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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EDEUP TRAIL
매듭 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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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2월호

성수동부터 가회동까지, 전통 매듭의 터라 불리는 옛 시구문 일대를 역행해 걷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는 매달 독특한 생일 파티를 열었다. 생일자들은 고깔모자와 원피스 대신 종이 금관을 쓰고 한복을 입은 채 한 명씩 작은 문을 통과해야 했다. 부끄럼이 많았던 나는 문을 지나면서 연신 눈을 깜빡이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특히 자주색 한복 끝에 잡히는 동그란 매듭을 만지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득 그 매듭에도 이름이 있었을까 궁금해져 검색창을 켠다. ‘단추매듭. 연꽃의 봉오리 모양을 닮아 연봉매듭이라고도 한다.’ 그 외에도 수십 가지 종류의 매듭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도대체 이 매듭들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만들었을까? 이때만 해도 몰랐다. 이 작은 호기심이 장대한 매듭 여행의 시작이 될 줄은….

 

실마리를 찾아서

검색창에 전통 매듭의 이름을 입력하다가 알게 된 사실은 매듭에도 꽃말처럼 각각의 아름다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심결매듭은 영원함, 매화매듭은 순결, 나비매듭은 변화와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이 말을 한 공예가를 만나기 위해 버스에 탑승한다. 한강과 맞닿은 성수 2가 1동은 최근 핫하다는 성수동의 모습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 성수역 인근이 신시가지라면 한강역 인근은 구시가지에 가깝다. 이곳의 골목은 공방이나 카페보다 자동차 정비소, 금속 제조 업체 등이 대부분이다. 그 사이로 눈에 띄게 키가 작은 하얀색 건물과 그 앞에 놓인 나뭇더미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단디·호애 공방의 유리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니 따뜻한 공기가 훅 끼친다. 진열대에는 전통 매듭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액세서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장미를 연상시키는 매듭 아래에 진주가 달려 있거나 컬러풀한 안경 끝에 매듭과 메탈 체인으로 이어진 안경줄이 늘어져 있다. 나비 모양의 매듭에 유리구슬을 엮은 선캐처와 자줏빛 노리개가 달린 모던한 가방도 신선하다. “전통 매듭이 청바지를 입거나 힐을 신고 착용해도 어울리는 모던한 아이템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어요.”(김정인) 과거 로봇을 만드는 회사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던 단디 김정인 대표는 작년 3월에 목공예가 호애와 함께 공방을 열었다. 기술과 예술 사이를 넘나드는 그녀의 모습이 성수동과 닮았다. 전통 매듭과의 첫 만남도 로봇 회사를 다닐 때였다. 국제적으로 열리는 디자인 어워즈에 참석하면서 생활한복을 입기로 정했고 이에 맞는 스타일링을 위해 직접 노리개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공방 안쪽에 있는 벽수납장이 마음을 끈다. 칸마다 돌돌 감은 끈타래를 색상별로 예쁘게 전시해놓았는데 저 부분만 뚝 떼어서 방에 인테리어용으로 두고 싶을 정도다. 짙은 녹색, 살구색, 연하늘색 등 수수한 색상이 주를 이뤄 안정감을 준다. “일부러 저렇게 만들었어요. 원하는 색을 고르면 그 끈으로 액세서리를 만들기도 해요. 매듭을 만들려면 가장 기본 재료인 끈(실을 합해 꼬아 만든 것)이 중요한데, 판매하는 곳마다 같은 색상의 끈이라도 색이 미묘하게 달라져 고민을 많이 했어요.”(김정인) 그러던 중 발견한 한 상점은 항상 동일한 색과 굵기의 끈을 판매해 그녀의 단골집이 됐다. 어쩌면 ‘뉴신사매듭’에서 김정인 대표를 한번 더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시도

