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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마스터 피스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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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5월호

CHASING 
THE MASTERPIECE

은 늘 자연에 있었다. 땅에 새겨진 우주를 만나고, 휴식과 온전한 자유 속에서 새로운 창조의 힘이 솟구쳐 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춘천과 원주로 향하는 로드 트립에서 ‘창조’라는 두 글자와 단 하나의 마스터피스를 위해 벼리고 또 벼려야만 했던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STOP 1 호수 위의 환상, 춘천 레이크192

건축을 보는 일이란 그 사람 자체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건축가의 철학과 정신, 가치가 ‘집’이라는 하나의 ‘물성’을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났을 뿐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여행에서 단지 건축을 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자아와, 인격을 마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요한 춘천호를 따라 화천으로 향하는 길목, 북한강과 가일리가 만나는 곳에 물길이 한번 회 도는 구간이 있다. 북한강을 넘은 물이 춘천호를 향하며 잔잔해지는 곳. 새하얀 물안개가 피어나는 이 호숫가에 직사각형 형태의 노출콘크리트 주택이 한 채 홀로 서있다. 대지면적 347㎡에 지상 2층으로 지어진 전원 주택, 레이크192다. 건축가 김인철이 설계를 맡았다. 그는 선과 여백, 차경을 통해 단순하고 극적인 공간을 연출할 줄 알았다. 그의 말대로, ‘거스를 수 없고 뛰어 넘을 수도 없는 자연의 흐름’이 건축에 담겼다. 거실과 안방, 침실에 누우면 마치 호수에 둥둥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동서남북으로 난 쪽문과 창을 통해 빛을 한 가득 실내에 담을 수 있다. 모든 공간이 여백이자 창인 이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의 삶에도, 생각에도 자연히 빈 공간을 두어야 함을 느끼게 된다.

NAVIGATOR. 춘천 레이크 192 강원 춘천시 사북면 가일길 555 

 


STOP 2 미감의 정점, 권대섭의 달항아리  

이른 새벽이었다. 권대섭 작가의 가마가 있는 경기도 광주, 팔당호반을 향해 내달렸다. 봄 기운은산 저편에서 들로, 그리고 호수로 흘렀다. 흩뿌려진 분홍의 숲길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올랐을 때, 흐드러지게 핀 분홍의 수양 벚꽃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권대섭 작가의 집이었다. 이미 그의 집에선 연기가 피어 올랐다. 주인 내외는 우리를 위한 차와 다과 상을 내왔다. 부엌에선 고슬고슬한 솥 밥이 지어지고 있었다.

방 한 켠엔 견고하고 당당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달항아리가 놓여있다.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게 만드는 한 덩이의 크고 빛나는 작품이다. 조선의 미감과 철학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세계다. 역동적이면서도 고요한 이 하나의 물체가 가져다 주는 영감과 상상력,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그는 ‘조금의 진보’를 늘 고민한다. “머물러 있을 수는 없어요. 전통과 기술의 베이스에 자신만의 것을 쌓아 올리는 시간입니다” 광주 일대에 흩어진 사금파리를 주우러 다니면서도 그는 선조를 뛰어넘을 미감을 찾아 매일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무심의 경지에 도달하게끔 하는 이 항아리를 만드는 힘. 그의 가식 없는 말투와 순수함. 그리고 눈과 손에서 느껴지는 고집을 보니 말을 않고도 짐작할 수 있다. 어떠한 허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다짐을.

NAVIGATOR. 권대섭 도예가의 집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이석길 


STOP 3 우주적 유닛, 홍천 유리트리트

홍천군 대곡리 소리산 줄기, 사리골 계곡에 거대한 우주선이 떠 있다. 계곡을 관통하는 바람과 절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땅에 유리트리트가 나타난다. 이 건물의 설계를 맡고 이름을 지은 곽희수 이뎀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리트리트’의 의미를 피정(避靜),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난 휴식’으로 정의한 바 있다. 자연의 속삭임을 들으며 세상으로부터 격리돼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비밀의 낙원이다. 지표면에 발을 딛지 않고도 실내에서 안에서 옆으로 위로 프라이빗한 공간을 열어갈 수 있는, 하지만 자연과 맞닿아 있는 그런 장소다.

