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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이도스식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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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2월호

맥주나 럼주를 곁들이는 푸짐한 돼지고기와 생선 요리가 바베이도스의 전통적인 주식이다. 하지만 여행자의 발길이 드문 북부 언덕 지대와 동쪽 해안을 중심으로 좀 유별나게 상황이 바뀌고 있다.

(왼쪽부터) 상인이 녹색 코코넛을 팔기 위해 준비 중이다.
섬 남쪽에 있는 록클리Rockley 해변.

“오늘은 바잔Bajan(바베이도스 사람)처럼 먹게 될 거예요. 저희는 허리둘레가 늘어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답니다.” 브리지타운에 있는 독립 광장에 서서 폴레트 드 가네스Paulette de Gannes가 우리 일행에게 선언하듯이 말한다. 우리는 지금 리크리시Lickrish 푸드 투어스라는 음식 여행 단체에서 나온 폴레트와 함께 산책으로 시작해 레스토랑, 시장, 푸드트럭으로 이어지는 3시간 동안의 미식 마라톤을 시작하려는 중이다. “바잔들은 음식을 아주 좋아합니다.” 폴레트가 웃으며 이야기한다. “이런 더위 속에서 우리 식으로 먹으면 아마 몸이 무거워지고 느려질 거예요. 나중엔 자고 싶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잠은 선택 사항에 없다. 나는 지금 해마다 열리는 바베이도스 푸드&럼 페스티벌에 와 있고, 바잔들은 먹는 것뿐만 아니라 파티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축제에 오면 럼주를 마시는 거리 파티, 일출 해변 이벤트, 럼주 증류소 투어 및 시음회, 칵테일 시연 등을 즐길 수 있다. 현지 요리사가 전혀 바잔답지 않게 음식마다 열량을 체크하고 음식량을 통제해서 한입 크기로 세련된 전통 요리를 담아서 내주는 요리 시연도 있다.
더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음식과 음료를 내놓는 현장도 좋지만, 무엇보다 바베이도스만의 요리 유산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고 싶어서 풀뿌리 음식 투어를 하는 중이다.
이곳 바베이도스섬은 약 430km² 넓이의 삼각형 형태로, 엄밀히 말하면 카리브해에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북대서양으로 둘러싸인 바베이도스는 카리브해에서 동쪽으로 약 160km 떨어져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출발한 선박 몇 개가 최초로 상륙했고, 17세기에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966년에 완전하게 독립했다. 브리지타운의 허름한 거리를 지그재그로 지나가면서 1639년 이 섬에 사탕수수를 들여온 건 영국이 아닌 네덜란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이트 골드’라고 불리는 이 사탕수수는 럼을 만드는 데 쓰인다. 해안가를 따라 파스텔 색조로 칠한 창고가 늘어선 소박한 도시 브리지타운은 바베이도스의 수도이다. 소금에 절여 말린 대구를 좋아한다든가 섬의 이름이 덥수룩한 무화과나무에서 착안해 ‘오스 바베이도스(수염 난 남자라는 뜻)’로 불리게 된 건 포르투갈인 덕분이었다.자몽이 바베이도스에서 유래되었고 많은 바잔들이 자몽에 짠맛을 더하기 위해 바다에 담가두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바베이도스 출신의 슈퍼스타 리한나도 최근에 이런 자몽 절임을 보여준 적이 있다.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바베이도스 과일과 채소 가판대.

푸드 투어의 첫 번째 목적지 팀스 레스토랑Tim’s Restaurant은 전당포 위층에 자리한 캐주얼한 식당이다. 우리는 발코니 의자에 앉아 강황, 파프리카, 작고 붉은 스카치 보닛 고추 등을 넣어 하룻밤을 재운 뒤 맛있게 양념한 돼지고기에 함께 나오는 오이 절임, 카사바를 놓고 게걸스럽게 먹는다. 폴레트는 “녹말이 많은 뿌리채소와 함께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바잔처럼 먹는 게 아니죠”라고 설명해준다. “우리는 닭고기를 제일 많이 먹고, 돼지고기를 제일 좋아합니다. 생선이야 뭐 항상 있는 거고요.”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핫 레전더리 피시 케이크Hot Legendary Fish Cakes 푸드트럭 앞에 줄을 서 있다. 이 지저분한 오렌지색 트레일러에서는 바잔식 풍미가 가미된 어묵을 파는데, 절임 대구를 으깨서 만든 반죽으로 볼 모양의 어묵을 만든다. “어묵은 바베이도스섬 최고의 음식입니다.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어묵을 먹어요. 눈에서 피가 날 정도라고 표현할 만큼 매운 고추 소스를 곁들여서요”라고 폴레트가 이야기한다. 강렬하게 매운 향신료 냄새가 풍길 뿐 아니라 어묵의 뜨거운 열기 탓에 눈물이 절로 난다.