성수역이 가까워질수록 진짜 공장은 자취를 감추고 ‘요즘식 공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에 창고나 공장으로 사용됐던 흔적이 그대로 보이는 카페 ‘대림창고’, ‘어니언’, ‘할아버지공장’만 들러도 이곳이 왜 한국의 브루클린이라 불리는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바깥에 그대로 드러난 배기관, 오래된 붉은 벽돌 등 거친 느낌이 도드라진다. 두 블록 뒤에 자리한 ‘스페이스 오매’ 역시 25~30년 된 연립주택을 리뉴얼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한국의 브루클린이요? 어느 정도 동의해요. 사실인지 궁금해서 직접 출장을 다녀왔거든요. 브루클린도 제조업이 성행한 지역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요. 성수동처럼 근처에 강도 있고 지상 전철도 다니죠. 브루클린은 각 공간이 운영자들의 감성을 담아 ‘갑자기’ 혹은 ‘뜬금없이’ 존재해서 더 재밌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달까.”(서수아)

4층 갤러리에 들어서자 상쾌한 향기가 난다. 나무가 우거진 숲이 떠오른다. 일렬로 줄을 선 디퓨저 뒤에 작은 트리가 있는데 알록달록한 조명 대신 전통 매듭이 달린 미니 복주머니가 장식돼 있다. 스페이스 오매 서수아 대표가 등을 지고 서 있는 벽 또한 독특하다. 속이 뻥 뚫린 벽돌들이 세로로 차곡차곡 쌓여 한 줄을 이룬다. 총 6줄이 모여 한 벽면 3분의 1을 차지한다. 네모난 구멍 사이로 햇살이 쏟아진다. 그 옆으로 이어진 벽은 과거 연립주택에서 사용하던 미닫이문이다. 반투명한 유리 너머로 화분의 그림자가 비친다. 과거와 현대가 하나의 벽면을 공유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장인, 현대 디자이너를 연계해 각종 전시, 워크숍, 이벤트, 컬래버레이션 상품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와인을 마시며 전통 작품을 감상하는 소규모 살롱쇼를 개최했다. 일반 패션쇼와 달리 업사이클링 한복을 입은 모델들이 곳곳에 자리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한 층 한 층 내려갈수록 이곳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다. 3층에 입주한 어느 디자이너는 고뇌에 찬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 미간을 좁히며 볼펜을 까딱이기도 한다. 한 층 더 내려가니 다음 전시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신진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부착한 작품의 위치가 맞지 않았는지 아차! 하며 줄자를 꺼낸다. 지상이 가까워질수록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끝을 맴돈다. 창문 너머로 바삐 재료를 손질하는 두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세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나 스페이스 오매의 전체 층을 조망한다. 1층부터 옥상까지 식당, 카페, 미용실, 공방, 갤러리가 한데 모여 있다.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쩐지 조용하지만 개성 있는 입주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한 편의 시트콤을 본 것 같다.

 

자재 거리를 지나

혹시 난계로를 아시는지? 조선 초기 문신 박연의 호에서 유래된 이 도로는 신설동로터리에서 상왕십리를 지나 성동중・고등학교에 이른다. 그중 난계로 27길은 자재 거리나 다름없다. 초입부터 두터운 천이 돌돌 말린 채 장승 역할을 한다. 길목마다 ‘핸드백 부자재’, ‘가죽공예 용품 일체’, ‘벨트 원단 판매’ 등이 큼지막하게 적힌 안내판이 멀뚱히 서 있다. 패션 디자이너의 오라를 뿜어내는 두 사람이 행어에 걸린 가죽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묘하게 색상이 다른 가죽을 이리저리 살피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이곳에서는 가방끈, 지퍼, 구두 굽 등 웬만한 자재를 모두 구할 수 있다. 차가운 바람에 휘날리는 원단들이 ‘맞아. 이 길로 가면 전통 매듭의 재료를 구할 수 있어’라고 속삭인다.

