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티치노주는 이탈리아 국경 지대에 우뚝 솟은 알프스를 배경으로 자리한다. 이곳에서는 샤퀴트리, 달콤한 벌꿀 맛의 파네토네, 꽃향기가 퍼지는 와인 같은 지중해와 산의 맛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스위스에 있는 고타드 베이스 터널은 세계에서 가장 길고 깊은 철로 터널로 알려져 있다. 기차가 눈 덮인 알프스산맥 봉우리 아래로 약 56km를 파고 들어가 광부나 단세포 유기체만이 아는 깊이까지 내려간다. 기차를 타고 티치노Ticino를 여행하면 공학적 위업을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으며, 창가 자리에 앉아 이 터널이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나누는 광경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다.
나는 지금 고타드Gotthard 북쪽, 즉 스위스에 있다. 초원에서는 소의 목에 매달린 종이 경쾌하게 울리고, 주방에서는 스튜가 끓고, 슈트루델 파이가 먹음직스럽게 구워지는 중이다. 기차가 다시 햇살을 받으며 터널 남쪽으로 나오면 선로 옆에는 침엽수 대신 야자수가 나타나고, 기차역 카페에서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연신 쉿쉿 소리를 낸다. 머나먼 지중해의 상쾌한 숨결이 열린 차창을 통해 흘러 들어올 때쯤 터널을 가로지르는 동안 유럽 북부에서 남부로 여행했다는 걸 깨닫는다.
드디어 티치노에 도착한다. 티치노는 스위스이면서 이탈리어가 통용되는 등 여러 면에서 이탈리아와 닮았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횡단보도에서 멈춰 서는 무수한 이탈리아 브랜드 베스파 오토바이를 볼 수 있다. 또한 마을의 우아한 광장에는 〈신곡〉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작가 알리기에리 단테 동상과 스위스의 민속 설화에 나오는 가상의 명사수 윌리엄 텔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 음식을 다룰 때는 남쪽 이탈리아반도에서처럼 경외심을 갖지만, 스위스의 정밀함이 더해진다. 현지인들이 스위스제 값비싼 시계로 점심시간을 확인하는 걸 보면 분명 기대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정오 무렵, 티치노주에서 가장 큰 루가노시에서 기차가 멈춰 선다. 루가노는 푸른 산기슭과 동명의 광대하고 푸른 호수가 만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가이드 안나 베촐라Anna Bezzola는 나를 제일 먼저 가바니 Gabbani 델리로 안내한다. 그곳에서 전통 티치노 요리를 무슨 의식처럼 경험하게 되었다. 가바니에는 대포 크기만 한 소시지가 천장에 매달려 있고, 포르치니 버섯을 절인 항아리가 피라미드 형태로 쌓여 있다. 이곳에서 건포도와 말린 과일이 듬뿍 들어간 부드럽고 달콤한 파네토네 빵을 보니 여기서 기차로 한 시간만 가면 밀라노가 나온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가바니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티치노에서 생산하는 질 좋은 농산물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그중 반쯤 딱딱한 알프스 치즈는 종종 산에 있는 외딴 농가에서 그들만의 비법으로 만들어진다. 이 비법을 지키는 건 질투심 많은 관리인과 농장을 둘러싼 높은 산들이다. 가바니 델리에서 파는 알프스 치즈는 고대의 돌처럼 거칠고 울퉁불퉁하다. 하지만 칼로 조각을 내면 신선하고 버터처럼 부드러운 중심부가 드러난다. 우리는 달콤한 피오라 치즈와 약간 더 고소한 알페 마네고리오 치즈 등 몇 가지를 맛본다. 안나가 각 치즈는 소가 풀을 뜯은 목초지에 따라 이름이 지어지며 그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고 이야기해준다. 당연히 남쪽을 향하고 있는 목초지와 북쪽을 향한 목초지의 식물군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환경이 전부예요. 가끔은 건초를 쌓아둔 헛간 같은 맛이 나기도 하죠.”
이 목초지 아래는 또한 티치노 요리의 문자적이고 은유적인 기반이 자리한다. 다음 날 우리는 차를 운전해서 북쪽의 발레마지아Vallemaggia 계곡으로 향한다. 이곳의 지형은 가파르고 높았다. 눈 덮인 산봉우리가 지나가는 구름과 뒤섞이는가 하면, 폭포는 밤나무 숲을 통과해 톡 쏘는 야생 마늘이 자라는 들판에 닿는다. 폭포 주변 곳곳에는 정상에서 떨어진 낙석의 잔해가 흩어져 있다. 그리고 그 아래 티치노의 유명한 작은 동굴 그로토grotto들이 감추어져 있다. 쉽게 말해서 이곳은 냉장고가 발명되기 이전의 유산으로, 저장고 역할을 하는 이 천연 지하 공간에 육류, 치즈, 와인 등 식품을 저장했다. 티치노 전역에서 이런 동굴을 볼 수 있는데, 작은 문과 일부 벽돌 덕분에 호빗의 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유지되는데, 여름이 되면 문을 열고 저장해둔 음식들을 꺼내어 햇살이 쏟아지는 화강암 바위에 펼쳐 두고 나눠 먹곤 한단다.

