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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L FLAVOR: PYEONGTAEK
쌀의 품격
2019년 08월호

물길이 휘감은 땅, 평택

내비게이션에 ‘경기도 평택시’ 그리고 이어지는 낯선 주소를 입력했다. 지도 속 목적지 주변은 온통 평야다. 안내를 따라 논과 논 사이를 한참 달려 평화롭고 고요한 마을 신리에 도착했다. 신리는 진위천과 안성천을 끼고 있어, 농업 용수가 풍부해 농사를 짓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평택호와 남양호에서 바람이 불어오니 병충해도 적은 편이다. 이곳에서 농부들은 커피 찌꺼기로 만든 비료를 사용해 작물을 키워낸다. 스타벅스에서 한 달분의 커피 찌꺼기를 모아 퇴비 공장에 가져다 주고, 3개월 동안 45% 수분 함량을 20%가 될 때까지 낮추면서 발효시킨다. 이 과정이 충분하지 않으면 논에 들어갔을 때 썩으면서 나오는 가스로 인해 벼의 생육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한다.

커피 브랜드와 농사짓는 마을 사이에 생긴 연결고리는 미듬영농조합 전대경 대표로부터 시작됐다. “할아버님도 농부였고, 아버님도 농부였어요. 그리고 저도 농부였죠.” 2005년 조합을 설립한 이후 2008년 가공사업을 시작해, 2009년 5월 1일 스타벅스에 첫 제품 라이스칩을 납품했다. 쌀 소비량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고, 새로운 스타일의 농업 모델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렇게 시작된 라이스칩 납품은 한과를 새로운 스타일로 해석한 라이스 바로 이어졌고, 쌀빵 4종까지 인기를 끌며 평택 쌀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풋내 나는 쌀, 빵이 되다

밀봉된 쌀 포장지를 여는 순간, 좁은 틈새로 훅 하고 신선한 풋내가 퍼져 나온다. “평택에서 자란 쌀이에요. 냄새가 좋죠? 워낙 토양이 좋으니 그럴 수밖에요.” 훌륭한 재배 조건 속에서 수확한 쌀은 마그네슘과 알칼리 성분의 영향을 받아 충실하게 여물어 영양분을 간직하게 하는 힘이 좋다. 미듬영농조합에서는 이 땅에서 자란 풍미 좋은 쌀을 재료로 다양한 빵을 만들어낸다. 쌀빵은 밀가루빵에 비해 바삭함은 부족하지만, 특유의 쫄깃함과 부드러움이 있다. 그리고 평택 쌀빵의 경우, 직접 배양한 천연 발효종을 사용해 저온 숙성시킨 반죽으로 만들어 먹었을 때 속이 편하다.

쌀 함량이 낮은 디저트 빵이 아니라, 쌀 함량을 73~100%까지 높여 만든 빵은 식사용으로도 좋다. 쑥식빵, 홍국식빵은 물론 무화과나 크랜베리 등을 넣은 건강빵을 비롯해 배쨈, 치즈, 단팥, 밤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조화로운 맛을 낸 빵들도 눈길을 끈다. “처음엔 맛있는 빵을 만들기 어려웠어요. 열심히 연구도 하고, 전문가들의 기술을 응용해도 방법을 못 찾겠더라고요. 이유가 뭘까 고민하다 깨달은 게 있어요. 쌀로 밀가루빵 맛을 내려고 했다는 것을요. 그러고선 다르게 만들자, 라는 목표를 세웠죠. 쌀이 가진 성격과 풍미를 인정하고 나니 쉬워지더라고요.”

 

쌀을 닮은 신리 사람들

얼마 전 <쌀을 닮다>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는 쌀을 길러내고, 쌀과 함께 살고, 먹고 요리하는, 평택 신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마을 사람 12명의 인터뷰. 그들의 인물사진과 각자의 의미 있는 물건, 공간, 그리고 음식을 공들여 촬영했다. “우려와 달리 사진작가가 오는 날을 사람들이 기다렸어요. 촬영이 끝나고 저녁이 되면 모두 모여 막걸리 사발을 기울였어요. 기록을 남기는 시간이 좋은 추억이 됐죠.” 어린 나이에 신리로 시집온 이계순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고된 시집살이의 흔적과 첫 살림살이였던 맷돌이 등장한다. 그 맷돌로 허기를 채워줄 콩죽을 만들었다. 콩죽은 할머니의 솔Soul푸드가 돼 이제는 그녀의 허기진 마음을 채워준다.

김상기 이장의 호박에 담긴 마음, 김희중 씨가 말하는 농부의 즐거움, 이예령 님이 전통주를 빚는 시간까지 페이지마다 각자 삶의 방식이 기록돼 있다. 전 대표는 책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신리 투어’를 기획하고 있다. 거창하지는 않다. 이곳 라이프스타일과 재배 작물, 음식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소규모 여행으로 밑그림을 그리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들을수록 흥미로웠다. 땅에서 출발해 쌀과 쌀빵, 그리고 문화 콘텐츠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는 이곳의 행보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궁금해졌다.

글. 임보연 BO-YEON LIM
사진. 김현민 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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