IBC 호텔 근처에서 길을 건너 건물들을 살폈다. 조금 전 지나온 자재 골목과는 분위기가 무척 다르다. 여기가 맞나? 의심하며 오래된 오피스텔의 계단을 오르자 하얀색 글씨로 ‘뉴신사매듭’이 선명하게 적혀 있다. 찾았다! 잠시 망설이는데 그 아래 보이는 ‘문 열고 안으로 들어오세요~’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그란 문고리를 조심스레 돌린다. 각 잡힌 진열대마다 알록달록한 장식품과 송곳, 답비(바늘) 등의 물품이 가득하다. 천장에 걸린 수십 개의 노리개를 지나 우측에 있는 방에서 총천연색 끈을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매장 운영을 총괄하는 이희옥 점장의 안내에 따라 매장 구석구석을 살핀다. “문을 연 이후로 항상 전통 매듭의 대중화를 위해 힘썼어요.”(이희옥) 지금 판매되는 끈들은 대부분 공장에서 만들어 개인이 소량씩 구매하기가 어렵다. 이에 뉴신사매듭에서는 한 명이 살 수 있는 만큼의 분량으로 끈을 나눈다. 그 옆에 자리한 책상 위에 놓인 색상표와 이름표가 눈에 띈다. 이곳에서 자체 부여한 번호를 달고 있는 각각의 끈들은 230, 273 등 암호 코드처럼 불린다. 끈의 종류도 10가지 이상 추가로 만들었다. 민세사, 세세사, 목걸이끈, 소사, 중중사, 중사, 벽걸이끈, 꼰사, 꼰중사, 꼰중중사 등으로 지었는데 이름만 들어도 끈의 굵기나 모양을 추측할 수 있다. “끈은 기계로 생산할 수 있지만 매듭은 절대 안 돼요.”(이희옥) 그녀가 웃으며 손을 젓는다. 세세한 작업을 요하는 매듭만큼은 사람의 손길을 타야 하기에 여전히 솜씨 좋은 장인들만이 만들 수 있다고.

 

질서 있는 미로 속으로

커다란 전광판이 여러 문장과 영상으로 얽혀 바쁘게 돌아간다.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다. 서울풍물시장의 초기 형태는 1950년대 초, 6․25전쟁 이후 밀려들어온 고물상들로부터 시작됐다. 한때는 130여 개의 골동품상이 밀집했으며, 뉴신사매듭이 설립됐던 1980년대부터는 중고품을 취급하는 비율이 늘었다. 몇 차례의 이전 끝에 지금의 신설동에 자리를 잡았다. 길가부터 복작댈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서울풍물시장의 입구는 조용하다. 야외에 자리한 대부분의 시장과 달리 2층짜리 건물 안에 점포가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이다.

입구에 각 층별 안내도가 친절하게 붙어 있다. 층마다 각각의 동이 무지개색으로 구분된다. 동별 점포에는 호수가 기재돼 있어 궁금했던 장소가 있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내부로 들어서자 가죽 재킷, 품이 넉넉한 스웨터 등 구제 의류를 쌓아놓은 점포들이 한 몸처럼 붙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한 주황동 46호에는 1989년에 개봉한 영화 <밥풀떼기 형사와 쌍라이트>의 빛바랜 포스터가 붙어 있다. 포스터 아래 자리를 잡고 앉은 상인이 안경 너머로 악보를 보며 기타를 연주한다. 뚱땅거리는 기타 소리가 복도에 퍼지자 어디부터 가야 할지 몰라 복잡했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2층에 도착하자마자 짙은 한약 냄새가 확 풍긴다. 보라동 1호에서 약재를 달이는 중이다. 노란 종이에 적힌 ‘감기약, 기침 뚝’이라는 말이 어쩐지 미덥다. 코너를 돌아 걸으니 어느새 청춘1번가다. 테마존인 청춘1번가에는 풍물복덕방, 추억의 교실, 청춘문방구, 풍물헌책방, 청춘사진관, 꺼벙이만화 등 레트로풍으로 꾸며진 포토 스폿들이 있다. 그중 실제로 운영 중인 청춘다방에 들어갔다. 당 충전을 하고 싶어 ‘코오코아’를 주문했다. 건너편에 앉은 할아버지 앞에 놓인 찻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꽃무늬가 그려진 길쭉한 찻잔이 요즘 것은 아니다. 조금 후 커다란 마시멜로가 들어간 코코아가 나왔다. 벨벳 재질의 의자에 앉아 달콤한 음료를 마시니 1980년대에 머물고 있는 듯하다.

