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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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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4월호

전통과 현대, 서부 해안의 쿨한 바이브가 어우러진 음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중국계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탠리공원에서 내려다본 밴쿠버 시내.

“중국 문화는 아주 미묘합니다”라고 로버트 ‘밥’ 성Robert ‘Bob’ Sung이 말한다. “모두가 다 상징주의예요.” 사실일까? 물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가 차이나타운 한 모퉁이에서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일회용 포장 용기에 담겨 나온 차슈 조각은 전혀 미묘하다고 할 수 없다. 머니 바비큐 & 프로듀스Money BBQ & Produce에서 내놓는 뜨겁고 달콤한 돼지고기 요리는 기름기가 많은 데다 섬뜩한 붉은색이다. 밥은 “모든 것에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덧붙인다. 붉은색은 기쁨의 상징으로, 선홍색 소스 덕분에 손가락이 끈적끈적해진 오늘의 만찬 후에 나는 정말 아주 행복해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나는 밥이 이끄는 ‘웍 어라운드 차이나타운A Wok Around Chinatown’ 투어를 하며 밴쿠버에 있는 중국 커뮤니티의 요리를 탐험 중이다. 중국계 캐나다인 3세대인 밥의 가족은 캐나다에서 100년 넘게 살고 있는데, 가족 대부분이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음식 관련 일을 한다. “저는 늘 부엌에서 나는 향에 둘러싸여 자랐어요.” 붉은색과 금색이 들어간 중국식 종이 등으로 장식된 상점을 지나치며 그가 말한다. 차이나타운의 오래된 네온사인 속에서 오늘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금색은 지금 상황과도 잘 맞는 동시에 상징적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에 광둥어를 쓰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금을 찾아 중국 남부를 떠나 브리티시컬럼비아주로 이주했고, 이후 다수가 캐나디안 퍼시픽 레일웨이Canadian Pacific Railway 건설 현장에서 수십 년 동안 일했다. 그중 일부는 더 오래 이곳에 남아 제재소나 생선 통조림 공장에서 일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차이나타운은 캐나다 전역에서 성장하기 시작했고 곧 제과점과 식료품점, 레스토랑 등 유대관계가 강한 공동체가 공고해졌다.

(왼쪽부터) 밴쿠버 차이나타운 중심의 틴리마켓에서 만난 밥 성.
차이나타운의 시장에서 파는 말린 생선.

“광둥 요리는 밴쿠버에서 여전히 확고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캐나다 거의 모든 도시에 중국 식당이 있죠.” 밥이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중국 요리의 대부분은 북미 이민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포춘쿠키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중국인 공동체의 산물이고, 찹수이도 미국식 중화요리다. 한편 진저 비프는 중국계 캐나다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고안해낸 것인데 포장 음식으로 인기가 높다. 확실히 중국의 맛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차이나타운의 화려한 밀레니엄 게이트 바로 근처의 더 차이니스 티 숍The Chinese Tea Shop에는 발효 보이차의 흙내음이 가득하다. “중국의 차는 진정한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제니퍼 루이Jennifer Lui가 말한다. 제니퍼는 더 차이니스 티 숍의 주인인 대니얼의 아내다. 그녀를 따라 선반에 진열된 녹차, 홍차, 우롱차, 꽃차 등 다양한 차와 찻주전자를 구경한다. 그중에는 복잡미묘한 차를 숨 쉴 수 있게 해 주는 자사호(‘자사’라는 광물을 원료로 한 찻주전자로 높은 열로 구울 때 미세한 기공층이 생겨 ‘숨 쉬는 다관’으로 불린다)도 있다. “사람들은 중국 차가 명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선 차를 내리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좋은 차 한 잔을 만들 수 있다면 영적인 것은 저절로 따라오니까요.”
차를 마신 후 밥이 나를 데려간 곳은 약초 가게다. 거대한 바구니에 말린 망고, 루비처럼 붉은 구기자, 은행나무 열매, 그리고 놀랍게도 강철 수세미처럼 보이는 검정 발채髮菜(머리카락처럼 생긴 조류식물) 등이 쌓여 있다. “중국 요리에서 음식과 건강은 같은 말입니다.” 그는 향이 나는 진균에 속하는 말린 표고버섯을 가리키며 체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말린 도마뱀도 있어요.” 그가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는 말린 도마뱀을 스틱에 얹고 손가락 사이로 빙빙 돌려 마치 막대 사탕처럼 만든다. “천식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죠!”

