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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Y
숨겨진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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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호

이탈리아의 조용한 길모퉁이를 방문하는 데 성수기는 따로 없다. 전통을 간직한 나폴리의 마을에서 라지오의 고고학 발굴지로 여행을 떠나거나, 풀리아에서 광대한 경관을 만날 수 있다. 혹은 투린과 트리에스테의 조용한 해변을 거닐며 이탈리아의 숨겨진 매력에 푹 빠져도 좋다.

마르케

중부에 있는 마르케주 장인들의 수공예 기술은 이탈리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삼을 원료로 만든 종이, 이탈리아 대형 패션하우스에 납품하는 직조 바구니 백, 먼 옛날 일종의 테니스 같은 스포츠에 쓰인 가죽 공 안에는 대를 이어 내려온 역사가 축적되어 있다.

 

트레이아에 있는 이발소 창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자 주인인 렌조 카스텔라니 씨가 서둘러 나온다. “타지에서 오셨나 봐요.” 61년 동안 이발을 해왔다는 그는 애정을 가득 담아 마을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마르케주는 토스카나와 움브리아 주에 걸쳐 있는 아펜니노산맥 바로 건너편에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정취를 간직한 언덕 마을에는 우아한 테라코타 건물, 좁다란 길, 보석함 같은 극장이 자리한다. 토스카나주에 있는 몬테풀치아노 마을이 떠오른다. 차이점이라면 방문자들이 좋아하는 와인 상점 대신 허브 향 가득한 포르체타(이탈리아식 돼지고기구
이)를 사려고 정육점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아치형 천장에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벽면이 눈길을 끄는 이 카페는 저녁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카페 바깥 벽에는 예수가 그려져 있다. 렌조도 서 있다.
마르케주는 종종 토스카나의 대안으로 홍보되곤 했다. 토스카나에서 볼 수 있는 굽이치는 언덕과 중세 시대의 길이 있지만, 셀카봉이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는 없다. 다만 마르케주에는 장인들의 역사가 숨 쉬고 있다. 트레이아에는 끝이 뾰족하고 머리 부분은 주먹 같아서 마치 고문 도구처럼 생긴 나무 방망이가 있는데, 일종의 테니스 경기인 브라키알레bracciale에 사용된다.
경기의 기원은 르네상스 시대로 추정된다. 이탈리아 대부분 지역에서 사라졌으나 트레이아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8월 첫 번째 일요일이 되면 경기장으로 탈바꿈한 주차장에서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기를 한다. 구두 수선공이자 볼을 만드는 다니엘 랑고에 따르면 공 하나에1 00달러가 넘는단다. 나는 그가 주최하는 워크숍에 참여해 손으로 바느질한 가죽띠로 자몽 크기만 한 공을 덮는 과정을 직접 해보았다. “힘든 일이죠. 어깨 좀 쓰셨을 겁니다.” 그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그의 말이 마치 내게는 ‘이게 트레이아의 역사’라고 들렸다.
다니엘 덕분에 마르케주의 장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중세 성곽 마을과 마치 정리하지 않은 침대처럼 구불구불한 풍경을 거쳐 30분 뒤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작은 마을 몰리아노에 도착했다. 트레이아에서 산 포르체타 파니니 샌드위치를 먹으며 눈 덮인 산과 그너머로 보이는 밭과 숲, 올리브나무에 이어 풀이 우거진 정상에 자리 잡은 테라코타 마을을 감상한다. 언덕 초입에서 토니노 나르디 씨를 만나 그의 차고로 갔다. 그는 수줍게 “그저 작게 하는 일이에요”라고 말한다. 그는 아내 모레나, 남동생 디노와 함께 버들가지와 가죽을 엮는다. 어머니와 딸도 돕는다.
규모는 작을지 모르지만 나르디가 만드는 백은 프라다, 돌체앤가바나, 펜디 등에 납품된다. 나는 모레나가 단 90분 만에 재능과 예술성을 담은 루이비통 백을 완성하는 걸 지켜봤다. 물론 그 안에는 자부심도 포함되어 있다. “한때 몰리아노에서는 모두가 바구니를 엮을 줄 알았어요. 목축에 필요했으니까요.” 현재 장인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단 네 명뿐이다. 나르디 가족도 8년 전에 이 일을 그만두려고 했다. 하지만 프라다가 그들의 삶을 바꾸었다. 토니노가 “전에는 직조공으로 불리는 게 어색했어요. 하지만 요즘에 가죽을 엮는 일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이 이뤄지고 있어요. 무척 자랑스러워요. 이건 문화와 지역을 이어주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트레이아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정도 가면 파브리아노 마을이 나온다. 1400년대부터 종이로 잘 알려진 곳이다. 페이퍼 앤드 워터마크 뮤지엄 파브리아노에서 가이드 클라우디아 크로체티를 만나 워크숍에 참석했다. 제지공인 로베르토가 종이 만드는 틀을 면이 섞인 물에 담가 아주 얇은 종이층을 만든 뒤 양모 위에서 말린다. 위층에서는 상주 예술가 스테파노 루치아노가 아주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프린트를한다. 제지 장인인 루이지 메셀라가 갑자기 묻는다. “내가 만든 종이를 아직 안 써봤나요?” 스테파노는 아직이다. 우리는 다음 날 루이지의 워크숍에서 그가 직접 키운 약 800L 용량의 삼이 종이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이는 루이지의 동료인 에밀리아노 스카톨리니가 다발로 만들어 가죽 커버를 더한다. 중세 시대부터 파브리아노 외곽에서 지난 600년 동안 이 같은 과정으로 종이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마르케주 사람들은 살아있는 역사를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나폴리