 

재주를 기록하고 보관하다

한국 사람들이 전통 매듭을 가장 익숙하게 접하는 곳을 꼽으라면 아마도 인사동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지금의 인사동은 종로 2가에서부터 안국동 사거리까지를 포함하지만 과거에는 3·1독립선언광장이 있는 태화관길과 만나는 곳에서 끝났다. 지금처럼 화랑이나 찻집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큰 규모의 전통 한옥이 많았다. 1910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북촌에 거주하던 양반 계층의 붕괴로 그들이 소유하던 물품들이 인사동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후 승동교회, 천도교 중앙대교당 등의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현재는 근세와 근대 사이 어디 즈음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가판대마다 전통 문양이 새겨진 그릇, 작은 크기의 하회탈, 서예용 붓 등이 두서없이 놓여 있다. 종종 보이는 외국인들이 한번씩 곁눈질을 하거나 멈춰서 사진을 찍는다. 그들을 지나쳐 인사동 11길 골목으로 주욱 들어가자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KCDF 갤러리가 보인다. 이곳은 다목적홀로 사용되는 지하2 층, 라이브러리가 위치한 지하1 층, 갤리러숍과 윈도우 갤러리가 있는 1층, 전시장이 자리한 2~3층, 옥상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1층 갤러리숍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깨끗하게 정돈된 각종 공예품과 디자인 상품이 눈에 띈다. 숍이라기보다 전시실을 닮아 우아한 느낌이다. 왼쪽으로 이동하니 유리칸 안에 전통 매듭을 활용한 이원미 작가의 복주머니, 랑랑 작가의 배씨댕기와 팔찌 등이 있다. 그새 전통 매듭과 친해졌는지 아는 얼굴을 만난 양 반갑다.

계단을 내려가 KCDF 라이브러리에 도착했다. 도서관 내부는 마치 연구소 같다. 반은 책이 가득 꽂힌 책꽂이, 반은 여러 소재를 샘플링한 키트가 벽면을 차지한다. 7년 정도 사서로 근무한 배효선 주임연구원에게 전통 매듭에 관한 것을 묻자, 책 <한눈에 보는 매듭>을 가져다 주며 나를 한쪽으로 안내한다. 이 책은 국문과 영문으로 발간됐으며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그녀는 수납장의 문을 열어 몇몇 전통 매듭 키트를 선보인다. “활용도나 보존 가치가 높은 공예 소재를 수집해서 실물로 제작하고 있어요. 소재를 기법에 따라 분류하고 그 특성과 코드를 기재해 자료를 찾으시는 분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합니다.”(배효선)

자리를 잡고 앉아 책장을 넘긴다.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 전통 매듭의 역사에 대해 배워본다. 아주 기본적인 끈과 매듭은 원시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역사를 함께 해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통 매듭은 대부분 조선 시대에 확립됐다. 조선을 건국하던 시기에 태조 이성계는 여러 분야의 장인을 불러 모아 왕실에 사용될 물품을 제작하도록 했다. 그들은 궁궐과 가까운 종로에 자리를 잡고 일을 했다. 하지만 후기에 들어서 관영 수공업이 쇠퇴하자 전통 매듭 장인들은 왕실 이외에 양반, 일반인에게도 공예품을 판매하고자 한다. 이후 시구문 일대에 점차 상권이 형성된다. 이때의 시구문 일대는 현대 기준으로 광희동이 가장 적절하나, 실제로는 광화문부터 왕십리 등 비교적 넓은 지역을 포괄했다고 한다.

