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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RFECT BAL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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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호

수직과 수평, 두 세계의 만남으로 이루어낸 간결하지만 위대한 건축적 헤리티지. 다채롭게 변화하는 가을의 빛과 짙어가는 숲의 향취가 여행자의 영감을 자극한다. 고택 현판에 새겨진 선비의 글씨나 쉼 없이 흐르는 낙동강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한없이 한결같다. 그 한결같은 안동으로 올곧고 과감하게 들어가는 여정. 디자인이란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는 작업이라 말한 바 있는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과 함께 안동이 가진 아름다움의 속성을 섬세하게 수집해나간다. GV80의 새로 시작된 여정엔 유려한 선으로부터의 이끌림이 존재한다.



THE HORIZONTAL

청량산 자락에 자리한 봉화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안동으로 향하는 길.
달리는 동안 풍경은 수평과 수직, 곡선과 직선으로 변주하며 시시각각 여행자에게 다른 세계를 내어 보였다.
여행의 시간은 여행자로 하여금 그 너머의 세계를 탐닉하게 하지만, 결국은 수평의 세계가 연속될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세계를 인정하고 나니 비로소 아름다운 선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GV80의 완벽한 균형감은 이번 로드트립의 속성과 닮아 있다.

GV80가 새롭게 구현한 스토르 그린 색상이 늦가을의 깊은 색감에 자연스레 동화되었다. 낙동강을 따라 아름다운 산세가 펼쳐지고, 굴곡진 도로의 변곡점을 달릴 때마다 다채로운 풍경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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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소한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 견고함
낙동강 본류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출발해 30여 분 남짓, 붓으로 그려낸 듯 유려한 곡선 도로를 따라 달린다. 이윽고 도착한 이번 여정의 첫 번째 목적지, 도산서원. 여행자를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왕버들의 역동적인 조형미와 예술적인 균형미였다. 그 너머로 퇴계의 건축관이 명징한 자태로 펼쳐진다. 14채의 건물로 구성된 서원으로 들어서 문들을 통과할 때마다 각각의 공간과 호흡하며 대화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도산서당을 직접 설계한 퇴계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산으로 둘러싸인 고요한 공간은 자연과 이어지도록 구성되었고, 가만히 앉아 건물과 교감하다 보면 안과 밖의 구분이 사라질 터. 불필요함을 덜어낼수록 삶은 간결하고 견고해질 수 있을까.
NAVIGATOR. 도산서원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도서서원 입구 옆으로 난 가로수길을 달리는 GV80가 가을 햇살을 받으며 다채롭게 빛난다. 왕버들 옆에 서서 안동호의 수평을 감상하고, 도산서원의 문을 거듭 통과하며 진정한 여행의 세계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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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구는 나에게 일종의 생각을 담는 그릇과도 같습니다.
기능적인 부분을 배제하지 않지만, 가구에 내 생각을 담아내고,
내 생각의 옳음을 입증하는 것이 작가의 삶이기도 합니다.”
―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



시간을 기억하는 형태
부용대 맞은편에 선다. 하회의 북쪽에 있는 언덕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해발 64m의 아름다운 절벽을 마주한 이곳엔 1만 그루의 소나무로 이루어진 만송정 숲이 자리한다. 숲은 하회마을로 세차게 불어오는 겨울 북서풍을 막기 위해, 또 부용대의 강한 기운을 상쇄하기 위해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낙동강이 유유히 휘돌아 나간 자리에 넓은 모래 퇴적층이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지고, 그 위로 하회마을이 들어서고, 소나무가 숲을 이루던 일련의 시간이 한 공간에 모여있다. 그 한가운데에 서서 여행자는 오감을 열고, 과거와 현재 사이를 거닌다.
NAVIGATOR. 안동하회마을 만송정 숲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1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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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을 확장하는 수직과 수평의 조우
울퉁불퉁한 흙길을 아랑곳하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달린다. 차창 밖으로 엷은 흙먼지가 날리고, 빼어난 수형의 나무와 고즈넉한 마을 풍경을 지나, 비워서 채우는 공간인 병산서원에 내린다.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복례문을 통과해 만대루에 오르니 반듯한 사각형의 틀 안으로 자연경관이 오롯이 담긴다. 누각을 받친 기둥과 지붕, 단순한 요소로 세워진 만대루에서 과거 유생들은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순환을 탐구해나갔다. 이곳 만대루의 이름은 두보의 시 구절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에서 비롯됐다.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는 뜻이다. 여행의 중반부, 과거 유생들의 미래에 당도했다. 이제 ‘ㅁ’ 자 마당을 통과해 서원의 유연한 세계 속으로 들어갈 차례다.
NAVIGATOR. 병산서원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1164-1