다시 활기를 찾은 사니타 지역을 탐험한다. 줄처럼 이어지는 거리를 따라 진정한 피자와 독특한 페이스트리를 발견하고, 바위에 지은 성당 크기의 납골당도 볼 수 있다.

 

 

평소 사니타의 화요일 점심 시간이라면 조용하겠지만 지금 비아 베르지니는 생기가 넘친다. 바나나 모양의 드레스나 <겨울왕국>의 엘사 같은 드레스를 입은 어린 소녀들이 부모님과 함께 뽐내며 길을 걷는다. 제법 연세가 드신 분은 얼룩 조랑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자갈길을 달린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상점 진열대를 살핀다. 화려한 인조가죽 가방과 믿을 수없을 만큼 높게 쌓아 올린 채소, 나폴리만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 등이 있다. 나는 파티세리아 포펠라 바깥 자리에 앉아 있었다. 너무 시끄러워서 치로 스코냐밀로가 하는 말을 거의 들을 수가 없다. “문신을 했어요.” 그가 옷 소매를 걷어 올리자 팔뚝에 고드름 달린 눈덩이와 그 위로 내리는 눈송이가 드러난다. “인생을 바꾸려고 이 문신을 했죠.” 10년 전에 치코는 사니타에서 3대째 이어지는 제빵사로 일하느라 고군분투했다. 사니타는 썩 좋은 곳이 아니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생계를 이어가려고 애쓰면서 그는 나폴리주의 모든 것을 담아낸 페이스트리를 발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치로는 수없이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4년 어느 날 드디어 피오코 디 네베(눈송이라는 뜻)가 탄생했는데, 양젖으로 만든 차가운 리코타치즈와 신선한 크림으로 속을 채운 프로피테롤(작은 슈크림)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어요.” 그는 자부심에 찬 어조로 이야기했다. 2017년에는 그가 만든 ‘눈송이’의 성공으로 비아 델라 사니타에 예쁜 파티세리아 제과점을 열었다. 내가 먹어본 피오코 디 네베는 차가우면서 너무 달지 않은 속 재료가 나폴리주의 햇살이 닿은 것처럼 사르르 혀 위에서 녹는다. 검은 장갑을 낀 스마트한 웨이터가 가져다 주는 것도 인상적이다. 치로의 성공은 지역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37명의 직원 모두 현지에서 채용한 청년들로 눈송이 덕분에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오늘날 사니타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40분을 기다린 끝에 짙은 자주색의 묵직한 커튼을 지나 새롭게 만든 주방 공간으로 안내됐다. 나무 장작 화덕을 둘러싼 높은 테이블에 앉아 문신을 새긴 팔뚝이 반죽을 펴서 늘이고 토핑을 뿌린 뒤 오븐에 밀어 넣는 광경을 지켜봤다. 나폴리주 피자는 신속성이 특징이다. 심지어 모든 메뉴마다 걸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내가 고른 산 마르자노 피자는 토마토소스로 만드는 마르게리타의 일종으로 주문한 뒤 단 몇 분만에 나온다. 웨이터가 피자를 올린 판을 내려놓자마자 바질 잎을 뜯어 위에 흩뿌린다. 사니타는 보다 깊숙이 들여다볼수록 아주 나폴리적이다. 나는 발코니마다 세탁물이 널린 빛바랜 궁전과 파드레 피오 신부, 세인트 빈센조 페레리 성인, 성모 마리아 등의 성인을 위해 공들여 진은 성지를 지났다. ‘웃음의 왕자’로 알려진 20세기 배우 토토도 여기서 태어났다. 예전에 그가 살던 집에는 그를 대표하는 정장용 모자와 냉소적인 표정 등을 그린 벽화가 있다. 사니타 지역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니 낮잠 시간인 시에스타 탓에 거리가 조용하다. 가구 가판대 주인이 진열 중인 소파 위에서 뒹굴고 있다. 