재 해녀가 입는 고무옷은 1970년대 초 일본에서 수입된 거예요. 고무옷은 피부에 밀착되어 체온을 보호해주는 덕분에 작업량을 늘려주기도 하지만 부력이 증가하는 탓에 연철을 차야 해서 허리에 부담을 주기도 하죠. 고무옷이 들어오기 전에는 한겨울에도 무명이나 광목으로 만든 옷을 입고 물질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염료가 없어 흰색 물옷을 입었는데 1930년대 일제강점기 무렵 검게 염색해 해초류나 생리현상으로 생긴 얼룩 등을 감출 수 있게 되었죠. 필수적으로 착용했던 물소중이는 과거 제주 여성들의 속옷으로도 널리 사용되었는데요. 물의 저항으로 벗겨지는 일이 없도록 맞춤복처럼 신경을 썼고 옆면에 트임을 넣어 뭍이나 불턱에서 입고 벗을 때 신체를 다 드러내지 않게끔 만들었다고 해요. 목덜미 전체를 덮는 모자인 까부리에서도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어요. 까부리는 머리가 헝클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보온 효과가 탁월했다고 합니다.

 

(왼쪽부터) 과거 고기를 잡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원담 안에서 물질을 하고 있는 해녀. 갓 잡은 싱싱한 성게.
본업 외에 바닷속에서 
또 다른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요?

물질을 하다 보면 해산물뿐 아니라, 바닷속의 다양한 해양 쓰레기가 눈에 들어와요. 바다는 제게 회사이자 삶의 터전인데 그냥 지나칠 수 없더라고요. 이제는 물질 때마다 해산물과 함께 해양 쓰레기를 주워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플로빙코리아를 비롯한 여러 공동체에서 플로빙* 관련 소식이 들려오면 최대한 참여하려 노력해요. 물질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뒤 플로빙을 하러 가는 날은 기분이 새로워요. 똑같이 물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는 느낌이랄까.

플로빙은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쓰레기는 줍는 해양 정화 활동이다.

 

바닷속 쓰레기가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제주 심해에는 다채로운 바다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와 비례할 만큼 많은 해양 쓰레기가 분포해 있기도 합니다. 문어를 잡았는데 내장에서 생수병 뚜껑이 발견되거나 쥐치의 몸속에서 껌종이가 나오고 대방어가 라이터와 엮여 있던 적도 있었죠. 먹이사슬의 순환은 현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바다 생물이 먹이로 알고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5g, 1년에 신용카드 한 장 정도의 양을 먹는다고 해요. 아마 물속에서 온종일 일하는 저와 해녀 삼춘들은 매년 신용카드를 10장쯤 먹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플로빙을 하면서 
의미 있는 순간이 많으셨겠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제가 해녀학교를 졸업하고 해녀회에 들어갔을 때 동문들과 해녀 삼춘들 다 같이 이호테우 해변과 인근 바다를 청소했을 때예요. 사실 젊은 사람들이 해녀가 되기를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해녀회나 어촌계의 텃세를 걱정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함께 플로빙을 하면서 그런 우려가 조금은 희석되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작년에는 태풍이 지나가고 바닷속이 폐그물로 가득했던 적이 있었어요. 이대로 방치한다면 해녀 삼춘들이 물질을 하다 사고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 제게 또 다른 물을 알려준 UDT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선배들은 아무 대가도 없이 장장 2시간에 걸쳐 폐그물을 걷어냈어요. 또 한 번은 해녀 삼춘들이 물질을 하는 동안 그 옆에서 혼자 플로빙을 한 적이 있어요. 해녀 삼춘들이 물질이나 똑바로 하라며 핀잔을 주셨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다들 기특하다고 한마디씩 툭 건네시는데 눈물이 맺힐 정도로 감동적이었죠.

 

‘이런트립’ 행사 중 심해에서 쓰레기를 건져 올린 참가자들.
최근 제주관광공사에서 개최한 
‘이런트립’에도 참여하셨는데 
그 계기가 궁금해요.

