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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던디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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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호

파이와 케이크, 현지에서 양조한 IPA 맥주와 향신료를 넣은 진,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과 방금 채집한 산물까지, 던디에는 당대 요리 부흥에 필요한 모든 것이 존재한다.

테이강River Tay 너머로 해가 진다.

금요일 새벽 1시, 스코틀랜드 동남부 에든버러 바로 위에 자리한 던디Dundee의 산업 지구에서 케밥 파이를 먹고 있다. 옆에선 대학생들이 길가에 철퍼덕 앉은 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골판지 박스에 머리를 거의 박다시피 하고 있다. 박스 안에는 마카로니 치즈와 양의 내장 등을 넣어 만든 일종의 스코틀랜드식 순대인 해기스 파이가 가득 담겨 있다. 택시 운전사와 브라이덜 샤워를 마치고 여성들끼리 온 무리, 형광색 안전용 재킷이 눈에 확 띄는 노동자 등 다양한 심야 고객들이 거트버스터Gut Buster나 헬리콥터 같은 이름의 고기로 속을 채운 롤 메뉴를 주문한다. 공기 중에는 영업 중인 빵집에서 발산하는 달콤한 효모 냄새로 가득해 심장마비를 유발할 지경이다. 오븐에서 막 꺼낸 케밥 파이의 페이스트리 부분은 여전히 따뜻하고 윤기가 잘잘 흐른다. 버터처럼 부드러운 한편 속은 꽉 차 있다. 파이 안에는 케밥 특유의 얇게 저민 고기와 한입 베어 물 때마다 더 매워지는 달콤한 현지 바바스 칠리소스가 피처럼 붉은색으로 고기를 휘감았다. 녹인 체더 치즈와 레드레스터 치즈가 약 2.5cm 두께로 페이스트리 위를 뒤덮고 있다.
던도니안(던디 사람) 말로 ‘페스pehs’라 불린다는 이 전설적인 파이에 대해 처음 들은 건 런던에서 만난 스코틀랜드 출신 셰프로부터였다. 그는 나에게 이 스코틀랜드 파이는 롤 모양으로 된 걸 먹어봐야 그 진가를 알게 된다고 말했다. “뜨겁게 주는지도 꼭 확인해야 합니다.” 스카치 파이는 껍질이 두 겹으로 되어 있는 빵의 속을 다진 소고기나 양고기로 채운다. 19세기에 황마 공장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먹을 수 있도록 만든 든든하고 저렴한 한 끼 식사로, 산업 시대를 거치고 난 뒤에는 던디의 고정 메뉴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여기에 탄수화물을 추가하기 위해 갈색 소스를 듬뿍 바른다. 오늘날에는 해마다 열리는 세계 스카치 파이 챔피언십 어워드에서 빵집과 정육점 모두가 세계 스카치 파이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케밥 파이라니? 이건 던디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다.

(왼쪽부터) 드라펜스 바Draffens bar에서 진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클라크스 베이커리의 파이.

1950년에 문을 연 클라크스Clark’s 베이커리는 최근에 바바스 도너 파이Baba's Doner Pie라는 메뉴를 새롭게 선보였다. 이 빵집은 가족이 24시간 운영하는 곳으로, 메뉴를 포장해 갈 수도 있다. 2000년에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3세대 제빵사 조너선 클라크Jonathon Clark는 성장하는 대학 도시에 걸맞게 젊은 대중을 위한 파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조너선과 그가 이끄는 제빵사 팀은 NYC 파이(양념한 소고기를 훈제하여 차게 식힌 파스트라미, 양파, 고추, 작은 오이, 겨자, 화이트소스, 모차렐라·칠리 치즈)와 아침식사용 브렉퍼스트 파이(베이컨, 콩, 네모난 모양의 스코틀랜드 전통 론 소시지, 해기스 및 스코틀랜드 타티 감자로 만든 스콘) 등 숙취에 먹기 좋은 수십 개의 파이를 만들어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던디에서 처음으로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이 빵집에서 일주일 동안 판매하는 스카치 파이는 약 5000개나 된다.
그중 최근 선보여 베스트셀러가 된 케밥 파이로 배를 채운 뒤 나는 조너선을 따라 베이커리 안으로 들어갔다. 제빵사 팀은 손님들이 몰리는 밤 시간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카레소스와 소고기 그레이비소스가 스며 나오는 통통한 페이스트리 수백 개가 막 오븐에서 구워져 나와 전용 카트에 칸칸이 쌓여 있다. 조너선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78세 직원이 스페인 베니돔으로 휴가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 파이를 만들고 있다. 페이스트리 속은 스테이크와 해기스로 채워진다. 한 여성 직원은 설탕을 더 달라고 소리치고, 다른 여성은 강판에 간 치즈 한 봉지를 달라고 소리친다. 밖에서는 자정쯤 파이를 먹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점점 길어진다.
“24시간 문을 열기 전에는 파이를 문가에 두고 식히곤 했어요.” 조너선이 남아시아식으로 닭고기를 절였다가 익힌 치킨 티카 파이를 배달 보내기 위해 확인하며 말한다. “밤에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파이를 훔쳐 가기도 하고, 얼마인지 묻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항상 밤샘 작업을 하니 24시간 영업하는 게 낫겠다 생각했죠.”
클라크스 베이커리 벽에는 1950년대에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1호점에서 조너선의 할아버지가 스카치 파이를 굽는 사진이다. 나는 조너선에게 할아버지라면 클라크스의 케밥 파이로 무엇을 하셨을지 물었다. “전통은 중요하지만 던디는 변화하고 있어요. 케밥 파이는 스코틀랜드 파이가 오늘도 생생하게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줍니다. 다음 세대도 여전히 이 파이를 먹을 수 있도록요.”

