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SPAIN ASTUARIS
스페인 아스투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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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2월호

눈 덮인 봉우리와 깊숙이 스며든 이베리아의 전통을 만끽한다.

일곱 번째 코스로 나오는 요리를 먹을 때쯤 어디서도 이런 음식은 먹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스페인 북서부에 있는 아스투리아스Asturias 주에 있는 산 속에서 성게와 햄이 어우러진 요리를 한 입에 넣고 맛보며 이 지방의 해변과 산을 느끼는 중이다. 저쪽 테이블에서는 호세 안텔로Jose Antelo가 승리감에 도취된 표정으로 돼지고기를 집어 올리고 있다. 

안텔로는 바르셀로나에서 항공 교통 관제사로 일하고 있고, 함께 식사중인 루이는 호세와 형제지간으로, 고등법원 판사다. 이들은 각각 스페인의 상위권 레스토랑이 있는 두 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매일 밤 기억에 남을 만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도 이 형제는 굳이 먹기 위해서 1년에 세네 번 아스투리아스에서 만난다고 한다.

아스투리아스는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중간 지점도 아니고 각 도시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비스케 만을 따라 형성된 해안가에 위치한 이 자치구에는 우거진 나무들로 뒤덮인 언덕과 부채꼴을 이루는 작은 해변들이 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오는 거냐고 묻자 호세가 웃는다. "왜 우리가 여기 오는지 곧 알게 될 겁니다. 스페인에서 이렇게 다양한 맛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여기 밖에 없거든요. 마치 아주 작은 땅에 나라 전체가 있는 셈이죠"

우리는 지금 오래된 주택에 자리하고 있는 카사 마르시알Casa Marcial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 반원형 타일의 지붕이 인상적인 카사 마르시알은 소나무 냄새가 나는 라 살가르La Salgar 산악 마을의 구불구불한 길 꼭대기에 있다. 북쪽 방향으로 9.6km의 길이로 뻗어 있는 해안을 따라 아스투리아스 비둘기가 날아간다. 깊은 숲 속, 그것도 언덕 꼭대기에 마을이 자리하보니 라 살가르 주민의 대부분은 물을 한번도 보지 못한 채 유년기를 보낸다고 한다.

만나조 가족이 시작한 카사 마르시알은 원래 올리브오일, 사이다, 소에게 먹이는 사료, 의류 등을 파는 잡화점이었다. 그러다 창립자의 아들 나초 만자노가 스물 두 살이 되던 해 1993년에 해안 지역으로부터 돌아와 이 레스토랑을 시작했다. 카사 마르시알은 안텔로 형제 등과 같은 미식가들에게 사랑 받는 레스토랑이 됐고 미슐랭으로부터 별을 두 개 받았다. 차려 입고 레스토랑에 가는 걸 싫어하는 지역 주민들도 이곳을 즐겨 찾는다. 카사 마르시알은 신선하고 짭쪼름한 맛조개와 산악 지대에 있는 마을에서 즐겨 먹는 두꺼운 콩 스튜 등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 순수하고 완벽한 현대판 아스투리아스 음식을 가장 존경하는 이들은 다름아닌 셰프들이다.

만약 몇 년 안에 이곳을 다시 찾게 된다면 그 때는 며칠 여유를 두고 마드리드에서 북쪽으로 운전을 해서 오고 싶다. A-66 도로에 들어설 때쯤 밤색의 평평한 언덕이 나타난다. 네온 지방의 북쪽에서 네그론 터널을 지나면 아스투리아스 주가 나온다. 

도시 이야기

나는 지금 아스투리아스의 주도인 오비에도Oviedo를 향해 가고 있다. 오비에도는 교외 지역이 빠르게 확장되면서 히혼으로부터 분리된 소도시로, 거주자는 약 22만명 정도다. 오베이도와 히혼은 각기 다른 고유한 장면을 보여준다. 한 도시에서 VIP가 되거나 아니면 또 다른 도시에서 완전히 무명이 되는 식이다. 오비에도에 좋은 박물관이 있다면 히혼에는 해변이 있다. 일 년에 두 번, 제대로 된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스포팅 히혼 축구팀과 리얼 오베이도 팀의 경기를 통해 두 도시가 서로 경쟁자임을 확인한다.

대부분의 방문자는 오비에도에 먼저 들른다. 세계 최고의 로마네스크 이전 시대 건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궁전과 교회가 함께 있는 산타 마리아 델 나란코 복합지구는 9세기에 지어진 높고 좁다란 건축물로, 이 밖에 14개의 건물들이 보존돼 있다. 나는 오비에도에 도착하자마자 곧 산타 마리아 델 나란코 순례를 시작한다. 우유 거품을 올린 커피 색 같은 돌로 지은 아치형의 방에 들어선다. 건물의 두꺼운 벽을 뚫고 낸 창의 셔터가 열려 있어 산들 바람이 불 때 마다 하늘거린다. 나는 창 너머 아래로 펼쳐지는 수풀과 도시를 응시한다.