정육점 진열장에는 돼지의 내장인 양과 나폴리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알려진 뿔 모양의 코니첼로가 가득하다. 20분쯤 걸어가니 부드러운 투파tufa(석회 침전물) 바위 노출부의 움푹 패인 곳에 성당 크기의 시미테로 델레 폰타넬레 납골당이 나온다. 지난 수백 년 동안 가난한 나폴리인들이 묻힌 안식처다. 예술적으로 쌓아 올린 뼈들 위에 해골이 층층이 올려져 있다. 기차표, 바위 위에 가지런히 놓인 연필, 얼굴에 바르는 크림 봉지 등으로 사후 세계를 믿는 매우 종교적인 나폴리인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해가 지고 어스름해지자 인근에 있는 집에서 촛불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 이 모습이 바로 나폴리요, 진정한 사니타다.

 

풀리아

살렌토 반도를 따라 로드 트립을 떠나자. 모래 해변, 절벽 꼭대기 동굴에 조성된 주거 지역, 고인돌, 정교하게 지은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 금속 장식처럼 박혀 있는 마을을 만날 수 있다.

 

갈리폴리Gallipoli의 일요일 점심 시간, 모두 집에 있다. 교회에서 돌아와 식탁에 앉아 있을 시간이다. 열린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스푼과 나이프, 포크 소리로 짐작할 수 있다. 이오니아해에 있는 바위섬에 불안정하게 위치한 어촌과 본토 깊숙이 모래 쐐기처럼 해변이 펼쳐진 도시 갈리폴리는 동화 속에 등장할 것만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고요가 있다.
장화를 닮은 이탈리아 영토 중에서도 장화 굽에 해당하는 최남단에 위치한 살렌토Salento 반도에서 역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선사 시대의 고인돌과 바로크 양식의 빌딩 꼭대기마다 천사 조각상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다. 4만5000년 전 유럽 최초의 호모사피엔스 거주지로 기록된 포르토 셀바기오 동굴도 갈리폴리 북쪽에 있다. 풀리아로 이주해 온 1세대 인류 중에는 아프리카에서 북쪽으로 여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인류가 포함되어 있다. 8세기경 예루살렘에서 탈출한 천주교 수도사가 지하 교회를 짓고 벽에 그린 프레스코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그리스 사람들이 조성한 칼리메라 마을처럼 정착을 목적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있다. 노르만이나 롬바르드나 사라센 민족 등은 정복을 목적으로 이주해 왔고 살렌토 건축 양식에 족적을 남겼다. 살렌토 반도는 가장 넓은 폭이 40km 정도밖에 안 되는데 동쪽과 서쪽 해안이 확연히 다르다. 서부 해변이 좀 더 평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전에 푼타 프로슈토에 잠깐 들른 적이 있는데 그때 본 모래 해변으로 이어지는 언덕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갈리폴리 남쪽에는 약 5분마다 해변이 나타난다. 그 중에는 원추형 바위가 해변으로 이어지는 곳도 있고 풀리아의
몰디브로 불리는 페스콜루스처럼 보다 목가적인 곳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남동쪽에 있는 포인트 산타마리아 디 루카는 이오니아해와 아드리아해가 미끄러지듯 만나는 곳이다. 루카에서부터 가면 갈수록 해안은 점점 더 장관을 이룬다. 그로타 진줄루사 동굴에서 현지 가이드와 함께 절벽 안쪽의 박쥐 동굴로 내려갔다. 오트란토 마을의 성당에서 12세기에 만들었다는 카펫을 감상했다. 성당 바로 위는 아라곤 궁전이다. 이곳에서 해안을 돌아보니 아말피 해안과 꼭 닮았다.

