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S
REGENSBURG: GERMANY
만신萬神이란 어떤 존재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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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호

어떤 도시들은 뜻밖에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기도 한다. 프랑스 파리와 독일 레겐스부르크가 그렇다. 유럽에서 관광객이 아닌 주민으로 살며 이 도시 저 도시를 탐색하던 시절에는 한 도시를 점으로 파악하기보다 도시 간 특별한 관계의 구도와 그 변화 양상을 도출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레겐스부르크의 발할라, 고대 그리스를 잇는 근대 독일의 만신전

발할라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파리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은 레겐스부르크를 조금 소개해야 할 것 같다.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주 안에서 약간 북쪽에 위치한 가톨릭 도시다. 한국에서도 한때 큰 인기를 끈 이케다 리요코의 순정만화 <올훼스의 창> 초반부의 배경이 된 도시이기도 하다. 만화의 주인공 소년들은 남학생 음악학교의 합창단에서 활동하는데, 레겐스부르크 대성당에는 실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년합창단인 ‘레겐스부르거 돔슈팟첸Regensburger Domspatzen’이 활약하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친형이 이 소년합창단의 지휘자를 역임하기도 했다.

 

한편 구시가지로부터 조금 떨어진 높은 곳에 도나우강을 내려다보는 그리스 신전 같은 건물이 하나 있다. 이곳이 바로 발할라Walhalla다. 게르만인들은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하면 죽어서 발할라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고 믿었다. 게르만 신화에서 ‘발할’은 주신인 오딘(보탄)이 다스리는 궁이면서 영웅들의 낙원이기도 했다. 레겐스부르크를 두 번째 방문한 것은 여름이었고 이때 발할라를 찾아갔다. 녹음이 짙푸른 초록 숲 속에 고대 그리스식 신전의 기둥이 하얗게 침묵하며 늘어서 있었다.

 

파리의 팡테옹, 고대 로마를 잇는 근대 프랑스의 만신전

이런 발할라를 거울처럼 비추는 프랑스 쪽의 건물이 있다. 파리의 팡테옹이다. 이 두 건물은 어떤 면에서는 닮았고 어떤 면에서는 차이가 나서 서로의 모습을 스스로에게 다시 돌려주는 듯하다. 닮은 점은 의도다. 자국의 영웅들을 각각 모시고 기린다. 다른 점은 정체성의 차이다.

독일의 역사와 프랑스의 역사는 사실상 프랑크 왕국에서 시작하며, 이때만 해도 역사가 서로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근대로 이행하면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상으로 서로 다른 민족이라는 의식이 싹텄고, 나폴레옹 군대의 압제 속에서 독일의 반(反)프랑스 정서와 함께 양국의 민족 의식은 커져갔다. 상대를 향한 적대감이 자기정체성의 의식을 키운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오랜 고대 문명을 계승한다는 데에서 자민족의 정통성을 찾고자 했다. 그런 이유로 발할라는 고대 그리스를 잇는다는 의식 속에 파르테논 신전을 본떴고, 팡테옹은 고대 로마를 잇는다는 의식 속에 로마 신전인 판테온을 본떴다. 그렇게 해서 발할라는 긴 직사각형에 기둥이 도열한 그리스식 외관을, 팡테옹은 둥근 돔이 두드러지는 로마식 외관을 가지게 됐다.

 

현대 예술가 JR, 국적을 초월한 평범한 사람들이 만신이다

현대의 참여형 설치예술가이자 사진가인 JR이 2014년 파리의 팡테옹에서 진행한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Inside Out Project〉는 이런 역사적 맥락을 배경으로 이해할 때 더욱 범상치 않은 의미로 다가온다.

아티스트 JR은 사진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사진을 그들이 사는 장소 외벽에 흑백으로 크게 확대해서 일시적으로 붙여두는 거리 작업을 한다. 그 이미지는 철거되거나 비바람에 씻겨나간 후에도 그 장소에 강렬하게 결부되어 사람들의 마음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게 된다.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웹을 통해 사진을 디지털 데이터로 받은 후 흑백 포스터로 크게 출력해서 보내주는 작업이다. 팡테옹은 이런 작업을 해온 JR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JR은 이 팡테옹을 프랑스만이 아닌 전 세계의, 유명한 영웅들이 아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일반인들의 초상 사진으로 뒤덮었다. 그럼으로써 21세기에 만신(萬神)이란 바로 이렇게 평범하지만 존엄한 사람들의 존재임을 웅변적인 스케일로 드러냈다. 프랑스인을 넘어서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인종을 가진 그들을 JR은 북적대는 만신으로 만든 셈이다. 이곳 위인들의 만신전인 팡테옹에서. 이들 중에 또 미래의 영웅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프로젝트의 소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팡테옹에 바쳐(au panthéon)!’ 

 

역사나 미디어가 개인의 이미지를 제조해온 데 맞서며 세계를 바라보는 의식을 바꾸어 온 예술가 JR은 이렇게 ‘팡테옹’이라는 이름에 깃든 의미도 전면 바꾸어놓았다. 대립과 대치의 성격이 내재된 장소의 의의를 포용의 메시지로 전환시킨 것은 현대 예술의 힘이었다.

글. 유지원JIWON YU
사진.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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