 

흥보가와 조선 시대 살림살이

고층 건물을 지나 어느 지점부터 기와, 담장, 대청이 보이는 한옥이 즐비하다. 어떤 박물관에 전시된 미니어처 마을을 몇 백배 확대한 것 같기도 하다. 길가에는 한복 위에 겉옷을 걸친 사람들이 수시로 오간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꽃신까지 챙겨 신은 모습이 제법 대견하다. 남녀 한복을 바꿔 입은 어느 금발의 외국인 커플이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들은 활짝 웃으면서 한복 끝자락을 줄곧 매만진다.

가회동 주민센터 건너편에 자리한 북촌박물관은 박경숙 관장이 수집한 고가구 혹은 민속품을 통해 조선 시대의 생활상을 사실감 있게 전달하는 곳이다. 상상 속 조선을 현실로 끄집어낸 느낌이랄까. 계단을 내려가자 전시 <방, 조선시대 생활모습>이 진행되고 있는 내부가 보인다. 도록의 페이지를 넘기며 멍하니 걸음을 옮기다 전시가 끝나는 왼쪽 길로 들어섰다. 벽에 적힌 글귀가 재미있다. 노래로 요약한 조선 시대 살림살이다.

판소리 <흥보가> 中 흥보 부부가 박을 타는 대목을 통해 조선시대 집안 살림에 사용했던 온갖 물건의 명칭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흥보 부부가 박을 타자 쌀과 돈이 가득 나오고 이어서 집에서 사용하는 세간이 쏟아지는데, 장과 농, 앞닫이, 경대, 빗접, 고비, 반닫이, 병풍, 반상, 문갑, 책상, 각게수리, 책장 등 당시 일상생활에서 사용한 기물의 종류가 상세히 전해지고 있다.
― <흥보가> 신재효 편 발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전시가 시작되는 오른쪽 길에 섰다. 전시는 크게 세 구간으로 나뉜다. ‘부엌 - 食을 책임지는 공간’, ‘안방 - 여인의 온화한 공간’, 그리고 마지막 ‘사랑방 - 남성의 기품 있는 공간’이다. 사랑방은 학문을 논하거나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사용됐다. 어두운색의 나무로 만들어진 필가(붓걸이), 고비(편지함)마다 단정한 빛깔의 전통 매듭이 장식돼 있다. 사실 전통 매듭은 과거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이 사용했다. 전통 매듭의 장인들 역시 대부분 남성이었다고 한다. 전시실 가운데 놓인 1869년 作, <흥선대원군 이하응 초상>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림 속 흥선대원군은 허리에 자색 세조대(도포끈)를 두르고, 오른쪽 환도는 붉은 술로 장식했다. 당시에는 도포끈의 색을 통해 관직을 추측할 수 있었다. 당상관은 주로 다홍색, 분홍색, 자주색을 사용했으며 선비들은 녹색을 두르고 상중에는 흰색을 꺼냈다. 당시 주민등록증이나 다름없었던 호패에도 술을 달아 허리에 띠었으며 이것 또한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 색을 달리하거나 상아 구슬 등으로 화려함을 더했다. 이 외에도 부채 끝에 전통 매듭을 장식하는 선추, 끈목을 단 안경집 등 전통 매듭은 조선 시대 남성들의 잇 아이템으로 활용되곤 했다. 전통 매듭은 지금보다 조선 시대에 오히려 차별받지 않았다. 부엌 한편에 놓인 떡살에서부터 왕실의 해금을 꾸미는 장식에 이르기까지 성별, 계급, 장소를 막론하고 조선인들의 생활상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장인의 손끝