하지훈 작가의 ‘round ban’은
현시대의 기술과 재료로 ‘미래적 전통’을 만들겠다는 생각의 결과물이다.
전통 원형반은 목재 소모가 많아 더 이상 제작이 어려운 소반이 되었으나,
시대에 맞게 재구성한 형태가 보는 이로 하여금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현재 V&A 뮤지엄, 필라델피아 뮤지엄, 프랑크푸르트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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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의 맛,
무형의 이야기에 형태를 세우다
1540년대, 유학자 김유 선생과 그의 손자 김령 선생이 대를 이어 집필한 조리서 <수운잡방>의 실물을 접하고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역사의 온갖 풍파를 무사히 지나 설월당 종택의 김도은 종부에게 당도한 책. 그녀는 조리서를 집필할 당시 조상의 마음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잘 전달되기를 희망하며 시공간을 오가는 기분으로 요리에 임한다. 〈수운잡방〉 첫 장에 기록된 술 삼해주와 빛깔 고운 삼색어알탕(우리나라 구절탕 중 유일한 민물 신선로다)이 정갈하게 차려진 소반이 김령 선생의 계암정에 놓여 있다. 민물 은어, 민물새우, 청포묵 그리고 은어 살을 녹두가루에 버무려 만든 새알심이 신선로 안에서 따뜻하게 데워지면 독한 술과 잘 어울려 추워지는 계절에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좋다. 들어열개문을 밖으로 열고 들어 올려 들쇠에 고정한 계암정에서 맞이하는 군자마을의 오후다. 김도은 종부는 말한다. “저는 고조리서의 음식 원형을 복원하거나 재현하려는 게 아니에요. 지나친 변형 없이 영혼을 잃지 않고 지금에 맞게 그때의 문화를 가져와서 그 시절과 호흡하게끔 하려고 하죠.”
NAVIGATOR. 안동군자마을 설월당 경북 안동시 와룡면 군자리길 33-6

무려 600년이 넘게 이어져 오는
광산김씨 집성촌인 군자마을.
이곳엔 곱게 나이 든 고택과 고즈넉한 호수,
전통을 각자의 방법으로 지키는 사람들의
정서가 한데 모여 있다.
계암정의 한쪽 공간에서는 술이 익어가는
소리와 향이 뭉근히 퍼지고,
차에 올라 그곳을 떠나오며
진정한 헤리티지의 힘에 관하여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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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의 발견
“월영교에서의 새벽이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자욱한 물안개 중앙으로 곧게 뻗은 월영교가 만든 선 위를 혼자 걸어가던 경험은 무척 낯설고 신선한 경험이었죠. 강의 한가운데 홀로 서서 맞이하던 일종의 해방감은 새로운 영감을 받아들이도록 독려하는 것 같았어요.”(가구 디자이너 하지훈) 안동댐 아래 흐르는 물길 위에 세워진 월영교는 길이 387m로 국내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로 중간에 다다르면 팔각정 형태의 월영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늦가을 일교차가 큰 계절이면 새벽녘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밤이 되면 호수 위로 조명이 별처럼 반짝인다.
NAVIGATOR. 월영교 경북 안동시 상아동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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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호 위로 중첩된 우연들
선비순례길의 첫 번째 종착지인 월천서당에서 퇴계 선생이 쓴 현판의 글씨와 다시 만난다. 월천서당은 퇴계 선생의 제자로 조선시대 문신이자 학자이며 서예가였던 월천 조목이 세워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안동호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나무가 고요하게 잠긴 호수의 풍경을 관망하며 월천 조목이 추구하던 ‘욕망을 줄여 궁극적으로 욕망 없는 경지의 삶’에 관하여 생각해본다.
NAVIGATOR. 월천서당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월천길 437-7