 

트리에스테

아침에 일어나 처음 마시는 비엔나식 카푸치노부터 소박한 분위기의 식당에서 마시는 취침용 프리우라노 품종 와인까지, 이탈리아 가장 동쪽에 자리한 국경 도시에서 완벽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을 지도처럼 펼쳐놓는다.

 

8AM
카페 톰마세오에서 아침을트리에스테가 한때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은 비엔나식 커피하우스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카페 톰마세오는 오페라하우스보다도 더 미장용 벽토를 듬뿍 바른 우아한 비엔나식 커피하우스다. 카푸치노와 크루아상을 먹고 있으면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 조각상이 세레나데를 들려준다.
caffeetommaseo.it

 

 

9AM
캐슬의 왕
카스텔로 디 산 구스토 성이 도시를 내려다보고 서 있다. 흉벽을 통해 트리에스테만 건너편으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보인다. 기하학적인 모자이크와 실물 같은 장례식용 조각 등 로마 시대 유물을 소장한 라피다리움 박물관도 들러보자.
castellodisangiustotrieste.it

 

11AM
경의를 표하라
서로 다른 세력의 경계에 자리한 트리에스테 역시 어두운 시대를 지나왔다. 하지만 최악의 시간은 1943~1945년 나치 독일하에 있을 때였다. 대부분이 정치범으로 분류되었던 3000~5000여 명이 라이시에라 디 산 사바 수용소에서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risierasansabba.it

 

1PM
점심은 알 프레스코, 야외에서!
조명이 켜진 타베나 사포리 그레치스의 나무 그늘은 주변 환경 덕분에 더 밝아진다. 인근에서 로마식 원형극장을 발굴하느라 이 지역을 폐쇄했기 때문이다. 햇빛을 받으며 트리에스테식 해산물 요리를 먹기에 제격인 그리스 레스토랑이다.
facebook.com/tavernasaporigreci

 

2PM
전망 좋은 방
트리에스테시에서 가장 유명한 미라마레성과의 거리가 8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미라마레성은 마치 디즈니 영화에서 막 튀어나와서 트리에스테만에 털썩 앉은 듯한 모습이다. 1856년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 1세 대공이 지은 성으로 비극이 서려 있는데, 막시밀리안이 멕시코에서 사형된 후 아내 샬롯이 신경쇠약으로 죽었다고 한다. 방에서 바라보는 해양보호지역의 풍광이 장관이다. 지하는 오두막 양식으로 조성돼 있다.
miramare. beniculturali.it

 

4PM
해변에서
트리에스테 시민은 해변을 사랑한다. 미라마레에서 도심까지 해변을 따라 타월을 펼치고 누워 쉬는 사람들이 보인다. 라 란테르나 또는 일 페도신 등 전통적인 해변에 가보자. 특히 일 페도신은 선착장 인근의 자갈 해변으로 남성과 여성의 구역이 콘크리트 벽으로 나뉘어 있다!

