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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하게,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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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호

 

“강변을 따라 들어선 술집과
옛 유대인 거주 지구 등 인파로
붐비는 장소를 벗어나면 비로소
프라하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체코에서 가장 긴 블타바강 위를 지나는 다리들.

철의 장막 붕괴와 저가 항공사 부상은 동유럽 여행에 혁신을 가져왔다. 그중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도시가 바로 프라하다. 체코의 수도인 이곳은 이미 장엄한 성, 중세 거리, 화려한 건축물 등 여행자의 발길을 이끄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었기에 더 이상 준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프라하의 명소들은 대부분 7~8월에 가장 붐비지만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다면 한적한 시기를 노리는 게 좋다. 물론 프라하 역시 21세기 이후로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특유의 분위기가 퇴색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몇몇 지역에서는 오랜 전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왼쪽부터) 
카를린에 자리한 아르누보 양식 건축물.
레스토랑 겸 베이커리인 에스카Eska.

카를린

카를린Karlín의 강변은 마치 개발에 실패한 부둣가처럼 보인다. 사무실 단지는 돌과 유리로 만든 모델하우스를, 주거 단지의 짙은 오렌지색 벽은 당근을 연상시킨다. 또한 이곳의 공원에는 거꾸로 뒤집은 욕조로 만든 탑을 비롯해 기괴한 조각품들이 볼품없이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를린에는 여행자를 환영하는 듯한 따뜻한 분위기가 감돈다. 도시를 어슬렁거리는데 어느 록밴드의 시끄러운 연주가 마치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사이렌의 아름다운 노래처럼 여행자를 유혹한다.

알고 보니 그 소리는 버려진 고철 덩어리로 만든 노천 술집인 프리스타프 18600에서 밤마다 펼쳐지는 연주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선적 컨테이너를 통해 맥주를 건네주고 나무 위에는 타이어로 만든 그네를 매달아 두었다. 그 옆으로 술집에서 파는 핫도그를 사려는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다. 술집 앞 놀이터에는 젊은 부부가 콘크리트 파이프 위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중이고, 곳곳에 유모차와 반려견이 즐비하다. 18600.cz

카를린은 단 한 번도 멋진 도시로 언급되지 못한 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히곤 했다. 2002년 엄청난 홍수로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을 때는 마치 카를린에 종말이 온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 안타까운 재앙은 수해 복구를 하는 사이 오히려 재생의 촉매제가 되었다. 리버시티를 포함해 여러 산업 현장들이 새롭게 단장을 한 것이다. 과거 증기 보일러 공장이었다가 콘서트장으로 탈바꿈한 포럼 카를린Forum Karlín이 대표적이다. forumkarlin.cz

이제 프라하 전역에서 오랫동안 간과했던 카를린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다. 뉴타운New Town과 블타바강Vltava River 옆에 위치해 이동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거리를 따라 우아한 아르누보 양식 건물이 늘어서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잔디로 뒤덮인 카를린스케 광장Karlínské Square에 위치한 쌍둥이 첨탑이 눈길을 끄는 성 시릴 교회Church of Saints Cyril와 메토디우스Methodius 대성당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카페, 비스트로, 와인바가 우후죽순 생겨났을 정도다. 하지만 카를린은 여전히 경치보다는 정취가 살아 있는 동네다.

카사르나 카를린Kasárna Karlín만큼 카를린의 정취를 제대로 보여주는 곳도 없다. 오래전 막사로 쓰였던 이 거대한 공간의 상층부를 이제는 미술관과 스튜디오가 차지하고 있다. 넓은 안뜰에는 영화 상영장, 전시회장, 비치발리볼 코트 등이 들어서 있고 기묘한 설치미술품이 주변을 장식하고 있다. kasarnakarlin.cz

 

하블리체크Havlíček 정원에 자리한 포도밭.

