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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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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호

부산을 떠올리면 연쇄적으로 따라오는 익숙한 단어들이 있다. 국내 최대 국제무역장을 보유한 제1의 항구도시를 시작으로 빛나는 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부산불꽃축제,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한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돼지국밥과 밀면이 그렇다. 이번 여행에서는 살짝 시선을 돌려 이 도시에 내포된 또 다른 아름다움에 집중해보려 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을 무대로 한 카페와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갤러리, 계속해서 다시 쓰이는 문화유산이 공존하고 있었다.

 

살아 숨 쉬는 예술

저 멀리 초록의 건물이 보인다. 2018년 6월 시에서 건립한 공공미술관인 부산현대미술관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갖가지 식물이 외관을 뒤덮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의 식물학자인 패트릭 블랑의 작품 ‘수직정원’이다. 부산의 식물을 연구해 175종 4만 4000여 포트를 심어 완성한 결과물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총 5780m2의 전시 공간을 보유한 미술관은 수장고, 세미나실, 아카이브실과 어린이 독서 공간 등을 고루 갖춰 전시와 체험 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주요 의제는 자연과 뉴미디어 그리고 인간으로, 지역과 예술을 연결하고 세계와 미래를 잇고자 고민한다. 걸어서 10분 거리에는 을숙도생태공원이 있어 관람 후 조용히 사색하기에도 좋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람객 수를 제한하니 사전 예약을 잊지 말도록 하자.

해운대 요트경기장 맞은편, 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 인근에 자리한 고은사진미술관. 담쟁이덩굴로 덮인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인다면 맞게 도착한 것이다. 사진 예술 활성화를 위해 2007년 건립돼 14년 동안 수많은 사진을 선보여온 사진 전문 미술관이다.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아카이브를 구축하며 수준 높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1층에는 사진 관련 도서와 자료가  정돈된 공간과 굿즈를 판매하는 숍이 마련되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 10명 이상의 인원이 단체 관람 시 도슨트 예약을 할 수 있다. 2012년부터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사진의 이론과 테크닉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관람을 넘어 전문적으로 촬영을 배워보고자 한다면 아카데미 공지사항 게시판을 확인해볼 것.

피터 짐머만부터 백남준까지, 조현화랑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 및 해외 거장들의 전시를 개최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달맞이길에 진입해 해월정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돌 위로 식물이 무성한 조현화랑 건물을 발견할 수 있다. 1990년 광안리 아트타운에서 문을 열고 출발해 지금의 해운대 달맞이고개에 이르기까지, 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과 30여 년의 시간을 함께해왔다. 특히 현대미술과 미니멀 아트에 집중하며 1년에 6~7차례 대규모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국내 회화계의 중심인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정창섭 작가 등의 전시뿐 아니라, 지역 작가를 발굴하는 데도 끊임없이 힘을 쏟고 있다. 파라다이스 호텔 맞은편에는 갤러리 분관이 있으니, 여운을 보다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방문해볼 것.

 

재생하는 도시

부산역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동구 수정동으로 향한다. 역에서 빠져나와 높은 빌딩과 낮은 건물들을 차례로 지나면 마침내 도착한다. 잘 다듬어진 돌담과 아담한 정원을 지나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드는 짙은 색 2층짜리 목조 건물이 나타난다. 바로 1943년에 지은 일본식 주택 정란각이다. 근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 저택은 일제강점기 일본 무사 계급이 사용하던 ‘쇼인즈쿠리’ 양식으로 지은 고급 주택의 한 형태다. 지금은 ‘문화공감 수정’이라는 카페로 운영돼 따뜻한 꽃차를 마시며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툇마루와 다다미가 깔린 방을 볼 수 있는데, 걸을 때마다 간헐적으로 나는 삐그덕 소리가 이곳의 세월을 짐작케 한다. 추천하는 자리는 마당이 그대로 보이는 창가석으로, 햇살이 마루 안으로 내리쬐는 순간을 온전히 누려보자. 국가등록문화재인 만큼 기물을 만질 때에는 각별히 유의할 것.

1927년에 지어진 부산 최초의 병원, 백제병원. 등록문화재인 이 근대의 건물은 중식당, 예식장 등 다양한 공간으로 개조를 거쳐 지금은 카페 브라운핸즈 백제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95년간 한자리를 지킨 붉은 벽돌 건물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허물어진 모습에도 불구하고 긴 시간을 견딘 장소가 갖는 특유의 힘이 느껴진다. 내부는 층고가 높고 널찍하다. 역시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해 여기저기 색을 잃고 벽돌도 닳고 떨어진 상태지만 여전히 충실하게 기능하고 있다.

친환경과 공장, 둘이 만나 업사이클링 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한 곳이 바로 F1963이다. 팩토리Factory의 ‘F’와 공장이 지어진 ‘1963’년을 결합한 명칭으로, 철강 제품을 제조하던 기업에서 설립했다. 45년 동안 이곳에서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다가 2008년 이후 생산을 종료하고 설비를 이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9월,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된 후로 사람과 예술, 문화가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현재는 카페와 서점, 갤러리와 정원, 예술 전문 도서관이 함께한다. 공장에서 사용하던 일부 시설은 지금도 잘 보존되어 공간 곳곳에 자연스레 자리한다. 카페 천장에 공장 구조물이 그대로 남아 있고, 중고서점을 걷던 중 커다란 기계가 등장하는 식이다. 거칠고 투박한 기계가 단조로울 수 있는 공간에 낯선 변주를 주며 재미를 더한다.