데이지 태스커에서 먹을 수 있는 소고기 슬라이스 찜, 배추 뿌리처럼 생긴 파스닙 채소로 만든 퓌레, 당근과 작은 샬롯 양파 등을 넣은 요리.

빅토리아 시대부터 '황마, 잼, 저널리즘'의 도시로 잘 알려진 던디는 실제로 변화하고 있다. 2018년에 수변 지역의 변화를 위해 조성된 약 168억 규모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던디는 스코틀랜드 최초로 디자인 박물관의
본거지가 되었다. 2021년에는 도시 전역에 300대의 새로운 전기자전거를 도입했고, 19세기에 가동되던 웨스트 워드 워크스West Ward Works 같은 공장이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위한 창의적인 공간으로 변신했다. 던디의 문화 중흥은 레스토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테이강을 따라 2014년 마스터 셰프 우승자인 제이미 스캇의 뉴포트The Newport나 내가 점심을 먹으려고 예약한 아담 뉴스 셰프의 테이베리The Tayberry 등 현대적인 스코틀랜드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이 자리한다.
테이베리의 테이블에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세찬 겨울바람에 언덕 위 흔들리는 풀숲과 찰랑이는 은빛 테이강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잉글랜드의 침입으로부터 던디 해안을 수호하기 위해 14세기에 지어진 브로티성Broughty Castle 요새가 보인다. 테이베리에서 내놓는 오늘의 메뉴는 참나무로 훈제한 퍼스셔 사슴고기 타르타르, 셰틀랜드 홍합을 곁들인 두아르 호수 연어 요리 등 다양한 스코틀랜드산 제철 농산물로 요리한다. 나는 뜨거운 아브로스 수프로 식사를 시작한다. 여기에서 북동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아브로스Arbroath에서 만든 유럽연합 지리적 표시 보호 PGI 등급의 훈제 대구로 끓인 수프다.
“우리 식당의 메뉴는 다 우리 주변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부주방장인 로스 스미스Ross Smith가 설명해준다. 수프에서는 참나무 향이 난다. 농도는 거품처럼 가볍다. 그을린 스코틀랜드산 가리비와 캐비어 1티스푼이 곁들여 나온다. “보통 현대적인 스코틀랜드 음식이라고 하면 에든버러나 글래스고를 떠올릴 테지만, 북동쪽으로 약 32km만 가면 앵거스글렌스 계곡 지대가 나오는 던디에서는 신선한 물고기를 바로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테이강을 가리키며 그가 말한다. “집에서 2분만 가면 살구버섯과 표고버섯을 구할 수 있는데 오늘은 들꿩과 함께 요리해봤어요.”
오늘 아침 앵거스글렌스에서 구한 들꿩이 해기스 봉봉과 묽은 레드와인소스와 함께 나온다. 고기는 달콤하면서도 매콤하고, 채집한 버섯으로 만든 퓌레에서는 약간의 후추 향이 난다. 절인 호두의 톡 쏘는 신맛이 식욕을 돋운다. 키리에뮤어 출신으로 고급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기 위해 던디로 이주한 로스는 던디가 외식 도시로 바뀌고 있다고 말해준다. “사람들이 마침내 도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셰프로서 저는 이제 막 시작되는 무언가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거의 200년 만에 던디 최초로 문을 연 버던트 스피리츠Verdant Spirits 증류소를 투어하고 시음해보기로 한다. 앤드루 맥켄지는 애버테이 대학교에서 식품 및 음료 혁신을 공부한 뒤 2017년에 버던트 스피리츠를 설립했고 지금은 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던디에는 증류주를 포장하고 수출한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을 만드는 사람은 없었어요. 황마 산업으로 인해 물이 너무 많이 오염되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빅토리아앨버트 던디 디자인 박물관은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전 황마 공장의 엔진실에 자리한 버던트 스피리츠 증류소는 19세기 공장 엔진 대신 500L짜리 최첨단 증류 장치를 들여놓고 ‘리틀 에디’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곳에서 던디 최초이자 유일한 진 한 통이 만들어진다. 앤드루는 이 버던트 드라이진을 증류하기 위해 리틀 에디에게 주니퍼 열매를 먹이면서 “던디는 산업 지대였기 때문에 거칠다고들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곤 딸 소피가 배달할 진이 담긴 병에 레이블을 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하지만 던디 사람들의 마음 안에는 혁신할 수 있는 길이 있었죠.” 앤드루가 자신이 증류한 시그너처 진을 잔에 따른다. 던디와 인도 사이의 무역로를 상징하는 카다멈과 고수의 향이 난다. 맛은 약간 씁쓸하면서도 매우 신선하다. 달콤한 감초 향과 맥케이Mackay 던디 마멀레이드의 주요 성분인 세비야 오렌지의 감귤 향도 감돈다. “우리 진은 던디의 과거에 대해 들려주고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던디의 프리미엄 제품의 잠재력도 봐주셨으면 해요.”(앤드루)
버던트 스피리츠에서 3분 정도 걸어 가면 50년 만에 처음으로 생긴 던디의 첫 양조장 세븐티원 브루잉이 나온다. 이 양조장은 옛 제철 공장 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약 2500m² 넓이의 건물에 야외 맥주 홀과 맥주 판매점이 있으며 양조장 투어와 시음회도 운영하고 있다. 공동 창립자인 던컨 알렉산더가 페일 에일에 홉을 다량으로 넣어 도수가 높고 쓴맛이 강한 전통 인디언 페일 에일(IPA) 맥주보다 한결 순한 세션 IPA와 테이베리로 만든 흐릿한 사워 칵테일이 들어 있는 양조 통을 보여주면서 말한다. “던디는 영국에서 양조장이 없는 마지막 도시였습니다.” 1993년에 던디를 떠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던컨은 양조장 창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16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던디로 다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죠. 그동안 도시를 재생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은 다르게 느껴졌어요. 비로소 던디의 물리적 변화를 볼 수 있었죠. 덕분에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올봄 세븐티원 브루잉은 스튜디오 공간을 찾는 창작자들에게 올드파운드리 빌딩의 꼭대기 층을 공개했는데, 던컨은 이 건물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게 양조장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던디의 산업 역사를 잊고 싶지 않습니다. 올드파운드리를 창의적인 용도로 바꾼다면 던디의 양면, 즉 산업적인 과거와 제가 바라는 보다 창의적인 미래가 통합될 겁니다.”
도시 전망이 보이는 더 로The Law 사화산까지 등산하는 걸로 던디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한다. 여기서 보니 던컨이 말한 ‘던디의 양면’이 내 위에 펼쳐진 하늘만큼이나 맑다. 가시거리 안으로는 붉은 벽돌 공장이 동쪽과 서쪽으로 뻗어 있다. 황마, 잼, 저널리즘의 잔재 가운데 디자인 박물관,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현대적인 양조장 및 증류소가 번성하고 있는 반면, 도시의 산업 정신에 깊이 뿌리내린,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체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던디의 5 가지
던도니안의 일상을 채우는 달콤하고 진한 음식들.