체비오Cevio 마을의 동굴 지대를 탐험하면서 안나가 “그로토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예요”라고 말해준다. “이곳에서 요리와 지질이 연결되는 거죠.” 그로토의 지하 묘지 같은 공간은 깊고 습기 찬 고요함이 감돌며, 숙성 중인 치즈와 와인들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하다. 최근에는 이곳 그로토의 개념이 확장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러 샤퀴트리를 즐기거나, 또 다른 곳에서는 따뜻한 음식을 내놓기도 한다. 더 넓은 의미에서 ‘그로토’라는 단어는 푸짐한 산악 요리와 티치노 국기가 새겨진 작은 도자기 머그에 담긴 와인을 제공하는 모든 레스토랑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로토에서는 지중해의 미식 문화를 느낄 수 있지만, 동시에 산악 지역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특유의 실용주의적인 면모도 엿보인다. 그들은 계절별로 수확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그 작은 문이 다시 삐걱거리며 열리는 날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이번에는 남쪽으로 한 시간쯤 이동해 루가노Lugano 남쪽 해안 근처에 있는 아로뇨Arogno 마을로 간다. 이곳에서 가브리엘레 비앙키Gabriele Bianchi는 벌에 쏘이지 않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우주비행사가 된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그는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움직이듯 신중하고 천천히 이동했다. “천천히 가야 해요.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세요. 벌들이 두려움을 느낄 수 있거든요.”
가브리엘레가 언덕 위 마을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이번 시즌 첫 꿀을 수확한다. 나는 긴장된 손가락을 뻗어 그의 벌통에서 꿀을 조금 찍어 맛보았다. 꿀에서는 풍부한 꽃향기에 최근 벌들이 탐했던 아카시아꿀 특유의 은은한 신맛이 난다. 곧 꿀에서 밤나무 향이 날 것이라고 가브리엘레가 말해준다. 이제 밤나무들이 차례대로 꽃을 피우기 시작할 테니 말이다.
벌집은 티치노를 말해주는 특징이자 가브리엘레가 운영하는 유기농 농장인 아지엔다 아그리콜라 비앙키Azienda Agricola Bianchi의 중심이다. 이 농장은 25년 전에 시작되었지만 대규모 단일작물 경작이 아닌 자급자족형 소규모 농장이 스위스 언덕을 정의하던 아주 오래전 시대에서 영감을 받았다. 가브리엘레는 모든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한다.
야생화 초원은 벌을 지탱해주고, 거위 떼는 귀찮은 잡초를 맛있게 뜯어 먹으며, 야생 허브는 포도 덩굴 아래 그늘에서 무성하게 자란다. 과거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닿지 않는 높은 산악지대 농부들에게 필요한 접근 방식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
늦은 오후 햇살 아래 우리는 포도 덩굴 그늘막 아래 앉아 가브리엘레의 와인을 음미했다. 이 와인은 스위스에서 흔히 재배되는 요하니터Johanniter와 솔라리스Solaris 포도로 만든 가브리엘레의 맛이다.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로 건배한 후 와인을 홀짝이며 경치를 감상한다. 티치노라서 그렇다. 우리의 머리 위로는 에델바이스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옆에는 코모 호수 기슭에서 들여온 어린 올리브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생태 세계를 대표하고 농장은 이 두 가지를 최대한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가브리엘레는 “땅이 주는 열매를 거두는 일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여러 세대를 거치며 물려받은 지혜로 해내죠.”

티치노의 맛
라 티네라
루가노의 구시가지에 위치한 라 티네라La Tinèra는 소박한 분위기에서 전통적인 티치노 음식, 즉 풍성하고 건강한 음식을 주요리로 내놓는다. 전통 루가네가 소시지를 얹은 리소토나 옥수수가루로 만든 일종의 죽 같은 폴렌타를 곁들인 밀라노식 전통 오소부코(송아지 정강이 조림) 같은 특선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와인 없이 두 가지 코스 요리가 나오는 메뉴가 약 7만2000원부터.
라 폰타나 리스토란테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로카르노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며 상상력이 풍부한 요리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다. 제철 전채 요리로 구운 아몬드 플레이크와 생강 사워크림을 곁들인 아스파라거스가 나온다. 발레마지아 치즈 퐁뒤로 속을 채운 라비올리니 파스타도 있다. 송아지 고기를 이탈리아식으로 건조 숙성한 현지 프로슈토 햄으로 감싼 메뉴가 메인이다. 약 11만원부터. lafontana-locarno.com
레스토랑 피오렌티나
로카르노시 뒷골목에 있는 식당으로 아치형 천장 아래 리넨으로 덮인 테이블에서 창의적인 메뉴를 즐길 수 있다. 먼저 납작하게 잘라 구운 브루스케타 빵과 다진 채소로 만든 라구소스가 나오고, 따뜻한 주 요리로는 토끼 고기와 송로버섯 카사레체(따뜻한 두루마리처럼 말려 있는 시칠리아 원산의 파스타)가 있다. 디저트로는 옥수수가루로 만든 무스에 브라우니가 함께 나온다. 약 6만4000원부터. restaurantfiorentina.ch
그로토 생 미셸
벨린초나 마을의 고대 성에 있는 동굴 식당으로, 햇볕이 잘 드는 테라스에서 포도밭과 알프스산맥을 바라볼 수 있다. 티치노식 샤퀴트리 절임 고기와 피클을 함께 먹고, 첫 번째 요리로 파리나보나로 만든 뇨키를 먹는다. 두 번째로는 블루치즈 폴렌타를 꼭 맛봐야 한다. 약 11만원부터. castelgrand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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