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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우주 서촌 유영
2019년 10월호

느린 시간 속 새로운 변화

김종관 감독은 미로 같은 서촌 골목 곳곳에서 영화 <최악의 하루>를 촬영했다. 서촌에서 8년째 거주하고 있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골목은 경복궁 서쪽 문 ‘영추문’ 건너편에 있다. 통의동 보안여관과 바로 옆 사진책방 ‘이라선’ 사이로 난 골목길을 좋아해서 영화 <최악의 하루> 속 주인공들이 거니는 장면을 촬영했다. 그는 바로 옆 큰 길가에 있는 온 그라운드 갤러리에서 서촌 골목을 찍은 사진들을 한데 모아 2017년 봄 전시를 열었다. 거리에서 통창 너머로 화이트 월에 설치된 작품을 살펴볼 수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이다. 김종관 감독이 사진책을 보러 들르기 좋다고 소개해준 서점, 이라선의 김진영 대표는 사진 미학을 전공했다. 사진책을 출간한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대담을 열곤 한다. 김종관 감독은 바로 옆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리는 전시도 자주 찾는단다. 폐쇄적이지 않고 항상 열려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그는 서촌 골목을 거닐며 작품을 구상하다가 구석구석에 자리한 단골 카페에서 글을 쓰는 시절을 오래 보냈다. “서촌에서도 뛰어오른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한 상인과 주민이 떠나가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어요. 사람들이 개발 제한으로 인해 간직하게 된 옛 모습이 있어서 서촌으로 찾아온 건데 그로 인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거죠. 서촌에 살다 보니 세탁소가 사라져서 아쉬워하다가도 그 자리에 들어선 카페에서 차를 마시게 되더라고요. 느리지만 다양한 변화가 느껴질 때 마주하게 되는 이런 역설적인 순간에서 영감을 얻곤 해요.”

 

경복궁과 청와대 사이로 노닐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와 이야기처럼 일상 속 서촌 거리에서 생경한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그가 즐겨 찾는다는 보안여관은 1936년에 세워졌다. “전시를 준비할 때에는 개방하지 않아요. 대신 전시를 개관하면 누구든 둘러볼 수 있지요.” 바로 옆 건물에 자리한 보안1942에서 근무하는 최인선 프로그래머가 보안여관의 문을 열며 안내를 시작했다. “보안여관이 최초로 기록된 해는 1936년이에요. 미당 서정주가 자서전 <천지유정>에 ‘1936년 가을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서 기거하면서 동인지를 꾸며내게 되었다’라고 적었지요.”
복고풍 간판을 지나니 입구 왼편으로 카운터가 보인다. 이곳에 묵으며 신문사에 응모작을 낸 문인들은 카운터에 앉은 주인에게 당선을 알리는 전갈이 왔는지 묻곤 했단다.  옛 여관의 꼭대기 층에 다다르자 머리 위로 일본식 목재를 덧댄 대들보가 보인다. 뼈대는 한옥인데 얇은 나무판자와 기둥을 대어 보수한 벽면은 일본식이고 타일을 붙인 외관은 근대 건축의 특징을 지녔다. 건축양식만 살펴보아도 건물이 겪은 조선 시대, 일제강점기, 근대기가 드러난다. “13년 전 철거 공사를 앞두고 지붕 언저리에 있던 서까래를 뜯어냈는데, 보안여관을 지은 연도와 일자가 적힌 상량문이 나왔어요. 옆에 지은 신관이자 복합문화공간, 보안1942의 이름에는 상량문에 쓰인 연도를 붙였어요.”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2004년까지 운영된 여관은 그대로 남았고, 옛 모습을 보존한 여관에서 2007년부터 전시를 열었다.

 

궁궐 앞 책방은 타임머신 같다

그 옆에 3년 전 지은 보안1942의 3층과 4층에 자리한 스테이 곳곳의 창문은 경복궁, 청와대, 북악산의 풍경을 담아낸다. 스테이의 방에 들어설 때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경복궁 담장 밖에서 바라보는 경회루, 위에서 내려다보는 영추문 누각, 북악산과 어우러진 청와대 지붕에 눈길이 머문다. 빈티지 스피커와 전축, 자개로 장식한 재봉틀이 레트로 감성을 더해 준다. 2층으로 내려가서 서점에서 책을 읽고, 1층에 꾸민 카페로 자리를 옮겨 취향 따라 차를 골라 마신다. 지하 1 층으로 내려가 화이트 월로 깔끔하게 마감한 전시 공간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본다. 이 건물의 맨 아래층, 지하 2층에 닿는다. 비밀번호를 누르자 잠겨 있던 문이 열리고, 한쪽 벽면을 메운 4.2m 높이의 책장이 시선을 압도한다. 푸른 조명을 켜 둔 유리 바닥 아래 반듯하게 다듬은 바위와 번호가 적힌 돌들이 놓여 있다. 초현실적인 첫인상에 호기심이 인다.
“최근 문화재청이 이 일대 약 3000m²가 추사 김정희 집 터였다는 걸 인정했어요. 여기는 그 일부인 거지요. 보안1942를 짓기 위해 본래 있던 적산가옥을 허물고 지하 4층 깊이까지 땅을 파다가 조선 시대의 집터를 발견했어요. 그 유적지와 돌들을 3D 프린터로 재현해 바닥에 앉힌 다음 그 위에 유리를 덧씌웠어요.” JBL 백 로드 혼 유니트 스피커에서 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13년 전 보안여관 지붕에서 발견했다는 상량패가 벽면을 가득 메운 책장 한 켠에 놓여 있다. 책장 옆 벽장에는 와인과 양주를 두었다. 조선 시대 집터를 발치에 두고 세련된 음악과 현대에 촬영한 영화를 즐긴다. 타임머신을 탄 듯 생경한 분위기로 가득한 지하 공간이다.

