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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호

 

“수마트라의 지형적 골격을 더듬으며
그려가는 여정.”

 

토바 호수와 매끄럽게 이어지는 수마트라의 산맥.

SUMATRA
03°35’35”N 098°40’07”E


세계에서 6번째로 큰 섬인 수마트라는 최장 길이가 1790km, 너비는 최대 435km에 달한다. 섬은 크게 서쪽의 산지와 동쪽의 습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섬의 최고봉인 케린치산과 바리산산맥을 뼈대 삼아 그 골격을 더듬어보자. 서쪽 고지대에는 활화산이 급격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약 7만4000년 전에 불을 뿜었던 화산은 토바 호수와 같은 칼데라를 빚어냈다. 동쪽 저지대는 산과 강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인해 광활한 늪이 형성되었다. 때문에 농업에는 적절하지 않지만 야자유와 석유 등 토양 위와 아래에서 기름을 생산해내 풍요의 땅으로 여겨진다.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수마트라호랑이.

 DO IT 

올곧은 숲의 직선

가장 깊숙한 밀림으로, 밀림으로!

 

수마트라의 가장 높은 지점 해발 3805m에서 여정을 시작해본다. 케린치산Kerinci Mountain은 섬의 북서쪽 끝에서 남동쪽 끝으로 이어지는 화산으로 정상에 600m 너비의 깊은 분화구가 자리한다. 1877년 네덜란드 출신 등반가인 아렌드 루돌프 반 하셀트Arend Ludolf van Hasselt와 다니엘 데이비드 베스Daniël David Veth가 처음 이곳을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린치산의 정상을 왕복하는 데는 1박 2일 정도가 소요된다. 단, 건기에 소량 내리는 이슬비에도 땅이 금세 진득하게 변하므로 반드시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등반을 하다 보면 약 1만 년 전 산 주변에 정착한 케식웍게당웍Kecik Wok Gedang Wok 부족의 후손과 마주칠 수도 있다.

부킷 라왕Bukit Lawang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에서는 지속 가능한 정글 트레킹을 제공한다. 이 마을은 5000여 마리의 오랑우탄이 거주하는 동물보호구역이기도 하므로 정글 내에서는 인도네시아 관광가이드협회인 ITGA가 승인한 현지 가이드의 인솔하에 세부 규정을 엄수해야 한다. 오랑우탄을 포함한 모든 야생동물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고 먹이를 주거나 손을 내밀어서는 안 된다. 또한 야생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줄 만한 소음이나 조명도 엄격히 금한다. ‘발자국과 추억만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이 트레킹의 핵심이다. 트레킹을 마친 후에는 마을에서 진행하는 쿠킹 클래스, 에코 프린팅, 빌리지 투어 등에 참여해보자. 참고로 정글 트레킹 수익의 일부는 지역의 환경 보존과 교육 개선에 힘쓰는 부킷 라왕 트러스트 에듀케이션Bukit Lawang Trust Education에 기부된다.

수마트라의 더욱 깊숙한 밀림을 탐험해보고 싶다면 웨이 캄바스 국립공원Way Kambas National Park으로 향하자. 부지가 1300km²에 이르는 이곳은 생물다양성을 지닌 천혜의 보고나 다름없다. 특히 약 400마리밖에 남지 않은 수마트라호랑이를 비롯해 수마트라코뿔소, 수마트라코끼리, 테이퍼tapir, 킨카주kinkajou 같은 현지 5대 포유류를 관찰할 수 있다. 이들을 포함해 국립공원에는 50종의 포유류, 6종의 영장류, 406종의 조류가 서식하는데 이 중 대다수가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여행자로서 여정 뒤에 수반되어야 할 책임감에 대해 고민해본다.

 

(왼쪽부터) 
탄중팅기 해변의 바닷물이 깨끗한 청록색을 띠고 있다.
벨리퉁섬의 전통 음식인 레팟lepat.

 ENJOY IT 

유려한 물의 곡선

굽이굽이 전해지는 옛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약 7만4000년 전 수마트라에서 일어났던 화산 폭발은 VEI 8급에 해당하는 역대 최악의 재앙 중 하나로 기록된다. 당시 대폭발로 인해 어마어마한 양의 화산재가 햇빛을 가로막았고 수십 년 동안 빙하기가 지속되었다는 가설도 존재한다. 토바 호수Toba Lake는 이때 생성된 화산호로 지질학적 탐구의 명소이다. 호수 안에는 제주도와 맞먹는 크기의 사모시르섬Samosir Island이 봉긋하게 솟아 있는데 이곳은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바탁Batak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해 본섬과는 또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페리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 화산섬의 면면을 살펴본다. 토착민이 손수 지은 전통 가옥 루마아닷Rumah Adat에 깃든 오래된 이야기를 들어봐도 좋다.