"그 전까지는 아스투리아스가 세상에 보여줄 게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죠." 히혼 중심가에서 '라 살가르'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나초의 누이 에스테르 만자노가 설명을 이어간다.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거에요. 날씨가 좋은 것도 아니고, 어디에서 오든 한참을 운전해야 하고 비행기도 없었죠. 누가 여길 오고 싶어 하겠어? 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스투리아스는 여전히 지역의 특색과 강렬한 맛, 진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오비에도에서는 여전히 영어로 된 메뉴판을 보기 힘들다. 아스투리아스 태생으로 워싱턴 D.C.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세계적인 셰프 호세 안드레스도 어렸을 때 살았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레스토랑을 열고 싶어한다. 만약 레스토랑이 문을 연다면 역시 영어로 된 메뉴를 구비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감히 확신한다.

아스투리아스 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시 2개는 마치 남극과 북극처럼 상호 대척 지점에 있다. 오비에도는 내륙 도시답게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예의 바르고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항구 마을 히혼은 노동자들이 많고 때로 불경스럽지만 바다를 향해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향해 열려 있다. 오비에도에 있는 오페라하우스는 연중 프로그램이 꽉 차 있다. 히혼은 일련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축제를 선호한다. 히혼에 도착하니 마침 호베야노스 극장에서 '재즈 히혼' 축제가 열리는 중이다. 

"히혼은 이 지역에서 가장 젊고 생기 넘치는 도시입니다. 음악, 요리, 생활 방식 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스페인과 아스투리아스 중 어디에 더 소속감을 느끼는 지 물었다. "아스투리아스죠!"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실제로 저는 히혼 출신이에요. 히혼에서는 오비에도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소박한 주방에서 만들어진 음식이 오늘날 에스테르 만자노가 운영하는 라 살가르 레스토랑에서 선보이는 메뉴다. 라 살가르는 만자노 가족이 태어난 곳의 이름이기도 하다. 박물관 부속 건물처럼 지어진 라 살가르 레스토랑은 외관이 현대적인 유리 상자같다. 현지인들에게 일생 동안 먹어 온 음식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다. 예를 들면 아스투리아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먹어본 기억이 있는 닭, 쌀, 고추로 만든 아로스 피투arroz con pitu 등의 요리다. 에스테르는 '집에서 먹던 음식을 레스토랑에 먹는다'는 게 기본 컨셉트라고 설명한다.

번화가와 시골

아스투리아스도 샌프란스시코나 스코틀랜드처럼 날씨가 안 좋다. 히혼에서 출발해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향하는 내내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8월이 되면 살인적인 열기에서 벗어나 한숨 돌리고 싶어하는 스페인 사람들이 리바데세야로 모여 든다. 11월이 되면 선선한 아침에 안개처럼 비가 내리는 사랑스러운 어촌 마을이 된다. 아이들이 물웅덩이에서 물을 튀기며 놀고 어른들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상점 주인들이 출입구에 나와 서서 친구들에게 인사를 한다.

게이유 마르 레스토랑은 입구에 우뚝 세워진 플라스틱으로 만든 킹피시 조형물이 눈에 띄는 식당으로 일종의 판자집에 들어 앉아 있다. 아벨 알바레즈 셰프가 2007년부터 생선을 굽고 있다. 메뉴는 그날 그날 어선이 잡아 오는 걸로 정해지며, 금속으로 된 원통형의 그릇에 담겨 나온다. 다른 육류나 쌀이나 감자 등은 일절 없고 오직 해산물과 현지 야채와 뛰어난 롤빵 만으로 구성된다. 나는 맛조개와 정어리를 먹은 뒤 새조개와 킹피시 구이를 먹었다. 

다시 비가 내린다. 밖에 나가서 보니 생생한 컬러의 무지개가 가파른 경사면에 서 있는 나무 꼭대기에서부터 언덕 아래에 있는 물가에까지 걸쳐져 있다. 다시 육지 쪽으로 방향을 잡고 언덕에 서 있는 소도시 캉가스 데오니스로 간다. 천천히 흐르는 시냇물 위로 로마 양식의 다리가 뻗어 있는 캉가스 네오니스의 풍경은 사진에도 자주 등장한다.

다음날 아침에는 캉가스 데오니스에서 출발해 스페인 최고의 역사적인 명소로 알려진 코바동가에 잠시 들른다. 게르만의 한 부족으로 알려진 서고트족 출신의 귀족 펠라기우스는 무어인의 전진을 막아내고 718년에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우는데, 이 때부터 근대 스페인이 시작되었다는 가설이 있다.

글. 브루스 쇼넨펠트BRUCE SHONENFELD
사진. 키아라 고이아CHIARA GO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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