 

서촌 사람이 ‘애정하는’ 골목

“겨울이 되면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경복궁 담장 너머 경회루가 내다보이죠. 전시를 준비하러 온 해외 아티스트들이 즐겨 묵는 방이에요.” 3층 스테이의 벽면에 낸 통창을 바라보며 30년 동안 서촌 토박이로 살았던 최인선 프로그래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제가 매동초등학교를 나왔는데 우리가 앉아 있는 보안1942가 근대 초창기에 옛 매동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예요. 한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초등학교인데 120년 정도 됐지요. 필운동으로 이전한 매동초등학교를 몇 십 년이 지나 제가 입학해 다닌 거고요." 그는 창밖으로 보이는 이 거리를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수없이 오갔다. 출장이나 여행에서 돌아올 때 광화문이 보이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그는 경복궁의 출입문, 광화문에서 펼쳐진 밀레니엄 행사, 붉은악마의 응원전,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도시의 시간을 포용하게 됐다.
"청와대가 자리해 무분별한 건축을 할 수 없는 동네예요. 불편함을 감수하는 만큼 옛것도 살아남았지요. 경복궁이라는 완벽한 아름다움이 구심점으로 존재하는 서촌은 각각의 개성을 살려 노닐어도 난장판이 되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에게 서촌은 30년 넘도록 지내면서 겪어온 건축물, 콘텐츠, 사람, 음식이 존재하는 곳이다. 밥 먹으러 놀러 서촌 어디로 갈지 누군가 물어보면 골목길 한 타래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정리되지 않은 듯하지만 생각할 거리도 많은 서촌을 그가 느끼고 기록하며 사진으로 찍었던 골목들이다." 

 

궁궐 옆 동네에 모여든 문화예술인

서촌은 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사이의 동네를 일컫는다. 경복궁의 서쪽 문을 뜻하는 영추문을 끼고 청와대까지 이어지는 효자로를 기준으로 왼쪽에 자리했다. 600여 년 전 경복궁을 세우는 모습과 궁궐과 가옥과 건물이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지긋이 껴안은 인왕산은 조선 시대 문화예술인에게도 품을 내주었다. 서예가를 꿈꾸게 한 추사 김정희가 살았고 세종대왕이 탄생한 서촌에 작업실을 차리길 바랐던 강병인 캘리그라퍼는 4년 전 인왕산 자락의 수성동 계곡을 지척에 둔 옥인동의 한 골목에 ‘캘리그라피연구소 술통’을 마련했다. 그 앞 아담한 마당에서 발길을 멈춘다. ‘꽃’이라는 글씨를 조형물로 만들어 세웠다. 꽃잎, 가지, 뿌리로 지어진 하나의 건축물 같다. 작업실에서는 그가 화선지 위에 ‘솔’이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먹과 붓으로 글을 아름답게 쓰는 그의 손끝에서 TV 드라마 제목 ‘미생’‘송곳’‘정도전’, 주류 브랜드 상표 ‘참이슬 Fresh’ ‘산사춘’ ‘화요’ 등이 탄생했다. 그는 한국 명산을 담은 임채욱 사진가의 영상에 자연과 한글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캘리그래피를 그려 넣은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묵직한 바위에 드리운 햇살이 산 언저리를 비추는 모습이 찬란해 인왕산을 자주 올랐지요.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은 하늘, 사람, 땅을 상징해요. 한글이 아름다운 건 우리 자연이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이에요. 먹과 붓으로 글씨를 쓰는 직업을 가져서인지 인왕산을 그린 겸재 정선의 <인왕재색도>가 마음에 닿곤 해요. 수억 년 시간을 간직한 산과 바위를 그려낸 강인한 붓질이 그대로 느껴지니까요. 자연을 묘사하는 천재성인 거지요.”