“본래 나는 왼손잡이인데, 이상하게 매듭 할 때만큼은 오른손을 쓰는 게 편해요. 스승이셨던 시아버지가 매듭은 오른손으로 해야 한다 말씀하셨는데, 신기하게도 매듭에 한해서는 그 말을 따르는 게 그렇게 어렵지가 않았어요.”(심영미) 전통 한복 위에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입고 그와 어울리는 화려한 노리개를 단 장인이 나무 문을 열며 나를 맞이한다. 동림매듭공방은 매듭기능전승자인 심영미 장인이 2004년에 터를 잡은 체험형 공방이다. 그녀는 조선 궁중에서 매듭 일을 하던 시왕고모와 그 기술을 전수받은 시아버지로부터 매듭을 사사했다. 이제는 공방에 주로 며느리 박진영과 오랜 제자인 최정숙이 머물고 있지만 내부는 여전히 장인의 손길이 묻어나는 전통 매듭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왼쪽 벽에 자리한 ‘태조 어진 유소’가 참여했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 한다. 당시 각계 장인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유소, 풍대 등 태조 어진의 장식품을 정비했고 덕분에 국보승격의 의미를 더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중 유소 제작을 도맡았다. 유소는 끈목으로 매듭을 맺고 그 끝에 술을 장식해 늘어뜨리는 것을 말한다. “염색을 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제조 방식이 문헌과 일치해야 했고, 태조 어진의 오래된 색감을 맞춰 재현하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거든요.”(심영미) 장인이 매듭을 지을 때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 색감이다. 최선의 색을 만들기 위해 흔히 있는 찻잔이나 꽃잎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과거에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과정부터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으나 지금은 실을 뽑고 염색하는 일이 대부분 공장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 작업에 한해 아직도 자택에서 염색을 하고 있다. 본래 매듭장이는 염색장, 해사장, 끈목장, 매듭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여기서 전통 매듭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 수 있다. 먼저 비단실을 삶고 얼룩덜룩하지 않게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염색한다. 염색된 비단실을 합하고 꼬아서 끈목을 만드는데 이렇게 짠 끈을 ‘다회’라 하고 끈 만드는 것을 ‘다회 친다’고 한다. 이후 매듭을 짓는데 보통 매듭 혼자는 밋밋하기 때문에 술을 달아 아름답게 치장한다.

장인이 끈목 짜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구석에서 끈틀을 꺼낸다. 여러 뭉치의 실타래가 원뿔 모양의 틀 주변을 빙 두르고 있다. 실을 잡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손끝이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다. “열심히 짠 끈으로 생쪽매듭을 만들 거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매듭인데, 겉보기에는 왜소하지만 얼마든지 이어 붙여 석쇠매듭, 사색판매듭, 가지방석매듭 등으로 확장할 수 있어요.”(심영미) 주전자 스팀으로 끈목을 정리하며 말한다. 펄펄 끓는 물에서 나온 수증기 가까이에 끈목을 대고 천천히 움직이자 살짝 구불구불하던 선이 쫙 펴진다. 매듭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모양이 틀어져, 전부 풀고 어긋난 지점까지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매듭을 손에 쥐자 공방이 고요해진다. 집중한 표정과 손끝에서 장인의 정신이 전해진다. 매듭만큼은 절대 기계로 만들 수 없다던 뉴신사매듭 점장의 말이 떠오른다. 매화를 닮아 유려하고, 가락지처럼 섬세하며, 병아리만큼 앙증맞은 이 매듭들을 사람의 손끝이 아니면 과연 무엇이 빚어낼 수 있을까.

 

전통 매듭의 종류는 40여 개에 달한다. 궁중 혹은 지방에 따라 이를 부르는 명칭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주위에서 흔히 보이는 것들의 이름에서 따온 순수 우리말이다. 단추, 난간, 잠자리, 국화, 병아리, 파리, 벌, 나비 등 실생활과 밀접한 요소나 자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꽃과 곤충이 주를 이룬다.