1년 전 ‘이런트립’이 처음 시작된 곳이 바로 이호항이었습니다. ‘우리 바다 청소는 내가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행사의 모든 회차에 참여했어요. 물질을 막 끝낸 해녀 복장 그대로요. 이런 인연을 토대로 ‘이런트립’의 해녀 대표이자 창립 멤버로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타지에서 온 참가자들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제주 바다를 아끼는 마음으로 먼 곳까지 와서 함께해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플로빙에 참여했던 해녀 삼춘들도 한마디 하셨어요. “무사영 착한 친구들이 하영 와시냐. 바다 같이 치워주난 고맙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으신가요?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진지하게 자연을 아끼는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요. 예를 들어, 세계 4대 마라톤 대회처럼 확장의 여지가 있는 것들이요. 그런 대회를 제주에 대입하면 생존 수영 수업, 해녀 체험 마을 등을 떠올릴 수 있죠. 그러기 위해서는 해녀 문화가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호마을의 해녀는 20명 남짓이고 60~70대가 대부분이에요. 젊은 해녀들이 유입되려면 해녀학교에서 조금 더 촘촘한 커리큘럼을 세워도 좋을 것 같아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녀가 되는 과정에 임해야 하는지, 실제로 어떤 루트를 거쳐 해녀가 되는지, 해녀들의 공동체 생활이 어떤 의미인지 등 현실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해녀학교 동문회를 만들어 소소한 축제를 개최하거나 해녀 삼춘들이 사용하는 도구들을 전시하는 등 여행자들에게 제주 해녀 문화를 충분히 전달하고 싶습니다.

 

물속에서 밝게 웃는 이유정 해녀.

이유정은 할망바다에서 활동하는 해녀이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영감을 준 인물이다. 해녀 문화와 제주 바다를 지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 

 

 INSIDER 

풍부한 바다 미식

갓 잡은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이유정 해녀의 추천 스폿들.

당일 채취한 성게와 돌미역으로 꾸린 한 상.

불턱 앞에서

옛 해녀들은 물질 후 뭍으로 나와 불턱에서 고기와 해산물을 익혀 먹었다고 한다. 이유정 해녀는 이 오래된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해녀고기’라는 고깃집을 차렸다. 어부인 아버지가 잡은 갈치로 담근 속젓이나 한림에서 재배한 꼬깔양배추를 곁들여 먹으면 독특한 풍미를 즐길 수 있다. 당일 바다에서 채취한 싱싱한 성게와 돌미역도 이곳만의 별미! 

ADD. 제주시 과원로 80 

 


수족관 앞에서

제주항에서 차를 타고 10분 거리에 위치한 ‘일통이반’은 제주 1대 해남이 운영하는 해산물 전문 식당이다. 대개 소라, 전복, 문어, 보말 등을 맛볼 수 있지만 그날 잡은 해산물을 내놓기 때문에 메뉴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식당 앞에 있는 수족관을 둘러본 뒤 그날의 해산물을 주문해보자.

ADD. 제주시 중앙로2길 25 

 


골목 앞에서

‘우무’는 해녀가 갓 따온 우뭇가사리(천초)를 뭉근히 끓여 만든 푸딩을 판매하는 곳이다. 커스터드·성읍말차·초코 푸딩 외에 시즌 메뉴로 우도땅콩·얼그레이·구좌당근 푸딩을 선보인다. 관덕로, 한림로 두 곳에 매장이 있으며 각각 취급하는 푸딩의 종류가 다르다. 매장에서 지속 가능한 여행을 고려한 에코백과 컵도 구입할 수 있다.

ADD. 제주시 관덕로8길 40-1, 제주시 한림읍 한림로 542-1

 
글. 김호경HO-KYUNG KIM
사진. 김현민HYUN-MIN KIM 취재협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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