 

비노흐라디

“이틀 전에 식성이 매우 까다로운 친구와 비노흐라디Vinohrady에 와서 치킨을 주문했어요. 제가 먹어본 치킨 중 최고였습니다!” 한 여행자가 미크로파르마 비스트로Mikrofarma Bistro 안으로 고개를 쑥 들이밀며 외친다. 이곳은 굉장히 특이한 비스트로다. 진열된 고기 중 아무거나 가리키면 셰프가 그 고기로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만들어 준다. 몇 년 전 정육점으로 문을 열었으나 지금은 선반 안이 피클이나 각종 델리 제품들로 가득하다. 비노흐라디의 다른 레스토랑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돼지고기와 만두가 들어간 전형적인 체코 요리를 거부한다. 이곳의 개성 강한 커피숍들은 수제 맥주와 함께 라면과 쌀국수 등을 내놓기도 한다. 비노흐라디가 단순히 부유하고 게으른 동네에 그치지 않도록 격려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소소하게 일어나는 혁신들이다. mikrofarma.cz

이 지역은 1922년 비노흐라디 호황기에 프라하에 흡수되었다. 중상류층은 비노흐라디에 머무는 걸 선택했는데 이는 ‘부르주아의 온상’이라 불리며 눈초리를 받았던 공산주의 통치하에도 마찬가지였다. 인근 지역에서 걸어서 비노흐라디로 들어서면 동네의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갑자기 거리마다 나무들이 빽빽하게 가꿔져 있고, 어두운 색감의 페인트로 칠한 건물들이 위풍당당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돌출된 발코니로 시선을 돌리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요란스럽게 장식된 벽면과 지붕이 눈길을 끈다. 19세기 후반에는 이러한 건물들의 외관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과도 같았으며 대부분 낭만주의 양식을 차용했다.

그리고 지난 수세기 동안 변화하는 트렌드의 가장 좋은 부분을 조금씩 덧입혀왔다고 한다. 동일한 구역 안에서 각각 신고딕, 신르네상스, 신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정교한 건축물들이 서로의 장식을 뽐내는 모습은 여행자에게 다양한 시대를 순식간에 오가게 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화려한 날개를 자랑하는 천사상 두 개가 꼭대기에 놓인 비노흐라디 극장Vinohrady Theatre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없다. 이 극장은 비노흐라디를 완벽하게 함축하고 있으며, 부를 과시하는 문화에 환멸을 느끼는 현지인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divadlonavinohradech.com

극장을 지나 모퉁이를 돌면 우아한 분위기가 감도는 카페 하나가 등장한다. 이곳 돌체멘테Dolcemente의 내부는 마치 작은 연극 무대를 떠오르게 한다. 테두리가 꽃으로 장식된 아치형 문을 통과하면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각종 훈제 햄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근사한 이탈리아식 케이크와 포르케타 샌드위치를 반드시 맛봐야 한다. 그리고 블랙베리나 티라미수 젤라토를 곁들여보자. 비노흐라디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열렬히 받아들이는 동네다. 이곳에서 머무르다 프라하의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된다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지도 모른다. dolcemente-vinohrady.cz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는 스페인 유대교 회당.

요세포프

이 스페인 유대교 회당Spanish Synagogue은 이상하리만치 회당처럼 보이지 않는다. 무어 양식의 아치와 열쇠 구멍 모양의 창문이 마치 이슬람 사원에 들어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뜬금없지만 이런 요소들이 요세포프Josefov의 분위기와 일맥상통한다.