지금은 사람들이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지만 과거에는 이동에 한계가 있었다. 갈 수 있는 곳도, 볼 수 있는 것도 일상의 범위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전통 매듭의 이름이 위와 같은 것은 일상에서 보이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손안에 잡아 기억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동림매듭공방에서 받은 작은 눈꽃 모양의 매듭을 방문에 걸었다. 끝에 작은 방울 두 개가 달려 있는데 문을 여닫을 때마다 풍경처럼 청아한 소리가 난다. 방울이 울리면 전통 매듭을 뒤쫓아 현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시간을 역행해 걸었던 서울 일대가 떠오른다. 머릿속에서 되감아지는 장면들을 휴대폰 사진 대신 문에 달린 전통 매듭으로 기억하며 이번 여행을 매듭짓는다.


MINI CITY GUIDE: 옛 시구문 일대

SEE IT

KCDF 갤러리

이곳의 갤러리숍, 전시장, 라이브러리를 둘러봤다면 이제 옥상정원을 방문할 차례다. 복잡한 서울에서 잠시 여유를 만끽하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탁 트인 전망에는 오가는 사람들과 예스러움이 남아 있는 인사동의 찻집이 포함된다. 날이 풀리면 옥상이 온통 녹색식물로 뒤덮인다. www.kcdf.kr(갤러리), www.kcdfshop.kr(갤러리숍), library.kcdf.kr(라이브러리)

북촌박물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속에서 이어져 온 유형 혹은 무형의 자산을 전시한다. 전시 <방, 조선시대 생활모습> 이후 옛 목가구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는 상설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bukchonmuseum.modoo.at

EAT IT

조각보
동림매듭공방에서 1분 거리에 자리한 한식당이다. 산채비빔밥, 불고기뚝배기, 왕갈비탕, 한우생고기비빔밥, 곤드레 나물밥 등 다양한 메뉴를 판매한다. 점심 특선 메뉴와 저녁 메뉴가 다르니 메뉴판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조각보 스페셜 메뉴는 보리굴비 한정식을 코스로 내놓는다.

호랑이식탁
이런 곳에 요런 식당이? 성수동 골목 안쪽에 있는 감성 식당이다. 호랑이띠 주인장이 주방을 맡고 있으며 우삼겹덮밥과 명란버섯파스타가 대표 음식이다. 명란버섯파스타를 주문하자 명란이 파스타 면 위에 아이스크림 스쿱처럼 얹혀 있다. 반찬으로 나오는 매실장아찌는 주인장의 아버지가 경남 하동에서 직접 기른 것으로 담갔다.

MAKE IT

스페이스 오매
창작자들을 위한 문화, 예술 아지트다. 한 건물에서 식사, 미용, 전시 관람이 가능하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워크숍도 진행한다. 작가의 강의를 듣거나 직접 전시와 관련된 소품을 제작할 수 있다. www.omae.co

동림매듭공방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각종 장식용 매듭을 전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반지, 비녀, 옷핀, 머리끈, 머리띠, 와인 네트 백 등 다양한 곳에 접목된 전통 매듭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매듭교실 정규 과정과 일일 체험을 진행해 자신만의 아이템을 만들어볼 수 있다. www.shimyoungmi.com

BUY IT

단디·호애 공방
전통 매듭 공예가 단디와 목공예가 호애가 한 공간에 자리한다. 두 사람이 협업해 제작한 호애화도 공방에서 만날 수 있다. 호애화는 일종의 개량 꽃신으로 한복이 아닌 평상복에도 신을 수 있게끔 캐주얼하게 디자인됐다. 현재는 주말에만 공방 문을 열고 있다. www.dandi-hoae.com

뉴신사매듭
약 30년 동안 전통 매듭과 관련된 재료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중이다. 온라인에 전통 매듭을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한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 쉽게 재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www.nssknot.com

서울풍물시장
없는 게 없는 만물 시장. 시장 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뜻밖의 수확을 할 수 있다. 악기, 시계, 의류 등을 수선하는 점포들도 곳곳에 자리한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에는 2층 중앙 무대에서 수요음악회를 진행한다. 관람은 무료이며 약 50분간 열린다. pungmul.or.kr

글. 김호경HO-KYUNG KIM
사진.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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