 

 

한 폭의 카페

일광역에서 버스를 타고 기장문화예절학교역에서 내려 5분을 걷는다. 낮은 절벽 위로 고요한 기장 앞바다에서 유독 눈에 띄는 생김새의 웨이브온 커피가 보인다. 뾰족하기도 네모나기도 한 불규칙한 두 개의 모형이 쌓아 올려진 듯한 디자인으로, 단일 콘크리트로 완성한 구조물이다. 이 뛰어난 미감의 건축물은 세계건축상 수상자인 곽희수 건축가의 작품으로, 495.8m2의 건물에는 하루 3000여 명의 여행자가 드나든다. 전 좌석이 명당인 이곳에서는 1층부터 4층까지 둘러보며 가장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고르는 게 먼저다. 독립된 독채 공간인 별채도 따로 마련되어 직원에게 이용을 요청하면 바다가 보이는 방으로 안내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 시그너처 메뉴로 베르가모트 향이 물씬 풍기는 월내 라테와 고소한 통밀과 바삭한 시리얼을 넣은 통밀 라테를 즐겨보자.

로마 3대 커피 중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산 에우스타키오 일 카페. 1938년 오픈해 긴 역사를 자랑하는 카페로 장작불을 피워 원두를 로스팅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로마와 부산 단 두 곳에서만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본점 방문은 꿈으로만 남겨둬야 하는 시국이니, 훗날을 기약한 채 가까운 부산에서 즐겨보기로 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시그너처 컬러인 옐로가 가득하다. 노랗고 앙증맞은 에스프레소 잔, 그 옆으로 진열된 캡슐 커피와 커피빈이 눈길을 끈다. 커피 메뉴로는 깊은 풍미를 자랑하는 카페라테, 음료 메뉴로는 리얼 패션프루트 펄 주스가 인기다. 주문한 음료를 들고 테라스로 나가면 바닷바람이 힘차게 불고 짭조름한 소금 냄새가 나는 야외 자리로 이어진다. 카페 뒤편으로 해안산책로가 연결되어 있다.

로와맨션은 스타 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설계한 카페다. 세 동으로 나뉜 건물 사이로 일광의 바다가 보이고, 군데군데 조개와 종이배를 모티브로 한 조형물이 감각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굵은 통나무를 단면으로 잘라 활용한 입구의 손잡이가 인상적인데, 비슷한 모양으로 생긴 나무 모양 테이블도 편안한 분위기를 더한다. 루프 자리에서는 나무 너머로 곧은 등대와 물결치는 바다가 보인다. 대표 메뉴는 크림플랫화이트와 애플캐모마일티. 달콤한 크림을 올린 로와 라테도 인기다. 애견 동반 카페로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으니 바닷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기억해둘 것.

 

INSIDER

팟캐스트 제작자의 ‘부산스러움’ 찾기

정욱교 PD는 부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공오일에프엠’에서 팟캐스트를 만들고 있다. 사람들을연결해주는 방송으로 함께한 시간이 벌써 10년째.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지역사회 이야기를 전해온 자타 공인 ‘부산잘알’ PD가 신중하게 꼽은 ‘부산스러운’ 장소들을 살펴보자.

청사포

해운대와 송정 사이 작고 조용한 어촌 마을 청사포. 다양한 부산 바다 중 이곳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현재와 과거, 시끄러움과 조용함, 빠름과 느림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운행을 시작한 해변 열차를 타고 오는 많은 관광객 뒤로 미역을 팔고 그물을 손질하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사직야구장

부산 하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사직야구장이다. 경기가 열릴 때도 좋지만 비시즌의 사직동을 걸어보는 것도 의외로 즐겁다. 먹자골목의 양대 터줏대감 ‘오륙도낙지’와 ‘소문난주문진막국수’도 좋고, 중탕 떡볶이를 맛볼 수 있는 ‘할매떡볶이’와 찐 야구팬이 모이는 ‘승리의 통닭’도 추천한다.

APEC나루공원

매년 10월이면 부산국제영화제로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센텀시티. 영화의전당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모습을 드러내는 APEC나루공원은 바쁘게 돌아가는 센텀시티의 쉼표 같은 공간이다. 커피 한잔 사 들고 나루공원과 함께 이어지는 수영강을 바라보는 여유를 꼭 즐겨보았으면 한다.

영도 은하수 유람선

몽돌이 파도와 만나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유람선을 타보자. 태종대를 넘어 영도등대까지 이어지는 배 위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바다는 땅 위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배를 계속 따라오는 갈매기와 함께 온몸으로 바다를 느끼고 감지해변으로 돌아와 먹는 조개구이는 부산 그 자체다.

글. 유수아SOO-A YOO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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