대니얼 루이가 자신이 운영하는 더 차이니스 티 숍에서 차를 따르고 있다.

대들보처럼 오래된 중국 요리와 식재료 사이에서 트렌디한 퓨전 딤섬 전문점, 술집, 미니멀한 찻집 등 현대적인 섬광이 드러난다. 밥은 지난날을 회고하듯이 말한다. “시대가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여기에 약초 가게가 더 많았는데, 이제 유서 깊은 면모는 두드러지지 않아요.” 임대료가 오른 것도 원인 중의 하나다. 1980년대 차이나타운 주민 대부분이 교외로 이사해 ‘새로운’ 차이나타운을 만들었다. 이민의 양상도 달라졌다. 오늘날에는 중국 남부가 아니라 전역에서 밴쿠버로 이민을 오고 있고, 그중에는 상당한 부를 지닌 사람도 종종 있다. “일전에 여기서 운전 연수하는 사람을 봤어요. 분홍색 람보르기니를 타고 있더라고요.” 밥이 웃으며 말한다. 철도의 시대와는 거리가 먼 풍경이다. 나는 람보르기니 대신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남부의 리치몬드로 향한다. 밥이 말했던 ‘위성 차이나타운’ 중 하나다. 캐나다에서 중국 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이곳은 쭉 뻗은 대로와 쇼핑몰이 즐비한 격자형 도시다. 12월의 가랑비가 내린 후, 저 멀리 밴쿠버 시내의 고층 빌딩이 드러나고 그 너머로 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눈 덮인 산이 보인다. “비가 오지 않을 때 나침반 역할을 해 줘요. 산이 보이면 그곳이 북쪽이죠.” 레슬리 창Lesley Chang이 이야기한다.
리치몬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레슬리는 사실 이곳의 날씨보다 음식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지역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하며 2017년 리치몬드 덤플링 트레일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그 뒤로 규모가 아주 큰 엠파이어 시푸드 레스토랑Empire Seafood Restaurant에 정착했고 이제는 나에게 단지 덤플링과 딤섬뿐 아니라 황제를 위한 만찬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차이나타운은 특정 시대를 대변해요.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그저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리치몬드는 현대적인 중국에 더 가깝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두콩볶음, 새우덤플링, 칠리오일로 요리한 해파리, 대나무 찜통에 찐 샤오룽바오 등이 연이어 나온다. 말랑말랑한 하얀 빵 안에서 단짠의 풍미가 가득한 노란 커스터드가 터져 나오는 리우사바오도 나온다. 지금이 오전 11시니까 아침식사인 셈이다. 레슬리는 “저희는 맛을 희석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쓰촨 요리를 만든다면 셰프들은 후추를 쓰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아요.”

차이나타운 내 쑨원 박사 공원은 중국 전통식 정원이다.

