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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호

높은 산세와 굽이진 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영월. 깊은 자연 속에서 해가 뜨고, 강물이 흐르고, 산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곳에서 천천히 형태를 갖춰가는 것들을 마주해본다.

토마토의 색을 닮은 그래도팜의 씨들링 하우스.

FRESHNESS
싱그러운 자연의 맛

땅이 비옥하고 일교차가 큰 주천강 일대는 토마토 산지로 유명하다. 강바람에 나부끼는 토마토 가지들 사이로 토마토를 닮은 주황빛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유기농으로 다양한 종류의 토마토를 재배하는 그래도팜이다. 유기농을 고수하며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힘들 때마다 “그래도 해보자”라는 말을 되뇌며 이겨내던 모습을 떠올려 지은 이름이라고. 원승현 대표가 가장 먼저 보여준 장소는 토양 전시관이다. 이곳에선 세계 각지의 흙을 직접 만져보며 좋은 농산물이 생산되는 조건을 살펴볼 수 있다. 토양전시관을 지나 토마토 농장에 도착한다. 비닐하우스 문을 열자 허브 농원에 온 듯 싱그러운 향이 진하게 풍긴다. 가까이 가 보니 마트에서 흔히 보는 토마토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곳에선 생산성이 높고 모양과 품질이 일정하도록 교잡한 하이브리드 F1 품종뿐 아니라 색과 모양은 물론 맛과 향이 모두 다른 에어룸 토마토를 재배한다. 단순히 토마토를 판매하는 것이 아닌, 토마토를 경험하면서 건강한 땅과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는 원승현 대표. 그래도팜의 농장 투어 프로그램과 토마토 미식 체험 프로그램은 그런 마음에 동참할 수 있게끔 한다.

그래도팜.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주천면 서강로 159-26

(위부터) 그래도팜은 자연과의 공존을 강조한다.
농업 관련 책이 구비된 파밍 라이브러리.

COMFORT
따스함이 주는 위로

마차리의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다른 동네와는 달랐다. 사람이 사는 동네라기보단, 잘 정돈된 세트장 같은 분위기랄까. 어째서인지 하늘이 확 트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자세히 살피니 전깃줄이 보이지 않았다. 전깃줄 없는 동네로 조성된 이곳에서 은은한 커피 향과 활기찬 웃음소리를 퍼뜨리는 곳이 있으니 바로 위로약방이다. 당뇨를 앓던 어머니를 위해 팥으로 저당 초콜릿인 ‘팥콜릿’을 만들던 주인장은 저당 디저트를 통해 단것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자 영월에 카페를 열었다고. “영월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매년 단종의 넋을 위로하는 행사인 단종제 때문이었어요. 위로라는 테마가 지역과 저를 관통한다고 생각했죠.” 외지인들의 방문이 더딘 마을이기에 마을 주민들과 상생하는 방법을 찾은 끝에 어르신들이 직접 캔 쑥으로 디저트를 만들었다. 쑥과 쌀, 사탕수수로 만든 ‘쑥쉘’은 마을 주민은 물론 외지인이 이것을 먹기 위해 마차리를 방문할 정도로 인기다. 몽쉘의 변형 버전 같은 쑥쉘을 입에 한 입 넣자 단단한 질감의 빵이 녹아내리면서 은은한 쑥 향이 입안을 맴돈다. 다른 디저트와 달리 단맛이 강하지 않아 굳이 아메리카노를 먹지 않아도 입안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요즘 이곳에서는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귀리와 대체 당류를 사용해 저당 약과를 만들고 있다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담긴 디저트는 마음을 달콤하게 채운다.

위로약방.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북면 마차중앙1길 45

(위부터)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위로약방.
로컬에서 난 재료로 건강하게 만든 디저트들.

SIGHT
시선 너머 풍경

영월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조용한 마을 상동은 전국의 읍 중에서 인구가 가장 적다고 알려져 있다. 특이할 것 없는 이 마을엔 나뭇잎 모양을 한 밭이 있다. 가까이 가보니 블랙커런트와 컴프리 등의 생소한 식물들이 한데 뒤섞여 자라고 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흩날리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게 된다. 이곳의 이름 또한 밭을 보면서 지칠 때까지 멍을 때린다는 뜻의 ‘밭멍’. 나뭇잎 밭 위에 있던 아버지의 절임 배추 공장을 김지현 대표가 리모델링해 만든 시골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엔 새로 지은 건물보다는 오래된 장소를 목적에 맞게 탈바꿈한 공간이 많다. 절임 배추 공장은 지속 가능한 농업 및 문화를 배우는 퍼머컬처Permaculture 교육장이 되었다. ‘영원한’이란 뜻의 퍼머넌트Permanent와 ‘농업’을 뜻하는 어그리컬처Agriculture가 합쳐진 퍼머컬처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 농부가 아니어도 참여하는 사람이 많다고. 프로그램은 짧게는 3일, 길게는 한 달 동안도 진행되기에 메주를 발효하던 매주 방에 볏짚을 덧대어 만든 스트로베일 하우스Strawbale house를 숙소로 이용한다. 이 밖에도 오래된 축사는 요가와 워크숍이 진행되는 체험장으로, 외양간은 실내 정원으로 변모했다. 이곳에서 멍을 때리다가 지치면 밭일이나 달걀 줍기 등 알아서 할 일을 찾게 되기에 자연스럽게 자연을 누빌 수 있단다. 체험보다는 휴식을 원한다면 숙소로 운영되는 ‘밭멍 스테이’를 예약해 태백산과 남한강, 그 위에서 밝게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자연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밭멍.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상동읍 태백산로 2498-9 

(위부터) 메주방을 리모델링한 밭멍의 공용 숙소.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밭멍 스테이.

WARMTH
자신을 어루만지는 과정

영월은 땅에 기반하여 살아가던 도시다. 특히 이 지역의 가장 큰 산업이던 탄광은 지금 폐광기념관 등으로 흔적만을 확인할 수 있지만, 여전히 농사나 목축하며 땅에서 나는 것들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동강이 흐르는 영월 시내의 도자기 공방인 온도감각도 마찬가지다. 영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유제희 대표는 유독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고 산에 연둣빛이 차오르는 이곳의 봄이 마음에 들었다고. 그 따스함을 다른 이들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 영월에 온도감각을 열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시그너처 작품인 ‘봄의 조각’이다. 꽃과 풀잎은 봄을 나타내고 유약을 바르지 않아 거친 표면은 자연 본연의 질감을 보여준다. 나무 선반과 화초, 도자기로 채워져 자연을 닮은 이 공간과도 잘 어우러진다. 공방 한구석엔 아직 굽기 전의 흙 반죽들도 있다. 제각기 다른 형태의 점토는 도예 체험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작품이라고. “요즘 세상을 살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도자기를 만드는 순간만큼은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원하는 대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기본적인 것만 가르치고, 최대한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동그란 흙뭉치를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가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과정이다.

온도감각.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중앙로 51

(위부터) 유제희 대표의 시그너처 작품인 ‘봄의 조각’.
온도감각엔 영월의 따스한 햇살이 들이친다.

 

글. 차성민SEONG-MIN CHA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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