 

한국적 여백의 미로 완성한 GV80의 실내. 수평의 레이아웃 너머 안동호와 수려한 산세가 리드미컬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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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순간들
늦가을 따사로운 햇살에 가지마다 촘촘하게 달린 사과가 탐스럽게 영글어 붉게 물들어가는 중이다. 단풍은 절정을 지났고, 바로 지금의 계절에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이 한창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 보백당 김계행과 응계 옥고를 봉향하는 묵계서원에서 맞이한 아침, 2층 누각 읍청루의 반질반질한 나무 기둥을 쓸어보며 나름의 온기를 느껴봐도 좋을 일이다. 그렇게 서원의 건축적 아름다움과 그 안에 깃든 정신 문화의 가치에 마음을 기울이며, 넘치거나 모자람 없는 수평적 아름다움의 세계를 찾아 나설 시간이다.
NAVIGATOR. 묵계서원 경북 안동시 길안면 국만리길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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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MAX
안동댐 바로 아래, 낙동강을 따라 안동호와 연결된 지점에 위치한 낙강물길공원은
비밀의 숲이라는 별칭답게 자신의 민낯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매번 다른 얼굴과 표정으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가을의 절정기, 여행자는 아름다움을 수집하기 위한 안동에서의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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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HERITAGE
세상에 나쁜 재료는 없다. 나쁜 사용 방법만 있을 뿐이다. 하지훈 작가는 이러한 생각으로 플라스틱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고, 오래 튼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점에 주목했다.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ban clear’이다. 햇빛이 투영되면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이 소반은 오늘날의 시대 감각에 어울리는 ‘변화된 전통’인 셈이다.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
자신의 생각에 집중하는 디자인 교육을 익힌 뒤 ‘나’의 것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에서 전통 공예에 집중하게 되었다. 디자인이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는 일이라는 깨달음이 컸다. 그 덕분에 그의 시선은 전통에 있을지언정 양손에는 현대의 도구들을 쥐고 있다.
“장인은 전통을 대대로 이어가는 것을 시대적 사명으로 삼는다면, 창작자는 전통에 시대성을 부여하는 사람이에요.”


비로소 지금에 닿다
고요한 무실마을로 들어선다. 툭, 멀리 모과나무에서 잘 익은 모과가 떨어지는 소리다. 부스럭, 골목 어귀에서 새끼 고양이가 낙엽을 밟고 여행자에게 다가오는 소리다. 이 마을은 너무 고요해 사소한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고, 작은 변화에 마음이 동하게 만든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 들어선 ‘희게’라는 이름의 전통 한옥에 하루 머물 요량이었다. 빛나는 휴식이라는 뜻을 품은 장소,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초록 테이블과 폭신한 잔디가 어우러진 마당이,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본채 공간이 여행자의 시야를 환기시킨다. 희게의 커다란 창을 통해 무실마을의 풍광을 감상하는 사이, 지나온 도산서원에 들여온 자연이, 병산서원 만대루의 시선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NAVIGATOR. 스테이희게 경북 안동시 임동면 무실길 5

여정의 끝.
장식적인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마침내 궁극의 선을 발견한다.
그렇게 여행의 시간을 통해 체득한 리듬은 삶의 균형을 이루도록 이끌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움에 동화된 여행자에게 자연의 시간이 묻는다.
“처음, 가슴 뛰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글. 임보연BO-YEON LIM
사진. 김현민HYUN-MIN KIM, 취재협조. 안동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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