 

호랑이 살던 인왕산 아래 시간은 흐른다

1951년 개업한 책방을 카페로 꾸민 ‘대오서점’과 고풍스러운 외관을 간직한 중국집 ‘영화루’를 지나 오른쪽 샛길로 들어선다. 길 잃은 고양이처럼 콘크리트 외벽에 달린 ‘무목적無目的’ 세 글자 앞에 다가선다. 현판을 발견하고선 1층에 뚫린 공간을 지나 필운대로를 내다보는 빌딩 앞면을 올려다본다. 신상 빌딩인데도 빈티지한 느낌을 준다. “주변의 옛 가옥들과 어우러지도록 노출 콘크리트에 고압으로 물을 뿌려 마감했어요. 언제든 인왕산 전망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여기에 빌딩을 짓기로 결정했지요.” 건축주 권택준 씨에게 왜 ‘무목적’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묻자. 길을 걷던 사람들이 미로 같은 공간으로 엮인 건물을 물 흐르듯 배회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 4층에 위치한 카페, ‘대충 유원지’로 걸어 올라가본다. 윤한열 대표가 넓은 탁자 뒤쪽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저희 카페 이름 ‘대충(大蟲)’은 조선 시대에 호랑이를 일컫었던 말이기도 해요. 인왕산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라 1호점을 서촌에 차리고 싶었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았죠. 연남동에서 1호점을 꾸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이곳 건축주의 연락을 받아 입주하게 됐어요.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네 짐승(사신, 四神) 중에서 백호白虎는 서쪽을 뜻하는데, 그래서인지 경복궁을 서쪽에서 호위하듯 감싸 안은 인왕산에 호랑이가 많이 살았대요.” 193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춘 인왕산 호랑이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선 4층 루프톱에서 전망을 내다본다.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수없이 사람이 드나든 근·현대식 건축과 다세대 연립 주택과 한옥을 인왕산의 너른 암벽이 점잖게 굽어본다.

 

골목 골목 갤러리를 유영하다

서촌의 갤러리는 건물 위 아래로 골목 옆으로 유영하듯 둘러보기 좋다. 1973년 박노수 화백이 40여 년을 살면서 작품을 그리던 가택을 2013년 기증해 개관한 박노수 미술관부터 대중적인 전시로 유명한 대림미술관까지 서촌 곳곳에 크고 작은 갤러리가 있다. 작은 갤러리들은 대중 없이 문을 열고 닫는 편이다. 그럴 때면 실망하는 대신 근처에 문을 연 또 다른 갤러리를 구경하러 나서면 된다. 효자동의 두오모 레스토랑 건너편에 있는 사루비아다방, 통인동의 시청각과 갤러리룩스, 통의동의 갤러리팩토리, 창성동의 갤러리 그리다와 창성동 실험실… . 저마다 색깔이 다른 공간을 펼치는 갤러리의 개성이 간판에도 드러난다. 대림미술관, 진화랑, 갤러리 시몬, 팔레드서울, 아트사이드 갤러리, 인디프레스 갤러리, 청운동의 아카이브 빌딩으로 자리를 옮긴 류가헌 사진전문 갤러리 등 실력파 화랑들도 살펴볼 만하다.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이태원 등지에서 운영했던 표갤러리는 지난 5월 서촌으로 이사 오기도 했다. 대림미술관에서 자하문로를 건너 토속촌을 지나 골목으로 올라가면 향수와 양초를 만드는 베르씨빌라주 공방에 닿는다. 백희영 조향사는 지난 5년간 서촌에서 공방을 운영해왔다. 그는 "갤러리를 둘러보다가 일일 클래스에 오는 손님이 많은 편"이라며, "낡은 집에 지내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이 동네가 마음에 들어 계속 지낼 생각"이라고 말한다.

 

추억으로 기억하는 서촌의 자리

통인시장 건너편 효자동 골목 초입에는 이탤리언 레스토랑이 세 개나 모여 있다. 사루비아다방 갤러리 바로 옆에 자리한 ‘서촌김씨’는 올해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에 소개되었다. 건너편에 위치한 ‘두오모’는 8년 동안 동네 주민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방으로 자리잡았다. 주택가로 좀 더 걸어 들어가 한옥을 개조한 레스토랑 ‘까델루뽀’의 대문을 들어선다. ㄷ자 한옥에 둘러싸인 마당에 포도 넝쿨이 무성하다. 지난 9년간 이곳 레스토랑과 주방을 지켜온 이재훈 셰프는 서촌의 첫인상을 아직도 기억한다. “골목을 따라 걷는데 이런 동네가 서울에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골목 사이로 핀 꽃, 퉁명스럽게 걸린 간판, 이가 나간 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길이 서정적으로 느껴졌어요.” 이탈리아 유학 후 청담동에서 700평 규모 레스토랑의 총괄셰프로 일하던 그는 테이블이 5개뿐인 서촌의 레스토랑을 선택했다. 30년 전쯤 지어진 한옥을 단장해 2006년 문을 연 까델루뽀에서 2008년부터 요리를 만들었고, 2011년에는 레스토랑을 인수했다. 러포즈를 하려고 찾았던 손님이 돌잔치를 열기 위해, 고등학생이었던 손님이 결혼해 아내를 데리고 이곳 테이블에 다시 앉는다. 주방의 막내 셰프는 수셰프가 됐다. 추억을 기억하며 찾아온 손님들도, 그들에게 계절마다 새로운 요리를 대접한 세프도 성장했다. 추억이 가져다주는 소소한 감동이 그리워 손님은 서촌을 찾고, 셰프는 서촌 한 골목의 한옥 레스토랑을 지킨다. 다음에 찾아온 이 자리에 또 다른 시간이 쌓여 있겠지. 사람과 사람이 이야기를 짓는 서촌의 골목을 나선다.