“프라하는 유럽 건축 양식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백과사전이나 다름없어요.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유행했던 브루탈리즘 디자인이 엿보이는 것만 보아도 그렇죠.” 인사이트 시티스Insight Cities 여행사의 대표인 보니타 로즈Bonita Rhoads가 설명한다. 요세포프는 인근 지역의 구시가지와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옛 유대인 거주 지구를 구분하던 벽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벽들은 19세기 중반 요세포프의 길을 재건하면서 철거되었고 덕분에 프라하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도시에 유연하게 스며들었다. insightcities.com

그러나 유서 깊은 유대인 묘지와 회당 등은 여전히 건재하다. 나치가 유대인 인구를 무자비하게 줄여나가는 동안 요세포프는 사라진 인종을 보여주는 박물관을 설립하기로 했다. 그렇게 그들은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의 문물을 들여왔다. 덕분에 10만 권이 넘는 책, 금은보화, 양각으로 장식한 성경 덮개, 전통 공예품 등이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나치가 저질렀던 잔혹 행위의 실상과 희생자들의 죽음을 기리는 기념비도 증축되었다. 현재는 프라하 내에 소규모 유대인 공동체가 있다. 

13세기에 지어진 신구 유대교 회당Old-New Synagogue이 그들의 중심지라고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다른 예배 장소들은 대부분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그중 핑카스 유대교 회당Pinkas Synagogue은 깊은 애도의 마음으로 방문해야 하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학살당한 유대인 7만 7297명의 이름, 출생일, 사망일 등이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사망일은 대개 정확하지 않아 마지막까지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날짜를 기록했다고 한다. 위층에는 테레진 강제 수용소Terezin Concentration Camp와 유대인 거주 지구에서 힘겹게 살아갔던 유대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jewishmuseum.cz

요세포프는 지금까지 코셔 식당이 즐비하고 각종 유대인 기념품을 판매하는 숍이 넘쳐나지만 놀랍게도 지금은 과거 유대인 거주 지구였다는 사실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이제는 정교한 조각상, 식물로 가득한 정원, 동양적인 건축물,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물 등 다채로운 요소들이 여행자의 감각을 자극한다. 단순히 어두운 이야기를 따라 요세포프를 방문한 이들도 결국은 이 동네가 수많은 샛길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프라하에 가면 

도시를 구성하는 인상적인
5개의 요소를 발견하라!

 

맥주

탱크에서 여과하거나 저온으로 살균하지 않은 맥주는 더없이 신선하다. 펍 외관이나 메뉴판에서 ‘z tanku’라는 단어를 찾아보자. 과거에는 프라하에서 수제 맥주가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으나 현재는 수제 맥주 펍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아이스하키

체코에서 축구 다음으로 중요한 스포츠가 바로 아이스하키다. 겨울이 되면 최고 팀으로 손꼽히는 스파르타 프라하Sparta Praha가 팁스포트 아레나에서 경기를 펼친다. tipsportarena-praha.cz

 

보석

프라하에는 값싸고 질 좋은 기념품이 많은 편이다. 그중 현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기념품을 원한다면 석류석으로 만든 보석을 추천한다. 구시가지를 통과하는 길을 따라 보석상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정원

북적대는 프라하 도심에서 벽 뒤에 숨겨진 작은 정원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말라 스트라나Malá Strana에 위치한 싱그러운 꽃이 가득 핀 정원에 방문해보자.


와인

체코 동쪽의 모라비아Moravia 지역에서는 놀랄 만큼 많은 와인을 생산해낸다. 국경을 넘어 수출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현지에서 맛보기를 추천한다. 주요 품종으로 스바토바브리네츠케svatovavřinecké, 프란코프카frankovka, 뮐러-투르가우müller-thurgau, 그뤼너 벨트리너grüner veltliner 등이 있다.

 


 

 TRAVEL WISE 

가는 법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을 이용해 11시간 정도 이동하면 프라하에 도착한다. 화요일을 제외하고 전 요일 운항하며 요일마다 편명이나 시간대가 다를 수 있으니 참고하자. koreanair.com

 

더 많은 정보

프라하 포스트
praguepost.com

리빙 프라하
livingprague.com

프라하의 맛
tasteofprague.com

프라하 도시관광
prague.eu

체코 관광청
visitczechrepublic.com

 

글. 데이비드 위틀리DAVID WHITLEY
사진. NGT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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