 

6PM
트리에스테만에서 저녁 술 한잔
피아자 우니타 디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매혹적인 광장이다. 카페 데글리의 야외 테이블에서 바다 위로 드리운 일몰을 감상하기 좋다. 벨에포크 양식의 커피하우스 스페치에서 현지 프리우라노 와인을 마신 뒤 근처에 있는 오스테리아 다 마리노에서 저녁을 즐기자. 700여 종의 와인과 발칸에서 영향을 받은 트리에스테 요리를 맛볼 수 있다.
caffespecchi.it, osteriadamarino.com

 

시칠리아

이탈리아의 최대 섬에서는 요리가 조금 다르게 완성된다. 시칠리아산 올리브오일을 생산하는 주제페 트라파니에게 올리브오일의 주요 풍미에 대해 알아보고 꼭 가봐야 할 레스토랑도 추천받자.

 

 

시칠리아의 음식은 지중해 문화의 포푸리에 비유할 수 있다. 이탈리아 본토에는 없는 풍미와 산물이 시칠리아에는 있다. 오래전 고대 그리스인이 올리브를 이곳에 가져왔고, 아랍인은 가지, 오렌지, 레몬을 가져왔다. 스페인 사람은 미국에서 건너온 초콜릿과 가시 덮인 배(원산은 멕시코지만 요즘엔 시칠리아산과 혼재돼 있다)를 가져왔다. 최근에는 남서해안의 마자라 델 발로에서 어업 교역을 하게 되면서 튀니지의 영향도 받고 있다.
시칠리아에서는 가지와 아티초크를 애용한다. 팔레르모 인근에 있는 세르다는 아티초크로 유명하다. 으깬 밀에 고기와 채소 등을 넣어 만드는 북아프리카 음식인 쿠스쿠스가 여기서도 잘 알려져 있다. 시칠리아산 오렌지는 맛과 향이 매우 강하고, 올리브는 열매가 굵고 크다. 내가 포조레알레에서 키우던 노첼라라 올리브처럼 시칠리아에는 다양한 토착 품종 올리브가 자란다. 카타니아 근처에 있는 브론테에서 나는 피스타치오도 유명하다. 이뿐 아니라 섬도 많다. 판텔레리아에서는 식초에 절여 요리의 풍미를 더하는 데 쓰이는 관목의 작은 꽃봉오리인 케이퍼가 나고, 파비냐나에서는 참치가 잡힌다. 모지아는 소금으로 유명하다.

 

식재료를 쓰는 방식도 이탈리아 다른 지역과 다르다. 시칠리아의 국민 요리라 할 수 있는 파스타 콘 르 사르데는 넓은 펜네 면에 씨 없는 술타나, 건포도, 잣, 구운 빵 부스러기, 정어리를 넣고 만들어 아주 특별한 맛이 난다. 쌀과 라구소스, 버터, 향신료를 넣은 프로슈토 햄, 심지어 생선 등을 넣고 동그랗게 튀기는 아란치니 등 길거리 음식도 유명하다. 파넬레(병아리콩가루로 만든 튀김), 스핀치오네 피자, 파니카 메우사(롤빵 안에 튀긴 내장을 채워 넣고 치즈를 올린 음식) 등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은 카스텔라마레 델 골포에 있는 ‘안티케 스칼레’로 어업으로 생계를 잇고 있는 가족이 운영한다. 성게를 넣어 만드는 파스타가 정말 맛있다. 스코펠로에 있는 바 네투노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비튼 전통 음식을 선보인다. 갈라파티미에 있는 르 골레는 시칠리아 토착종인 마이알리노 네로 돼지고기로 라구를 만드는데 믿을 수 없는 맛이다.

글. 줄리아 버클리JULIA BUCKLEY
사진. 프란체스코 라스투루치FRANCESCO LASTR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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