마카로니 파이와 샐러드를 곁들인 날치 튀김 요리.

평소에는 한적한 어촌 마을이 주말마다 현지인과 외부에서 온 사람들로 붐빈다. 전설적인 금요일의 ‘생선튀김’을 맛보기 위해서다. 어촌의 주말은 마히마히(전갱이목 만새기과 생선), 참치, 황새치, 날치 등을 바비큐 그릴에 굽고 여기에 맥주를 함께 마시면서 시작된다. 그 밤에 나는 남서부 해안에 있는 오이스틴스Oistins 마을로 갔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노점에서 불빛이 반짝거리고 음악이 쿵쿵 울리고 사람들은 소박한 테이블에서 도미노 게임을 한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거대한 그릴에서는 연신 지글지글 소리가 난다. 나는 구운 날치, 쌀과 완두콩, 마카로니 파이와 샐러드가 높이 쌓인 접시를 집어 든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진정한 바잔 스타일을 채워주는 거대한 먹이다.
다음 날 아침에는 예약한 택시를 타고 좀 덜 붐비는 장소로 가보려 했으나, 첫 번째 목적지는 수산시장. 택시를 운전한 말론 웹Marlon Webb은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이 브리지타운 수산시장의 이상적인 가이드가 되어준다. 세상에 택시 운전사의 노하우를 이길 수 있는 건 없다. 우리는 가판대 행렬을 비집고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돌아다니며 붉은 도미를 손질하거나 황새치와 랍스터를 팔려고 준비하는 생선 장수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말론에게 바베이도스 국민 요리라고 할 수 있는 쿠쿠와 날치에 대해 물었다. “보통은 튀기지만 바다에서 갓 잡아 온 생선을 해변에서 바로 구운 게 제일 맛있어요. 푹 끓여서 먹어도 맛있습니다”라고 말론이 설명해준다. 
다음 목적지는 수도 외곽 파일베이Pile Bay에 있는 작고 소박한 시장이다. 도착하니 작은 보트가 해변으로 다가오고 잠수복을 입은 두 남자가 보트에서 모래 위로 뛰어내린다. 창으로 물고기를 잡는 낚시꾼 이안 와트Ian Watt는 새벽 5시부터 패럿처브parrot chub라는 물고기를 찾으려고 수심 30m 아래까지 다이빙을 했단다. “빈손으로 나갔다가 뭔가를 가지고 돌아오면 고마운 일이죠”라고 말하며 내게 ‘무언가’를 보여주는데 순간 무지갯빛으로 반짝거린다.

사탕수수 밭이 늘어선 서해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자 주택은 점점 드물어진다. 설탕은 한때 섬 경제의 중심이었다. 특히 1640년대 담배의 시장 가격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설탕이 담배를 대신해 섬의 주요 작물이 되었다. 18세기에는 이곳에 600개 이상의 사탕수수 농장이 있었다는데 주로 아프리카 노예들이 일했으며 대부분의 설탕은 유럽으로 실려갔다. 지금은 설탕 공장 2곳과 럼 증류소 4곳만 남아 있다.
마운트 게이는 세인트루시의 외딴 시골 교구 마을에 있는 럼 증류소인데, 1703년에 지어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가이드를 따라 들판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창고 단지를 다니는 사이, 럼이 발효실로 오기까지 필요한 건 단지 물, 당밀, 효모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끈끈한 당밀이 담긴 거대한 통을 들여다보고 나서 거대한 오크 발효조와 구리 증류기를 지나 희미한 불빛 아래 통을 보관하는 영국식 이중 벽돌집을 통과한다.
테이스팅 룸에 도착하자 리아 콕스Ria Cox가 우리를 맞이한다. “럼주를 휘젓지 마세요. 럼주가 화가 나면 안 되니까요.” 리아가 노출된 돌담에 럼주 기념품을 걸어놓고 말한다. “바닐라, 바나나, 계피, 육두구 향을 맡아보세요.” 다음으로 위스키, 버번, 코냑 통에서 숙성한 럼주를 마신다. 더 어둡고 더 깊고 매끄러운 맛과 질감이다. 리아가 이렇게 덧붙인다. “구운 음식 같은 향과 맛이에요. 할머니가 준비하시던 크리스마스를 떠오르게 하죠.”