수마트라 서쪽에 위치한 무아로 항구Muaro Pelabuhan에서는 물길을 따라 형성된 어부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멘타와이 제도Mentawai Islands Regency의 70여 개 섬과 그 주변 섬들이 모두 이 항구를 거점으로 연결된다. 곳곳에 스며든 구시가지의 낭만은 해가 질 무렵 진가를 발휘한다. 일몰에 맞춰 찾아가면 강과 배와 항구가 노랗게 물드는 운치 있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다음으로 여행의 무드를 전환하기 위해 수마트라 동쪽으로 이동해본다. 벨리퉁섬Belitung Island은 방카 해협Bangka Strait, 카리마타 해협Karimata Strait, 나투나해Natuna Sea, 자바해Java Sea와 맞닿은 물의 순환지이다. 먼저 스쿠터를 타고 내륙 구석구석을 탐방해보자. 도로가 깔끔하게 관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통량이 매우 적어 주행 내내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벨리퉁섬의 정점을 누리려면 오로지 해변으로 가야 한다. 뿌리를 겉으로 내놓은 거대한 반얀 나무가 비치 투어의 시작을 알린다. 탄중팅기 해변Tanjung Tinggi Beach은 화강암, 백사장, 청록색 바닷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바위가 보이는 해변 가장자리까지 헤엄쳐 나가면 화려한 산호초를 맞닥뜨리게 된다. 이 해변은 2008년에 개봉한 영화 <무지개 분대>의 배경지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해당 영화는 벨리퉁섬의 굴곡진 역사를 다루고 있으니 방문 전 시청하여 섬의 이면을 발견해보는 건 어떨까.

 

이슬람교의 상직적 의미를 품은 그랜드 모스크 오브 웨스트 수마트라.

 SEE IT 

선으로 채워진 도시

상상과 이상으로 윤곽을 그리다.

그랜드 모스크 오브 웨스트 수마트라Grand Mosque of West Sumatra의 기묘한 각도로 기울어진 사면이 여행자의 걸음을 멈춰 세운다. 2007년, 전 세계 323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이 신비로운 모스크를 설계한 이는 MIT에서 학위를 취득한 리잘 무슬리민Rizal Muslimin 박사다. 그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속했던 쿠라이시Quraysh 부족의 지도자 네 명이 천의 네 귀퉁이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건축물을 디자인했다. 이 모습이 신성한 유물인 블랙 스톤black stone을 제자리로 옮기는 행위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모스크 바로 옆에는 85m 높이의 탑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최대 44m 높이에서 섬을 조망해보자.

동쪽으로 차량 30분 거리에서는 하늘로 뻗어나가는 형상의 파가루영 궁전Pagaruyung Palace이 위엄을 드러낸다. 1883년 파가루영 왕국이 해산된 이래 이곳에 왕이나 왕족이 거주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수마트라 서쪽 미낭카바우 고원Minangkabau Highlands의 소수민족은 궁전을 추앙하고 추념한다. 파가루영 궁전은 꽤 지난한 시간을 거쳤는데 1800년대에는 전쟁 중 폭동으로 전소되었고 2000년대에는 벼락을 맞아 소실되었다. 안타깝게도 귀중한 유물의 15%만이 화재에서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궁전은 꾸준한 복원 끝에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외부는 소수민족의 철학을 담은 조각들로 꾸미고 내부는 100가지 이상의 공예품으로 장식했다. 간혹 이곳에서 미낭카바우 부족이 전통복을 입고 기도를 드리기도 하는데, 두 손을 모은 모양새가 마치 입구의 뾰족한 지붕을 연상시킨다.

수마트라 남쪽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인 팔렘방Palembang은 암페라 다리Ampera Bridge로 완전해진다. 이 다리는 무시강Musi River을 사이에 두고 나뉜 세베랑 울루Seberang Ulu와 세베랑 일리르Seberang Ilir를 잇는 교량이자 여정을 마무리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저녁이 되면 224m 길이의 다리 위에 불이 탁 켜진다. 하늘이 점차 어두워질수록 이곳의 조형미는 더욱 뚜렷해진다.

 

 

냇지오와 탐험하기!

1895년에 지어진 청 아 피 맨션Tjong A Fie Mansion은 인도네시아에서 방문해야 할 10대 스폿 중 하나로 손꼽힌다. 또한 이 맨션은 중국과 유럽의 미감이 조화롭게 반영되어 건축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지닌다. 풍수지리에 입각한 외부와 안뜰이 돋보이는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자. 맨션의 주인이었던 청 아 피가 남긴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나는 하늘을 품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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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세안센터
aseankorea.org/kor/travel

한-아세안센터는 한국과 아세안 10개국 정부 간 경제 및 사회·문화 분야 협력 증진을 위한 국제기구이다.

글. 김호경HO-KYUNG KIM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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