NAVIGATOR. 유리트리트 강원 홍천군 서면 한서로 1468-55 / 033-433-2786

 


STOP 4 상상의 낙원, 원주 오크밸리

홍천에서 원주로 이어진 70번 국도변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홍천 강에서 이어진 실개천을 따라 봄의 소리가 들려 온다. 고갯길을 돌 때마다 홍매화와 개나리가 불쑥 불쑥 고개를 내밀어주니 드라이빙이 지루할 리 없다. 야트막한 소리산 자락을 끼고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굽이굽이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겨본다. 이내 아기자기한 산길을 따라 참나무 군락이 나타난다. 언덕 가로수는 온통 벚꽃이다. 산 속 양지바른 곳에 포근히 숨은, 오크밸리 리조트다.

리조트 체크인 센터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이국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원주택 ‘피엣 분Piet Boon 하우스’가 보인다. 화강암석으로 다진 외관과 자작나무 가득한 정원이 돋보인다. 네덜란드 건축 디자이너 피엣 분이 만들어 낸 차분하고 모던한 공간은 현재 VVIP를 위한 대관 공간으로 쓰인다.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빛 만으로, 집의 풍경은 봄 날의 저택으로 변한다. 340만평을 품은 오크밸리 컨트리 클럽은 총 63홀로 3곳에 나뉘어져 있다. 국제대회 규격의 36홀 그리고 잭니클라우스가 설계한 고난이도 18홀의 오크힐스C.C, 9홀 퍼블릭 코스의 오크크릭C.C 등이다.  산 속에서 청량한 공기를 가득 마시며 여유로운 라운딩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문다. 구룡산의 품에서 안온한 밤을 보낸다. 

NAVIGATOR. 오크밸리 강원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1길 66 / 033-730-3500


STOP 5 땅에 새긴 우주, 뮤지엄 산

땅의 기세를 거스르지 않고 나선형으로 자연스럽게 펼쳐진 하나의 세계가 눈 앞에 있었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공간을 따라 명상하듯 가만히 공기와 자연만을 떠올리며 길을 걷는다. 산의 지형에 순응하여 만들어진 700m길이의 공간은 웰컴센터, 플라워 가든, 워터 가든, 본관, 스톤 가든, 제임스 터렐관을 순차적으로 만나도록 설계돼 있다. 그는 “건축이라는 것이 추상적 공간 구조 안에 자연과 역사, 전통과 사회 등 현실 세계를 명확하고 투명한 논리로 구성해내는 구체적 작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신라고분을 모티브로 한 부드러운 곡선의 스톤 마운드를 따라 명상관에 이르렀다. 소리와 빛, 공기에만 집중한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에만 감각이 머물렀다. 이내 고요한 어둠 속에서 어떤 차오름을 느꼈다. ‘살아갈 힘을 되찾는 공간’이었다.

명상관을 지나면 제임스 터렐관으로 이어진다. 제임스 터렐이 설계한 45도 경사로 들어오는 빛만이 존재하는 웨지워크를 따라가려면 물리적으로 어둠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고요한 어둠 속을 걷다 보니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지고 닫혔던 생각들이 열리며 창조적 기운이 샘솟음을 느낀다. 정지혜 학예사는 “단순히 빛 자체를 보는 것 보다 빛을 보면서 생성되는 감정, 결과에 더욱 집중하라”고 말한다. 지각과 심리학을 활용한 ‘간츠펠트’라는 작품에서 느끼는 생경함이나 불안감, 두려움 역시도 사유의 한 부분이 된다. 하늘을 향해 원형의 창이 놓여있는 스카이 스페이스에 앉아 이번 여정을 회상한다. 절대적 감각으로 수놓아진 예술을 만나며 이 모든 것들의 답은 하나로 연결됨을 깨달았다. 사물을, 자연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다 보려는 공감각과 내면에 깃든 철학이다. 

NAVIGATOR. 뮤지엄 산 강원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 033-730-9000

 

글. 강혜원 HYE-WON KANG
사진. 조성준SEONG-JOON CHO, 김현민HYUN-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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