패츠 플레이스는 오이스틴스 마을에서 생선튀김을 내놓는 가장 큰 식당이다

계속해서 동쪽 해변으로 가다 보면 농업의 유산, 그리고 식량 생산의 미래를 내다보는 소수의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바베이도스는 수백 년 동안 대부분 땅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했기 때문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기간에 이 문제는 더 불거졌고 현재 해결 방법을 모색 중이다.
서핑 마을로 알려진 밧세바Bathsheba의 언덕에 위치한 PEG(People Environment Growth) 농장과 자연보존지구는 약 43만km2 면적의 땅을 생물 역학의 원리에 따라 경작하고 보존한다. 자동차 경주 선수였던 폴 본Paul Bourne은 비전을 가지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9년 전만 해도 이 모든 것이 사탕수수였습니다. 도로도 없었고 단지 덤불뿐이었죠.” 절벽에 서서 아래에
있는 해안을 향해 얽히고설킨 숲 너머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폴이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그는 채집 후 바로 먹을 수 있는 카페와 약초 정원과 벌집을 만들었다. 우리는 풀이 무성한 길을 따라 걸으며 진흙 속에 뒹굴고 있는 소, 칠면조, 돼지와 마주쳤다. 폴은 목초를 먹여 키우고 농약은 쓰지 않으며 땅을 회복시키기 위해 헌신한다는 비전을 공유하는 농부들에게 임대할 토지를 보여주었다. 현재 이곳을 돌아볼 수 있는 투어와 캠프장이 있고, 앞으로 절벽에 친환경 리조트를 지어 지속 가능한 농가형 숙소로 운영할 계획이다.
다시 택시를 타고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최종 목적지로 향한다. 코코힐 포레스트Coco HillForest는 재생산 프로젝트 겸 산림 재생 계획의 일부로 지어졌다. 이 해발 300m가 넘는 높이에 있는 21만m² 넓이의 부지에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섬 고유의 열대우림 중 하나가 있다. 리조트의 소유주 마흐무드 파텔Mahmood Patel은 사탕수수 경작으로 인해 토양이 바뀌면서 자생 식물의 대부분을 잃었다고 설명해준다. 우리는 그가 가꾸는 강황, 바질, 로즈메리 화단과 묘목장을 둘러보았다. 지난 8년 동안 그는 마호가니, 티크, 검은 파인애플, 슈거애플 등 약 80종의 나무와 식물을 심었다. 이곳의 식물과 나무는 숲을 형성하는 자연스러운 층을 모방해 위에는 코코넛 캐노피, 그 아래 바나나, 생강 등이 자라도록 했다. 마흐무드는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식용 가능한 숲을 만드는 게 제 아이디어입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계단식으로 조성한 땅과 토양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심은 레몬그라스를 보여준 다음, 덤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 거대한 월계수 잎을 가지고 돌아왔다. 앞으로 농업박물관, 지속 가능한 생태형 오두막 숙소, 숲에서 바로 따서 먹을 수 있는 카페 등을 지을 계획이다. 이 섬 반대편 리조트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제 인생의 프로젝트가 될 겁니다. 내년에는 숲에서 나는 먹거리로 푸드&럼 페스티벌 행사를 열고 싶어요.”
마흐무드의 열정이 전염성이 강해서인지 숲은 벌써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바잔처럼 먹는다는 게 실제로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오이스틴스에 있는 서퍼스 카페는 해변에 있는 소박한 바에서 럼주를 판다.

 


바베이도스의 다섯 가지 음식

1 브레드프루트BREADFRUIT
브레드프루트는 축구공 크기만큼 자라는 열매로 달콤하면서도 견과류 같은 맛이 난다. 절이거나 튀기거나 굽거나 으깨서 먹는다.
2 마우비MAUBY
마우비 나무 껍질을 오렌지 껍질, 육두구, 계피, 정향과 함께 끓여서 달짝지근하게 만든 음료다.
3 바잔 체리BAJAN CHERRY
현지에서 슈퍼푸드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천연 비타민 C 공급원이기도 하다. 오렌지보다 비타민C가 50~100배 더 많이 들어 있다고.
4 구아바 치즈GUAVA CHEESE
으깨서 걸쭉하게 만든 구아바에 설탕, 라임즙, 향신료를 넣고 센 불에서 끓이며 저어준 뒤에 퍼지처럼 판 모양으로 굳힌다.
5 바잔 스위트 브레드BAJAN SWEET BREAD
바잔들은 단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코넛, 건포도, 체리 등을 넣어 만드는 부드러운 비스코티 같은 빵이다.

More Info.

여행 방법
인천공항에서 바베이도스 그랜틀리애덤스공항까지 에어캐나다 여객기로 토론토와 몬트리올을 경유해 갈 수 있다. 바베이도스 푸드&럼 페스티벌은 2009년에 처음 시작해 2019년 10주년을 맞이했으며, 지난해에는 10월 19일부터 23일까지 열렸다.
더 많은 정보
foodandrum.com
visitbarbados.org
lickrishfoodtours.com
pegbarbados.com

 

글. 루시 길모어LUCY GILLMORE
사진. 루시 길모어LUCY GILL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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