 

1 굿펠로&스티븐 던디 케이크
아래의 던디 마멀레이드를 만든 가족이 발명한 최고의 던디 케이크로 술타나 건포도, 오렌지 껍질, 하얀 아몬드를 넣는다. 1897년에 문을 연 굿펠로&스티븐Goodfellow & Steven 베이커리에서 맛볼 수 있다.
2 던디 마멀레이드
1797년에 씁쓸한 맛이 나는 세비야 오렌지를 실은 스페인 선박이 폭풍을 피해 던디 항구에 정박하면서 맥케이 오렌지 마멀레이드가 탄생했다. 토스트나 돼지고기 발목살 햄 샌드위치, 진 칵테일에 곁들여 먹자.
3 피셔 앤드 도널드슨 퍼지 도넛
피셔&도널드슨Fisher & Donaldson의 전설적인 퍼지 도넛은 직사각형 반죽에 부드러운 제과용 커스터드크림을 채워 넣고 그 위에는 엄청나게 좋은 캐러멜 시럽을 바른다.
4 아브로스 스모키
던디 바로 위에 있는 북쪽 어촌 마을 아브로스에서 만드는 훈제 제품 브랜드로, 특히 지리적 표시 보호 시스템인 PGI 등급의 훈제 대구는 도시 최고의 요리사 다수가 식재료로 쓰고 있으며 도시 전역의 델리나 생선 가게에서 구입할 수 있다.
5 오길비 보드카
오길비는 던디 외곽에 있는 이스트 시드로 힐스에서 만드는 스코틀랜드 최초의 감자 보드카다. 던디에 있는 칵테일바에서 수상 경력에 빛나는 증류주를 맛보거나 오길비 팜에서 증류소 투어를 예약하면 된다.

 

 

 

글. 제시카 빈센트JESSICA VINCENT
사진. 게티, 제스 빈센트, 포코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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