 

빌딩 숲 속 자연을 만나다

세월이, 사람이, 집의 형태가 달라지더라도 산은 그곳에 존재한다. 산을 오르는 건 변함없이 자신을 받아주는 자연을 온몸으로 깨닫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서울의 빌딩 숲을 곁에 둔 인왕산 자락의 수성동 계곡으로 걸음을 옮긴다. 통인시장 서쪽 출입구 맞은편에서 인왕산 쪽으로 뻗어 있는 옥인길을 걷는다. 통인시장 근처의 정자에 청년과 어르신들이 사이 좋게 앉아 있다. 카페, 레스토랑, 소품 가게, 윤동주 하숙집 터가 있는 골목을 지나 언덕길을 오른다. 옥인길 끝에 다다르자 향긋한 피톤치트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도시의 골목에서 5분 정도 걸어 올라갔을 뿐인데, 인왕산 수성동 계곡이 눈앞에 펼쳐진다. 표지판에 새겨진 겸재 정선의 그림과 똑 닮은 모습이다. 인왕산 자락이 뻗어있는 옥인동은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던 조선 후기의 예술, 일본에 나라를 팔아버린 친일파의 흥망성쇠, 계곡을 짓누르던 아파트의 생성과 소멸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탁 트인 하늘 아래 산이 그리는 능선을 온전히 볼 수 있다니. 서촌이 품 안에 이뤄온 오래된 미래를 전망하는 셈이다. 옥인로 끝자락의 주택가에서 종로구 마을버스 9번 버스를 탄다.

 

서촌에서 발견한 그들만의 소우주

정류장 세 곳을 지나 한옥마을 오거리에 내린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자리한 ‘한 권의 서점’에 들어선다.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서촌 골목 골목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안내소 역할도 하지요.” 한 권의 서점으로 들어선 이상묵 대표가 여행자들에게 골목마다 숨어 있는 서촌의 좋은 식당, 숍, 카페 등을 퍼즐 맞추듯 찾아 나가는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다며 이야기를 꺼낸다. "서촌은 골목과 골목을 수평으로 둘러보면서 깊이와 진정성이 느껴지는 공간들을 경험할 수 있는 동네예요.” 서촌 사람들은 일상 속 궤도를 소중히 여긴다. 그들만의 터전과 삶을 가꾼다. 토박이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는 동네에 전문직 종사자, 디자이너, 큐레이터, 문화예술인이 모여든다. 옛것과 현대적인 것이 켜켜이 쌓인 시공간 속에서 저마다의 소우주를 펼치는 사람들이다. “서촌의 여러 한옥을 전세로 얻어 독채 한옥 스테이로 단장해 운영하고 있어요. 집주인은 다시 돌아와 살고 싶을 때 돌려받을 수 있지요. 한옥을 새로 짓는 건 인위적이지만 지금 있는 한옥이 사라지는 건 안타깝죠. 한옥을 보존하되 특별한 경험으로 체화할 수 있도록 치환했어요. 단 한 채의 한옥에서 엄선한 책을 읽으며 숙박하는 ‘일독일박’도 그중 하나이지요.” 이상묵 대표가 5년 동안 살펴본 서촌의 시간성과 다양성을 이야기한다. “서촌의 새로운 건물들은 으스대지 않지만 그 나름의 느낌이 있죠. 다양한 연령층, 일하는 사람과 거주하는 사람, 상인과 주민, 옛 조직과 새로운 조직, 옛날 도시와 새로운 도시. 이 모든 게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동네이니까요.” 골목 골목을 돌아 어느덧 일독일박에 들어선다. 정갈하고 쾌적하고 편리하지만 옛 모습을 최대한 간직한 독채 한옥이다. 나만 알고 싶은 소우주가 여기 서촌에 또 하나 생겼다.

글. 윤혜경HYE-KYUNG YOON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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