리치몬드 퍼블릭 마켓Richmond Public Market에 가보면 거리낄 게 없고 그럴 수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1층은 오늘날 중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한 다양한 이민자를 보여주듯 두 개 언어로 쓰인 동화책부터 모든 뿌리채소가 다 있다. 위층에 있는 푸드코트로 인해 기름, 육수, 고추, 오향, 마늘, 생강의 냄새로 공기가 무겁다. 매콤한 광둥식 전골 요리, 사천식 탄탄면, 시안의 커민 양꼬치 등 셀 수 없이 많은 중국 요리를 섭렵할 폭풍 같은 투어가 기다리고 있다. “저는 이곳이 좋아요. 꼭 중국에 와 있는 것 같죠.” 단풍잎이 프린트된 일련의 후드 티셔츠를 지나치며 레슬리가 말한다. 하지만 바비큐라면 딱 한 군데 말고는 갈 데가 없다. 안손 룽Anson Leung은 몇 년 전 아버지에게 에이치케이 바비큐 마스터HK BBQ Master를 물려받았다.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주차장 건물에 자리한 작고 분주한 주방을 감독하며 허니 바비큐 포크와 소이 치킨 같은 음식을 재빨리 만든다. “리치몬드가 많이 변했어요.” 도마를 두드리는 칼질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그가 말한다. “젊은 사람들이 조부모의 요리법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식당을 열고 있죠. 리치몬드는 이제 아시아 음식을 먹으러 오는 곳입니다.”
바싹 구워 돼지 껍데기 방패를 뽐내는 바삭한 고기와 밥이 함께 담긴 접시가 우리 쪽을 향해 온다. 안손이 그 위에 남은 닭고기 육수가 진한 맛을 낼 때까지 졸여 만든 소스를 뿌린다. 에이치케이 바비큐 마스터의 성공 비결은 뭘까.
“바비큐는 중국인과 캐나다인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음식이에요. 간단하고 효율적이라서 요리 방식을 따로 바꿀 필요가 없었죠. 아, 배우 세스 로건도 도와줬습니다.” 넷플릭스에서 2019년에 제작한 〈아침, 점심, 저녁〉 에피소드 촬영을 위해 그가 이곳에 들른 사실을 떠올리며 안손이 미소 짓는다.
물론 할리우드 스타만 오는 건 아니다. 배고픈 밴쿠버 사람들이 미리 주문한 파티 음식을 찾으러 오고자 오후 내내 전화를 건다. 그들은 보통 홍콩식 밀크티를 함께 마신다. “오리 요리도 드셔보실래요?” 안손이 묻는다. 하지만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웨이터가 이미 한상 차려진 우리 테이블에 또 다른 요리를 내준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바비큐는 짙은 색 유약을 바른 듯 반질거리고 풍부한 감칠맛이 느껴진다. 아마 나에게 약속된 행운이었을 것이다.

TRAVEL WISE
잠잘 곳
밴쿠버 시내에 있는 더글라스, 오토그래프 컬렉션 호텔은 더블룸이 약 32만원부터. marriott.com
기타 정보
hellobc.com, destinationvancouver.com, visitrichmondbc.com, vancouversnorthshore.com, awokaround.com

 


5가지 음식의 발견
여행에 다양한 즐거움을 더하다.

1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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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키소바와 잘게 썬 바삭한 해초 등 아시아에서 영감을 받은 모든 종류의 토핑을 얹은 이 핫도그를 먹으려면 냅킨이 꼭 필요하다. japadog.com
3 런던포그
커피숍의 고전적인 메뉴인 런던포그는 얼그레이, 스팀 밀크, 바닐라시럽 샷을 같이 내주는 것. 1990년대 밴쿠버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지금은 시내 전역에서 마실 수 있다.
4 애플 타르트
차이나타운에 있는 뉴타운 베이커리는 40년 넘게 달콤한 퍼프-페이스트리 턴오버(만두 모양의 파이)를 굽고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하나 집어 들면 된다. newtownbakery.ca
5 수제 맥주
여유로운 분위기의 노스밴쿠버에서 도시 최고의 브루어리와 탭룸을 돌아다니며 한잔하기! 그렇다면 BC에일트레일이 제격이다. bcaletrail.ca

글. 코노 맥거번CONNOR MCGOVERN
사진. 알라미, 레니 브라운, 더 차이니스 티 숍, 미쿠 레스토랑, 리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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